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ZBURG

EUROPE — PART.10

walli
walliarchive
5 min readJan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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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
WALLI PROJECT NO.03 — EUROPE

빈에서의 황홀한 시간은 어느덧 추억이 되었고, 우리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인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잘츠부르크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나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영화이다. 어머니께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좋아하셔서 어렸을 적 우리집 거실 스피커에선 도레미 송이 자주 흘러나왔다. 그래서인지 잘츠부르크에 도착한 순간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렸을 적 추억과 그땐 몰랐던 아름다운 잘츠부르크의 모습이 동시에 내 마음을 울렸다.

잘츠부르크역 근처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미라벨 궁전과 정원이었다. 도레미 송의 촬영 배경이기도 했던 미라벨 정원은 어릴 적 추억 때문일까 유럽에 와서 지금까지 이보다 더 화려하고 멋진 궁전과 정원을 보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곳 보다 내 마음을 울리는 곳이었다. 우리가 미라벨 궁전에 도착했을 때 부슬비가 날리고 있었지만, 미라벨 궁전만의 우아한 분위기로 나의 감성을 부슬부슬 적시고 있었다.

잘츠부르크에서의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터라 우린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우리가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산꼭대기에 위치한 잘츠부르크의 요새인 호엔잘츠부르크성 이었다. 흐린 날씨와 부슬부슬 오는 비 때문에 올라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다음을 기약하기엔 나의 참을성은 한참 부족했다. 물론 푸니쿨라로 올라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우린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우리의 선택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갈수록 눈 앞에 펼쳐지는 잘츠부르크의 전경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참을 선사했다. 푸니쿨라를 탔다면 순식간에 지나갈 풍경이었지만, 가난뱅이 꿈 부자의 오기가 환상적인 잘츠부르크의 전경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산의 중턱쯤을 올라갔을까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던 하늘 한가운데서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며 눈 부신 햇살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아름다운 잘츠부르크의 전경과 거짓말 같은 한 줄기의 빛이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이렇게 가슴 벅찬 광경이 내 눈앞에 있다는 게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나의 마음은 이미 도수 높은 감동의 잔 속으로 빠져있었다.

잘츠부르크에서의 이튿날 우리는 할슈타트라는 작은 호수 마을로 향했다. 영화 겨울왕국의 모티브가 된 마을이자,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정평이 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같이 간 동생은 유럽에 오고 싶었던 이유가 할슈타트 때문이라고 하니 도대체 어떤 곳인가 하는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그날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날씨가 좋아야 했다. 아름다운 호수 마을을 배경으로 인생에서 꼽을만한 사진도 찍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할슈타트에 가는 날을 마냥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잘츠부르크에 도착하기 일주일 전부터 잘츠부르크 날씨를 예의주시했는데, 우리가 가는 날에 종일 비가 온다는 것이었다. 우린 오스트리아 기상청도 우리나라의 기상청과 비슷할 것을 기대했지만, 우리가 할슈타트로 출발하는 날 아침까지만 해도 하늘엔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은 먹구름이 가득 차 있었다.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우린 일단 할슈타트로 향했다.

할슈타트 역에 내리는 순간, 그동안 우리의 마음과 머리를 괴롭히던 걱정들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위에 사진이 말하고 있듯이, 날씨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못해 벅찬 감동으로 가슴이 아릴 정도였다. 할슈타트에 도착하니 어느덧 점심때 였지만 우린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 허락된 이 날씨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미룰 수 없었다. 우리는 할슈타트에 내리자마자 바로 선착장으로 달려가 작은 보트를 빌렸다. 가격도 아주 합리적이었다. 나는 할슈타트를 보자마자 무조건 배를 빌려서 호수로 나와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왜인지 거의 배를 빌리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아주 여유롭게 호수 위에서 아름다운 할슈타트의 모습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곳엔 항상 사람들이 북적이기 마련인데, 호수 위에 있으니 온전히 그곳에 집중할 수 있어서 정말 황홀한 시간이었다. 할슈타트에 간다면 배를 빌려 호수로 무조건 나와라.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취할 대로 취한 우리는 이제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도 우리는 할슈타트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모든 표현을 끄집어내어 말하고 있었다. 배도 든든히 채웠겠다 마을을 슬슬 둘러보려고 식당을 나서는 순간 하늘에선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순간이었다. 마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비를 잠시 미뤄준 것 같은 느낌에 짜릿했다. 아까 점심을 먼저 먹었더라면, 한없이 후회스러운 마음을 안고 돌아왔어야 하는 상황이라 짜릿함은 배가 되었다. 이미 맛은 볼때로 다 봤던 터라 비가 오는 할슈타트의 모습도 아름다워 보였다. 이날 할슈타트에서의 시간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내 마음 한 쪽에 자리를 잡았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모습은 예측할 수 없는 감동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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