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 & FIRENZE

EUROPE — PART.07

walli
walliarchive
5 min readJan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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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
WALLI PROJECT NO.03 — EUROPE

유럽에 도착한 지도 어느새 20일이 다 되어간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지치기는커녕 순간순간이 너무도 즐거웠고, 여행에 대한 이해와 깊이는 깊어져 갔다. 출발 전 계획하고 기대했던 것 보다 비교할 수 없이 풍성한 시간으로 채워져 갔고, 우리의 여행병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벌써부터 귀국행 항공편에 문제가 생기길 바라고 있으니 큰일이다.

어렸을 적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을 좋아했다. 사실 지금도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이다. ‘먼나라 이웃나라’중 내가 좋아하는 편은 단연 이탈리아 편이었다. 서구 문명의 기초이자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던, 찬란한 로마 제국이 있던 곳.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곳. 내가 그곳에 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사실 오기 전부터 로마에 대해 좀 더 깊이 느끼고 싶은 마음에 몇 권의 책도 읽으면서 공부도 하고 왔지만 그곳에 도착한 순간 알게되었다. 내가 상상하던 모습은 부스러기에 불과했다는것을. 엄청난 규모의 콜로세움과 판테온, 과거 로마제국의 터와 궁극의 섬세함이 보여지는 조각과 분수대, 카톨릭의 중심지인 바티칸 시국과 수없이 많은 광장은 나의 마음을 뺏기에 충분했다.

특히 로마의 광장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은 단순히 넓은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대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생각을 외치기도 하며, 누군가는 삶의 터전으로써 나름의 씨름을 하는 곳이었다. 각 사람이 향하는 방향은 다르지만, 그 교차점엔 항상 광장이 있었다. 그런 광장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좀 더 많은 “살아있는” 광장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대중교통을 알아보던 중 놀랐던 게 하나 있었는데, 지하철이 두 호선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땅을 파기만 하면 과거 유적지와 유물이 쏟아져 나와 공사를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실제로 로마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무슨 공사장이 이렇게 많아”라고 생각했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다 유적지 발굴 현장이었다. 로마를 둘러보다 보면 툭하면 몇백 년에서 몇천 년 전에 만든 거라고 소개하는데, 놀랍다 못해 진짜인지 의심이 될 정도이다.

사실 이탈리아가 기대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연코 “CAFÉ : coffee “때문이다. 커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인사말 중에 “Prendiamo un caffè? (커피 한 잔 하시겠어요?)”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탈리아에서 커피는 그들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음료 이상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커피쟁이가 커피의 본고장에 갔으니 정신을 차릴 수가 있나.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카페의 에스프레소를 다 마셔보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틈이 생길 때 마다 샷을 주문했고, 이미 내가 분위기에 취해 있었던 탓일까, 그들의 커피가 훌륭했던 것일까 그 맛은 가히 완벽했다. 단 세 모금이 주는 깊은 맛과 향기에 나의 혈중 카페인 농도는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여운을 여기서만 즐기기엔 남은 인생이 너무나도 길기에 아쉬운데로 비알레띠 모카 포트를 종류별로 사 가기로 했다.

로마에서 피렌체로 넘어가는 날 우린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로마의 대중교통 파업이었다. 지하철 입구는 철창으로 닫혀 있었고, 버스 승강장엔 수많은 사람이 언제올지 모르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20킬로그램이 족히 넘는 캐리어를 이끌고 기차역으로 가야 하는데 파업이라니. 한 푼 한 푼이 아쉬운 우리에게 택시는 상상할 수 없는 사치였지만 또 한번의 완전군장 행군을 경험하고 싶진 않기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택시를 탔다. 혹여나 외국인이 탔다고 돌아돌아 갈까 봐 부지런히 지도를 쳐다보며, 운전사에게도 열심히 말을 걸었다. 다행히 별일 없이 도착할수 있었고, 오히려 택시 기사님과의 꽤나 흥미로운 대화가 마무리되는것에 아쉬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피렌체에서의 일정 역시 로마만큼이나 벅차오르는 시간이었다. 특히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피렌체 두우모는 지금까지 내가 본 건축물 중에 단연 가장 신비롭고 압도적이었다.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는 규모와 섬세함은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뭔가에 압도된다는 느낌을 처음 받은 곳이기도 했다. 아직도 그곳을 떠올리면 온몸에 전율이 돋는다. 피렌체에서 기차로 한 시간을 달리면 도착하는 피사라는 작은 마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모두가 알고 있는 피사의 사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기울어져 있어 놀랐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다양한 인종과 나이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에 한 번 더 놀랐다. 역시 생각하는 건 다 거기서 거기다.

이탈리아를 마음에 담기엔 일주일이란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가끔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탈리아 일정을 도시별로 3일에서 4일 안쪽으로 잡던데 말도안되는 소리다. 4일이면 오는날 가는날 빼고 이틀인데 이틀 머물고 그곳에 다녀왔다 말할수 있을까…여행을 계획할때 일주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그렇게 원망스러울수가 없었다. 아쉬움이 남아야 다시 오고싶을꺼야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이번을 인트로라 생각하고 한 번 더 와야겠다.

모든 길은 로마로 향하고, 나의 마음도 그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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