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도시, 지키고 싶은 공간

언서페에서 만난 도시와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

주(註) :이 글은 언서페에서 진행되었던 ‘더 협력적이고 포용적인 도시는 어떻게 디자인할 수 있나?’와 ‘지키고 싶은 공간에 대하여' 두 세션에 참가한 후 남기는 기록입니다.

나는 서울에 삽니다. 서울에서 주택 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코 하우징 주택을 지어 조합원들과 함께 살고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집근처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학습하며 삶을 성장시켜 나가기를 기대하며 작은 공간을 임대하기도 했습니다. 기반이 되는 공간을 하나씩 늘려 나갈 때 마다 기대가 커져가기도 하지만, 새삼 서울에서 공간하나를 가진다는 것이, 아니 빌려 사는 삶을 유지시켜 나간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세탁소를 차린건 아닙니다.. 얼마전 계약해 이제 임대료 낼 일만 남은 마을 연구 공간..ⓒ듣는연구소

서울에서 열리는 언서페의 세션 목록을 보면서 유독 ‘도시’와 ‘공간’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서울에서 30년이 넘게 살고 있지만 이 도시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서울을 떠난 벗들의 삶을 전해 들을 때면 그들의 삶이 도시의 편리함을 조금 잃었을지 몰라도 더 많은 삶의 자유를 얻은 것 같은 생각이 들때도 있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비단 저 뿐 일까요? 도시는 모든 것을 빨아들 일 것 같은 원심력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게 만들고 있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도시가 나를 배제하려 하는 것 같은 구심력을 느끼며 도시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변두리로 쫓겨나고 있습니다. 저도 도시의 원심력과 구심력 사이 어느 쯤에서 중심을 잡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언서페 서울의 시작을 알린 ‘더 협력적이고 포용적인 도시는 어떻게 디자인 할 수 있나?’ 세션 ⓒ씨닷

언서페의 첫날 첫 세션으로 열린 ‘더 협력적이고 포용적인 도시는 어떻게 디자인 할 수 있나?’를 찾은 것은 도시하면 생존이 먼저 떠오르는 저 같은 사람에게도 도시를 더 따뜻하고, 살만한 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도시라는 공간에서 대안을 찾고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시도를 하고 있을까요? 세션은 유럽의 토리노와 리스본에서 홍콩, 서울(은평, 금천)과 순천까지, 5개의 도시에서 펼쳐지고 있는 5개의 사례 소개를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여기서는 각각의 사례를 나열하기 보다는 각 사례들이 ‘어떻게’ 협력적이고 포용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접근하고 있는지에 대한 키워드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도시를 위한 첫 번째 키워드 : ‘실험’

첫 번째 키워드는 ‘실험’입니다. 연구실에서만 쓰이는 단어로 여겨졌던 실험이 도시 차원의 정책과 시민의 삶의 방식을 재구성 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실험의 시도는 시민주도의 행사를 쓰레기 없이 치뤄보는 것 (순천시-No플라스틱 도시 만들기 ), 지역의 주차문제를 공유의 아이디어로 해결하는 것(서울시 금천구-공유주차장 실험 )등에서 부터 도시의 버려진 공공공간을 시민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문가 그룹이 실천하는 실험까지 다양했습니다. (토리노-공유재 관리 프로젝트 )

또 한 장소를 정하여 그 공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장기적 단위의 실험과(서울혁신파크 — 옥상공유지 프로젝트) 도시 곳곳에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곳을 정해 5개월 단위의 시민참여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제안하는 프로젝트 방식(홍콩-소셜랩 프로젝트 )처럼 보다 다양한 공간의 사례를 축척 하여 도시의 활력을 높여가는 실험도 있었습니다.

SIX의 루이즈는 홍콩의 에이다 웡을 대신해 홍콩 소셜랩의 사례를 들려주었습니다. ⓒ씨닷
우리는 실험이라는 말을 쓸 수 없다._중앙부처의 한 관료…

언젠가 참여한 우리나라의 한 중앙 정부 기관과의 회의에서 ‘우리는 실험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실험은 ‘실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정책 실험이 주는 많은 장단점이 있지만 극단적으로 실패만 부각하여 바라보는 것은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요즘 듣게 되는 정책 혁신의 배경에는 국가 보다는 도시의 이름이 더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더 작고 빠르게, 행정이 아닌 주민이 주도하는 실험도 가능하니까요. 도시 혹은 더 작은 지역의 단위가 이러한 실험들을 펼치기에 좋은 장이라는 것이 강조되고 있고 언서페의 현장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도시를 위한 두 번째 키워드 : ‘참여’

두 번째 키워드는 ‘참여’입니다. 협력적이고 포용적인 도시를 만드는건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것은 이제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현장에서는 참여라는 말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시민참여형 사회혁신 사업이 늘어나고 있지만 시민이 참여하고 있는 것인지 동원되는 것인지, 참여 주체 간의 협력적 활동이 과정과 결과 모두로 의미를 갖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참여에 있어 균등한 기회가 돌아가고 있는지 등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 논의되지 않고 있는 듯 합니다

당일 토리노와 리스본의 사례를 발표했던 URBACT의 피터 람스덴(Peter Ramsden)은 발표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 했습니다.

“참여를 위해서는 커뮤니티의 역량강화가 필요하다. (역량은) 작은 프로젝트에서 큰 프로젝트로 이행해가는 과정을 통해 키워 갈 수 있는데 이를 (커뮤니티의)근육을 키워가는 과정이라고 비유하기도한다.” 피터는 여기에 전문가 집단의 적절한 개입, 충분한 시간의 부여를 중요한 요소로 첨언합니다. “(참여적 거버넌스를 위한) 협력적 디자인 (Co-design)은 그 과정이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줄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은 인내가 필요하고 장기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발표된 각각의 사례들은 각자의 상황과 목표에 맞춰 참여의 방식과 내용을 다르게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순천시의 No플라스틱 도시 그리고 금천구의 공유주차 프로젝트는 행정의 공모사업을 통해 지역사회 공동의 문제를 짧은 프로젝트 기간(약 4개월)에 해결해 나간다는 제약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공론화 회의, 주민 회의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론장 형식의 참여방식을 채택해 시민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었습니다.

서울혁신파크의 옥상공유지 프로젝트는 보다 위임된 권한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장기적으로 서울혁신파크의 옥상이 시민에게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다양한 주체들이 허가가 아닌 신청 만을 통해 옥상을 활용하며 참여자들이 스스로 활용 방식을 찾아가는 참여의 방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서울혁신파크의 옥상정원에서 진행한 언서페 브런치 모임. 공간과 사람이 주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듣는연구소

홍콩의 경우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 참여의 과정 자체가 하나의 교육적 효과를 거두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시장이나 도서관 등 지역사회 공간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프로젝트 팀을 결성해 시민이 스스로 도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익혔습니다. 특히 여기 참여한 공무원들이 시민참여 사업에 대해 가지는 인식과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을 가장 큰 성과 중에 하나로 발표하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이러한 활동을 주도하는 주체들은 어디나 비슷한 고민들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키고 싶은 공간, 어떻게 지키고 있나?

‘더 협력적이고 포용적인 도시는 어떻게 디자인 할 수 있나?’가 방법과 사례의 차원에서 도시문제에 접근하는 세션이었다면, 제가 참여한 또 다른 언서페 세션인 ‘지키고 싶은 공간에 대하여’는 보다 개인적 장소성에 기반한 접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선 세션과는 다른 관점으로 도시와 공간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는데요, 세션을 개최한 공공그라운드는 역사, 사회, 문화적으로 의미있는 부동산 매입하여 사회적 가치를 지닌 혁신조직에게 실험과 교류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자는 미션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는 주식회사입니다. 대학로에 있던 전 샘터 출판사의 사옥을 매입하여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실험과 교류를 위한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선 공공그라운드 배수연 대표가 공공그라운드에 대해 소개하고, 왜 샘터 사옥을 매입하게 되었는지 공간을 보존하고 새롭게 활용하려는 시도의 사례는 무엇이 있는지 소개했습니다.

공공그라운드 배수연 대표가 공간을 지켜나가는 다양한 사례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씨닷

그 중 한 사례인 Ethical Property 라는 영국의 자산 관리 및 코워킹 스페이스 관리기관은 공공그라운드가 모델로 삼고 있는 기관 중 하나로서 영국 옥스포드 시의 올드 뮤직 홀(old music hall)을 본사로 두고 있는 곳입니다. 올드 뮤직 홀 자체가 1898년에 지어져 공공회관, 음악홀 등의 공동체 공간 역할을 하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려는 Ethical Property의 노력으로 현재 그들의 본사 건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Ethical Property는 이와 같이 지역의 오래된 자산,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지속적으로 매입하고 새로운 공동체적 역할을 부여하는데 현재까지 영국에 23개 센터를 운영하고있고 이 가치에 동의하는 1300여명의 주주가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올드 뮤직 홀의 입구_”사려깊게 헌신하는 작은 시민의 그룹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의심하지 마십시오"라는 영국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말이 붙어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Old music hall 홈페이지 갈무리

이러한 사례가 중요한 것은 이 세션에 참여한 참여자들이 각자 지키고 싶은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지킬 수 있는 구체적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사실 내가 살 집 조차 마련하기 쉽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 가치 있는 공간, 내가 지키고 싶은 공간을 지켜 낸다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조금 상상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힘을 모으고 어떻게 하면 그 힘을 적절히 사용하여 공간을 지켜낼 수 있을까가 궁금한 것입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공간 그리고 기억에 관한 이야기들

배대표의 짧은 강연 이후 참가자 개개인이 한 명씩 나와 자신이 지키고 싶은 공간을 소개하고 지키고 싶은 이유, 또 나름대로 생각해 본 지킬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시작은 공간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 되었지만 듣다보니 사실 ‘공간’이라는 단어 보다는 ‘기억’이라는 단어가 더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자주 가던 카페, 자신이 처음 일을 시작한 지역, 내가 처음 독립해 살았던 집, 평소 자주 가던 극장 등 자신의 기억과 시간이 층층히 쌓여있는, 장소들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한 참가자는 자신이 샘터 사옥 근처에 살아서 유년시절의 많은 기억의 원형이 파랑새 극장(샘터 사옥 지하에 있던 어린이 전용 소극장)과 관련한 기억인데 이렇게 유지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반가웠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하였습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고 변화가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 경제적 가치를 포기하고 원형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많은 이들의 기억이 중첩되어 머무는 공간이 그 자리에 있어 세상에 아직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사람들의 기억이 잠시 머무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 그것이 유지 되는 것 만으로도 경제적 가치 이상의 공공적 역할을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의 기억이 깃든, 지키고 싶은 공간의 목록 ⓒ씨닷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도시와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잘 보존되고 활용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앞서 소개한 포용적 도시 만들기 세션에서 홍콩의 소셜랩 프로젝트를 소개한 SIX의 루이즈 풀포드 (Louise Pulford)는 홍콩의 도서관 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한 도서관 사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신이 항상 도서관에서 일 하는 사람으로서 듣던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도서관에 대한 불만, 개선 사항들 뿐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셜랩 프로젝트에 참여해 다양한 사람들과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듣던 이야기와는 다른 도서관에 얽힌 추억, 고민 등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새롭고 긍정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요.

서로의 이야기에 경청 할 수 있는 안전한 모임, 공간 늘어나길

이렇게 함께 웃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언서페였습니다 ⓒ씨닷

처음엔 새로운 아이디어, 방법의 차원에서 공간과 관련된 세션을 살펴보려 했었는데 이미 포용적 도시를 위해,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시도가있고 기꺼이 자기가 가진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확인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무리 될 때쯤 따뜻하게 차오르는 분위기가 벌써 그립습니다. 앞으로 언서페와 같이 서로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안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회의 장이 늘어나고 그런 공간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머물 곳 없는 도시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이 가진 온기들을 나누며 포용적인 도시를 만들고 지키고 싶은 공간을 늘려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현장의 목소리가 우리 삶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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