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경험자, 훌라춤, 이한철, 리빙랩..?

Sunghee Woo
Unusual Suspects Festival Seoul
10 min readOct 24, 2018

나우프로젝트 서정주 인터뷰

“이번 언유주얼 서스펙트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팀도 있대요. 암경험자에 대해서 얘길 나누는 세션인데, 암생존자 분들이 합창단을 만들어서 노래도 하고 훌라춤도 추신대요. 거기에 무려 가수 이한철씨도 오신다고 하네요. 그리고 리빙랩 얘기도 한대요.”

암생존자 +훌라춤 +이한철 +리빙랩? 언뜻 들어서는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운 세션 <암경험자가 살기좋은 지역사회 이야기>의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서, 듣는연구소가 세션을 준비하는 나우프로젝트 서정주 씨를 만났습니다.

나우프로젝트의 시작

2012년 배에서 가수 이한철씨를 만났어요. 피스 & 그린보트라는 한ㆍ일 시민들이 같이 항해하면서 사회문제를 배우고 얘기하는 프로그램이예요. 거기서 어느날 이한철 씨가 탑승객들과 어울려 놀다가 즉석에서 기타 치고 노래를 부르니까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가사를 붙여서 노래를 만들더라고요. 신비한 경험이었어요. ‘언어를 몰라도 음악은 마음으로 통하게 하는구나.’ 다음 해에 탔을 때는 이한철 씨가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두 나라의 다양한 세대가 자기들 생각을 담은 노래를 같이 만들었어요. 그 경험이 너무 좋아서, 저도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랑 우쿠렐레 치면서 노래를 만들며 놀았지요.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라는, 알고 지낸 단체의 대표님이 어쩌다 제가 만든 노래를 듣고는 “우리 단체에서도 이런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 같이 만들어보자.”고 연락을 주셨어요. 저 혼자는 못하니까 이한철 감독님(이제는 나우프로젝트의 총감독님이라고 불러요)에게 연락을 했는데, 하실 마음이 있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음원을 만드는 데에는 시간도, 돈도 들잖아요. 자금을 어디에서 구해야하나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저희 회사 사장님께 말씀드렸더니 “회사의 철학이랑 맞으니까 같이 해 보자.”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해서 2015년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장애인 인식개선 내용을 담은 노래 ‘가까이’를 만들고 공연도 했어요. 그때부터 <나우-NOW>란 이름으로 매년 음악으로 사회변화를 만드는 활동을 쭉 하고 있어요.

룰루랄라합창단과 이한철밴드 ⓒ나우프로젝트

2016년에는 즐겁고 건강한 노년을 모델로 시니어뮤지션팀을 만들어 <노년반격>이란 앨범을 냈어요. 2017년엔 뇌전증 어린이와 가족들이 합창단을 만들어서 <Have A Good Time> 앨범을, 새로운 시니어 뮤지션 팀이 새 앨범을 내기도 했고요. 이렇게 음악으로 장애, 고령화, 뇌전증 아동과 활동하다가 암경험자를 만나게 되었어요.

올해는 암을 치료하신 ‘암생존자’들과 이한철밴드가 ‘룰루랄라 합창단’을 만들었어요. 노래도 하고, 훌라춤도 추는 멋진 분들이세요. 이번 언유주얼 서스펙트 페스티벌에서 열리는 세션 <암경험자가 살기 좋은 지역사회 이야기>에서 공연하실거예요.

Q. 어떤 회사이길래, 사장님이 흔쾌히 프로젝트를 지원해주던가요?

<에자이>라는 제약회사인데, 회사 철학이 human health care라서 모든 직원들이 환자들 삶을 공감하게 하기 위해 근무시간의 1%를 환자들과 보내도록 정해 놓았어요. 환자들과 같이 시간을 보낸 다음에 그 경험을 가지고 환자들의 잠재 니즈를 찾아서 직원들이 비즈니스모델까지 디자인하도록 하거든요, 꼭 수익사업이 아니더라도요. 그런 면에서 나우프로젝트가 회사 전략방향과 맞았던 것 같아요. 직원들이 환자들의 어려움을 자연스럽게 아는 데에 음악 작업이 도움이 되었거든요. 비장애인인 직원들과 장애인이 반반 섞여서 공동 음악 창작 워크숍을 하고, 가사도 쓰고, 음원도 만들고, 공연도 하면서 그 분들 스토리를 알게 되었어요.

‘나우’란 이름은 ‘나를 있게 하는 우리’라는 뜻이예요. 손가락 하나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프듯이, 어떤 집단이 안녕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 전체가 안녕하지 못하잖아요.

나우프로젝트는 건강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문제를 지역사회와 같이 풀어보려해요. 다만 저희 회사가 제약회사이다 보니까 질환이 있으신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던 거구요. 또, 접근 방법이 음악만은 아니예요. 음악은 문제를 겪고 있는 당사자분들을 커뮤니티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접근 방법인 거죠.

같이 노래를 만들고 부르면서 당사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자연스럽게 알게 돼요. 그 문제를 누구와 연결해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찾아가다보면 작은 솔루션을 하나씩 만들게 되고, 또 새롭게 해결할 문제가 보여요. 예를 들어, 뇌전증 아동들과 만나다보니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놀이구급상자를 만들기도 하고, 치매노인을 만나면서 치매노인을 위한 미술도구를 만들기도 했어요.

에자이라는 회사가 혁신활동이나 리빙랩을 장려하다보니 혁신활동과 나우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에자이는 나우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주체 중 하나이지만, 나우프로젝트가 에자이만의 사회공헌사업은 아니예요.

암 생존자가 살기 좋은 지역사회?

합창단을 꾸려서 노래하다보니까 단원들 이야기를 하나 하나 알게 되었어요. 암을 이겨냈는데도 일상 생활과 사회에서 겪게되는 예상치 못했던 편견과 차별을요. 직장이나 마을에서도 암에 걸린 이야기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암에
걸리면 암묵적으로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시선도 있고요. 그걸 담아 스토리북을 만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암생존자분과 전문가, 연구자 등 각계의 분들을 찾아갔는데, 같은 대상을 얘기하는데도 섹터마다 언어가 다르더라고요. 하는 일과 전문성도 다르고요. 이분들의 자원과 하는 일들이 잘 연결되면 더 큰 효과를 만들텐데. 안타까웠어요.

공연을 하면 자연스럽게 관련된 분들을 만나게 돼요. 암협회에서도 오시고, 암생존자 어드보커시 활동하는 분들도 만나고요. 하루는, 30대에 본인이 암을 경험하시고 나서 2030 암생존자를 위한 활동을 구체적으로 구상하는 분을 만났는데 이 분과 “섹터 간 소통이 부족해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이들이 연결되면 더 많은 가치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환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그 분들을 임파워해서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 빌딩을 도우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 자리에 모인 분들과 같이 당장 해보자고 얘기가 나와서 암 생존자 리빙랩(Living lab)이 시작됐죠.

<스물 여덟 살, 암을 겪었다>

암 생존자 리빙랩

예전에 일본에서 60대 치매 노인을 만났는데, 이 분은 쉐어하우스에서 골프도 하고 취미활동도 하고 지내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저 분은 치매환자가 아니잖아요.”라고 했는데, 전문의가 말씀하시길 “이 분이 사는 커뮤니티에는 치매환자에 대한 사회적 자본이 잘 형성되어 있어서 일상적으로 살 수 있어요. 사회적 자본을 만드는 일은 의사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 여러 섹터들이 관심을 갖고 협력해야해요.”라고 하셨지요. 무척 감명 깊었어요. 리빙랩을 통해서 암을 경험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인식, 제도, 프로세스, 제품, 서비스가 갖춰진 사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라고 활동방향을 잡았지요.

일단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매달 한 번씩 만나서 논의를 해보기로 했어요. 매달 조금씩 관심있는 분들을 초대하고 넓혀갔어요. 암 연구자, 심리치료사, 사회혁신단체, 디지털 사회혁신 하시는 분도 오시고요. 아직 회원 개념도 명확하지 않은 느슨한 모임이예요. 이번 <암경험자가 살기좋은 지역사회 이야기>세션에서 이 리빙랩에 대해서 거창하게 소개할 순 없지만,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싶어요. 왜 암생존자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암생존자가 살기 좋은 지역사회가 필요하고, 리빙랩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요.

<암생존자가 살기좋은 지역사회 이야기>에 참여하면

암생존자가 살기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암생존자에 대한 공감이 이뤄져야 하거든요. 그래서 이번 세션에 오시는 분들이 암 환자에 대한 공감 — 암 생존자의 이야기를 듣기 — 암 생존자 리빙랩의 가능성에 대한 주제를 순차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구성 했어요.

  • 암환자 공감: 암이 우리 삶과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작은 서베이를 하려고 해요.
  • 전문가 제언: 국립암센터 장윤정 교수님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어야지 암 환자들이 살기 좋은 마을이 될지 얘기 해 주실거예요.
  • 암경험자가 얘기하는 암 이슈: 팟캐스트 <내가 암이라니>를 진행하는 박피디와 황배우는 직접 암을 경험한 현직 피디와 뮤지컬 배우세요. 입담이 정말 좋으세요. 자신들의 암 경험을 생생하게 얘기해 주실 거예요.
  • 암생존자 리빙랩: 우리나라 ‘리빙랩 전도사’ 성지은 박사님을 모셨어요. 리빙랩이 효과적인 방법인데, 보건의료 쪽에서 사례가 별로 없다며, 보건의료의 사회혁신 방법론으로서 리빙랩의 가능성을 말씀해주시기로 하셨어요.
  • 나우작은음악회: 이한철 감독님과 룰루랄라합창단이 공연을 할 거예요. 암생존자분들의 노래와 춤, 에너지를 느끼실 수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 셋 중 한 명이 암을 경험한대요. 누구든 자기 자신이나 주변에서 간접적으로라도 암을 겪지 않을 사람이 없는 거죠. 그래서 ‘암생존자’는 암을 치료한 분을 뜻하지만, ‘암경험자’는 암생존자 당사자 뿐 아니라 가까이에서 보살피거나 했던 사람들도 포함해요. 하지만 암경험 자체에 대해서나 암경험자들이 살기 좋은 사회에 대해서는 잘 얘기되지 않아요. 오시는 분들이 이번 행사를 계기로 암생존자에 대해서 더 알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암에 대한 관심이 없으신 분이라도 리빙랩에 관심이 있거나, 보건의료 쪽 사회혁신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도 도움이 될거라 생각해요.

언유주얼 서스펙트 페스티벌 <암경험자가 살기 좋은 지역사회 이야기> 참여하기

일시: 11월1일(목) 오후 3시30분

장소: 불광동 서울혁신파크 내 청년허브 다목적홀 ‘활력’

세션 신청 : https://event-us.kr/usfseoul/event/3382

나우프로젝트 블로그: https://blog.naver.com/nowprojectkr

나우프로젝트 서정주 님 ⓒ듣는연구소

Q. 그런데 궁금해졌습니다. 회사일 이상으로 애정을 쏟고 계신 것 같아요. 서정주님에게 나우프로젝트는 업무인가요, 활동인가요?

회사의 사회공헌 활동과 연결이 되어 있지만, 업무 외 하는 활동이기도 해요. 암생존자 리빙랩도 퇴근 후에 취미처럼 진행해왔어요.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제가 아이를 낳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이 하라는 대로 살았는데 아이에게 세상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겠고, 그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리해봐야겠다.’ 회사 일이 무엇을 위해서 하는 일인가 고민도 되고요.

가슴 뛰는 일을 찾으려고 책도 읽고 강연도 듣고 하던 와중에 ‘커뮤니티 매핑’이란 걸 접하고 감명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 일을 돕겠다고 연락해서 해 보았어요. 하다보니 회사일과 병행하는게 점점 벅차져서,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이 활동을 해 볼까 고민했는데, 사장님이 듣고 그만두지 말고 반반씩 해 보라고 제안해주셨어요. 주 3일은 회사에서, 2일은 커뮤니티 맵핑 활동을 했어요. 그러면서 사회혁신 분야의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죠. 그러다가 회사에 다시 돌아와서 이런 활동들과 연결되었어요.

자기 관심사를 놓지 않고 탐구하는 서정주 씨와 직원의 활동을 회사의 일로 연결할 여지를 내어주는 에자이 사. 활동과 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회사일과 사회활동이 연계되긴 커녕, 장시간 노동으로 사회적 활동과 삶이 단절될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노동환경을 떠올리게 됐어요.

인터뷰를 듣는 내내 서정주님은 일과 활동을 병행하며 서로에 녹여낼 수 있는 ‘사내 기업가’이자 ‘N%의 활동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의 활동과 회사의 혁신활동이 연결될 장을 만들어주었을 때 가능했지요. 그토록 사회와 기업이 추구하는 ‘혁신’은 이런 토양에서 이뤄지지 않을까요?

written by 듣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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