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노동’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유

이영빈
4 min readDec 23, 2013

나는 나 스스로를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이 모든 사안에 대해 진보적이고, 모든 사안에 대해서 보수적인 사람은 없다고는 하지만. (참조 : EBS 다큐멘터리 <킹메이커>) 대한민국에서는 어디서 좌빨 종북 소리나 듣지 않으면 다행인 정치, 사회적 의견을 갖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가령 나는 철도민영화에 반대하며, 프랑스에 가서 공공부문을 개방하겠다는 연설을 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을 반대한다. 여러 노동조합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실행하는 파업은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웃기는 것은 그러는 와중에도 파업 시위에 나부끼는 깃발이, 그들이 이마에 질끈 동여맨 빨간색의 띠가, 시위에서 불려지는 민중가요가, 투쟁하여 자본가를 박살내자는 그들의 언어가 불편했다.

화이트칼라 사무직이라는 내 명함은 노동 조합의 소속이 아닌 듯 했고, 노동자라는 이름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것이 많은 젊은이들을 노동조합과 멀어지게 하는 이유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이율배반적인 느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인상을 떨쳐버리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전 회사 노동조합에서 진행한 조합원 교육 시간에 성공회대 노동대학의 하종강 교수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그동안 궁금해왔던 질문에 답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식해서 그러는거였다.

좀 풀어쓰자면, 노동이 무엇인지, 노동자가 누구인지, 노동권이란 무엇인지 ‘배워본적이 없다’라는 것이다.

‘노동3권 보장되면 툭 하면 파업할 것’이라는 발언으로 갑자기 전국구 스타가 되어버리신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님도 따지고 보면 딱하게 여겨야 한다. 노동권이 뭔지 배운적이 없으니 그런 무식한 소리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하종강 교수님 강연에서는 한국노동교육원이 지난 2003년 펴낸 <선진5개국 학교노동교육 실태>에 담겨있는 몇가지 내용이 소개되었고 그 내용은 나에게 있어서는 거의 충격에 가까운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1946년 헌법 전문’, ‘1948년 세계 인권 선언’, ‘노동법전 2002년판’을 가르친다.

독일에서는 초등학생들에게 단체교섭을 실습시킨다. 단순히 협상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항의 문건 작성법, 언론과 인터뷰하는 요령, 연설문을 작성하는 방법까지 아우르는 전반적인 교육이 진행된다.

학생들은 노측에 설 것인지 사측에 설 것인지를 지원하게 되는데, 독일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많은 숫자가 노측을 지원한다고 한다. 누구나 노동자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 사회 교과서에서는 노동권이나 노동조합, 노동자에 대해서 몇줄로 설명하는 것이 전부인데다가 아마 이런 부분을 심도있게 가르치려고 한다면 전교조 빨갱이로 몰려서 해고 당하지는 않을까 고민해야하는 정도다.

결국 적절한 교육이 없는 상태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언론의 말만 듣다보니 귀족노조라는 프레임과, 그들이 야기하는 시민의 불편, 이기주의 등 부정적인 주장만 남아 속히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에도 노동자는 천한 것, 노동조합은 없는 것들의 이기적인 모임, 나보다 돈 많이 받는 노동조합은 감사함도 모르는 귀족노조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중학교 교과서의 삽화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http://picketline.egloos.com/487203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202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