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iled IT #5]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개발하는 기상청 연구원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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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min readJul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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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iled IT(a.k.a 대신 해주는 커피챗)는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IT인들을 만나 커피챗을 하며 인터뷰를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휴대전화로 지진 경보 알림을 받아 본 적이 있을 텐데요. 지진 발생부터 알림까지의 과정을 자동화한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은 기상청의 한 공무원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고 해요. 이번 Nailed IT에서는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으로 국민의 생명을 구하고 계신 조은영님을 모셨습니다.

기상청 이야기

Q. 안녕하세요. 은영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이 인터뷰를 보실 분들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조은영입니다. 기상청 지진화산국의 지진 화산 정보기술팀에서 연구직 공무원으로 10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진과 관련한 이론을 시스템화해서 국민에게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IT 직군과 함께 일할 때가 많아요.

Q. 기상청 직원을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에요. 어떤 계기로 기상청에서 근무하게 되셨나요?

지진이라는 세부 전공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곳이 기상청이었어요. 지진이라는 게 자연재해의 분야이고,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학문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정부에서 담당하는 일인 게 맞죠. 공무원이 화려하거나 복지가 뛰어난 직군은 아니다 보니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선택했겠지만요.

Q. 지진이 발생하면 무조건 출근을 해야 하나요?

3.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1시간 내로 응소해야 해요. 3.5인 지진으로 피해가 유발되지는 않지만, 그 뒤에 여진이 굉장히 많이 발생해요. 3.5 이상 규모의 지진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행정구역 내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을 느끼게 되거든요.

조기 경보 시스템을 처음 만들 때에는 작은 지진까지도 발생 즉시 응소했어요. 보라매 공원 안에 기상청이 위치해 있는데, 지진을 아직 안 겪어본 사람들은 기상청에서 좀 멀리 살아요. 그런데 지진을 몇 번 겪으면 가까이 사는 게 제일 편하다는 걸 깨달아요.

지진화산국에선 북한 핵실험 감시도 하고 있습니다. 아주 멀리에서 발생하는 신호는 지진계로 탐지하는 게 가장 정확하고 효율적이거든요. 지진처럼 똑같이 핵실험도 언제 어느 정도의 에너지로 어느 위치에서 발생했는지 정확하게 분석을 할 수가 있어요. 지진을 연구하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죠.

Q. 외교 안보 쪽에서도 또 협력을 많이 하시겠어요.

기상청에서 최초 정보를 제일 빨리 내보내야 해요. 그래야 국정원이나 외교, 안보 쪽에서도 바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지금(2023년 5월 기준)은 러시아에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어서 북한 핵실험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니 먼 곳에 이동을 자제해야 하는 기간이에요. 작년엔 1년 내내 거의 비상이었고요.

반대로 예보 같은 경우는 예보를 통해서 언제부터가 강수가 많고, 태풍이 와서 비상이라는 게 예측이 가능한 곳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예측이 전혀 불가해서 약간의 장단점이 있어요.

Q. 기상청 직원은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는지 궁금해요. 출근부터 퇴근까지 하루를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기본적으로 사무실 출근을 해야 해요. 육아 등의 사유가 있으면 재택근무를 신청할 수 있어요. 근무 시간은 일주일에 40시간을 맞춰서 유연하게 쓸 수 있어요. 근무 시간은 자유롭지만, 업무의 진행을 위해 결재권자가 필요할 때는 주 업무 시간에 근무하는 편이에요.

복장에 제약이 크지 않아, 청바지에 운동화를 착용하고 다닙니다. 공식적으로 입어야 하는 직장은 아니지만 후드티와 운동복은 안 되겠죠. 재해 대책을 세우는 업무 특성상 비상근무 시에는 방제복을 입습니다. 작업복이 있다 보니 오히려 옷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아도 돼요.

기상청의 조직 분위기는 보통 딱딱하겠다고 생각을 하시지만, 학위를 하고 연구하다가 오신 분들이 정말 많다 보니 오히려 더 자유로워요. 행정적인 조직의 성격보다는 석사 이상의 학위를 하고 온 기술직군들이 더 많아서 틀에 박힌 분위기는 아니기는 합니다. 지진뿐만 아니라 예보, 수치예보 이런 쪽은 대부분 학위를 하고 들어오셔서 직접 코딩하시거든요. 그런 분들 특성상 좀 자유롭게 입고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Q. 기상청의 지진화산국을 선택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기상청은 약 2천 명 규모의 큰 조직이지만, 대부분은 예보나 기상과 관련한 일을 해요. 기상청 내에서도 지진화산국은 약 40~50명 규모로 아주 작은 조직이죠. 저는 지진을 전공하고 지진 특채로 채용되었어요. 지진은 땅속을 관측하는 반면, 예보는 땅 위의 대기권을 관측해요. 관측 대상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지진 전공하신 분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지진화산국밖에 없는 거죠.

Q. 지진 화산 정보기술팀에서 은영님께서는 어떠한 업무를 담당하시나요?

2013년에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을 만들었고, 지금은 경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시스템의 로직을 짜는 일부터 국민에게 서비스화하는 말단까지의 업무를 모두 담당하고 있어요.

Q. 뉴스에서 지진화산국에서의 업무가 쉽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올해로 지진화산국에서 근무하신 지 10년이 되셨는데, 10년 가까이 업무를 지속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저는 이론을 응용해서 기상청에서 어떻게 하면 국민의 생활을 개선하거나 국민에게 더 좋은 정보를 전달할지 고민하는 일을 해요. 막연하게 이론을 공부하던 학생 때와 다르게 이론을 실제로 활용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하고 포항과 경주에서 큰 규모의 지진이 났어요. 보건복지부가 코로나19 대응을 한 것처럼 기상청의 지진화산국에서도 전시 상황처럼 대응했어요. 체력과 정신은 힘이 들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국민에게 해주어야 하는 일이 확연하게 보였고, 일에 매진할 수 있는 원동력도 충분했기 때문이죠.

지진화산국이 녹록지 않은 곳이 틀림없거든요. 그런데도 궁금한 것을 알기 위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유용하게 쓰이기 위해서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원동력이 되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지금도 강원도 해역에서 며칠째 지진이 20회 이상 발생하고 있어요. 이런 비상 상황이면 근무지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해요. 휴일이나 일하지 않을 때도 개인적인 생활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죠. 국가의 공무원이기도 하고, 지진이 국민의 생명이 달린 자연재해 분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녹록지 않은 업무이지만 책임감과 보람은 있어요.

Q. 10년차이시면 실무보다는 관리하는 높은 직책에 계실 것 같아요.

처음에는 실무자에 가까운 6급 상당의 연구사 직군으로 입사했어요. 지진 경보 업무를 하면서 중간에 승진도 하게 됐어요. 공무원 모두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2013년에 조기 경보 업무를 맡을 때 실무자는 저 혼자였고 그 위에 5급 공무원 한 분이 계셨어요. 그분께 보고드리는 입장이다 보니까 혼자서 거의 모든 일을 전담하다시피 했었어요.

현재 지진 화산국 전체 인원은 40~50명인데, 포항 경주 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지금의 절반인 20명 정도로 더욱 작은 조직이었어요. 그중에서도 지진 파형을 눈으로 직접 분석하면서 스케줄 근무를 하시는 분들이 12명 정도 계시거든요. 그분을 제외한 10명 내외가 한 명씩 맡은 일을 하는 구조에요.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 이야기

Q. 지진을 예측할 수는 없나요?

현대 과학으로 지진을 예측할 수는 없어요. 지금도 강원도 해역에서 며칠째 지진이 20회 이상 발생하고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이만큼 지진이 일어났으면 앞으로 언제 어느 규모의 지진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지진이 발생한 이후에 가장 빠르게 국민에게 알려서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전통적으로 지진이 발생하는 곳은 일본과 미국의 샌 안드레아스 단층인데요. 그러다 보니 미국과 일본은 일찍부터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요. 2013년부터 우리나라 기상청에서도 지진 조기 경보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어요. 언제 어느 곳에서 어느 정도의 에너지로 지진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지진 피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어요.

Q.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에 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은 지진이 발생한 이후에 지진에 대한 정보를 국민에게 가장 빠르게 알려서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길게 마련해주는 서비스입니다.

‘가장 빠르게 지진을 알린다’는 말은 2초, 5초처럼 초 단위의 신속성을 의미해요. 그 안에 정보를 전파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사람들은 책상 밑에 들어가서 머리만이라도 보호할 수 있어요. 지진 정보가 없었다면 피해를 보았을 수도 있을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거죠.

초기에는 지진 발생부터 경보까지 약 50초가 소요됐지만 2022년에 이를 5초까지 단축했어요.

Q. 지진 경보 시간을 10분의 1로 단축하셨군요.

네, 지진 발생부터 알림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5초까지 줄이도록 목표치를 잡고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스템 로직을 변경하고,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시스템 개발을 직접 하는 개발자분들은 지진 이론을 모르시기 때문에 구현할 로직을 설명하고 계속해서 최적화 방법을 협의합니다. 저희 측에서 개발된 내용을 검증한 이후에도 실제로 사용하려면 시험 운영을 거치고 현업화 위원회에 올려야 합니다. 이처럼 서비스 개발부터 최종적으로 운영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Q. 지진이 발생하고 긴급 재난 문자가 오기까지의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우선 한반도의 어디에서 언제 지진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전국에 300개 이상의 관측소가 조밀하게 설치되어 있어요. 사실 지진이라는 게 관측소 바로 밑에서 발생하지는 않아요. 근처에서 발생한 지진의 파형이 관측소까지 도달하는 데까지만 해도 기본 3초가 걸립니다. 이렇게 수집한 관측 자료가 기상청의 서버에 전송되면 기상청에서는 지진의 위치, 발생 시간, 규모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이동통신사의 기지국에 발송합니다. 기지국에서 긴급 재난 문자를 전송하면 휴대전화 말단까지 전달이 되는 거죠.

모든 과정은 자동화되어 있고, 이 과정에 드는 시간이 5초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Q. 5초라는 빠른 시간 동안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나요?

지진 데이터는 어찌 보면 대용량이고, 달리 보면 요즘의 컴퓨터 성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이기도 해요. 기본적으로 지진 데이터는 관측소에서 발생해요. 관측소 한 곳에 2개의 센서가 설치되는데, 센서 하나당 3개 축의 성분이 있기 때문에 한 관측소에서 총 6개의 자료가 나와요. 하나의 자료는 1초당 100개의 샘플이 나와요. 그래서 일단 1초가 지나면 한 관측소당 600개의 데이터가 샘플링되어 들어옵니다.

기상청에서 관리하는 관측소는 약 340개 정도에요. 여기에 유관 기관의 자료까지 합치면 200여 개가 더 있죠. 이러한 자료가 한꺼번에 발생한다면 처리량이 많기는 해요.

서버에 많이 투자하고 있지만, 현재의 컴퓨터 성능으로 아직 무리는 없는 상황입니다. 자료가 발생하면 실시간으로 지진을 분석해야 하므로 시간이 많이 소모되거나 복잡한 연산은 대부분 피하고 있어요. 계산하는 자료량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계산 대상 데이터가 (처리 시간이 빠른) 시계열 자료이다 보니 병렬처리까지 필요한 상황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지진을 정밀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시계열 데이터와 주파수 데이터를 오가며 계산해야 해요. 대국민 서비스 현업에 쓰는 자원을 제외하고 정밀 분석이 필요할 때는 연구용으로 빅데이터 처리 도구를 사용하고 있어요.

Q. 지진 데이터는 어떤 방법으로 처리되나요?

음성 자료 처리와 비슷해요. 음성 자료 처리도 전통적인 방법의 경우 주파수 대역에서 소스의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하잖아요.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의 경우 지진이 발생한 시간, 위치, 규모를 계산해서 국민에게 전달해야 해요.

먼저 지진 발생 시간과 발 위치를 계산해요. 지진 발생 시간을 알기 위해 시계열 데이터 위에서 윈도우가 움직이면서 신호를 탐지하는데, 관측자료에서 기준치(threshold) 값을 넘으면 지진 신호로 탐지합니다. 탐지한 신호들의 초동 시각을 분석하여 거리, 속력, 시간의 관계를 이용하여 지진 발생 시각을 얻을 수 있어요.

그와 동시에 지진 발생 위치를 결정해요. 거리, 속력, 시간의 관계를 이용해 지진이 어디에서 발생했다면 지진이 이 시간에 어느 위치에 도달했는지 계산해요. 그 과정에서 옥트리(Octree, 팔진트리), 그리드 서치(Grid Search), 확률 쪽으로는 PDF(확률밀도함수) 분석이나 최대우도법(MLE)을 이용해요.

마지막으로 규모를 계산해요. 거리가 가까우면 최대 진폭이 훨씬 크고, 거리가 멀면 더 적어지죠. 기하학적으로 거리가 멀어질수록 에너지가 감쇄해요. 지각에선 에너지가 지수적으로(exponential) 감쇄되는데, 연구자들이 이를 통계적으로 정의하고 수식을 만들어요. 이 수식을 이용해 이 거리에서 이 정도 에너지면 규모가 몇이라는 걸 추정해서 규모, 시간, 위치를 계산하는 거예요. 동일한 연구에서 어느 위치에서 어느 정도의 흔들림이 예상이 된다는 정보도 지방자치단체에 함께 제공해요.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각 위치에 진도 3 정도의 에너지가 올 것 같다는 정보를 주민들에게 알려주는 식이죠.

공무원 이야기

Q.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 업무를 거의 혼자서 담당하셨다고요.

네, 초기에는 실무적으로 제 업무에 한 명밖에 배정이 안 되어 있었어요. 아무래도 포항 경주 지진 이전에는 조기 경보 시스템이 그렇게 주목받거나 중요시되던 상황은 아니었으니까요. 지금도 현업 상황실에서는 수동 분석을 하고 계시는 전문 분석가들이 직접 분석을 하고 있어요. 수동 분석 정보로도 충분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수동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을 자동으로 분석해서 바로 경보를 보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이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포항 경주 지진이 발생하면서 제가 하던 일이 중요해지고 해야 할 일이 늘어났어요. 정부 차원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었어? 그럼 소요 시간을 더 파격적으로 줄여봐’라고 요청한 거죠. 매일 새벽까지 일을 하던 시기도 있었어요.

원래 50초이던 예측 시간을 갑자기 15초로 줄여야 했거든요. 50초였던 예측 시간을 15초로, 그다음에 10초로, 그다음에 7초로, 그다음 5초, 이런 과정을 거쳐 시스템을 개선했어요. 그동안 수많은 용역 개발자와 동료처럼 함께 일을 했고, 같이 많이 고생했죠. 지진 조기 경보 시간을 5초까지 단축했더니 시스템이 안정적이고, 중요한 업무라는 인정을 받아 올해(2023년)부터는 3명으로 담당 인원이 늘었습니다.

Q. 은영님께서 국민의 안전에 큰 일을 해주고 계시네요. 정말 대단한 일이라서 들을 때마다 자꾸 소름이 돋아요.

제 업무 이야기를 들으셨으니 이제 경보 알림 소리가 귀에 더 잘 들릴 거에요. 지금도 지진이 나면 핸드폰으로 긴급 재난 문자를 보내는데, 긴급 재난 문자는 굉장히 큰 데시벨인 60 데시벨 정도의 소리까지 동반해요. 새벽이나 주말에도 소리와 함께 긴급 재난 문자가 울릴 때는 민원을 받기도 해요. ‘실질적으로 나한테 흔들림이 오지 않았는데 긴급 재난 문자를 보내서 우리 애가 깼다’는 식으로요.

기상청에서는 안전 차원에서 광역적으로 규모 4.0 이상의 지진일 때에만 긴급 재난 문자를 보내고 있어요. 작은 규모의 지진일 때는 보내지 않아요. 본인에게 피해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규모 4.0 이상이 되면 모두가 다 알거나 대피를 해야 된다는 의미에요. 문자를 받으면 5초 정도 전에 어딘가에서는 지진이 났다고 생각을 하시면 돼요.

지진이라는 사실을 알고 땅의 흔들림을 겪으면 ‘아, 지진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지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땅의 흔들림을 겪으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잖아요.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소리와 함께 보내는 거에요. 소리까지 동반한 문자가 왔을 때 이 문자를 보내기 위해서 (지진화산국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했고, 그 문자가 우리에게 어떤 이로움을 줄 수 있을지 한번 더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Q. 국민의 일원으로서 공무원분들께 참 감사해요. 포항 경주 지진 이야기가 나왔는데, 당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현장에 가보고 제가 몰랐던 것을 느낀 일이 기억에 남아요. 저는 과거에 학위를 하면서도 지진을 공부했고, 포항 경주 지진 당시에 지진 분야에 몸을 담은 지 이미 5~6년이 지난 상태였어요. 과거 학자의 입장일 때는 현지 상황을 자세히 알 필요는 없었어요. 데이터 분석, 처리, 시스템화 업무를 했기 때문이죠.

포항 경주 지진 때는 아침 9시에 출근하면 다음날 아침 9시까지 꼬박 날을 새면서 사무실에서 비상 근무를 했어요. 그날도 밤새 일을 하고 있었는데, 현장에 투입할 인원이 없어서 갑자기 포항으로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속옷 같은 개인 물품도 하나도 못 챙긴 채 바로 포항에 갔어요. 사실 그때는 힘이 들고 불만이 있었어요.

현장에 도착했더니 그곳의 사람들의 일상은 이미 다 무너져 있더라고요. 저도 며칠 비상근무를 했기 때문에 일상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삶이 송두리째 바뀐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재해를 입은 사람들은 일상과 삶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어요. 포항 시청에서 피해 복구 접수를 하느라 사람들은 쭉 줄을 서서 있었고, 어떤 아파트는 전단 파쇄가 나서 주민들이 천막으로 대피했어요. 그걸 처음 눈으로 보고서 굉장히 많은 걸 느꼈어요.

재해를 겪은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가벼이 생각하지 말고 감히 불만을 가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학자로서 지진 데이터를 처리한다는 것은, 사실 그 지역에 계속해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의미거든요. 200개가 뭐에요, 몇 천개의 데이터를 처리하기도 했죠. 그때도 이런 생각을 못 해봤어요. 지진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남고, 흔들림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남는다는 사실을요. 실제 현장에 가봤을 때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어요.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 비하인드 스토리

Q. 처음으로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을 만들면서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요?

조기 경보 시스템을 담당하던 초기에 ‘너 이거 하다가 공무원 옷을 벗을 수도 있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반대도 굉장히 많았고요. 지금도 사람들이 지금도 수동으로, 눈으로 파형을 보고 분석을 하는 이유가 있거든요. 사람이 하던 일을 자동화 하려다 보면 오경보의 가능성이 훨씬 많아질 수 있어요.

그렇다면 자동화를 했을 때의 차별점이 있어야 하잖아요. 자동으로 분석할 때는 사람이 분석을 할 때와 어느 정도의 차별점이 있어야 했어요.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에는 예산이 많이 투입이 됐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많은 예산을 투자하려면 국민에게 실효성이 있어야 해요.

지진이 발생하면 먼저 매우 작은 시그널인 P파가 전달돼요. 그 다음에 큰 흔들림을 주는 S파가 뒤따라 전달돼죠. 사람이 눈으로 분석을 할 때는 우리에게 진동이 오는 S파까지 다 분석을 하게 돼요. 조기 경보는 아주 작은 에너지인 P파를 분석해서 지진을 알립니다.

조기 경보는 워닝(Warning)을 먼저 받고 그 다음에 흔들림이 올 수 있도록 하려고 만드는 거예요. 국민에게 흔들림도 주지 못하는 P파를 분석해야 하죠. 궁극적으로 이 시스템은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거예요.

그 뒤로 포항 경주 지진을 겪으면서 지진 경보 시스템이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됐어요. 정부에서 지진 경보 시스템을 지지한 이유는 ‘조금 부정확한 정보일지라도 국민들이 정보를 듣고 대피할 수 있도록 경고를 줘야겠다. 그래야 생명을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죠. 정확도보다는 신속성이 조금 더 앞서도 되겠다는 판단 하에 투자가 많이 이루어졌어요.

기상청이 구라청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지진 경보의 경우 굉장히 작은 관측 자료로 빠른 시간 안에 예측을 하다보니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이론적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파형을 가지고 분석을 하고 있거든요. 최대한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약간의 거짓말이 섞이더라도 국민에게 꼭 필요한 정보라는 판단 하에 알림을 드리고 있으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Q. 사람이 하던 일을 자동화하는 데에서 오는 부담도 있을 것 같아요.ㅤㅤ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이 자동화가 되어 있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순간에 국민의 핸드폰으로 알림이 전송된다는 의미에요. 말이 자동화지, 조기 경보 담당자는 전시 상황처럼 일을 해야 하죠. 자칫하면 잘못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은 거예요. 내가 관장하지 않은 영역에서, 내가 모르는 상황에 큰 영향력이 미쳐질 수가 있다 보니까 늘 불안감을 느끼면서 일을 하게 되거든요.

경보 소요 시간 목표치를 계속해서 줄여간다는 건, 기존에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시스템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미에요. 무언가를 변경함으로써 고려하지 못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늘 불안감을 느껴요. 그래서 제대로 정보가 전송되었는지, 분석 결과가 맞는지 항상 확인해요. 개인 시간과 업무 시간의 구분 없이 하나라도 정보가 들어오면 바로 투입되어 늘 시스템을 점검하죠.

지신화산국 내에서도 조기 경보는 여러 업무 중 하나이고, 다른 성격의 일들도 많아요. 기상청의 업무는 국민들 생활에 영향을 많이 미치다 보니까 대부분 사람이 눈으로 한번 확인하고 나서 외부로 정보가 나가는 편이에요.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자동화해야만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는 제 업무와는 아주 다르죠.

Q. 지진이라는 특수 분야에서 커리어 초반에 정말 큰 성과를 이루셨어요.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어린 나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고, 빠르게 승진했다면서 비결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일하는 지진 분야는 일자리가 많지 않거든요. 아직 정식 공무원이 되지 못한 연구원 친구들도 어떻게 하면 지진 분야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지 묻기도 해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가 해준 말은 항상 같아요. ‘계산적이지 않고 내게 주어진 일을 충분히 잘 소화하려고 늘 노력을 했다’고요. 조기 경보 시스템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전에 다른 업무로 전향할 기회도 많이 있었요. 그런데 내 업무는 이거니까 ‘일단 못하기는 싫다. 묵묵히 하자.’ 라고 생각해서 그때는 매일 새벽 5, 6시까지 일할 때도 많았어요. 묵묵히 일했더니 어느 순간에는 사람들이 저를 알아봐주고 영광스러운 시기도 왔던 것 같아요.

Q.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 개발로 받은 스포트라이트의 이면에 힘든 점은 없었나요?

어느 순간에는 저 스스로가 계속해서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매년 너무 짧은 일정 안에 달성해야 하는 일들이 담당하다 보니까요. 주어진 일정 안의 목표치에 도달하기 위해서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을 어떻게든 투입해서 시스템화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반복했어요. 그러는 동안 신기술도 많이 나왔는데 새로운 지식을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도 없었죠.

업무에서 더 높은 목표치가 주어진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목표치만 바라보고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의미거든요. 새로운 것으로 저 스스로를 채울 여유가 전혀 없어서, 어느 정도 시스템이 안정화된 이후에는 계속해서 업무 변경 요청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진 영역에서는 제가 이 자리에서 계속해서 목표치를 달성하며 일을 하는 게 안정적으로 성과를 내주는 일이다 보니까 업무 이동을 시켜주지 않았어요. 제 입장에선 정말로 바닥이 나고 있다는 걸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소비만 되고 있고, 채워질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Q. 일을 하며 힘이 들 때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나요?

이건 제 성격일 수도 있는데, ‘주어진 일을 잘하자’는 철학을 갖고 있어요. 성격상 계산적이지도 못하고,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일을 못하기 싫은 마음이 더욱 커서 묵묵히 일했던 것 같아요. 초기에 왜 안 힘들었겠어요. 그런데도 이 업무를 대신해줄 사람이 없고, 내게 주어진 일이니까 해내자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포항 경주 지진 이후부터는 지진 조기 경보 업무가 소외받는 업무는 아니었어요. 정부에서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으로 기상청의 성과를 많이 인정해줬거든요. 힘들고 시간을 많이 쏟으면서 일하긴 했지만, 정부에서 기상청을 칭찬한 건 조기 경보가 거의 유일한 사례에요. 그러다보니 조기 경보 업무가 중심적인 업무가 되면서 저도 성과 담당을 많이 하게 됐어요. 처음 이 업무를 맡았을 때 제가 더 계산적이었고, ‘안하고 말지’ 라는 생각을 했다면 후에 이런 영광도 없었겠죠.

지진을 학문으로 여기면서 공부와 데이터 처리만 하다가 커리어가 끝나는 경우도 많아요. 감사하게도 저는 배운 내용을 가지고 공공의 선을 구축하는 일을 해볼 수 있었어요. 그 결과로 기존의 지진 재해 업무가 바뀌는 모습을 일선에서 바라보고 개선할 수 있어서 여한이 없고, 영광스럽죠.

인공지능과 지진 이야기

Q. 은영님께서 AI 대학원을 업무와 병행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AI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지진 자체가 AI와 접목되기에 굉장히 좋은 분야예요. AI는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거나 앞으로 일어날 현상을 분류하는데, 지구 물리 자체가 과거에 일어났던 현상의 특성이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라는 가정이 들어맞는 학문이거든요. 지진 분야는 데이터가 갑자기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 데이터를 그대로 쓰기가 정말 좋습니다. 지각이, 지진이 발생하는 이 환경이 어느 순간 갑자기 변할 리가 없거든요.

반대로 기후 변화 같은 경우는 최근 데이터에서의 아노말리(변칙, Anomaly)가 굉장히 많단 말이에요. 그래서 과거의 데이터를 현재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죠.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배운 걸 가지고 국민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왔지만, 이제는 바닥이 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배움을 더 채워야 할텐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학문적인 공부보다는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학문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선택했습니다.

Q. 요즘 인공지능을 업계에 도입하는 사례가 많은데요. 지진 조기 경보에도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있나요?

시범 서비스로 운영 중인 사례는 있지만, 아직 인공지능을 활용한 지진 경보 시스템이 현업화된 사례는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100%의 정확도를 담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지진 경보의 경우 정보가 국민에게 갖는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단 하나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 접목에 첫걸음은 떼었지만, 국민들의 이해도나 활용도 측면에서 아직은 고민이 더 필요한 단계입니다. 현재는 기본적인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지진 조기 경보 시간을 3~5초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시범 서비스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스템의 정확도가 100%가 아닐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대국민 서비스로 사용할지, 아니면 각 목적 기관에서만 활용할지를 평가하기 위해 아직은 시범 단계에서만 사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Q.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에서는 인공지능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나요?

관측소에서 신호를 피킹할 때, 진짜 지진에 의한 신호인지 잡음에 의한 신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어요. 자동차가 방지턱을 넘을 때도 땅속에 흔들림이 전해지고, 지진계에 관측이 돼요. 왜냐하면 지진계는 작은 지진까지도 탐지하도록 센서가 설계되어있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픽이 크게 들어오는 경우도 많아요. 만약 관측소 바로 옆에 공사 현장이 있다면 공사 현장의 흔들림이 당연히 관측소에 전달되겠죠. 공사하는 곳을 피해서 관측소를 놓을 수도 없어요. 지진이 어디에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곳에 조밀하게 관측소를 놓다 보니 지진계는 상시 잡음에 굉장히 취약합니다. 실제로 지진에 의한 신호인지, 그냥 잡음에 의한 신호인지 구분하는 일이 정말 어려워요.

이런 신호 분류 문제를 인공지능이 해결하는 것이 굉장히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시스템에 도입했어요. 인공지능에서 가장 전통적인 방법이 분류잖아요. 관측소 옆에서 공사를 해서 픽이 엄청나게 크게 들어왔다고 가정할게요. 이때 바로 옆의 다른 관측소에서는 그 픽이 들어오는지를 확인해서 잡음을 걸러내는 거예요. 확인 대상 관측소 수를 조금만 늘려도 지진에 의한 픽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낼 수 있어요.

S파가 3km/s의 (느린) 속도로 이동하다 보니까, 많은 관측소에서 탐지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해요. 하지만 조기 경보 시스템은 빠르게 정보를 전달해야 하므로 발생 위치 바로 옆에 있는 관측소 2~3개에만 신호가 탐지된 상황에서, 다른 관측소에는 물리적으로 파형이 채 들어오기도 전에 적은 자료로 정보를 전달해야 해요. 지진 조기 경보 시간을 줄였다는 말은 곧 관측소 수를 적게 활용했다는 의미에요.

땅속에서 발생한 지진은 100km 먼 곳까지 파가 이동하지만, 지표에서 발생한 흔들림은 5, 10km 이상까지 전파되지 못하고 끝나거든요. 이런 특징 때문에 잡음으로 분류되어 걸러지게 되는데, 관측소(자료)를 적게 쓸수록 방지턱과 같은 잡음과 지진 신호의 구분이 어려워져요. 이 문제를 인공지능이 해소해 주리라 생각했어요.

모델 학습은 이렇게 진행돼요. 인공지능 모델에 과거 지진에 의해 학습된 파형을 입력해요. 공사 현장, 방지턱, 초등학교 체육 시간에 발생한 잡음 등을 알려주는 거죠. 지진일 때는 1이고 지진이 아닐 때는 0이라는 구분자를 주는 식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커리어 이야기

Q. 지진이라는 특수한 영역에서 근무하고 계신데, 지진 분야를 선택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학문적으로 좋아해서 지진을 선택했습니다. 지진을 공부하려면 땅 속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고등학교부터 물리를 좋아했고, 특히 지구 물리를 좋아했어요. 대학교 전공으로 지구 물리를 선택하면서 지진으로 세부 전공을 선택했죠.

Q. 함께 지구 물리를 공부한 대학 동기 분들도 모두 기상청에서 근무하고 계신가요?

지진학은 사실 그렇게 많은 전공자가 배출되는 분야는 아니에요. 학부 때는 지진을 전공하지는 못해서 학위까지 딴 사람들이 많은 편은 아니에요. 전국에서도 6–7개의 학교에만 지구물리학과가 있고, 그중에서도 지진이라는 세부 전공을 하기 위해서는 석사 학위까지 따야 해요. 기상청에서 대부분의 지진 전공자를 수용하고 있고, 그 외에 원자력 분야에서 한두 명, 전력공사 등에서 한두 명, 이렇게 소수의 분야 다른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Q. 지진 분야의 매력이 있다면 뭘까요? 지질학 연구원인 지인이 있는데, 현장에서 땅을 파는 일을 즐겨서 신기했어요.

제가 전공한 지구 물리는 지질학과 안에서도 유일하게 땅을 파지 않는 곳이에요. 자료만 있으면 분석해서 처리하면 되거든요. 나중에 논문을 쓰거나 해석할 때 필요하지만요. 이 물성이 왜 이런 성격을 나타내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암석의 종류를 알아야 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지질학과에선 지구 물리를 제외한 나머지 지질학, 퇴적암, 화성암을 연구하는 분들은 다들 나가서 땅을 파야 해요. 전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대부분 학부 때는 땅을 파면서 보내는데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대학교 3학년 때 암석 공학이나 지반 공학을 공부하다 보니까 물리 쪽으로 하면 (땅을 파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구 물리 실험 방을 알아봤고, 지진파라는 신호를 연구하는 분야를 알게 됐죠.

특정한 영역의 공부를 하다 보면 그들만의 세계가 있잖아요. 약간 너드 같은 모습이요. 지질학의 내용 어느 순간 갑자기 변할 리는 없기에 공부하면 할수록 내 지식이 많아져요. 반대로 공학 계열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지식의 쓸모가 줄어들잖아요. 지구 과학 분야는 오랜 시간 몸을 담고 있을수록 내 지식이 계속해서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Q. 저는 일을 한지 1년이 됐는데, 일을 대하는 은영님의 마음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다른 사기업에서는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곳에 줄을 타거나 눈치를 보는 게 좋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내 일이 좋은 성과를 인정받지 않아도 지진화산국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일단 못하지는 말자, 부족함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묵묵히 했는데 그게 늘 조금 좋은 결과로 돌아왔던 것 같아요. 사실 이것도 행운이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저는 노력한 만큼 와줘서 굉장히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Q.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은영님께선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뚜렷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은영님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사실 대단한 건 없어요. 저는 명분을 중요시하는 편인데,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걸 주안점으로 두고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주어진 시간과 제가 가장 생산적일 수 있는 기간은 한정적이잖아요. 그 시간 동안 조금이나마 내가 살아왔던 흔적, 내가 해낸 일들이 조금 더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공무원으로 흘러와서 힘들거나 불만이 생길 때 이런 생각으로 그만두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자기만족이 중요한 제게 ‘의미 있다’는 건 공공의 선을 위하는 걸 의미하기도 하고, 제 내부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걸 의미하기도 해요. 무언가를 선택할 때 돈보다는 같은 시간 동안 내가 이룰 수 있는 성장이나, 내가 생산할 수 있는 아웃풋이 가지는 의미를 더 신경 쓰는 편이에요.

대체로 시간을 의미 있게 좀 보내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아요. 모두가 계속 애쓰고 수고하잖아요. 애쓰고 수고하는 일이 시간 낭비가 되거나 의미가 없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Q. 은영님이 안 계셨다면 땅이 흔들릴 때마다 지진인지 무엇인지 모른 채 두려웠을 거예요. (웃음)

최대한 빠르게 지진에 대한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하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는 지진을 전공하는 다른 후배들이 앞으로 해나갈 일이에요. 이제 어느 정도 시스템이 안정화됐기 때문에 저는 다른 업무를 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Q. 앞으로 어떤 업무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앞으로는 지진이 발생한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 측면에서 더 많이 기여할 계획이에요. 내부 지하에 있는 단층이 향후에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연구하는 거죠. 지진 발생 원인이나 지진 발생 잠재성을 위한 연구 쪽으로 업무 방향을 변경할 예정이에요.

Q. 원하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고 계신 것을 축하드려요. 커리어 측면에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예전에 일할 때도 그랬지만, 전 목표치가 없어요.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못 하지만 말자.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라는 생각을 해요. 그냥 늘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Q. 지진 분야 진출을 희망하는 후배를 위한 조언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조언을 해줄 입장은 아니지만, 만약 저와 비슷한 일을 하고 싶다면 기본적으로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기본 소양이 필요해요. 지진 분야에서는 저보다 학문적으로 뛰어나신 분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지진 전공한 사람들 모두가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아요. 시스템을 기획하고 로직을 만들기 위해선 시스템 입장에서 자료 흐름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저는 항상 컴퓨터 입장에서 생각해요. 프로그래밍 언어와 컴퓨터 입장에서의 자료 흐름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응용을 할 수 있는 자질이 있으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C언어를 많이 사용해왔습니다. C언어는 명령형 언어이다보니 시스템을 구축하고 데이터 처리 흐름을 파악할 때 훨씬 편리했어요. 하지만 데이터 분석을 할 때 파이썬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파이썬을 할 줄 아는 것도 장점입니다.

기본적으로 그 분들도 도메인 지식은 가지고 있을 거예요. 지진일 수도 있고, 대기과학 쪽이라면 예보 쪽일 수도 있고요. 프로그래밍 언어의 기본 소양과 자료 흐롬 개념이 부족한 분들은 도메인을 시스템화할 때 대부분 용역 개발자에게 알아서 해달라고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지진 분야는 중간에 발생하는 리스크에 대한 정보가 아직은 없기 때문에 용역 개발자가 결정을 내리도록 하면 리스크가 있을 수도 있어요. 이런 부분까지 제가 결정을 해줘야 할 때가 많아서 도메인 지식을 실용적으로 현업화하고 싶다면 컴퓨터 입장에서의 자료 흐름 개념과 프로그래밍 언어의 기본 소양을 함께 갖추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어요.

이 인터뷰를 만든 사람들☕️:

인터뷰어: 송인아, 박은지
인터뷰이: 조은영
썸네일 제작: 김유민
글 & 발행: 송인아, 박은지
검수: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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