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서페서울2019] ‘나중에’라고 말하지 않기로 해요.「어른이 되면」 상영회 및 감독과의 대화 현장스케치

Hyeji Kim
Unusual Suspects Festival Seoul
9 min readNov 28, 2019
혜화 공공그라운드에서 진행한 <어른이 되면> 상영회 및 감독과의 대화 현장
혜화 공공그라운드에서 열린 행사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어요.

씨닷은 지난 11월 13일 언서페 홍보와 4가지 트랙 중 #함께_살아가는 _커뮤니티 트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상영회를 혜화 공공그라운드에서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직접 장혜영 감독님을 초대하여 영화가 던지는 화두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장혜영 감독님은 이번 언서페 서울의 콜라보레이터로서 #함께_살아가는_커뮤니티 트랙의 한 세션을 맡아주실 예정인데요. 총 46분이 발걸음해주시고 자리를 빛내주셨어요.

감독님의 작품, ‘어른이 되면’은 18년간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살아온 중증발달장애인 동생 혜정을 다시 사회로 데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면서, 탈시설과 자립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자전적 다큐멘터리입니다. 펀딩을 통해 제작된 이 영화에는 동생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함께 보내는 일상이 담겨있는데요.

상영회에 와주신 모든 분들이 영화를 보며 소매로 눈물을 닦다가 때로는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하면서 영화 속 시간의 흐름에 깊이 몸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이후 활발한 Q&A 시간을 가지며 감독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요.

영화를 통해서 못 다 말했던 것이 있다면

처음에는 늘 대부분의 발달장애인분들을 볼 때 소위 말하는 보호자들 (사실 보호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저 동거하고 있을 뿐이죠)의 말을 먼저 듣고 그 존재를 바라보고, 스스로 다가가기 전에 보호자에게 설명을 요구하기 때문에 적어도 제 다큐멘터리에서는 관객들이 ‘최소한 혜정(주인공)에 대해 맨눈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마음으로 첫 편집본을 완성하고 내부 시사회를 열었는데 반응이 진짜 좋지 않았어요. ‘너의 연출 의도는 뭔지 알겠는데, 혜정이 거의 세렝게티 초원에 있는 기린 같아’ 라고 (웃음).

함께 살아보지 않았던 비장애인 관객의 입장에서 혜정의 언어나 감정을 읽어내기 너무 어려웠던 거예요. 혜정의 감정을 투명하게 보여준다는 생각은헛된 욕망이기도 하니까 차라리 명확히 언니의 관점을 녹여내기로 했어요. 혜정의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다른 영화가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기다리고 있는 관객은

제가 좀 더 강조하고 싶었던 건 ‘함께 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마음 먹은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부분이었어요. 물론 탈시설 당사자분들께도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고생각했지만, 진짜로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대상은 한 사람도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장애인 친구를 갖지 못하고 있는 비장애인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함께 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마음 먹은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어떤 어려움이 존재하고 이를 어떻게 돌파해내는가 혹은 미끄러지는가’ 이런 부분들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혜화 공공그라운드에서 열린 언서페서울의 사전행사 <어른이 되면> 상영회 및 감독과의 대화 현장

장애인 문제를 나에게 연결되는 문제라고 연결짓고 연대하는 게 어려워요

장애라는 화두에 접근할 때 크게 2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첫번째는 개인의 신체에 있는 장애에서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쪽이죠. 다른 한 축은 ‘차별'에서 시작합니다. 우리 사회는 대체로 ‘문제는 장애다'라는 관점으로 부터 장애를 바라봅니다. 손상된 신체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최근 성립된 장애학의 관점에서는 문제가 차별에서부터 기원한다고 봅니다. 차별하는 관계, 차별하는 환경, 제도, 문화 등이 그를 ‘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고 정의내리고 제한하지 않으면 어쨌든 그 사람은 계속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죠. 누군가를 일찌감치 낙인찍도록 우리가 구축해온 제도, 문화, 환경,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우리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학교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고 배우죠. 하지만 저조차 제 마음 속에는 인간은 두 종류,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상정해왔다는 걸 아픈 경험들을 하면서 겨우겨우 깨달았어요.

‘나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나는 그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가' 라는 자문에서 시작할 수 있다면 내가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발달장애인을 더 잘 대할 수 있을까요?

영화 내에서 친구들과 혜정을 연결할 때, 잊을 수 없는 고백을 받았어요. “저는 발달장애인과 저녁을 같이 먹어본 적이 없어요. 첫 저녁 식사 자리에서 실패하고 싶지 않으니 어떻게 대해야 좋을 지 알려주세요.” 제 대답은 명확해요.

우리가 인생을 통해서 갈고 닦아온 예의를 가지고 만나면 될 것 같아요. 비장애인들끼리도 서로 실수하고 사과하며 살듯이, 장애인에게도 똑같습니다. 하지만 더 자주 만나고 더 만나려고 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비장애인을 잘 대하는 방법이 따로 있지 않듯이 장애인을 대한다고 해서 장애인을 대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예요.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대해 공감을 잘 하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잘 이야기하죠

언젠가 아이들 모두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란 질문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을 맞게 될 거예요. ‘그 때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이 날 수 있다면 그럼 얼마나 좋을까?’ 라는 관점에서 출발했으면 해요. 친구들과 질문을 같이 공유하는 방식을 자주 써요.

“병신이라는 말, 평소에 자주 듣죠. 근데왜 병신이란 단어를 쓰면 안될까요?”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고 이를 공유하고 다시 질문하는. 적어도 지금 당장 문제를 이해하고 너의 행동을 바꾸라고 말할 수 없다 하더라도 물웅덩이에 돌을 던지듯, 마음 속에 질문을 남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한번은 초등학교에 강연 간 적이 있어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야기가 원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에게 차별이란 단어가 너무 추상적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대신 ‘무시’라는 단어를 썼어요. 아이들이 그건 잘 이해를 하더라구요. 왜냐하면 우리 모두 어려서 무시받았던 경험이 얼마나 더러운 기분이 드는 지 알고 있거든요.

방탈출을 선-경험하신 분으로서 탈(脱)시설을 마주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과 응원의 한마디를 보내주세요

장애인의 탈시설 문제와 관련해서 주거나 돈보다도 저는 ‘관계' 자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개별적으로 한 사람씩 생기는 관계망은 행정이 구축하기 힘든 부분이거든요. 탈시설했다고 해서 장애인들의 인생이 프로그램화되지 않고, 세상에 나와 탈시설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과 진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어요.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자원고갈에 시달리실 수 있겠지만 적극적으로 SOS를 쳐주시고, 모두 이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답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없이 응원해요!

‘포용도시:모-두를 위한 도시’ 라는 주제로 열리는 언서페서울_2019
12.12(목) — 12.14(토) 서울 곳곳에서 열리는 대화의 축제, 언유주얼 서스펙트 페스티벌 2019

언서페서울_2019에 참여하게 된 마음

언서페에 참여해달라고 하는 제의를 받았을 때 제일 좋았던 건 언서페가 가지고 있는 질문, ‘수많은 사람들이 분명 변화를 바라는데 왜 그 변화가 막상 일어나지 않을까?’에 모두 크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콘텐츠의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화는 넘쳐나는데 사실은 그 안에 진짜로 ‘변화’로 이어지는 대화는 굉장히 부족해요. 그래서 이 언서페는 ‘진짜 대화를 한번 만들어보자’ 우리가 새로움을 회복해보자! 이런 의도와 의지가 느껴집니다.

어떤 세션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당사자의 말하기는 아무리 들어도 부족하죠. 하지만 그 당사자성이라는 것이 한 끝차이로 입을 닫게 만드는 기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저만 하더라도 장애 당사자는 아니거든요.

내가 엄청 나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며 각오하고 ‘함께 살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 지 모르겠는데요.’라고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니라, 최소한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면서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무지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지(智)의 세계로 갈 수 있을 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분명 스스로의 힘으로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라는 걸 느껴가실 수 있는 대화를 하며 용기를 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요.

꼭 언서페서울 세션 곳곳에서 다시 뵙기를 바라며

전지구적으로 한 국가 공동체의 5%는 선천적, 후천적 장애인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요. 우리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살고 있다면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 중 5%는 장애가 있어야 말이 되는 것일텐데요.

장혜영 감독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통해 ‘지금 나의 현장에서, 나의 교실에서 혹은 나의 직장에 있어야 내가 만나야 했을 5%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라고 질문 던질 수 있는 상상력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장혜영 감독님은 언서페서울 2019의 세션 콜라보레이터로써 탈시설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지금 터놓고 이야기하며 장애와 삶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참여할 잠재적 실천가들을 세션에 초대합니다. 일상에서 각자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어떻게 자신의 실천을 기획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대화를 촉발하려 하는 자리를 만듭니다.

장혜영: 도무지 이해 안 가는 세상을 그래도 이해해보고자 노력하는 한 시민.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7년 6월에 18년간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았던 동생의 탈시설을 도우며 함께 살아가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장편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2018)을 연출하고 동명의 책을 썼다. 최근 정의당에 입당,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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