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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좋은 협업을 위한 방법을 계속 고민하는 리더, kenzie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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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min readMar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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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지역 곳곳에 자리 잡은 이주민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음식을 따라가는 이금희, 박상영 두 MC의 여행을 풀어낸 <조인 마이 테이블>의 여섯편을 연출한 Team awaw예요.

7편에 걸쳐 Team awaw에서 함께하는 동료들과 오리지널 제작기, 함께 일하는 방식을 소개해요. 7편의 시리즈에서 Team awaw가 팀을 빌딩한 여정, 그리고 왓챠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문화와 시스템을 살펴보게 됩니다.

제 1화, 좋은 협업을 위한 방법을 계속 고민하는 리더, 켄지

팀 리드, <조인 마이 테이블> 디렉터 & 프로듀서 켄지

Q. <조인 마이 테이블>의 기획 과정이 궁금해요. 음식과 여행이라는 비교적 익숙한 조합인데, 이주민분들이 중심이죠.

예전에 경쟁이 치열한 회사에서 일했어요. 제가 뭔가를 잘하지 못한다는 기분을 계속 느껴왔죠. 잘하는 기분을 간신히 느낄 수 있었던 기회를 감사하게도 전 회사에서 줬고, 그게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였어요. <조인 마이 테이블>은 최대한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와 비슷하게 만들자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처음 왓챠로 이직했을 때 회사에서 저한테 다른 걸 기대했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잘 할 수 있는 건 이거라고 말했어요. 음식과 여행이 결합된 프로그램을 제일 잘 만드는 팀에서 배우고 나왔으니까요.

코로나 시국이니까 해외로 나갈 수가 없잖아요. ‘한국에서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를 찍는다면 어떤 걸 할 수 있을까?’에서 아이디어가 출발했고, 소수자 이야기는 제가 계속해보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어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제 영혼이 좀 덜 파괴되면 좋겠다고도 생각했고요. 약간 장외 언론인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때의 경험이 여러모로 유용했을 것 같아요.

우선, 함께 일할 사람들을 다 끌어올 수 있었어요. 사람이 힘들게 일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한테도 매정해지잖아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2> 때 제가 우울증으로 6개월을 쉬고 와서 촬영장에서 긴장은 많이 했지만, 동료들과 관계가 망쳐지지는 않았어요. 그때 같이 일했던 작가님들이 거의 다 <조인 마이 테이블>에 오셨어요. 인적 자산이 없었으면 진짜 힘들었을 거예요. 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Q. 그러고 보니 이제는 팀을 직접 꾸린 리더이기도 해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의 메인 PD였던 박희연 선배님은 늘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다 너희들 공이야’라고 말씀하셨어요. ‘저 사람은 천사니까 저렇게 말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지금 제가 리더의 위치에 와보니까, 정말 선배님만 잘해서 프로그램이 잘 된 게 아니었겠더라고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는 국가별로 담당 PD들이 자율적인 권한을 갖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서 만들려고 노력했고 그게 잘 됐었어요. 지향하는 목적이 같은 사람들을 소수 단위로 쪼개놓은 다음 그걸 다시 병합하는 구조였죠. <조인 마이 테이블>에서도 그걸 시도했어요. 저는 박희연 선배님보다 경력도 짧고 서툰 사람이다 보니 아주 많은 부분을 매끄럽게 해내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보고 있어요.

처음에 팀을 구성할 때 ‘PD가 아무도 오지 않으면 나 혼자라도 할 수 있겠다. 작가님들만 계시면’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시간만 있으면 저를 10분할 해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는 걸 인제 와서 깨닫고 있죠. 저를 10분할 한 다음 저 혼자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제가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것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요? 영상을 편집하면서 나를 혐오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Q. 에피소드별로 담당 PD에게 자율적인 권한을 준다고 해도, 기획 단계에서 프로그램 전체의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필요하지는 않았나요?

작가들의 몫이 컸어요. 작가님들 모두 걸출한 분들이거든요. 전체를 아우르는 가이드라인은 메인 작가님이 잘 잡아주셨고, 메인 작가님보다 경력이 짧은 작가님들은 PD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소통하셨던 것 같아요. 자칫 자기 일에만 골몰할 수 있는 PD들이 여러 다른 팀을 참조 삼아서 학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해요. 작가들이 좋은 사람들이라 가능했던 거죠.

Q. 편집 단계에서 비주얼적으로 하나의 맥락을 만드는 과정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전체를 봤을 때 하나의 브랜드로 묶일 수 있도록 통일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비주얼라이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다채로운 색깔을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이게 하는 거죠.

제가 전체 중 일부의 편집을 맡았을 때는 거시/미시 목표, 캐릭터 분석을 시각화해두고 편집했어요. 그때는 내가 만든 블럭이 단단한 지지대가 될 수 있도록, 혹은 내가 편집을 맡은 부분이 조금 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면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전체를 수습하는 데 바쁘죠. <조인 마이 테이블>은 우리 팀이 다 함께 처음 만드는 프로그램이잖아요.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는 톤앤매너가 다르고, 회차마다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수습하는 과정이 필요한 거예요. 이제는 내 세계 안에서 프로그램을 작게 조직하는 경험보다는 외부로 열리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Q. 이주민 중심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더 고민되는 부분은 없었을까요? 이분들을 담아내는 시선의 균형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저희 팀뿐 아니라 왓챠 다른 구성원들의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어요. 구글폼으로 설문지를 만들고 회사 구성원 모두가 있는 슬랙(협업 툴)채널에 공지를 올려서 모두에게 피드백을 받고 의견을 수렴하는 문화가 있거든요. IT 회사에서 MVP(최소 기능 제품)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해요. 저희가 난민의 음식을 다루니까 ‘이 사람이 내전 상황 때문에 난민이 되었다면 그 전쟁의 참혹함을 콘텐츠에서 어느정도 보여주어야 연민과 공감을 얻지 않을까요?’라는 피드백이 있었어요. 의미 있는 피드백이었지만, 콘텐츠의 성격을 고려해서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예요.

음식은 그 사람의 삶의 낙이잖아요. 아무리 궁핍하고 힘들게 살더라도 한 끼를 즐길 권리는 있어요. 지금까지 이 사람들의 삶을 진실하게 바라보려는 시각에 너무 한 쪽만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프로그램 안에서 시선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진 콘텐츠 안에서도 균형을 맞추고 싶어요. 신경이 많이 쓰여요.

Q. 보통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은 시사나 교양으로 분류되었던 것 같아요. <조인 마이 테이블>은 예능이고요.

예능을 절대 떼지 않으려고 애써요. 저는 제작 방법상으로는 다큐멘터리와 예능을 거의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 두 가지를 가르는 기준은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느냐, 낙관적으로 보게 만드느냐인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그램,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저널리즘 영역에서의 매체들은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의무를 지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대중의 찬사와는 별개의 가치를 갖는다고 믿어요.

저는 현실을 낙관하게 하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해요. 거기에는 항상 불편함이 숨어있죠. 해피엔딩에 쓸쓸함이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그게 너무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해피엔딩이나 낙관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불편할 정도로 현실을 외면하는 느낌은 아닐 수 있게요. 예를 들어 성비, 그분들의 삶이 가지고 있는 고난, 어려움, 그분들의 다양한 직업 등을 균형감 있게 다루려고 애써요. 그런데도 불편할 수 있는 점은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을 더 신경 쓰고 있어요.

Q. <조인 마이 테이블>을 만들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나 날도 있을까요?

5일 정도 ‘스프린트’라는 걸 한 적이 있어요. 구글에서 사용하는 방법론인데요, 짧은 시간 내에 문제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검증하는 것까지 마치는 거예요. 그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이루고 싶은 가치를 살펴보려고 했죠.

사실 예멘 난민의 음식을 다루는 것에 우려와 걱정이 많았어요. 저희 팀 안에서도요. 우리가 제주도에 살고 있지 않은 외지인의 입장에서 제주도민들의 고충은 외면한 채, 너무 인도적인 이야기만 하는 안온한 시선으로 오히려 사회의 상처를 가중하는 일을 선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거예요. 그걸로 인해 저희에게 돌아올지도 모르는 비난의 화살도 두려웠고요. 그렇지만 이 이슈를 빼고 다른 것만 하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계속 들었어요. 우리가 잘 할 수 있고 해야 할 것 같았어요.

Q. 스프린트에서 그 논의를 이어간 건가요?

반대 의견을 지지할 새로운 정보를 발견해오거나, 합리적 사고 과정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지 않고 걱정만 하는 순간이 반복됐어요. 논의하다가 제가 화가 나서 약간 고장 났죠. 평정심을 잃고 빈 회의실에 앉아있었어요. 사람들과 떨어져 있고 싶어서요. 제이미가 와서 저를 끌고 가더라고요. 다른 팀원들이 저를 내버려 두라고 했는데, 제이미는 ‘내버려 두면 안돼’라고 말하며 저를 데려간 거죠. 그 순간 좀 욱했지만 결국은 팀원들이 있는 자리에 다시 돌아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경험을 통해 느낀 점은, 프로그램의 사이즈가 어떻든 모두의 의견을 다 수렴하며 이야기의 중심을 잡기는 어렵다는 거였어요. 때로는 우려와 걱정, 논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은 반대의견들을 감수하고 목표를 향해 가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배웠어요.

Q.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논의를 마무리하셨나요?

예멘 난민분의 이야기를 취재하다가 그분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지내고 돕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외부에서 이야기되었던 것들과 전혀 다른 일들이 있었는데, 그건 잘 다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분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메인 작가님이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오늘 처음 한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이 힘이 됐어요.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팀원들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순간을 한 번이라도 만나면 좋겠다, 그럴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해요.

켄지가 필름카메라로 찍은 카메라 감독과 PD들의 모습

Q. 리더로서, 프로그램의 메인 연출자로서는 어떤가요? 켄지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순간을 만난 적이 있나요?

팀원들의 회고록을 읽을 때 그런 기분을 많이 느껴요. 다들 어떤 꿈을 꾸거나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타키가 중요하고 어려운 회차를 많이 맡았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개입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고요. 짐이 너무 무거우면 나눠드는 게 더 좋잖아요. ‘나한테 짐을 나눠줘’라고 했을 때 당사자가 오해할 수도 있어요. ‘내가 못해서 그런가?’ 하고요. 하지만 그 기분을 견뎌야 하는 것 같아요. 타키는 지금 자기 안의 기준치를 끌어올리고, 기술도 기준치에 맞게 발휘하는 단계에 있거든요.

그 친구가 맡았던 회차를 내부적으로 시사했는데, 피드백을 듣고 기분이 좋았는지 한 달 만에 웃고 다니더라고요. 김해 편인데 ‘정말 좋다, 최고다’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거든요. 특히 타키가 김해 출신이기도 해서 더 기뻐했던 것 같아요. 다른 팀원들이 ‘악보 위를 걸어 다니는 타키’라고 할 정도였어요. 혹시 자신이 만든 걸 자신의 창작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기쁨을 온전히 느끼는 모습이 좋아 보이더라고요.

Q. 리더가 되면서 어떤 팀을 만들고 싶으셨어요?

저는 일하면서 좋은 리더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분들이 하시던 방식을 다 베끼고 있죠. 특히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를 같이 했던 박희연 PD님은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에요. 그전까지는 저의 성장에 관심이 없는 선배들을 만났기 때문에 3, 4년 차가 될 때까지 편집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저보다 연차가 낮은 후배들보다도 편집을 못했어요. 그런데 희연 선배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셨어요. 단 한 번도 제가 자신을 무능하다고 느끼게끔 하지 않으셨죠. 가능하면 선배님처럼 누군가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리더로 팀을 이끌고 싶기는 해요. 다들 선배님을 만나서 마음을 조금 회복하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섰어요. 진짜 리더는 리더를 만드는 리더라고 하잖아요. 저도 팀원들이 빨리 제 품을 떠나서 자기 프로그램을 할 수 있게끔 돕고 싶어요.

Q. 이 시기에 왓챠로 이직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PD 일을 시작한 지 3년 차쯤 됐을 때 난청이 왔어요. 지금도 귀가 잘 안 들려서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고요. 그때 즈음 운 좋게 유명하고 뛰어나고 배울 게 많은 선배님을 만나 몇 년을 일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분가를 하거나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지는 것처럼, 저도 그분들과 협업할 수 있는 시기를 지난 것 같아요. PD들은 그런 자영업자 같은 삶을 산다고 생각해요.

저는 귀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몇 년 더 일할 수 있을까?’ 이 걱정을 남들보다 더 빨리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몇 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뭘 해야 덜 후회할까?’라는 질문이 떠오르더라고요. 이전에 일했던 회사에는 쟁쟁한 PD들이 이미 많고,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정적이라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몇 년 남지 않았다고 할 때 좀 아쉬울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이곳에서 이상한 작품들을(웃음) 만들다가 사라지는 것도 괜찮겠다, 그럼 후회는 덜 하겠다, 싶었어요.

Q. 리더가 되면서 팀에 여러 가지 시스템과 문화를 도입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다른 팀이나 회사의 문화를 많이 엿봤어요. 작년에 처음 입사했을 때 다른 팀들이 슬랙에서 주고 받는 이야기들을 많이 봤어요. 왓챠의 업무 슬랙 채널들이 대부분 공개되어서 누릴 수 있었던 특혜같아요. 저희 팀은 굉장히 작은 팀이지만, 저도 그런 팀장 직함은 처음 맡아보니까 구색이라도 맞추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회사에서 그런 역할을 잘 해오신 분들의 행보가 궁금했고 사실 그냥 그들이 한 말을 머릿속에 외워놓고 거의 따라하려고 애썼어요.

예를 들면 CTI팀의 스티븐의 경우엔 본인 팀의 팀원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고민하면서 많은 기회를 만들려고 애쓰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팀원들을 생각할 때 눈앞에 있는 프로젝트보다는 전보다는 조금 더 멀리 보고 그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신경쓰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팀의 시스템을 처음 구축할 때 정말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팀원들의 성장을 고민 할 때 가장 먼저 스티븐을 떠올리게 되어요.

그리고 마케팅팀의 헬렌 같은 경우 팀 밖에서도 경계없이 좋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분이었는데, 팀원들이 담당 프로젝트에 몰입하게 만드는 일이나 자기주도성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런치타임을 한 번 요청해서 여쭈었는데, 리더십에 대해 정말 고민을 많이 해오셨고 실행해보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일을 즐겁게 하시는 부분도요. 팀원들의 업무를 분배하고 그 역할을 인정해주는 일들, 팀원들이 신이나서 할 수 있는 이런 인터뷰를 같이 기획해보는 일들을 해볼 때 엄청 떠올리는 분이 되었어요.

그리고 PR, GR팀의 루카스와 같이 티타임을 가졌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슬랙을 염탐해보니 루카스야말로 더 경계없이(?) 여러분들에게 신뢰를 받고 일하는 분 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런 신뢰는 어떻게 쌓냐고 여쭈었더니 (진짜 이상한 질문이었지만) “ 얘기 된다“ 는 느낌을 주면 좋다고 생각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 된다는 말이 기자였을 때 취재원들과 관계를 맺던 경험에서 오신 말씀이었는데 귀에 쏙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에도 회사에서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최대한 ‘얘기 되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게 제 선에서 드릴 수 있는 정보와 도움을 드리려고 애써요.

사실 이 분들이야말로 제가 업무하면서 자주 뵙는 분들도 아니라 내향인인 제가 먼저 나서서 뭔가 가벼운 얘기 자리를 만드는 것도 엄청 용기가 필요했을 일인데, 왓챠의 문화는 이런 일들을 어렵지 않게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서로 섞이고 학습하는 걸 즐겁게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왓챠의 문화가 아니었다면 제가 아무리 호기심이 많아도 배울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코로나로 기획 업무만 주로 해서 관련 책들을 읽을 시간이 생겼었어요. 가장 역동적이고 창의적이라는 말을 듣는 단체나 기업이 더 이상 방송계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최근 그렇게 불리는 곳들의 시스템을 배워보고 싶었고, 저희 팀에도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어요.

Q. 그동안 방송계에서 없었던 시스템이고 문화이기도 하잖아요. 이런 걸 도입한다고 했을 때 팀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제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온 분들이 대부분이라 반대는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효과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지금 팀 분위기는 좋아 보이는데, 결과가 한번 나와야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지금 단계에서 저를 칭찬해주고 싶은 건, 그래도 주니어 PD와 시니어 PD의 관계가 상명하복의 구조는 아니에요. 경험치에 따른 능력 차이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요.

Q. 켄지야말로 경력이 꽤 되었으니, 그런 시스템과 문화가 없는 상황에서 오래 일한 거잖아요. 스스로 만든 변화이기는 해도,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나요?

거부감이 전혀 없었어요. 전에 일했던 회사에는 매뉴얼 같은 게 없었거든요. 예를 들어서 프린트를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어요. 문서로 매뉴얼이 정리되어 있지 않으니 프린터 업체에 전화하거나 선배에게 배우지 않으면 방법을 알 수가 없는 거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데 제가 그걸 하지 못하면 ‘이따위 일도 못 해?’라는 말을 들어요. 그런 환경에서 컸죠. 그래서 지금도 겁은 없어요. 뭐든 “이거 어떻게 해요?”라고 담당자를 직접 붙잡고 물어보는 편이에요.

왓챠는 그렇지 않은 신세계더라고요. 누군가 ‘남들에게 도움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시간을 써서 매뉴얼을 공유하고, 검색하면 나와요. 저희 팀원들도 그렇게 해요. 그게 좋아요. 툴 하나만 썼을 뿐인데 사람들을 구조적으로 무능하게 만들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죠.

Q. 앞으로 더 시도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적어도 우리가 같은 목표를 향해 일한다면, 모든 구성원이 비슷한 노동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는 신뢰를 쌓고 싶어요. 공동체 형태의 팀을 만들고 싶어요.

Q. 그동안 업계에서 하지 않았던 방식을 도입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런 시도를 통해 동료들이 변화한다 해도, 그야말로 ‘문화’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효과를 빠르게 확인하기는 어렵고요. 그런데도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는 뭘까요?

혜성처럼 나타난 엄청나게 유능한 한 사람이 뛰어난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는 진작에 지나간 것 같아요. 그것을 넘어서, 결과물에 대한 공을 쉐어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 사람과 협업하지 않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이미 왔는지도 모르죠. 개인들에게는 각자 다른 잘난 지점들이 조금씩 있잖아요. 그런데 사회적인 성취는 보통 협업의 결과물인 것 같아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좋은 부분을 인정하고, 호명해주는 게 필요해요. 이 부분에 대한 욕구가 큰 사람들이 유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들과 일하려면 저 역시 그런 형태로 변화해야죠. 저 역시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대의가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켄지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왓챠 오리지널 <조인 마이 테이블>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조인 마이 테이블> 은 지금,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어요!

다음편은 타키의 인터뷰로 3/22에 공개됩니다.

켄지의 이야기처럼 서로 다른 동료가 같은 목표를 공유하며 협업하는 왓챠와 함께할 동료를 찾고 있어요. 아래 링크에서 채용 공고를 확인해주세요.

본 인터뷰는 뉴그라운드에서 진행한 Interview of Team awaw를 왓챠의 색깔에 맞게 구성하였습니다.

interveiw. 황효진(뉴그라운드 공동대표) / design. ellen, luna / edit. z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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