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이야기가 환영받지 못하는 곳이 있을까

To.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들에게

Hajin Song
Unusual Suspects Festival Seoul
6 min readSep 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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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을 검색하면 한 번도 가본적 없는 곳의 소식도 어디서든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통신은커녕 책조차 귀했던 시절에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세상을 알아갈 수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접한 사람들은 대가 없이도 자신의 주위에 모여든 이들에게 알고 있는 것을 풀어놓았고, 듣는 이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서 오래 살아남아 멀리까지 퍼지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 이야기는 무엇이 달랐을까? 한 번 듣고 잊혀지는것이 아니라 대화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 또 다른 대화속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되살아 났을 이야기들. 누군가 굳이 알리려 다니지 않아도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퍼져나가 세상을 바꾸었던 이야기들 말이다. 그러한 이야기에는 일상(Usual)의 범주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우리를 비일상의 새로움으로 한 발 이끌어주는 평범하지 않은(Unsual) 특성이 있지 않을까?

2018 언유주얼서스펙트페스티벌 서울 — 콜라보레이터 워크숍1 ⓒ듣는연구소

나는 지난 9월 13일 있었던 언유주얼 서스펙트 페스티벌 서울(이하 언서페) 콜라보레이터 워크숍에 기록자로서 참여했다. 언서페에서 대화의 세션을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 언서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콜라보레이터'라는 이름으로 함께 대화하고 교류하는 자리였다. 오가는 대화들을 관찰하며 여기 모인이들이 함께 준비하는 언서페가 매력적인 자리가 되기 위한 조건, 특히 생명력있는 이야기들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특별한 장치도, 주고 받는 대단한 대가도 없이 오직 모인 이들이 나누는 대화와 이야기의 힘에 기대어 행사가 진행된다는 것에 콜라보레이터 모임에 모인 사람들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한 참가자는 자신을 소개하며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우린 아직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 우린 왜, 여기에 있을까?”

막연한 질문일 수 있지만 참가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연말에 마무리되는 사업들이 많다. 조금 있으면 일도 끝나고 올해도 끝날 것 같은 그 일정 속에 시야가 좁아져 있는데 우리의 시야를 다시 넓혀 줄 수 있을 것 같다.”

“(보통의 콘퍼런스는) 특정 이슈를 주제로 삼아서 주최측의 의도와 방향에 맞는 사람들을 섭외하고 정해진 방식으로 이끌어 간다. 언서페는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관심있는 주제에 모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상호작용할지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세션들은 각자의 주제를 관심있어 하며 모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쉬운 언어로 주제를 전달하고 소통할지를 확인하고 싶다.”

너무 아름답기만 한 대답일까? 그러나 의문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 참가자는 모임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순간에도 좋은 자리인 것은 알겠지만 아직 확신이 없다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정말 협력이 될까요? 아직은 그 수준이 어느정도일지 모르겠어요"

왜 아니겠는가? 최근 우리 주위에 맴도는 이야기는 결속과 협력보다는 너와 나를 가른 수많은 갈래 속에 펼쳐지는 대립과 갈등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마주보고 앉은 책상 너머로 최저임금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차가, 시청 광장을 중심으로 동성애에 대한 환대와 배제의 태도가, 카페 안에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와 다른 고객들 사이에 소통보다는 긴장이 흐른다.

지금 준비되고 있는 언서페의 대화 주제들은 그런 긴장을 피해가거나 대충 넘겨짚어 뭉뚱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앞서 예로든 우리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많은 경계위에서의 갈등을 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다루고 있다. 콜라보레이터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아래와 같은 주제들이 바로 그런 예이다.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갈 수 있는 문화에 대한 대화' (진저티프로젝트)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 안전망이 있는 사회' (lab2050)

‘기울어진 투자생태계를 변화시키는 젠더관점의 투자에 대한 논의' (sopoong)

하지만 여전히 걱정은 남는다. 이같은 주제가 아직 우리 일상에 자리잡지 않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막상 현장에서 혹여 답이 없는 평행선의 대화들만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대안들을 함께 찾았다. ⓒ듣는연구소

문득 얼마전 한 신문과 인터뷰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생각났다.

“말을 돌멩이 처럼 다루며 상대에게 던져대는 흑백논리의 시대, 이야기는 단편적인 사고에 대항하기 위해 전투력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이야기가 의미나 정의, 어떤 주의를 넘어서는 것이고 때로 선악의 개념마저 초월하기도 하는 동시에 시간과 공간, 언어나 문화의 차이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량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인용한 문장에서 마음에 걸렸던 ‘전투력'이라는 단어는 아마도 그 선량한 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콜라보레이터 모임을 지켜보며 혹시라도 언서페가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와 삶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대가 없는 대화의 장'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립과 갈등, 새로운 방식에 대한 다른 관점'이 소통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을 느꼈다면. 그건 행사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라기 보다 우리 사회에 남아있을 ‘선량한 힘'에 대한 의심이 아니었을까?

당연히 어느 누구도 어떤 목적이나 맥락없이 언서페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콜라보레이터 모임을 지켜보며 확신한 것은, 적어도 언서페에서는 이야기가 상품화 되는 시대에 좀 더 잘 팔리는 이야기를 찾기위한 간 보기나 이야기를 자신들의 독점적인 주제로 확보하기 위한 복잡한 전략같은 논의는 없을 것이란 점이다. 약간은 낯간지럽지만 더 나은 세상과 우리의 삶을 위한 선량한 힘에 기대어 있는 행사라는것을, 그래서 서로서로 믿지 않으면 좀 더 기대어 서지 않으면 잘 진행될 수 없을 자리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덧 콜라보레이터 모임이 마무리될 시간이 되자 분위기가 처음 시작보다 더 달아오른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더 말하기 위해, 각자의 주제에 하나의 아이디어라도 더 얹어주기 위해 말이 빨라진다. 격의 없고 경계가 없는, 대가도 없는 대화를 통해 전해지는 선량한 힘이 느껴졌다. 이 글을 보는누구라도 언서페에 참여를 머뭇거리며 나의 이야기 혹은 우리의 고민을 내놓기 주저하고 있다면 조금은 두려움을 내려놓고 기대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이야기가 가진 선량한 힘에 말이다.

그 기대를 함께 꿈꾸는 이라면, 함께 해주세요 :-D

홈페이지 : theunusualsuspectsfestival.com

문의 : 씨닷 최지은 (c.jieuncho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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