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EN & BRATISLAVA

EUROPE — PART.09

walli
walliarchive
5 min readJan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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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
WALLI PROJECT NO.03 — EUROPE

동유럽의 시작은 헝가리였지만 동유럽의 절정은 오스트리아에서 맛볼 수 있었다. 그냥 걸었을 뿐인데 내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은 그야말로 그림이었다. 아름다운 잘츠부르크의 전경과 호수 마을 할슈타트가 주는 감동은 그대로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고, 벅차는 아름다움을 말 만으론 결코 담을 수 없었다. 이래서 말로 담기 힘든 이 감동을 예술로 표현하는구나 싶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수많은 예술의 거장들이 탄생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부터 비엔나 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처음 타보는 나라 간 이동 버스라 한 것 들뜬 마음을 안고 버스에 올랐고, 몇 시간 후 우리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도착했다. 들뜬 마음을 애써 추스르고 버스에서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매우 당황스러운 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처럼 으르렁거렸고, 우린 구글맵에 숙소로 가는 길을 검색했지만, 결과가 뭔가 이상했다. 그렇다 빈에선 구글맵이 대중교통 정보를 보여주지 않는다.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구글맵은 선심 쓰듯 지하철역은 표시해 주었다. 이 정도면 문제없다. 숙소는 지하철역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비가 오더라도 그냥 맞고 걷기로 했다. 우린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고, 거짓말처럼 숙소 현관에 두 발을 딛자마자 하늘은 엄청난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하늘은 새파란 옷을 입고 눈 부신 햇살을 뽐내었다. 우린 기분 좋게 햇살을 맞으며, 빈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슈테판 성당과 벨베데레 궁전, 그 속에서 볼 수 있는 클림트의 눈을 땔 수 없게 만드는 작품들까지 아침부터 숙소에 다시 들어가는 순간까지 우리 입에서는 탄성이 끊이질 않았다. 진정한 감동은 가슴으로 느끼고 배로 채우는 것. 빈의 먹거리는 우리의 배를 기분좋게 채워주었다. 특히 벨베데레 궁 근처에 있었던 ‘Salm Braeu’라는 가게에서 먹었던 바베큐립은 모차르트도 울고 갈 맛이다.

빈에서의 시간이 나에게 좀 더 특별했던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프라이탁’이었다. 프라이탁은 스위스의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트럭의 방수포과 폐자동차의 안전벨트를 이용하여 가방을 만드는 브랜드이다. (프라이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포스팅 예정입니다.) 나는 예전부터 이 브랜드에 푹 빠져있었다. 누구에게는 쓰레기로 보이기도 하고, 누구에겐 세상에 하나뿐인 엄청난 가치의 가방인 프라이탁은 감성 쓰레기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결코 저렴하지 않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탓에 진입장벽이 다소 높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유럽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가격의 반값으로 이 보물들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

내가 빈을 기다렸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빈엔 프라이탁 직영 매장이 있다. 빈의 프라이탁 매장은 저렴한 가격만으로도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지만 예상치 못한 선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부터 프라이탁의 다양한 색상, 패턴의 가방 중에 특별히 단색, 그중에도 올블랙의 프라이탁은 레어 중에 레어 아이탬으로 유명하다. 프라이탁은 각 매장에 랜덤하게 제품을 보내주기 때문에 올블랙의 가방을 만나려면 정말정말 운이 좋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3년 동안 기다린 사람도 있을 정도로 그 타이밍이 맞는다는 것은 정말 천운이 따라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내가 된 것이다. 올블랙의 프라이탁을 손에 들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온몸엔 전율이 흐르고 온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 날 이후 나의 마음은 하늘을 날며 내려오지 않았다.

우리는 여행 중에 빈과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좀 더 찾아보니 기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우리는 아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가야 한다. 우리는 빠르게 빈에서의 여행 일정을 수정했고, 빈에서의 이튿날 우리는 슬로바키아로 향했다. 이렇게 무작정 떠나는 것도 처음이다. 마음만 먹으면 옆 나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유럽이 부러웠다.

슬로바키아 여행은 신의 한 수였다. 내 평생 슬로바키아라는 나라에 갈 줄은 상상도 못 했고, 당연히 기대라고는 없었다. 오스트리아와 비슷한 느낌이거나 조금더 올드한 느낌일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한 순간 마치 고요한 작은 동화 속 마을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갔었던 유럽의 여러 도시와는 다르게 고요하고 여유로웠다. 도시 곳곳의 귀여운 동상들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동화 같은 마을 속에서의 여유로운 식사는 우리의 배 뿐만아니라 잠시 잊고 있던 우리의 순수한 동심도 함께 가득 채워 주었다. 특히 브라티슬라바성은 우리에게 도수 높은 감동을 선사했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걸어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성을 오르며 슬로바키아 사람들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어서 특별했다. 성에서 바라보는 브라티슬라바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유독 빨간 지붕의 집이 많은 탓에 작은 체코 같은 느낌도 있었다. 브라티슬라바성은 화려한 성은 아니었지만, 하얀 벽과 빨간 지붕, 투박한 듯 섬세한 정원은 정돈된 아름다움을 여실히 뽐내고 있었다. 고요함 속에 밀려오는 감동은 은은하게 우리를 적셨고, 어느새 우리는 그곳에 한껏 취해있었다.

슬로바키아를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몇일 더 일정을 잡아 조금더 머무르고 싶은 곳이었다. 하루라는 시간은 야속하게도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새 빈 행 열차에 올라 슬로바키아에서의 사진을 보며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기막힌 타이밍과 소소한 감동은 여행의 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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