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상황에서 디자인 스튜디오의 메타버스 회식 (1)

lee hyori
뉴디자인 스튜디오
8 min readDec 19, 2021

2021년 6월, 뉴디자인 스튜디오(NewDesign Studio)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열렸다. 바로 메타버스에서의 회식.

오랜만에 학교에서 벗어나 가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코로나 사태가 아니라면 식당에서 만났을 테지만 그럴 수 없었다. 11명의 랩실 사람들을 위한 줌(Zoom) 회식이 제안되었다. 연구생 4명이 모여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이 커져갔다. 어느새 메타버스 플랫폼, 개더타운(Gather Town)에서 우리만을 위한 해변을 짓고 있었다.

이 대화록은 회식을 준비한 -우리는 Party committee(파티위원회)라고 불렸다- 4명의 연구생, 민주, 병국, 효리, 효빈이 그 해변에 다시 모여 회식을 준비했던 과정과 소회에 대해 이야기 나눈 것이다.

왜 게더타운이었나?

  • 효빈. 처음에 연세대 동아리 행사 유튜브를 함께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걸 본 순간 소위 말해 ‘핵쩐다’고 생각했다.
  • 효리. 회식 준비해야지, 하던 차에 우연히 뉴스에서 개더타운을 처음 알게 되었다. 보자마자 우리한테 딱이다 싶었다. 다행히 파티 위원회 친구들에게 알려주니 반응이 좋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그 전에 랩에서 줌을 통한 온라인 회식을 진행한 적이 있다. 줌과 개더타운을 모두 써보니, 이런 점은 개더타운이 더 낫더라 하는 점이 있다면?

  • 병국. 코로나 때문에 어디든 쉽게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직접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점이 가장 좋았다. 연세대 동아리 행사 사례는 학교를 충실히 옮겨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우리는 반대로 우리만의 가상해변, 우리만의 온라인 회식에 최적화된 공간을 꾸민 점이 뜻 깊었다.
  • 효리. ‘코로나로 인해 쉽게 놀러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우리가 직접 바다를 만들어서 놀기로 했다’라고 맨 처음부터 목표를 공유해서 참여자들에게 제시하는 것부터가 줌과 달랐다. 그렇게 해서 참여자들이 쉽게 빠져들 수 있던 것 같다. 줌에서는 겪지 못하는 경험이다.
  • 병국. 맞다, 해봤자 하와이언비치 가상배경 정도만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줌에서의 가상배경은 맨 처음 몇 초만 흥미롭고 끝이다. 그걸로 해변에서 이뤄지는 파티 기분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 효리. 가짜인 게 명백한데도 한편으로 진짜 물리적인 공간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한 번은, 내가 모두에게 공지할 일이 있어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종현의 아바타가 화분 주변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종현, 집중하고 좀 앉아요!’라고 했는데, 그 상황이 마치 아이들이 모인 교실 같아져서 모두 웃었다. 종현은 랩원 중 가장 말수가 적은 사람 중 한 명이라 회식에서 늘 조용히 앉아있는 편인데, 종현의 아바타를 통해 유머러스한 상호작용을 하게 되어 기분 좋았다. 줌에서는 겪을 수 없는 뜻밖의 재미였다.
  • 효빈. 여러가지 테마를 가진 공간을 만들어서 왔다갔다하며 그 방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줌과의 차이다. 줌으로 했다면 다같이 ‘건배’하는 사진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해변에서 만나 밤바다도 거닐고, 펍을 통째로 빌려 행사도 하고, 모닥불 앞에서 담소도 나누고, 낮바다에서는 다같이 게임도 하고 사진도 찍고… 다양한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개더타운에는 자체적인 게임도 있어서, 다같이 놀 수 있었기 때문에 줌과 전혀 달랐다. 줌이었다면 게임을 한다 해도 말로 하는 게임이 전부였을 것이다.
개더타운에 있는 자체적인 게임을 활용해 팀 대항전을 즐겼다.
  • 병국. 맞다. 공간을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개더타운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목적에 따라 공간을 분리해서 사람들이 이동할 때마다 더 몰입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 장치를 두자’는 효빈의 아이디어까지 더해져 소소하면서도 굉장히 풍요로운 맵이 될 수 있었다.
  • 효빈. 비록 작은 회식이었지만 이런 메타버스 이벤트를 기획한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었다. 참여자 입장에서도 개더타운이 워낙 떠오르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신기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기획자와 참여자 모두에게 윈윈인 온라인 회식이었다. 또한 우리같은 학생들에게 줌은 강의나 회의용으로 인식되어있는데 개더타운 으로 회식을 하니 분리된 것처럼 느껴진 점도 좋았다. 나의 총평은, 온라인 회식이었지만 오프라인만큼 재밌게 했다! 이다. 줌 회식이었다면 ‘괜찮았지만 오프라인이 더 재밌었을거야'라는 아쉬움이 남았을텐데 개더타운 회식은 정반대였다.

개더타운 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 효빈. 다같이 모여 회의했을 때, 큰 전지를 벽에 붙히고 포스트잇을 붙히고 옮겨가며 진지하게 회의하지 않았나. 그때 우리 스스로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웃음). 다들 디자이너가 되어서, 회식까지 이렇게 접근을 하는구나, 했다. 그 과정이 재밌고 뿌듯했다.
  • 효리. 맞다. 그런데 이게 정말 될까 안될까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 병국. 함께 장봤던 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획팀인 민주와 효리만 알니또*의 정체를 알고있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녀들이 시키는대로 열심히 장을 보기만 했다. 물음표 투성이였다.

*알니또: 알코올과 마니또의 합성어. 자체적으로 만든 세션이다. 비밀스럽게 응원하고 챙겨주는 마니또에 술을 결합하여, 상대방을 위한 술과 안주, 짧은 편지를 보내는 식이었다.

알니또 병국이 이승호 교수님께 보낸 재료로 직접 만드신 술상차림 인증샷 (photo by SPL)
  • 효빈. 맞다. 아스파라거스가 내 것인 줄 꿈에도 몰랐다. 누가 이 비싼 아스파라거스를 누구에게 보내나 했는데 교수님이 내게 보낸 거였다(웃음).
  • 효리. 나도 장 본 날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막상 해보니 너무 힘들었다. 마트, 편의점, 다이소를 다 들리고, 편지 인쇄를 따로 하고, 나중에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 민주 혼자 포장을 다 하고… 그때 정말 미안해지면서 현타가 세게 왔다. ‘이렇게까지 한 건 좀 오버였다’ 라는 생각을 내심 했다. 그런데 막상 회식이 시작되니 반전을 겪었다. 모두 많이 즐기고 좋아해줬다. 고생은 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온-오프라인이 뒤섞인 경험을 더 풍부하게 선사할 수 있게된 것 같다. 알니또가 반응이 그렇게 좋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 병국. 아이디어도 잘 발전되었다. 처음에는 마니또로 시작했는데, ‘회식인만큼 마니또에 ‘술’을 넣어보자’ 했다가 ‘술에는 안주도 있어야 하니까’ 해서, 결국 모두가 꽤 알찬 술상차림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그냥 마구잡이로 진행한 게 아니라, 모든 참여자들에게 사전에, 술을 마실 수 있는지 없는지, 특정 식품에 알러지가 있는지 없는지 조사하는 등,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 효빈. 그렇다, 일반적인 술집 회식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참여하기가 좀 힘든데, 우리 회식은 음주가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불편한 상황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 민주. 사람들 대부분 알니또를 맞추지 못한 점이 재밌었다. 준비한 입장에서는, 알니또 편지나 선물 목록에서 성격이 훤히 드러나는 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 효빈. 교수님은 교수님이었다. 배려 넘치는 선물과 건강 걱정을 하는 편지를 보자마자, 교수님인 줄 단박에 알았다.
  • 병국. 맵 같은 경우는 효빈이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 효빈. 처음에는 단순히 환한 낮의 해변 아이디어로 시작했는데, 술 마시는 회식이니만큼 밤바다 느낌을 내면 좋을 것 같았다. 마침 개더타운 템플릿 중에 밤바다가 존재했다. 우리 회식에 잘 어울렸다.
  • 병국. 효빈과 맵을 만들면서 기능을 점차 알게 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구현될 줄 몰랐던 기능들이 하나둘씩 가능해지고, 효빈은 심지어 개더타운의 한 격자 당 실제 몇 픽셀인지 측정해서 나에게 몇 픽셀로 작업을 해서 넘기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관심이 생긴 것을 스스로 배워가고 깨우치는 일련의 과정이 즐거웠다.
함께 행복했던 우리의 여름 밤바다

열심히 준비해서 회식을 마친 후에는 어떤 마음이었나?

  • 민주. 준비할 때는 신이 나서 이것도 하자 저것도 하자, 하며 설렜다가, 회식 직전에는 괜히 과하게 준비했나, 다들 귀찮아 하면 어떡하지 하는 의심과 불안, 그리고 회식을 진행하면서는 ‘이렇게 좋아할거면 준비할 때 다들 좋은 척 좀 해주지’ 싶었다. (일동: 맞다) 결과적으로 너무 뿌듯했다, 다들 행복해 해서.
  • 병국. 나같은 경우는 주변에서 핀잔만 들었다. 친구들에게 개더타운으로 이렇게 회식을 준비한다고 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한 지인은 ‘오타쿠냐, 그럴거면 그냥 메이플스토리 로그인해서 만나라’라고 하거나, ‘랩회식에 뭘 그리 힘을 쏟냐, 피곤하다, 그냥 마시고 헤어지는 거지, 과하게 열심히 산다’ 이런 말을 들어서 속상하고 심란했다. 그래서 홧김에 ‘너희들도 5년 안에 이러고 술 마실거다, 이게 미래다!’ 라고 퍼부었다. 아무튼 회식 전에는 속상했는데 결국 잘 되어서 속시원했다.
  • 효리. 나도 정말 후련하고 뿌듯했다. 준비할 때 무척 재미있었지만 직전에는 현타가 왔다. 막상 회식이 시작되고 반응이 너무 좋아서 행복했다.
  • 병국. 그럼, 누가 기획했는데(웃음)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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