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한 바램이 만들어낸 시작

길잡이별을 찾는 여행
WayfinderStar
Published in
10 min readMar 1, 2020

[겨울잠을 제대로 보내는 방법] 참가자 후기 by 보전

끈질김, 성실함, 어긋남 없는 일상, 방황하는 삼십대, 물질적인 것과 실리적인 것의 필요성과 피로감, 경계심, 의심, 외로움, 미래의 불안, 자극에 대한 목마름

이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명확함 없이 꽤 오랜 시간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아니, 뛰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하루는 짧았고 해야할 일은 많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잠을 줄였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알았다. 이러다가는 지칠 거라는 것을.

물리적 체력은 둘째였고 텅 비어있는 마음이 문제였다.

열심히 살았지만 불덩이처럼 마음이 뜨거워지는 일,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는 일이 없었다. 내 삶의 중심이자 핵심,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아니 절실했다.

나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진짜 내가 원하는 미래는 뭘까?

어떤 관계나 환경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 때의 나, 나다운 것, 내가 가진 고유의 것, 그런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매일 엄청난 정보를 찾아보았고 방법을 실행하다 버리기를 반복했다.

기가막힐 정도로 바쁜 하루의 어느 날 읽지 못한 수십통 메일들 속에서 소셜스티치 정보를 찾았고 길잡이별의 <겨울잠을 제대로 보내는 방법> 정보를 만났다.

정보를 조금 더 찾아보고 바로 신청서를 작성했다.

대담한 일이었고 대책 없는 행동이기도 했다.

받았던 안내서 중 ‘나’를 알아가며, ‘가슴이 부르는 소리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날들을 그려보는’ 이란 문구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몇주전부터 약속되어 있던 일정을 취소하면서 고민, 연차를 내면서 고민, 수없이 고민했지만 아무것도 안하면 무엇도 변하지 않을 것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배웠기에 그냥 ‘그 날’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나를, 내 삶을,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는 일에 긴 시간 집중할 수 있는 날들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가능했던 마음가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운명적인 마우스 클릭질이었던 것 같다.

3번의 클릭질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나게 될 줄은 그 때는 조금의 기대도 하지 않았다.

<첫 모임>

익숙한 불광역과 혁신파크였지만 오랜만에 본 눈발이 문제였던 건지 걱정되고 피곤한 마음이 문제였던 건지 소셜스티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헤매지 않기 위해 수차례 오는 길을 검색해보고 시간도 여유있게 나왔지만 코앞에서 헤매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지금의 내 삶 같았다.

열심히 준비하고 달렸지만 목적지 앞에서 헤매고 있는 내 모습.

어렵사리 도착한 이 공간에서의 5일은 예상되지 않았다. 서로 낯익은 얼굴들인지 인사하는 몇몇 사람들 속에서 동떨어진 나의 서먹함은 회사에서의 외로움과 비슷하면서도 낯설었다.

둥글게 모여 앉아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서 짤막한 자신의 소개와 길잡이 여행에 참여하게 된 이유들을 나눴다. 첫 모임에서 처음으로 한 일은 다른 어떤 경험들보다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Peace Of LIfe. 내 삶을 대표하는 것, 내 삶을 말할 수 있는 것. 내 삶의 조각을 모두에게 소개하고 그것을 5일동안 두툼한 가방 안에 봉해버린다.

다들 일상을 채우는 것들을 소개하는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손에 쥔 스마트폰에서 펭수 사진을 보았다. 맞다. 나는 작년부터 이 덩치 큰 녀석에게 빠져있었다. 너무 빠져버려 스스로 보는 시간을 제어해야 할만큼 나의 힐링이라 말할 수 있는 존재였다. 밥을 먹을 때나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하면 펭수 영상을 1편 이상은 꼭 보았다.

모두의 사연만큼 특별한 삶의 조각에 비해 나의 펭수는 어떤 이질감이 들었다. 이질감, 내가 이 첫 여행길에 느낀 느낌. ‘나는 과연 안전하게 이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그것이 나의 시작이었다.

<활동들>

‘우리’는 많은 활동들을 했다. 함께 게임하기, 타인에게 의지해서 공간을 탐색하고 내 몸을 움직이기, 타인의 얘기를 집중해서 듣고 들은 얘기 그대로 반영하기, 눈물이 날정도로 가득 차려진 밥상을 둘러싸고 함께 감사함을 말하고 밥 먹기, (회사에서도 주로 밥을 혼자 먹는 내게 낯선 의식이었다), 말없이 타인의 눈을 오랫동안 깊게 들여다보기, 타인과 나의 경계를 세워보기, 내 삶을 돌아보기, 숙고하기, 마주하기, 그려보기 (만달라 그리기, 3개의 봉우리 찾기, 우선순위 정하기, 작은 움직임), 10년 후 미래를 생생하게 떠올리기, 미래를 위해 지금 행동하기, 우리가 한 모든 활동들을 돌아보기.

혼자 고민하는 활동들도 좋았지만 나를 자극한 것은 ‘우리가 함께’ 한 활동들이었다. 길잡이 여행의 목적은 자신이 나아갈 길을 고민하고 찾아보고 행동해보는 것이었지만 사이 사이 우리가 빼놓지 않고 반복적으로 했던 활동들이 점점 여행길 동료들에게 편안히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고 길잡이 여행이 안전함 곳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를 통해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1_둥글게 모이기_ 우리는 늘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바닥에 둥글게 앉거나 섰다. 그리고 때로는 거침없이 누웠다. ^^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체크인 시간부터 끝을 맺는 체크아웃 시간까지우리는 수시로 2층 모임공간에 자연스럽게 모였다. 큰 유리창으로 눈발을 바라보며 햇빛을 받으며 복도가 아닌 듯 하지만 결국 복도인 그 곳에 신발을 벗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여행 막바지에 안내자가 말했다 “우리.. 지금 모여 앉은 이 원 모양이 완벽하게 둥글지는 않지만 다들 정말 편안해 보인다. 좋다” 라고.

2_노래 부르기_ 우리는 신기한 노래를 많이 불렀다. 맨 처음 노래를 배울 땐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내뱉고 화음 넣기에 집중하느라 몸이 경직되었는데 새롭게 배우는 노래가 늘어날 때마다 멜로디에 맞춰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다. 화음을 넣을 땐 서로의 목소리와 속도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목소리를 더 크거나 작게 맞추며 흥겹게 불렀다. 우리는 밥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비어있는 휴식시간 동안 누군가가 시작하면 맞춰서 화음을 넣으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3_소감 나누기_ 우리는 각각의 활동을 마친 뒤 꼭 모두 함께 활동에 대한 소감과 생각을 나누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두 번씩 말할 기회가 주어진 적이 있었다.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을 위해 한 번의 침묵의 기회를 주는 것. 회사 생활에서는 억지로라도 의견을 내야했으며 이해를 시키기 위해 잘 말해야 했다. 그 압박감은 늘 나를 괴롭혔다. <자유롭게 말하기와 경청하기>는 내가 내 얘기를 편안히 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었다. 말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얘기를 들으며 자신의 삶과 연관시켜 한번 더 숙고해보며 또다른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4_고요함 갖기_ 아침에 한번, 신나게 게임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번, 생각의 전환을 위해 한번, 하루를 마무리 하기 전에 한번, 우리는 그렇게 하루에도 여러번 고요함의 시간을 가졌다. 눈을 감고 편안히 앉거나 서서(혹은 눕기도 하며) 깊게 호흡을 했고 감사한 순간, 고민, 괴로웠던 일을 생각하거나 사랑하는 어떤 사람을 생각하기도 하고 내 자신을 위로하거나 각자의 미래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자극들과 감정들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일, 여행길 내내 참 좋아했던 시간이었다.

<얻다>

5일간 나는 최선을 다해 참여했다. 경험들은 아주 익숙한 것들도 있었고 불편한 도전도 있었고 편안하고 신나는 것도 있었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도 있었다.

집에 돌아갈 때는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었고 멍하니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늘 마주치던 세상의 소리와 소식들에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았다. 그게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마치 오랜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에 도착한 사람의 마음이랄까?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 길잡이 여행 중이었지?’

생애 처음으로 한 주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너의 길은 찾았니? 너는 지금 어떠니?’ 여행길 내내 나는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을 얻어냈다.

비어내는 방법, 뱉어내는 것의 중요함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감추고 있었던 것 혹은 괜찮다고 생각했던 어떤 감정이나 기억이나 경험들이 내 발목을 아직 꽉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고 나는 그것을 여행길의 중간 목적지에 도착할 때마다 꺼내고 지켜보고 토닥거려주었다. 아주 깊은 곳에 그리고 너무 연약하여 잡기조차 조심스러웠지만 여행길 동안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들은 무시하지 않았고 비난하지 않았으며 채찍질도 하지 않았다. 공감해주고 위로해주었다. 나의 치부이면서도 상처를 다시 드러내고 살펴보는 것은 괴로웠지만 새살이 돋아남을 발견했다.

몸은 기진맥진 했지만 정신이 또렷해지고 즐겁고 활기찬 마음이 들던 3일째, 나는 알았다.

큰 무언가를 덜어내고 비어냈기에 새로운 것으로 채우고 그것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는 것을.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을 믿은 내 자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촘촘하게 계획된 여행 과정이 있었다. (안내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이 여행길의 처음, 내 역량에 따라 얻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나의 얘기를 들어주고 또 본인 얘기를 꺼내주고 함께 울어주고 눈 마주쳐주고 감사하다고 얘기해주고 사랑한다고 해준 친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여태껏 믿은 관계의 정의를 다시 세웠다. 새로운 관계의 시작은 늘 의심이자 경계심이었던 내게 진실로 마음을 나누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 나와 타인의 경계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서로를 존중한다면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 친구만큼이나 신뢰감을 느끼고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안전한 관계 속에서 나를 살펴보았고 상처를 치유했고 새로운 자극들과 주변의 응원으로 나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어느 정도 찾았다. 어느 정도란 말은 여전히 명확하지는 않으나 불안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혼자는 편하다. 하지만 같이 있어도 편할 수 있다. 그런 이들에게 힘들면 꺼내놓으면 된다. 결코 위험하지 않다. 삶의 무게가 조금은 무거워도 불안하지 않은 것, 내가 길잡이 여행에서 얻은 에너지이다. 덜어내고 다시 채워 넣으며 나는 앞으로 뚜벅뚜벅 잘 걸어갈 것이다.

<곱씹기>

다시 9일이 지났다. 2월에서 3월로 달력이 넘겨졌고 나는 정말 겨울잠을 달게 자고 일어난 것만 같다. 지금 나의 계절은 늦봄에서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달리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내 삶의 속도가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이제는 그런 확신이 강하게 든다.

다시 되찾지 않고 남겨둔, 두꺼운 가방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을 Peace of My Life is 펭수와도 안녕한다.

이런 경험을 배울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그 인연들에 감사하다. 앞으로도 연결되어 있을 우리 모두의 길잡이별들 응원한다. 진심으로.

--

--

길잡이별을 찾는 여행
WayfinderStar

길잡이별을 찾는 여행은 세계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청년들을 위한 진로 탐색 프로그램입니다. 난쟁이와 요정들이 살고있는 스웨덴 숲속에서, 자연과 사람이 어울려사는 덴마크의 마을에서, 사람이 가장 먼저 존중받는 평화로운 사회 북유럽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