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툴킷] 디지털 민주주의를 위한 네 가지 요건

WAGL
WAGL Art
Published in
11 min readJul 12, 2016

지난 5월 23일부터 28일까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민주적 도시(Democratic Cities)”라는 국제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행사는 영국 네스타(Nesta)의 후원을 받는 디센트(D-CENT, Decentralised Citizen ENgagement Technologies)가 주관했는데요, 각국의 액티비스트들을 초청해 민주주의 실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습니다.

디센트를 간단히 소개드리자면,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해 유럽 내에서 각종 시민운동, 도시, 정당들이 민주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기술과 도구들을 개발하는 프로젝트 조직입니다.

와글도 이번 행사에 초청받아 “민주주의를 향한 글로벌 핵티비즘(Global Hacktivism for Democracy)” 세션에서 발표를 하기도 했죠.

얼마 전 이번 행사에 대한 네스타의 후기가 올라왔는데요. 마드리드에서 열렸던 민주주의 실험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

디지털 민주주의, 그 다음은 무엇인가? (Digital democracy — where to next?)

원문 보기, 7월 4일, 2016

정치가 위기에 빠져있다. 환멸,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 무관심, 추락하는 투표율과 유럽전반에 밀려드는 포퓰리즘의 움직임. 도대체 이 불쾌한 분위기를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디지털 툴과 기술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법, 일하는 법을 바꿔왔다. 과연 이런 도구들이 정치도 바꿀 수 있을까? 새로운 기술들이 현재 우리에게 닥친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더라도 유럽 곳곳의 도시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이러한 기술들이 새로운 그룹의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시민을 임파워하고, 도시와 지역 거주민들의 관계 구축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민주주의의 이런 새로운 물결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 정치와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마드리드에서 열린 ‘민주적 도시’(Democratic Cities) 행사를 통해 올 여름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이 행사는 유럽연합으로부터 펀딩을 받은 3년 간의 프로젝트였던 d-cent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행사이기도 했다.

디센트에서 만든 툴들 © d-cent

네스타에 의해 주도된 이 프로젝트는, 직접 민주주의나 경제권 강화를 위한 일련의 오픈 소스 프로그램들, 분산화 되어있고 개인화 된 툴들을 개발했다. 시민들이 자신과 관련한 이슈들에 대해 실시간으로 알림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서비스, 정책 제안과 입안을 위해 협동적으로 일하기 위한 플랫폼, 제안들에 대해 결정하고 투표하기 위한 참여 공간, 그리고 참여 예산 편성 과정을 통해 자원들을 분배하는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몇가지 예시들

Object8은 정책제안을 위한 크라우드 소싱 및 정책초안 작성을 협동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온라인 툴이다. d-cent의 다른 도구들에 대한 코멘트, 매체, 알림을 모두 모아 볼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뉴스피드를 제공하는 Mooncake라는 툴도 있다. 개인정보 인식을 위한 Stonecutter 서비스는 사용자들이 d-cent에 공유하는 개인 정보들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하는 단일 로그온 서비스다. 아고라 보팅(Agora Voting)은 검증가능하고 투명한 온라인 투표 소프트 웨어인 암호화 보안을 사용해서 완전 보안 상태에서 투표 결과를 오픈하고 기록한다.

d-cent는 이러한 도구 개발 외에도 워크샵을 진행하며 레이캬빅, 헬싱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시에서 다양한 파트너들과 함께 더 나은 디지털 플랫폼을 위한 실험 프로젝트들을 하고 있다.

각국의 사례들

‘민주적 도시’ 행사는 이러한 d-cent 프로젝트의 결과물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먼 곳의 다른 디지털 민주주의 개척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의견을 모은 뒤 사람들 사이의 의견 일치와 불일치를 시각화하는 도구인 폴리스(Pol.is)가 대만의 우버 규제에 대해 600여 명의 참여자들에 의해 사용되었고, 이를 통해 이해 당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견해 차이를 어떻게 보여주고 알려주는지 들었다.

한국의 ‘정치 스타트업’ 와글에서는 ‘테러방지법’에 대한 192시간 동안의 필리버스터에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의견을 기여할 수 있는 도구를 어떻게 만들고 시행했는지 이야기 해주었고, 뉴질랜드의 웰링턴 시의회가 루미오(loomio.org)를 사용해 시의 알콜 관리 전략에 대한 원칙들에 주민들을 참여시켜 동의를 받아낸 방법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이제는 널리 사용되는 데모크라시OS(DemocracyOS) 플랫폼을 만든 이 분야의 원조격 선구자인 넷파티는 온오프라인 툴을 통해 많은 신봉자들을 만들어 냈는지, 그리고 어떻게 부에노스 아이레스 의회 내에서 그들의 기술을 실험해 볼 수 있도록 정치적 주도권을 잡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해 주었다.

‘민주적 도시' 웹페이지 메인 © 2016 democratic cities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

디지털 민주주의라는 분야가 — 도시들, 의회와 정당들이 매일의 결정과 숙의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권한을 주기 위해 이러한 도구들을 받아들이며 —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디지털 액티비스트들은 다음의 이슈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사용자를 계속해서 참여시키고, 정보를 알려라(Keeping users engaged and informed)

참여를 촉진시키 위해서는 아래의 세가지 팁들이 필요하다.

먼저, 도구들은 간단해야 한다. 레딧에 있는 ‘플라자 포데모스(Plaza Podemos)’, ‘유어 프라이오리티스(Your Priorities)’등과 같이 성공적인 업보팅(공감하는 게시물이나 의견을 위로 올려주는 방식으로 의사표현 하는 방식) 도구들은 간편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사용해서 참여의 장벽을 낮춘다.

플라자 포데모스 화면. 왼쪽에는 사용자들에 의해 ‘업보팅'이 얼마나 되었는지 숫자로 알 수 있다.

두번째로, 사용자들은 의미있는 질문들을 통해 신뢰되어야 한다. 사소하고 저급한 질문들을 던지면 얻게 되는 대답들 역시 사소하고 저급해진다.

셋째로, 사용자들의 참여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들을 제공함으로써 계속해서 참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 부분은 시간과 인력이 한정되어 있는 곳에서, 혹은 입법 과정이 매우 느리고 복잡한 경우에 특히나 더 어려운 일이 된다.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깨달음들이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시작부터 계속해서 규모, 기대, 의도한 목표들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유지하도록 한다.

2. 평가를 위한 공동의 기준을 세워라(Finding common standards for evaluation)

토론에 대한 아주 놀랄만한 사실들 중 하나는, 그 영향력에 대한 정보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도구들이 영향력을 가진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각각의 프로젝트들이 서로를 통해 배우고, 최고의 사례들을 공유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의 공유다. 기존의 작업들은 이미 이러한 프로젝트를 꺼림칙해하는 정치 환경을 앞에 두고 실패들을 둘러싼 솔직한 토론들을 하기가 어렵다고 강조해왔다.

또다른 어려움은 예를 들어, “내 아름다운 코드를 좀 봐”와 같은 태도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참여를 불러오고 영향력을 달성하느냐보다 도구의 디자인을 더 중시하고 과도하게 강조하며 원래의 목표가 희생되는 경우다.

‘영향력’을 정의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참여자의 수가 유일한 척도로 사용된다. 이보다 좀 더 어려운 질문들이 던져져야 한다. 예를 들어, 이 과정이 의사결정 과정의 질이나 합법성이 향상될 수 있도록 했는가? 그 도구가 중요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 토론의 질을 높이고 시민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는가? 그 도구가 공공의 신뢰를 높이는 데에 성공적이었나?

3. 온오프라인 참여를 함께 만들어라(Blending online and offline engagement)

디사이드 마드리드(Decide.Madrid), 디사이드 바르셀로나(Decidim.Barcelona), 베터 레이캬빅(Better Reykjavik)같은 도시 단위에서 가장 성공적인 플랫폼들은 바텀업 방식의 정치적 참여를 그 뿌리로 두고 있다. (*디사이드 마드리드 — 아호라 마드리드 / 디사이드 바르셀로나 — 바르셀로나 앤 꼬무 / 베터 레이캬빅 — 베스트 파티)

다른 지역의 시 정부들 역시 이러한 것들을 배워야 한다. 오프라인 참여는 특히 접근이 어려운 주요 그룹이 관련될 때 중요하다. 지역 거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가닿기 위해, 그리고 디지털 툴을 지역 커뮤니티들에 실험하기 위해 사회 운동이나 시민 단체와 같은 곳들과 함게 일할 필요가 있다.

암스테르담의 최고위 기술 책임국 출신 Aik van Eemeren이 “기술이 도시를 가진 게 아니다. 기술은 그저 도우미(조력자)일 뿐이다.”라고 말하며 이러한 태도에 대해 잘 짚어 주었다. 이 모든 온라인 소스들은 결국 ‘참여’로 되돌아간다. 기술과 도구에 관한 것이 다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도전 과제는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지역민들이 기술 사용에 대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4. 더 넓은 범위의 참여 vs. 더 영리한 방식의 참여 (Broader engagement vs smarter engagement)

다른 질문들은 집단 지성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군중의 타입들에 관한 것들이었다. (때로 도시의 범위를 넘어서는) 넓은 범위의 실천에 있어서 참여와 관련해 공유된 경험과 지식은 줄어들었으며, 의견의 분화는 더 넓어졌고, 과정에서의 주인의식은 더욱 모호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수의 군중들이 가진 논리가 정책수립 과정의 논리와 양립가능한가? 핀란드의 비포장도로 교통 법안 크라우드 소싱 사례에 대한 한 연구는 “거대하고, 막대하며 다양한 투입”이 최종 결과의 질에 해롭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과정을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더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모으고 통합하기 위해 더 나은 도구들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별개의 재능있는 계층이나 전문가로 이루어진 더 적은 수의 군중이 필요한가? 이 부분은 지금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는 이슈다.

법안제정에 관해 더 깊은 질문들도 있다. ‘민주적 도시’ 참여자들 사이에서, 혹은 더 넓게는 민주주의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점이 있다. 그것은 참여는 그 자체로 좋은 것이며, 법안 제정을 위한 참여의 전략은 가능한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연루시키는 것이라는 가정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과정에 참여할수록, 최종 결정이 더 정당성을 가진다는 논리다.

그러나, 의사결정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관련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소수의 참가자들만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불가피한 공동의 문제들이 있다. 과정은 덜 합법적이지만 더 나은 질의 결과가 나타났다면, 혹은 그 반대의 경우로 과정이 아주 합법적이었지만 더 낮은 질의 결정이 이루어졌다면, 여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잠재된 긴장은 우리가 앞으로 더 길게 이야기 해봐야 할 주제가 될 것이다.

다음은 무엇인가?

우리는 전 세계로부터 정당, 시정부, 국회를 위한 가장 중요한 교훈들을 뽑아내기 위해 디지털 민주주의의 고무적인 예시들을 살펴보았다. 어떻게 디지털 도구들이 더 나은 의사결정의 질과 합법성을 높이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지, 또 어떻게 그것들이 존재하는 민주적인 구조들과 조직들에 배태될 수 있을 지에 대해 이해하고자 한다.

와글이 이 행사에 참여해 본 것들 중 기억에 남는 사실은, 실제로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과 실험들이 사실은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줌’처럼 보이는 이들이 각국에서 ‘다음 단계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치 지형을 만들어 나가고, 거기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는 것이죠.

상대적으로 소수인 그들이 치열하면서도 즐거운 상상을 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될 지 궁금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와글과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