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별 x 전인고] 안내자 선의 기록: 같이 살아보자고 전하는 편지

길잡이별을 찾는 여행
Wayfinder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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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in readMay 26, 2021

Written by 선

*이 글은 길잡이별을 찾는 여행이 2021년 3월에 춘천 전인고등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길잡이별을 찾는 여행 : 같이 산다는 건>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편지 형식으로 평등어로 작성되었습니다.

같이 살아보자고 전하는 편지

떠올려보면 3월은 애매할 때가 많았던 것 같아. 설레는 마음과 함께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곤 하니까. 찾아오는 봄의 기운을 따라서 다시 전인고로 향했을 때 나도 그런 기분이였어. 어떤 새로운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지 못한 어떤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이였지. 그런데 우리가 떠나기 전날, 춘천에는 눈이 많이 내렸대. 덕분에 강원도로 향하는 기차의 창밖 풍경은 마법처럼 반짝였어. 다른 시공간으로 가는 것만 같았어. 어수선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 앉더라고.

다시 찾은 전인고는 온통 하얗다는 것 말고는 여전했어. 작년에 만났던 친구들은 이제 2학년이라며, 부쩍 마음이 넓어져있었어. 정말 시간이 지났구나, 다시 이곳에 왔구나. 하는 걸 실감할 수 있었지. 우리는 여전히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수다떨면서 식사를 할 수도 없었지만 변한게 있다면 이제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는 거야. 그것만으로도 전인고에 다시 올 수 있다는게 참 신나고 고마운 일이더라고.

샘, 웅, 효선, 제제 —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하리까지 5명의 모였어. 너희들을 만난 수 있다는 소식에 한참전부터 고민고민해서 바구니 가득 재미난 것들을 챙겨왔지.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정성스레 맞이할 준비를 했어. 공간에서부터 따듯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거든. 챙겨온 여러 무늬의 천들을 벾에 달고, 센터피스에 소중한 물건들을 올려놓았어. 주변에서 찾은 자연물들로 장식도하고. 초와 향으로 기도하는 마음을 담은 후에는 방석을 둥그렇게 놓았어. 너희들 23명과 우리 5명, 그리고 선생님들까지 30개의 마음들이 모여 하나의 원을 만들거야. 누구나 자신으로 살아가며 배울 수 있는, 어쩌면 그동안 갖혀있던 틀을 깨고 처음으로 만날 둥지같은 곳이지. 그런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함께 만들자.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30개의 자리가 하나 둘씩 채워져서 우리는 온전한 원이 되었어! 꽉찬 다목적실에 모여있는 우리들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어색하더라고. 그런 너희돌과 함께 낯선방식으로 서로 인사를 하고, 이름을 불러주고, 질문을 던지고, 노래를 부르는 시간으로 시작되었어. 그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너는 어떤 사람이야?”하고 백가지 다른 방식으로 물어보기 시작했지. 너에게 9가지 목숨이 더 있다면? (9개의 삶), 네가 너답다고 느낀 순간과 혼자라고 느꼈던 순간은? (깊이 듣기), 너에게 성공이란? (성공 재정의) 네 삶의 현재 모습은? (만달라) 네가 가진 질문은? (여정질문)… 하이고야 끝도 없다. 정말 집요하지? 대답하기 쉽지 않을 수 있어. 지치기도 하겠지. 어찌보면 어려운게 당연해. 그동안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았으니까. 아니면 물어보더라도 그들이 듣고 싶은 답은 정해져있을 때가 많지.

바구니에 담은 질문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같이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당신의 길잡이별은 무엇인가요?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어. 너는 어떤 사람이야? 이 질문이 정말 신기한게 물어보면 물어볼 수록 나에 대해서 새로운 점을 발견 할 수 있어. 백가지 다른 방식으로 물어보면 백가지 다른 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사실 나란 존재는, 너란 존재는 그토록 다양하다.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이건 나무라고 하고 꼬리를 만지고 빗자루다! 라고 판단 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한 부분만 보고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넓고 깊고 존재야. 그런 나의 본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하더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걸 기다려주기 보다는 빨리 말해주길 바라지. 그래서 길잡이별이 필요해. 내가 나만의 길을 가기 위해서.

길잡이별이 도대체 뭐냐고? 나도 잘 몰라. 그게 뭔지 같이 찾아보고 싶어. 안내자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왔지만 사실 내가 하고 싶은건 길잡이별 찾는 여정을 함께가는 동지가 되고 싶어. 어쩌면 나는 이곳에서 너희를 만나기에 너무 제멋대로 일지도 모르겠다. 학교라는 시스템도, 사회라는 구조도 내가 생각하는 배움의 모습과는 좀 동떨어져 있을 때가 많아. 진정한 배움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일어나게 될지 모르는거잖아? 오히려 시스템을 넘어서는 경험을 했을 때 더 많은 배움이 찾아오기도 하고말이야. 당장이라도 교정 밖으로 뛰쳐나가서 그 신비한 경험들을 나누어 주고 싶기도하지만, 이번에는 지금 여기에 주어진것 안에서 가능한 최대치의 마법을 만들어 보는 수밖에 없었어. 이 3일간 단 한 순간이라도 존중받는다고, 나로써 이미 충분하구나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으면 해. 그게 조금이나마 앞으로 3년간 이곳에서 살아가는데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안전한 둥지 밖으로 나오더라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바구니에 찬찬히 고민해서 같이 하면 좋을 게임, 같이 읽으면 좋을 시, 같이 부르면 좋을 노래, 같이 이야기 나누어보면 좋을 질문들, 같이 해보면 좋을 경험들을 전부 담아온거야.

바구니에 담아온 노래

“같이 산다는 건 / 솔가”

개미 지렁이 고라니 호랑이 느릿느릿 발걸음 맞춰봐 같이!

먹고 자고 만지고 싸고 필요한 모든 걸 가졌어 우리!

바람과 물을 따라 여기에 모인 우리

볶아먹고 비벼먹고 무쳐머고 지져먹고

방귀뽕 트름꺽 아무런 문제없어

두물머리 지렁이 강정의 고래들 밀양의 할매들 영덕의 대게도

방귀뽕! 트름꺽!걱정없이 같이살자

같이 산다는 건 날 덜어내고 너를 채우는 일

같이 산다는 건 내 우주 너의 우주 만나는 일

같이 살자 같이 살자꾸나

이번 여정의 제목은 ‘같이 산다는 건’이야. 바로 이 노래에서 따온 제목이지. 3년간 전인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너희에게 가장 던지고 싶은 질문이였어. ‘같이 산다는 건 뭘까?’ 그래서 우리 안에 어떤 다양한 취향, 성향, 모습들이 있는지 스펙트럼으로 서보고 이야기 나눠보기도하고, 같이 이곳에서 더 잘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했어. 또 등을 맞대고 내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고민을 나누는 시간도 있었고.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지지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매일을 살아가는데 참 중요한 일이더라고. 아까 말했듯이 어마어마하게 큰 존재인 ‘너’와 또 큰 존재인 ‘나’, 우리의 각자의 우주가 만나서 새로운 우주가 생기는 일. 창조의 작업이야! 그 같이 산다는 것의 짜릿한 묘미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구니에 담아온 시

“춤 /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중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내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들 속에서

내가 진정 누구인가를 보아 달라.

내게 말하지 말라,

언젠가는 멋진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그 대신 마음의 흔들림 없이 위험과 마주할 수 있는가를

내게 보여 달라.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가장 나다웠던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음악듣고 영상을 보는게 가장 편하고 나다운 순간이라고 말하는 너희들의 이야기에서 코로나 19라는 우리 삶의 변화가 만들어낸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사이에 거리가 지금 너희들에게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어. 이런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강력하게 일상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네. 그 속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혼자 있는 시간들이 가상공간에서 존재하는 시간들이 점점 커져가는 세상인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있다라는 감각들을 확장할 수 있을까?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갈 원동력을 얻을 수 있을까? 그래서 더욱 더 말하고 싶어 ‘같이 살아보자’고. 살아볼만한 이유가 뭔지 같이 한번 찾아보자고. 도움이 필요하면 손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있다고 말이야.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까’라고 유난히도 많이 물어보았던 너희들. 지금 당장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쌓아가야할지 몰라 고민스러우보였어. 하얀색 종이를 들고 무엇을 그려야 할지 쩔쩔매는 것처럼. 그 모든 두려움과 떨림들은 당연한 것임에도 인정하지 않는 순간 불안으로 변해버려. 그러지 않아도 좋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네가 좋아. 모르겠는 것도, 두려운 것도, 피곤하고 졸린 것도, 화가나고 부정적인 것도, 삶을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도. 그냥 있는 그대로 지금 이순간의 너의 모습 그 자체가 너무 소중하고 충분해. 눈을 가리고 체육관 끝에서 끝으로 달리다 마침내 안내자들의 만나 느껴지던 따듯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잊지마.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다시 만나는 날 다시 그때처럼 안아줄게.

그러니 부디 건강하고, 또 너다운 모습으로 지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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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잡이별을 찾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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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잡이별을 찾는 여행은 세계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청년들을 위한 진로 탐색 프로그램입니다. 난쟁이와 요정들이 살고있는 스웨덴 숲속에서, 자연과 사람이 어울려사는 덴마크의 마을에서, 사람이 가장 먼저 존중받는 평화로운 사회 북유럽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