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없어도 정원생활자가 될 수 있을까?

공유정원으로 포용도시를 만들어가는 법

Hyunah Kim
Unusual Suspects Festival Seoul
7 min readNov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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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처럼 도시에 사는 사람은 몸과 마음(body and soul)의 건강을 위해 가드닝이 더욱 중요해.”

이미지출처: 페이스북 David Austine Roses/ HeadRosarian, Michale Marriot

세계적인 장미 육종회사의 기술고문이자 나의 첫 가드닝 선생이었던 마이클이 내게 해준 말이었다. 그와 나는 온라인 가드닝 교육 과정에서 만나 직접 얼굴을 마주 대한 적은 없지만 4주간 일주일에 한 번씩 장미 키우기와 관련한 이론 교육을 받고 과제를 제출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처음으로 제출한 과제에는 나의 정원에 대한 정보를 적어야 했다. 면적, 방위, 지역의 기후와 미기후, soil type 등.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기에 정원은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옥상이 있었다. 옥상은 soil type이란게 존재 하지 않았기에 나의 정원은 루프탑 가든이라 인공배양토를 사용한다고만 적었다. 그런데 그 과제에 대한 피드백으로 도시에 살기때문에 가드닝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을 적어 준 것이었다. 어찌보면 너무나 식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미 그 말의 의미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직장에서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로 소진되어 버석버석 갈라지고 말라가고 있을 즈음이라 그의 조언은 너무나 따듯하게 내 처지를 알고 내가 건강해지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한지 알고 위로해주는듯 했다.

직장과 가사, 양육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목적으로 취미생활을 시작했는데 퇴근 후 잠깐 혹은 주말에 갖는 흙을 만지고 식물의 시든 잎을 다듬고 관찰하는 시간은 일주일의 고됨을 날려주는 시간이었다. 흙을 주무르다 보면 손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촉촉한 촉감이 나를 건강하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혹자는 흙에서 원적외선이 나온다고 주장하니 정말인지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자연의 에너지가 긍정적 기운을 주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또한 식물의 욕구를 감지하고 무엇을 필요로하는지 맞춰주면 식물이 새싹이나 작은 꽃망울로 답을 줄 때가 있다. 그러면 몸짓 신호가 동물에 비해 아주 느리고 미세하게 일어나는 식물과의 소통에서 교감을 이뤄냈다는 희열이 느꼈다. 직장에서 고양이를 키울까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식물이야말로 궁극의 교감을 이룰 수 있다고 오히려 식물 키우기를 추천하곤 했다. 일에서 스트레스가 많을 수록 취미에서 한숨 돌리고 위안 받는 시간이 더욱 필요했기에 나는 가드닝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때마침 직장의 인사부서에서 소모임 동아리를 지원하는 조직문화 활성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나는 바로 가드닝 동아리를 만들어 직장내 화단을 가꾸는 일을 시작했다. 한적한 골목길 안에 위치한 사옥이라 오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는, 길가와 맞닿은 화단에 꽃을 심고 가꿨다. 오가는 이웃들이 보기 좋다고 인사를 건내기 시작했고 직장의 동료들도 잠시 틈을 내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좋다고 했다.

이후에 가드닝이란 주제와 맞닿은 일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장을 퇴사하게 되었다. 퇴직금으로 가드닝과 연관된 여러 교육을 들으러 다녔는데 그럴수록 땅에서 식물을 키우는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든 디자이너들도 개인 육묘장(nursery)을 운영하며 정원 식물의 생태적 특성을 이해하고자 직접 키운다. 또한 많은 가드닝 작가들의 이야기 속에 종종 등장하는 ‘가드너는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기 보다는 흙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체감하며 배우고 싶었다.

땅심을 경험해 보기 위해 12층 옥상이 아닌 지상의 땅 한평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처음엔 공공부지를 찾아보았으나 사용을 순순히 허락받기도 쉽지 않을듯 했고 나도 경험을 쌓을 시간이 필요하겠다싶어 집 근처의 주말농장을 분양받았다.

4구좌 약 30평. 이전에 가족과 주말농장을 해보았기에 혼자서 운영하기에 너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모두들 상추,배추, 감자 등 먹거리를 키우는데 관상용 정원 식물들을 키우면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받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 sns에 계획을 공유하고 참여할 사람을 모집했다. 약 10여명의 참가 희망자가 모였다. 언젠가 정원이 생기기를 희망하는 정원 로망을 가진 사람이거나 혼자 하기보다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정원생활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

우리는 땅을 일구고 일년초를 파종하고 구근을 심어 꽃과 허브와 약간의 채소를 키웠다. 꽃이 개화하자 꽃다발을 만들어 가져가는 팜투테이블(farm to table) 꽃 워크샾을 진행했고 꽃이 피는 틈틈이 꽃을 수확하여 친구와 이웃과 나눴다.

꽃다발을 만들어 보기도

모두 즐거워하고 나누는 기쁨을 느꼈다. 이전에 먹거리를 키우면서 너무 많은 상추가 나오면 소비하기 바쁘고 이웃에게 나눠줘도 달가워하지않는 경험을 해본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꽃다발은 누구나 환영이었다. 꽃과 함께 전달하는 인사와 위안을 모두들 몹시도 받고 싶어했다. 나만큼 도시생활자들은 위로와 치유가 필요했고 바라고 있으나 여의치 않았다.

모두들 꽃을 수확해 가족,이웃과 나눴다. 그 순간이 행복했다고 한다.

꽃을 키우는 주말농장 공동체 소식을 sns에 꾸준히 올렸더니 새로운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다양한 가능성을 소통하기 시작했다.

발달장애아 부모 그룹에서 견학을 오고싶다고 하고 아파트 단지 조경을 주민 커뮤니티에서 직접 운영해보고 싶어하는 주민이 의견을 묻기도 했다. 참여하고 싶지만 거리가 멀어서 안타까워하는 분이 계셔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본인의 정원을 공유하여 공동체 정원을 꾸려보시겠다하여 모종과 노하우를 나눠드리겠다고도 했다. 그렇게 소소하지만 다양하게 공동체 가드닝, 공유정원을 모색하고 만드는 방법들이 꼬리를 물고 기획되었다.

개인의 옥상 공간에서 공유정원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서울가드닝클럽의 이가영 대표가 올 해 개장한 서울시의 문화공간인 노들섬 식물도에서 공유정원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고 제안해왔다. 우리는 공유정원이 어떻게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고 도시의 문화활동으로 기능 할수 있는지 2년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에 의기투합했다. 처음에 나 개인의 경험과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가드닝은 많은 사람들이 더욱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동체 정원을 고민하며 더 많은 도시생활자들이 참여하고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을 하니?” 주변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받았다.

“좋아서요. 좋아서 시작했는데 소진되어 텅빈 나의 내면을 채워줬다는 것을 어느날 발견했어요. 자연으로 부터 위안받고 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2년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 스스로가 즐겁고 행복했고 다시 무엇인가를 시작 할 수 있는 희망을 싹 티운것 같아요. 아마도 이 기간은 저에게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돌아보고 어디로 나아갈지 생각하는 안식의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앞으로 뭘 할거니? 라고 물어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거라고 말하고 싶다. 땅 한평 소유하지 않아도 정원 생활자가 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나의 경험을 나누면서 더 많은 도시 안의 공유정원을 만들 방법을 마구 발굴해보고 싶다.

도시에 사는 누구라도 공간의 번잡함이 아닌 시간의 고요함에 들어가 자연을 관찰하고 느껴야 한다. 그래서 자연 감수성을 회복하여 지친 몸과 영혼을 위로 하는 일을 해야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 계속 이어져 가야한다. 그리하여 도시의 포용성은 치유되고 회복된 사람의 내면에서 출발하여 이웃과 친구에게 위로를 건네며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틀림없이 이 이야기에 공감하고 함께 하고픈 정원생활자가 도시 곳곳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과 만나 함께 꽃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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