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GL NEWS] ‘화장’만 고치는 정치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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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in readApr 6, 2016

한겨레 21 연재 <와글이 만난 몽상가들>
2016. 2. 15.

‘직접민주주의’ 정당 포데모스의 디지털 전략 설계한 싱크탱크 ‘라보데모’ 설립자 야고 아바티… “스페인 대도시는 각자의 직접민주주의 실험 중”

지난해 12월 2일 열린 와글 포럼에서 강연하는 야고 아바티. 와글 제공

지난해 12월20일 치러진 스페인 총선에서 30년 동안 이어진 국민당과 사회노동당 양당 체제가 무너졌다. 집권 국민당은 제1당이긴 했지만 예전의 제1당과는 위상이 달라졌다.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대신 신생 ‘직접민주주의 정당’ 포데모스(Podemos)와 카탈루냐 지역 기반 자유주의 정당 시우다다노스(Ciudadanos)가 하원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전체 의석 350석 가운데 국민당이 122석, 사회노동당이 91석, 포데모스가 69석, 시우다다노스가 40석을 차지했다.

신생 정당 등장으로 양당제가 붕괴된 것은 1975년 독재자 프랑코가 죽고 사실상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스페인 정치 사상 처음 생긴 일이다. 다만, 총선 이후 한 달 반 가량이 지난 2월 현재, 어느 정당도 내각을 구성하지 못한 채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디지털 참여 개척 정당

새로 원내 진출한 정당 가운데 ‘우리는 할 수 있다’(We Can)는 뜻을 가진 포데모스는, 2014년 1월 창당해 4달 뒤에 열린 유럽의회 선거에서 의석 5석을 얻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포데모스는 1975년 민주화 이후 정치·경제 권력을 독점해온 기성 정당 세력들을 전복하고 중간층, 비정규직, 청년실업자 등을 아우르는 ‘서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해 진짜 민주화를 다시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당원 수가 40만 명에 육박하는 포데모스의 혁신 지점 가운데 하나는 디지털 도구를 통한 수십만 당원 모두의 직접 참여다. 이런 정당이 실제 권력을 얻었으니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수준도 단순히 ‘투표권을 행사하는 수준’을 넘어서게 됐다. 포데모스 당원들은 온라인 광장에서 1:1로 당대표와 대화하고,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그 정책에 대한 ‘유의미한’ 토론을 거쳐 정책 실현에 힘을 부여할 수 있다. 한 외신은 포데모스를 두고 ‘스타트업 정당’이라고 표현했다. 신생 정당이면서 ‘디지털 참여 개척 정당’이라는 점에서 그 표현은 꽤 적절하다.

포데모스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준 그룹이 있다. ‘라보데모’(Labodemo)라는 시민참여 민주주의 싱크탱크다. 라보데모는 창립자이자 다양한 그룹 간 네트워크의 허브 구실을 하는 야고 아바티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사람들이 협업하는 느슨한 공간이다. 이 느슨한 조직이 포데모스나 스페인의 다른 신생 정치 조직의 ‘디지털 참여 전략’을 세웠다. 스페인 정치 변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다. 라보데모의 구심점 야고 아바티를 만나봤다.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달라.

나는 고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사회운동과 활동에 참여해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등장한 마드리드의 ‘자치 운동’(진보 성향의 청년 정치그룹이 주도했던 좌파통합운동)에 나서기도 했고, 이라크 전쟁 반대시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대학과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전공해 물리 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1년 이후 마드리드에서 시작되어 이후 전세계적인 오큐파이 운동의 모태가 된 ‘사회적 점거운동’ 공간에서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했다. 이런 ‘활동가’(activist)의 경험을 토대로 라보데모를 만들었다. 라보데모는 디지털 도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민주주의를 끌어올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곳이다.

라보데모는 언제 만들었나.

2011년 5월15일, 스페인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수만 명이 모였다. 이들은 계속되는 긴축정책에 지쳤고, 높은 실업률과 낮은 임금에 지쳤다. 모두 ‘분노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광장에 모인 몇몇이 첫날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광장을 점거했다. ‘광장 점거’는 1달여간 지속됐다. 바로 ‘15M 운동’이었다. 사람들은 광장에서 그들의 분노를 표출하고 그들끼리 해결책을 고민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였고, 사람들은 15M 운동 안에서의 소통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모두가 참여한 민주적 의사 결정을 해야 했다. 15M 운동을 하며 만난 사람들이 그런 방법을 ‘디지털 도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고 관심있는 몇 명이 모여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실제로 사용해보면서 자연스럽게 팀이 형성됐다. 이것이 ‘라보데모’의 출발점이다.

분노, 소통과 변화의 출발점

라보데모는 실제로 무슨 일을 하나.

라보데모는 포데모스나 마드리드 시장을 배출한 ‘아호라 마드리드’ 같은 정치 연대체 등이 사용할 디지털 전략을 설계했다. 예를 들어 포데모스의 공개 토론 플랫폼인 ‘플라자 포데모스’와 시민 정책 제안 공간인 ‘시민 이니셔티브’ 플랫폼의 초기 모델을 개발했다. 지금은 유럽연합(EU)에서 7개 국가가 소통하는 ‘D-CENT 프로젝트’를 위한 디지털 참여 도구를 설계하는 일에 참여한다.

라보데모는 포데모스에 어떤 전략을 제안했나.

포데모스와 함께 일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수백만명의 사람이 동시에 의사소통하고 논의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앱그리’라는 공개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걸 많은 사람들에게 써보고 싶었는데 이전부터 디지털 전략 설계를 함께 했던 녹색당은 규모가 작아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좀더 많은 사람이 있는 조직을 찾다가 대학 기반 젊은이들의 조직인 ‘미래가 없는 젊은이들’(Juventud Sin Futuro)을 만나 앱그리를 사용해봤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친구들 가운데 상당수가 포데모스에 함께했다. 그리고 이들이 라보데모에 연락해왔다. “이 도구를 사용하고 싶다. 이것을 통해서 모두가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렇게 포데모스의 플랫폼 설계에 참여하게 됐다.

포데모스는 거의 모든 과정에서 온라인 도구를 활용한 모든 당원의 참여를 기본으로 한다. 라보데모가 설계한 포데모스 온라인 토론공간 ‘플라자 포데모스’에는 매달 평균 3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방문한다. 뉴질랜드에서 만들어진 의사소통 앱 ‘루미오’를 통해 포데모스의 여러 독립 조직이 그룹 안에서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루미오는 더 작은 조직의 사람들이 모여 의사소통하고 결정하는 일에 적합한 도구다. 루미오에는 포데모스에서 만들어진 워킹그룹과 토론 그룹만 1500개가 넘는다. 그 외에 녹색당이 사용했던 ‘아고라 보팅’등도 사용한다.

지금 스페인은 포데모스뿐 아니라 새로운 신생정당들이 정치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들었다.

지금 스페인에서 새로운 정당들이 성장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정당이 모두 ‘디지털 혁신’을 경쟁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작은 정당의 선두주자는 녹색당이었는데, 녹색당은 자본이 많지 않아 디지털 도구를 사용해 비용을 줄이면서도 당원 참여를 끌어내는 ‘차별 지점’을 만들어냈다. 이후 ‘엑스파티’라는 디지털 정당, 포데모스 등이 생겨났는데 이 정당들은 서로의 방법을 따라 하며 함께 성장하고 성장하고 경쟁하면서 오늘의 결과(포데모스의 원내 진출)를 만들어냈다.

사실 15M운동의 ‘적자’는 명망가 중심의 포데모스보다는 실제 시민그룹의 참여를 중심으로 탄생한 ‘엑스 파티’였다. 하지만 엑스파티는 선거에서 1%도 채 득표하지 못한 채 사실상 해산되었다. 결과적으로 기성 미디어와 엘리트 그룹의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포데모스가 현실정치에서는 더 힘을 발휘했고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포데모스는 다른 신생 정당과 디지털 그룹들의 전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예컨대 포데모스는 엑스파티가 사용했던 크라우드 펀딩 전략을 차용해 당비를 모았는데, 큰 성공을 거뒀다.

반대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포데모스 외에 소개할 만한 스페인 내의 정치혁신 사례가 있다면?

스페인 지방선거를 통해 등장한 신생 정치 그룹들이 있다. 지난해 5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스페인의 주요 도시라 할 수 있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에서 새로운 정당들이 집권을 했다. 마드리드에서는 포데모스와 다른 여러 단위가 참여한 ‘아호라 마드리드’라는 정치 연대체가 배출한 후보가 시장이 됐고, 바르셀로나 역시 비슷한 성격의 정치 연대체 ‘바로셀로나엔코뮤’가 내놓은 후보가 시장이 됐다. 사라고사, 북부 스페인의 코루냐 등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정치 연대체에 포데모스도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포데모스는 그 안에 소속된 다양한 정치그룹 중 일부분일 뿐이다. 그들을 전혀 따르지 않는 곳도 많다. 요컨대 지난 2년여 사이에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지역정부가 스페인 여러 대도시에 등장했다. 이 도시들의 경험을 통해 어떤 권력, 어떤 방식의 민주주의가 적합한지 경험하고 스페인 국민들이 앞으로 직접 판단할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어떻게 신생 정당들이 대거 약진할 수 있었나.

스페인 사람들은 정치에 매우 화가 난 상황이다. 그래서 정치인 출신이 아닐 경우 더 많은 호감을 사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 출신은 특유의 ‘관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스페인 사람들은 변화를 원한다. 그래서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했든, 기업에서 일했든, 법조계에서 일했든 정치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일한 사람들이 정치권에 들어가 변화를 일구길 기대한다. 즉, 지금 스페인은 새로운 것, 변화를 원하는 시기다.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지고 성장하기 매우 좋은 때다. 2016년에는 지난해보다 20%가량 작은 정당이 더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매우 역동적인 해가 될 것이다.

디지털 도구를 사용한 민주주의는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민주주의는 숙의 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그리고 디지털 민주주의다.”

직접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15M 운동을 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시위를 조직해서 정치적 저항을 말했다. 그런데 ‘반대만 하는 일’은 권력을 갖는 것도 아니고 불만족스런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그 수많은 ‘반대의 힘’은 정치의 색조 화장 정도를 바꾸는 일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15M 운동을 하면서 정치인 몇몇의 얼굴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는 ‘영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이 직접 시스템을 바꿀 권력을 가지고 ‘정치적 권리’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도와주는 게 디지털 도구다. 실제로 그를 통해 포데모스가 제3정당이 됐다. 포데모스는 ‘직접민주주의 정당’이다. 당원이 직접 정치할 수 있는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정당’이 권력을 쥔 것이다.

당신은 어떤 민주주의를 원하나.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민주주의는 숙의 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그리고 디지털 민주주의다. 세 가지 모두 주요 포인트다. 숙의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발생한 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배우는 것이다. 숙의 이후에는 그 결과를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이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디지털 도구를 통한 디지털 민주주의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한 민주주의가 이상적이다.

한국에서 스페인 뛰어넘는 변화 기대

앞으로 라보데모의 계획은 무엇인가.

스페인과 뉴질랜드는 물리적으로 매우 먼 나라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뉴질랜드의 루미오를 사용한다. 그리고 루미오 개발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스페인에서 홍콩, 한국, 일본도 관심 있게 지켜본다. 한국은 엄청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 비율도 매우 높다. 한국에서 디지털 민주주의를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스페인을 넘어서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안에서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변화하는 세계 여러 나라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라보데모가 해왔던 실험들을 이제 더 국제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에 많은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인터뷰 와글 김정현
번역·정리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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