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u Kim
Unusual Suspects Festival Seoul
6 min readNov 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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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 다시 꿈 꾸어볼까? Green Fingers Innovation

“다시 서울에 돌아오게 될 줄이야!”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였다. 농사를 짓는 곳으로 삶터를 옮기고 협동조합으로 농장을 창업 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몇 년간은 그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느낀 삶의 문제를 해결해볼 요량으로 귀농귀촌을 선택한 것인데, 자연은 오히려 더 고민해 보라며 나를 원래 있던 자리인 서울로 되돌려 보냈다.

(ㅠ_ㅠ서울로 급후진이오)

그러고는 자연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거리를 건져주었다.

자연의 질문1. “인간들이여! 왜 그렇게 똑같이 많이 일하는가?”

과로하는 사회에서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자 이끌리듯 걷게 된 농사의 길. 하지만 다시 한 번 노동력이라는 기준에 부딪혔다. 신체적 노동력만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서로가 갖고 있는 다른 능력을 존중하다고는 협의했지만, 농사일을 하는 현장에서 신체 노동력은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농사 일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었다. 농촌의 문화와 농사 일의 강도는 남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그 기준에 부합되는 사람이 남성 중에도 있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왜냐하면 무리한 노동에 모두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것을 극복해야지만 인정을 받고, 스스로도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이는 도시에서 보아왔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배경만 바뀌었지 ctrl+c, ctrl+v 였다.

(불꽃 같은 청소력으로 이렇게 열심히 쓰레기도 주웠건만!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 사회의 노동의 현장은 얼만큼 많이 일하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노동자가 갖고 있는 지적, 사회적 자원과 같은 다양한 기여 방식은 온전히 인정받기 어렵다.)

자연의 질문2.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대한민국 땅값 많이 올랐다”

신체적 노동력 다음으로는 성별과 세대의 장벽이 있었다. 농장을 운영하던 어느 날, 나보다 나이도 많고 지역에서 오래 생활한 남성 동료로부터 팀의 식사당번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팀원 중에 누구도 자기 밥을 못차려 먹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나는 밥을 전공하지 않았다. 일본어 교육을 전공했고, 일본계 은행에서 영어와 일본어로 일을 했으며, 이후에는 중간지원조직에서 사회적경제를 활성화 하는 사업단에서 일했다.

함께 일하는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전공, 경력과는 무관한 이러한 요청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일까?

어떨결에 그 의견을 수용해서 식사 준비를 해 보았지만 그 과정은 즐겁지 않았다. 가뜩이나 부족한 체력을 농사 일에 쓰어도 모자란 상황이었는데, 전체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은 놔둔채 혼자서 밥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 몹시도 외로웠다.

나는 몇 번의 상차림 끝에 더이상 그 역할을 맡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에는 농사일이 아닌 다른 역할 중 일부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들었다.

“그 역할을 내가 하게 되면, 나는 그만큼 농사를 못짓게 된다.”

Me, too. 정말이지 미투다. 내 말이!

결국 다른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외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하면 신성한 노동, 하지만 내가 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노동 — 안타깝게도 가사노동과 돌봄에 대한 이러한 이중잣대가 우리 문화안에 견고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사건이었다.

자연의 질문3. “애초에 땅은 누구의 것인가?”

나와바리 이야기도 참 많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어디를 가도 여기도 나와바리, 저기도 나와바리. 땅과 조직을 둘러싼 질문이 더 많이 생겨났다.

조상이 선사시대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 지역(업계)에서 살아야(일해야) 외지인(외부인) 취급을 받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돈으로 조직과 땅을 매입하고, 정치 권력의 한 끄트머리 정도는 장악하고 있거나, 의문이 나도 질문하지 않고 늘 네 라고만 대답해야지만이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청년 세대, 그리고 더 어린 세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악순환을 어떻게 하면 선순환으로 바꿀 수 있을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의 건강한 경계선에 대한 고민이 날로 커져갔다.

결국 처음 농사를 지으면서 느꼈던 기쁨을 지켜내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였고 농사를 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단, ‘새로운 용법’이 찾아지기 전까지 말이다.

“그런데 이게 생태도시와 무슨 상관이야?”

위의 글을 쭉 읽어온 독자들 중에는 생태도시에 대한 담론과 위의 문제들이 무슨 상관이 있냐며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도시와 농산어촌 할 것 없이, 영리와 비영리 할 것 없이, 여성과 남성 할 것 없이, 가부장제/젠더/세대/토지/노동과 관련된 과거의 삶의 양식을 변화 시키지 않고서는 생태적인 삶을 펼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짧은 기간 동안 생태적인 농사를 통해 자연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생물다양성과 순환 속에서만이 건강한 생명이 싹튼다는 것이다.

동식물의 다양성 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다양성이 보존되고, 그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순환하지 못한다면 사람을 포함한 지구의생태계는 건강할 수도, 존속될 수도 없지 않을까?

오는 11월2일, GREEN FINGERS INNOVATION : 생태도시로의 전환, 가드닝 활동을 통한 사회혁신이라는 다소 거창한 제목으로 대화모임을 열게 되었다.

거창한 제목의 소소한 자리이지만 그곳에 다양한 씨앗들이 삼삼오오 모일 것이다. 그 씨앗들이 바람과 랜선을 타고, 서울 그리고 그 너머의 대지 위로 뿌려진다면 악순환의 대물림을 끊고 선순환 할 수 있는 미래의 생태적인 삶이 조금씩 만들어져 나갈 것이라 희망한다.

지금 여기,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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