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GUE

EUROPE — PART.11

walli
walliarchive
6 min readJan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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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I PROJECT NO.03 — EUROPE

오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이제 마지막 도시이다. 유럽에 온 지가 벌써 한 달하고 삼 주도 넘었지만, 느껴지는 시간은 훨씬 짧은 듯하다. 그러고 보니 지난 한 달하고 삼 주 동안 정말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시 떠올려보면 아찔한 순간들도 많이 있었고, 평생 머무르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던 시간이었다. 이렇게 블로그에 기록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을 잘 간직하고 싶어서인데, 나의 표현이 서툴러 글이 그 감정을 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프라하에 도착한 순간, 주위 사람들의 말이 번역 없이 들려왔다. “어?! 영어가 트였나?!” 아니다. 한국 사람들이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도시보다 압도적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있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한국말이 솔솔 들려올 정도다. 프라하의 명물 카를교를 지날 때는 거의 한국이었다. 사실 여행 중에 한국인을 마주치는 것이 그리 반갑지는 않다. 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나만 그런가?

프라하 시내는 그리 넓지 않아서 우린 일주일 동안 아주 여유롭게 프라하의 구석구석을 즐길 수 있었고, 프라하의 저렴한 물가는 여유로움의 감칠맛을 더해주었다. 프라하를 걷다 보면 어딜가나 음악이 들려온다. 대부분이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 실력이 어마어마하다. 하루는 카를교를 건너가는데 할아버지 네 분이 재즈를 기가 막히게 연주하고 계셨다. 프라하의 카를교 위에서의 재즈라… 가히 환상적이었다. 우리는 차마 그냥 발걸음을 옮길 수 없어 넉넉하진 않았지만 우리가 받은 이 감동에 대한 보답을 몇푼 안되는 팁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프라하에 오면 꼭 먹어보고 싶은게 있었는데, 바로 ‘꼴레뇨’라고 하는 체코식 족발이다. 프라하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꼴레뇨 맛집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선 족발을 삶는다면, 체코에선 통으로 굽는다. 우린 일인 일 꼴레뇨를 주문했고, 드디어 우리 앞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맛을 보기도 전에 꼴레뇨의 엄청난 비주얼에 압도되었다. 이건 정말 만화에나 나올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깊은 산속에서 모닥불 위에 돌려가며 구워야 할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첫 모습은 충격적이었지만, 꼴레뇨는 매우 먹음직스러웠고, 양도 엄청나 먹기 전부터 든든한 느낌이었다. 우린 정신없이 포크과 나이프를 움직였고, 어느새 꼴레뇨는 앙상한 뼈만 남았다.

우리의 프라하 일정 중엔 체코의 작은 도시 체스키크룸로프에 가는 일정이 있었다. 체스키는 마치 동화 속 작은 마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도시이다. 당연히 체스키에 갈 줄 알았던 우리는, 우연히 프라하에서 독일의 드레스덴이 가볼 만한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린 고민하기 시작했다. 체스키냐 드레스덴이냐. 사실 고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린 드레스덴으로 가기로 했다. 이번 유럽여행 일정에 독일을 넣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왔으니, 비록 하루였지만 독일의 맛을 보고 싶었다. 우린 프라하에서의 넷째 날 드레스덴으로 향했고, 하루라는 짧은 시간동안 열심히 그곳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조금이나마 독일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간결하고 절제된 미의 건축물과 독일 스러운 깔끔함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드레스덴에서의 하루는 너무나 아쉽고 부족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드레스덴이라는 곳을 사실 이번에 처음 들어본 곳이기도 했고, 그래서 이런 기회가 아니면 평생 이곳에 와 볼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좀 더 특별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곳에서의 하루는 독일에 대한 갈증을 더욱더 키우는 시간이었고, 다음번 유럽 여행에선 독일행은 무조건이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프라하에서의 일정도 마무리가 돼가고 있었다. 프라하 일정의 마무리는 곧 유럽 여행의 마무리이기도 했다. 이 여행의 마무리를 뭔가 제대로 하고 싶었다. 정말 제.대.로. 어떻게 이 여행을 마무리하면 좋을까를 생각하던 중, 내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가 있었다. 액티비티의 끝판왕이자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이것을 하기로 했다. 유럽 땅에서 즐거운 맛을 봤으니 이젠 유럽의 하늘 맛도 좀 봐야 되지 않겠는가?! 이번 유럽여행의 마무리는 화끈하게 유럽의 하늘 맛을 볼 수 있는 스카이다이빙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프라하에서 대표적인 업체가 세 군데가 있었는데, 나는 이왕 하는 거 가장 높이 올라가는 업체를 골랐다. 유일하게 해발 4500m 까지 올라가는 업체이다. 드디어 결전의 아침이 밝았다. 사실 너무 긴장이 돼서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준비하는 내내 손은 부들부들 떨렸고, “내가 미쳤지”를 혼자 수없이 중얼거렸다. 옷을 갈아입고, 간단한 교육을 받은 후에, 우리가 타고 올라갈 경비행기를 향해 걸어갔다. 경비행기는 처음이었는데, 출입문이 달랑 셔터 하나였다. 그거 하나 닫고 올라가더라.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셔터와 비행기 사이의 틈을 담요로 막고 있었다. 금방 올라갈 줄 알았던 해발 4500m는 생각보다 아주 많이 높았고, 족히 30분은 올라갔던 것 같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나의 긴장도 더 고조 되었고, 내 심장은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간신히 숨을 고르고 있던 찰나, 조종석에 앉아계시던 분이 우리를 향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그 웃음은 셔터를 들어 올렸고, 나는 새하얀 구름이 발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비행기 끝에 섰다. 마음에 준비를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내 몸은 드넓은 하늘에 던져졌고, 내생에 최고의 순간은 시작되고 있었다. 한없이 청량한 하늘은 푸르다 못해 검은빛을 띄고 있었고, 발아래로 펼쳐진 새하얀 구름은 나에게 황홀함을 선사했다.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하늘은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했고, 우리가 왜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고 하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1분간의 자유낙하는 정말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짜릿함이었고,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유럽 하늘에서의 이 시간은 정말 완벽한 마무리이자, 더 넓은 세상을 향한 시작이었다.

더 이상 길이 없을 것 같은 그 순간, 길은 위로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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