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APEST

EUROPE — PART.08

walli
walliarchive
5 min readJan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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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
WALLI PROJECT NO.03 — EUROPE

어느새 서유럽 일정이 마무리되고 동유럽으로 건너왔다. 사실 나의 마음은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대부분 서유럽에 가 있었기에 동유럽에 대한 기대는 그리 높지 않았다. 여행을 준비할 때도 서유럽은 내가, 동유럽은 동생이 맡아 준비했었기에 동유럽에 도착할 때 까지도 나의 기대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방심할 때 훅 들어오는 게 제일 무섭다고 했나. 예상치 못한 동유럽의 매력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시작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였다.

사실 동유럽이 유럽여행의 메인으로 떠오른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예전엔 유럽여행하면 대부분 영국,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한 거대 서유럽 국가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유럽 무대의 중심은 항상 서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움직였기에 작은 동유럽국가들은 항상 그 뒤로 밀려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동유럽의 매력을 일찍이 발견하여 이미 그 매력에 이미 빠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서야 그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지하철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숙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야 했고, 지하철 승강장에 도착하는 순간 내 눈 앞에 서 있는 저 열차가 움직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부다페스트의 지하철은 개통한지 100년이 넘었다기에, 공항과 가까운 곳에 기념비처럼 초기 지하철을 전시해 놓은 줄만 알았다. 내가 타야할 열차가 바로 그 열차라는 것을 알았을때 나는 마치 호그와트 마법학교행 기차에 오르는것 같은 설렘으로 가득찼다. 열차는 정말로 출발했고, 오래된 지하철의 역사는 고스란히 내 몸으로 느껴졌다. 엄청난 덜컹거림과 굉음과도 같은 소리는 열차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를 아주 단번에 알게해 주었다. 하지만 불편하고 시끄러운 첫 헝가리 지하철의 경험은 어느새 동화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설렘으로 바뀌어있었다.

아침을 먹고 로마를 출발하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더니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었다. 점심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터라 숙소에 짐만 두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 나라에서의 첫 끼는 항상 집 근처 식당에서 먹었다. 우리는 헝가리 전통 음식인 굴나쉬의 맛이 너무도 궁금했기에 부다페스트에서의 첫 끼를 굴나쉬로 하기로 결정하고,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추천을 받아 집 앞 굴나쉬를 파는 식당으로 향했다. 굴나쉬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는 스프처럼 나오는 굴나쉬와 스튜처럼 요리되는 굴나쉬 두 종류를 시켰다. 처음 먹어본 굴나쉬의 맛은 오묘했다. 뭔가 갈비찜 맛이 나기도 하지만 간이 살짝 부족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우리 둘 다 그릇을 싹싹 비우고 왔다. “요것이 뭔가 심심한듯 하면서도 부족한듯 한데 뭔가 깊은맛도 있으면서…”하면서 계속 굴나쉬를 입으로 가져갔다. 굴나쉬는 정말 맛있었다. 헝가리 일정동안 두세 번은 더 먹었다. 본 음식으로 먹기보단 에피타이져로 먹거나 메인요리에 곁들이는 정도로 먹으면 아주 완벽하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뭔가 이상했다. 헝가리는 유로존이긴 하지만 헝가리 화페인 포린트를 주로 사용한다. 근데 그 단위가 유로화와 차이가 커서 처음엔 이게 도대체 얼마 정도 인지 알기도 어려웠다. 계산서에 적혀있는 돈을 내고 영수증을 확인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우린 분명 세 가지 메뉴를 각 사람당 하나씩 다 시켰고 콜라까지 한 잔씩 했는데 영수증엔 너무도 적은 금액이 찍혀있었다. 서유럽에서의 메뉴 하나 값도 안나온 것이다. 헝가리의 물가가 저렴하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여기에 오기 전 영국을 시작으로 서유럽의 무시무시한 물가를 경험하고 와서일까, 체감되는 물가는 더욱 저렴하게 느껴졌다. 다소 빠듯한 예산으로 항상 경비를 신경쓰고 있었는데, 마음이 살짝 놓이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매일 밤마다 풍요로운 과일 파티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가난뱅이 꿈 부자에게 낮은 물가는 너무나도 반가운 친구다.

부다페스트는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부다 지구와 패스트 지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강변을따라 어부의 요새, 세체니다리, 그유명한 국회의사당등 대부분의 볼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부다페스트는 섬세했고, 여유로웠으며, 화려하진 않았지만 절제된 헝가리만의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 그렇지만 밤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군가 부다페스트를 야경의 도시라 했던가. 밤이 되면 유럽의 그 어느 도시보다도 아름다운 자태를 여실히 들어낸다. 마치 그 시간만을 기다린 것처럼 한 방울도 남김없이 감동의 물결을 쏟아낸다. 이런 아름다움을 한 곳에서만 볼 수야 있나.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도나우강을 유유히 가로지르며 그곳이 쏟아낸 감동을 남김없이 들이켰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목말랐고, 한 번 더 유람선을 탄 후에야 남아있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부다페스트에는 많은 유람선 업체가 있는데 10번 선착장 업체를 이용하는것을 추천한다. 한번 티켓을 구입하면 이틀 동안 횟수 제한 없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일주일 역시 순식간에 지나갔고, 충분할 줄 알았던 일주일은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아쉬운 마음으로 남게 되었다. 항상 익숙해질만 하면 떠나는것 같은 느낌이라 여간 아쉬운게 아니다. 이번에도 여김없이 다음에 반드시 다시 오리라는 굳은 다짐을 하며 다음 나라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행은 나에게 무언가을 계속해서 주려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은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선물했고, 예상치 못한 여행의 변수는 나의 가능성을 보게했다. 그로 인해 내 우물은 좀 더 넓어졌고, 우물 안 물도 점점 차올라 이젠 빼꼼히 우물 밖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넓은 세상은 결코 한번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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