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별 마무리]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마무리 by 하수

길잡이별을 찾는 여행
WayfinderStar
5 min readMay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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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첫 유럽행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YIP 포럼에서 연수님과 ‘어느새 정신 차려보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있을거다’ 라고 얘기한게 엊그제 같은데, 역시 그 예상은 항상 틀리는 적이 없다. 흘러가는대로 살다가 문득 지금이라는 순간을 인지하면 많은 시간이 가버린 뒤다. 11명과의 시끌벅적한 3주가 지난 뒤 너무 갑작스럽게 혼자가 되어서인지 처음에는 조금 외로웠다. 혼자가 정말 익숙하던 나인데. 고작 3주로 나에게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다. 걱정 많은 내가 무려 떠나는 날 취소된 항공편에도 큰 타격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 다했다. 길잡이별이 끝나고 일주일을 더 베를린에 머물다 뮌헨으로 넘어왔을 때, 나는 체력적으로 지쳐있었다. 더구나 뮌헨에 오면서 비도 자주 오고 날씨도 궃어서 숙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자연스럽게 마무리 겸 그동안의 여정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다같이 있는 동안은 이 여행의 의미나 의의를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의미를 찾으려는 행동 자체가 나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3주간 만이라도 그런 부담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고 싶었고, 꼭 노력하지 않아도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그럴 짬이 안 나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끝이 보이는 시점에서, 답을 내놓으려는 나의 본성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났던 것 같다.

이번 여정은 나에게 있어서 자신을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였다. 나는 바로 여기에 두 발 땅에 딛고 서 있는데, 나를 찾아서 이렇게나 멀리 유럽까지 와야 한다는게 처음엔 아이러니 했다. 나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초반엔 집에 가고싶기도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었고, 오더에서는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힘들었다. 다른 이들은 자기만의 자유를 찾는 듯 한데 나만 모범답안이 없어 불안해 하는 사람 같았다. 우리들의 기록을 남길 때도, 누군가 나를 나의 글로만 판단할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워 순간들을 기록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남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나를 찾으러 온 여정에서 점점 나를 잃어간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오픈 마스터를 통해 처음으로 나라는 사람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나도 잡생각이 많을 뿐 성찰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였기에 자신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나의 삶은 어땠는지, 어떤 사건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IPC로 가는 내내 짐과 나눴던 대화에서 나에게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실제로 그가 조언해 준 그라운딩을 하면서 내려놓기가 가능했고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어느정도 명쾌해진 것 같다. 포럼에서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에서 나의 두려움(대부분 관계에 관한 것이였다)을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볼 수 있었다. 대화를 ‘수확’ 하는 과정을 처음 겪었는데,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풀어내는 것 만으로도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우리의 오픈 스페이스에서는 나를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세분화 시킬 수 있겠지만, 결국 나는 모든 것이 완벽했으면 하는 마음에 작은 실수라도 생길까 시도조차 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이걸 알고 조금씩 실수를 양보하는 과정에서 내가 정말 편해졌다.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물론 이 밖에도 여러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 함께 울고 웃던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좋은 사람들이 내뿜는 따뜻함에서 많이 위로받기도 하고, 나에 대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한 깨달음이나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여정으로 나라는 존재를 정의내릴 순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쌓여가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나를 이루는 조각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그것들의 맥락을 알아가는 것이지,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껍데기뿐인 나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참 단순한 말인데도 이걸 이해하는 데는 많은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 이런 당연한 것들을 깨달아 가는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 같고. 그리고 답이 아닌 질문을 사랑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 말도 참 진부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누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지금 당장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 내 곁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답을 향해 가는 과정 자체가 나의 삶이지 않을까 싶다.

3주만에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니! 참 대단한 사람들과 보낸 엄청난 시간이였다. 이 깨달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아쉬움이 커서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만큼 오래 아쉬운 건지도 모르겠다. 오래 아쉽기 위해 막바지가 되어서야 그렇게나 좋아진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앞으로 나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한 마디. 그대들 별이 모여 내 우주에 또 하나의 은하수가 만들어졌네요. 그걸 길잡이 삼아 새로운 여정을 갈 수 있게 되었어요. 서로가 서로의 북극성이 되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며, 은하수를 여행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기를 기다릴게요. 또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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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잡이별을 찾는 여행
WayfinderStar

길잡이별을 찾는 여행은 세계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청년들을 위한 진로 탐색 프로그램입니다. 난쟁이와 요정들이 살고있는 스웨덴 숲속에서, 자연과 사람이 어울려사는 덴마크의 마을에서, 사람이 가장 먼저 존중받는 평화로운 사회 북유럽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