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AN : THE WHOLE TRIP

walli
walliarchive
Published in
4 min readJan 15, 2020

2017.11
WALLI PROJECT NO.05 — BUSAN

여행의 맛을 본 후로 지금까지 전 세계 곳곳을 과감하게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유독 국내 여행엔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속초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가는 것을 제외하면, 내 의지로 떠난 국내 여행은 제주도와 전주 정도이다. 그나마 갔던 전주도 일박으로 다녀왔으니, 제대로 된 국내 여행은 제주도가 유일하다.

사실 지금까지 국내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뭐 다 똑같은 한국이고 가봤자 거의 비슷한 모습에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 때문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대부분 국내 여행은 맛집 탐방이라고, 그 지역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기도 하지만, 애초에 음식에 대한 애정이 그리 깊지도 않을뿐더러, 요즘엔 굳이 그 지역에 내려가지 않더라도 서울에서도 전국의 유명한 음식들은 다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요즘 들어 지금까지의 생각들이 조금씩 깨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도, 그 나라의 여러 지역의 도시들을 방문한다. 각각의 도시마다의 분위기가 모두 다르고, 그 나름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또다른 즐거움이기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여러 도시를 방문한다. 기회가 된다면 해외로 나가는 게 제일 좋겠지만, 여러 가지로 아쉬울 때가 대부분이기에 나의 마음을 잠시 국내로 돌려 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는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 불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항구도시, 아니 그전에 다들 한 번씩은 가본(나는 아직 못 가봤던) 부산으로 향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부산에 도착한 순간, 서울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의 말투를 시작으로 부산만의 화끈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부산에서의 시간 동안 나는 마치 한국말이 통하는 외국의 어떤 도시에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할 때면, 낯선 이방인에게 부산에서의 좋은 기억을 심어주고 싶으셨는지 무척이나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이를 시작으로 부산에서의 시간은 지금까지 내가 듣고, 상상했던 부산의 모습과는 꽤나 많이 달랐다.

나의 첫 광안리 해수욕장, 자갈치 시장, 뭔가 정이 넘치고 낭만적일 것 같은 해안 도시의 모습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는 좋았지만, 그 주위로 삭막하게 늘어서 있는 숙박시설과 상업시설들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화끈한 부산 사나이들은 도로 위에서 자신의 화끈함을 앞다투어 뽐내고 있었고, 그 열기가 너무도 뜨거워 그냥 걷고 싶었다. 부산에서 보고 싶고 기대했던 것들은 나에게 다소 실망스러움을 안겨주었지만 이게 다 일리가 있겠는가! 예상치 못한 부산의 모습에서 나의 마음은 어느새 활짝 열려있었다.

우린 카페 초량이라는 곳에 가기 위해 초량동으로 향했다. 카페 초량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산꼭대기에 있었다. 지도에는 거리가 그리 멀지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으나, 이내 엄청난 경사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 한 걸음 카페에 가까워져 갔다. 반쯤 올라갔을까 무심코 뒤를 돌아본 순간, 그림 같은 부산의 모습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내가 처음 느낀 것과는 다르게 고요했고, 낭만적이었다. 관광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니 이렇게 좋을 수가. 땀 흘려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점엔 카페 초량이 있었다.

카페 초량은 옛 일본식 목조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인 것 같았다. 한눈에 봐도 여러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런 시간의 흔적들을 지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공간이 꾸려져 있었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부드러운 음악 소리가 그곳에서의 시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메인 음료가 커피가 아닌 우유였다. 말차 우유, 단풍 우유 등 다양한 우유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난 보통 카페에서 커피 이외의 다른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곳의 우유는 훌륭했다. 난 말차우유를 주문했고, 말차의 진한 맛은 그곳의 색깔을 확실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이밖에 부산에서의 시간 역시 즐거운 시간으로 채워졌다. 자갈치 시장에서의 꼼장어 구이와 부산의 명물 개미집의 낙곱새는 매력적이었다. 낙곱새는 낙지, 곱창, 새우해서 낙곱새라 한다. 뭔가 듣기엔 어색한 조합이긴 하지만, 맛은 기가 막힌다. 낙곱새 한 접시면 밥 두 공기는 홀랑 없어진다. 개미집은 밤늦게까지도 영업을 한다고 하니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번 가보자.

지나치게 북적이는 관광지만 피한다면 부산은 충분히 낭만적인 도시였다. 이젠 모두가 떠올리는 곳은 이미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부산다운 부산을 느끼기엔 다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여느 곳이 그러하듯, 유명해지고 많이 알려지면 그만큼 좋은 부분도 있겠지만 항상 아쉬운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것들의 조화를 잘 맞춰간다면 참 좋을 텐데 아직까진 우리나라에선 아쉬움이 더 큰 것 같아 한편으로 마음이 다소 무거웠다. 다음번 부산여행 땐 또 다른 부산의 모습과 함께 부산만의 색깔이 빠지지 않고 잘 배어있는 모습을 마주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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