뜻밖의 이웃: 북에서 온 인싸 동무들
탈북인에게 당신은 어떤 이웃인가요?
남한에서 나고 자란 ‘요즘 애들’에게 북한은 그야말로 ‘먼 나라 이웃 나라’다. 90년생인 나는 평생 북한에 대해 막연하게만 배우며 자랐다. 뉴스에서만 잠깐 등장하는 ‘북한’이라는 단어는 내 일상에 그 어떤 무게도 가지지 못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북한의 모습 역시 막연했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6.25 전쟁 같은 단편적인 사실을 배울 뿐이고, 도덕 교과서에서는 언젠가는 통일이 되리라는 메시지만 있었다. 정작 북한 사회는 어떤지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배운 기억은 별로 없다.
가난하고 먹을 게 없이 산다는 얘기는 곧잘 들어봤지만, 단 한 번도 북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황해남도 연안 출신 우리 할머니께서는 내가 북한에 대해 이렇게까지 모르고 자랄 수 있었던 것은 평화로운 시대에 유년 시절을 보낸 특권이라고 했다.
밀레니얼 바로 위 세대까지만 해도 북한에 대해 개인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는 전쟁 때 미군 빨래를 하면서 돈을 벌었고, 할머니는 총알이 빗발칠 때 걸어서 남쪽으로 내려왔다. 우리 엄마는 반공 교육을 받을 때 북한 사람들 다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생각했단다. 이렇게 현실에서 분단 상황을 체감하던 과거 세대와 달리 우리 세대는 북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이 자랐다. 편견도 없는 진공 상태. 그런데 그런 나에게 언젠가부터 나에게 ‘북한 사람’에 대해 더 생각하고, 더 알고 싶어지는 계기가 생겼다. 바로 북한에서 태어난 친구들을 사귀게 된 것이다.
만나면 알고 싶어지고, 알게 되면 이해할 수 있다.
탈북 난민을 구출하고 정착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일하면서 90년대에 북한에서 태어난 또래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노엘 선생님도 그런 친구 중 한명이다. 노엘은 1993년 한반도 동쪽 최북단 도시 온성에서 태어났다. 노엘과 친구가 되면서 그녀의 어린 시절의 경험이 나의 어린 시절과 얼마나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들이 있는지 배우게 되었다.
북한의 젊은 세대 역시 과거 세대와 다른 인식 및 가치관의 단절이 있다는 점은 비슷했다. 90년대 북한 대기근 시대에 풀뿌리 자본주의의 시작과 함께 자라난 세대들은 부모 세대와는 다른 국가관, 경제관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내가 누리며 자란 많은 자유가 그녀의 유년시절엔 없었다. 바깥세상에 대해 모르고 싶으면 모를 수 있는 특권도 노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정반대로 바깥세상에 대해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사회에서 자랐던 것이다.
이렇게 친구들이 어떻게 남한으로 오게 되었는지, 북한에서 어떤 연애를 했는지 등의 인생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친구들을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또 남한 사회에 처음 왔을 때 장소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마치 타임 머신을 타고 60년 후로 온 것같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이들에게 그동안 얼마나 좋은 이웃이었는가 자문하게 되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인에게 우리는 어떤 이웃일까? 남한에는 지금 약 33,000명의 탈북인이 있다. 통계 자료를 인용하지 않아도 북에서 자유를 찾아 남으로 온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에 살면서 겪는 경험의 결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서로 더 잘 알고 이해하면 이 어려움의 많은 부분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일단 우리는 최대한 자주 만나야만 한다. 만나서 질문하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알아가는 것만큼 좋은 것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노엘을 포함한 내가 만난 북한사람들은 모두 선택하지 않은 운명이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여러움 속에서도 본인의 삶을 개척해 온 강인한 사람들이다.
이번 언서페를 기회 삼아, 북에서 온 인싸 동무 노엘과의 예기치 않은 만남을 통해서 서로에게 더 포용적인 도시를 만드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예기치 않은 접선은 2019년 12월 13일 (금) 오후 7–9시 @로컬스티치 소공점에서
참가신청: https://event-us.kr/usfseoul/event/13410
대담자
대담자 시계방향으로:
📍 김노엘: 한반도 동쪽 최북단 도시 온성에서 나고 자랐다. 2009년 탈북, 2010년 남한에 정착하여 9년 차가 되었다. 현재 LiNK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으며, 애드보커시 펠로우, 한반도 체인지 메이커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 리정렬: 평양에서 가까운 평성 출신.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북한 대표로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출전 은메달을 4번이나 따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자유라는 더 값진 메달을 위해 2016년 홍콩에서 열린 국제대회 참가 중 망명했다. 지금은 서울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있다.
📍 김예지: LiNK 홍보 소통 담당자. 남한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여성과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을 위해 일하고 있다.
Liberty in North Korea 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연대이자 국제비정부기구. 탈북 난민을 구출하고 정착을 지원하며, 유튜브 채널 ‘윗싸이더’를 통해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LiNK는 2010년부터 1000명 이상의 탈북난민을 구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