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문제에서 도시 미션으로

다크매터랩스
Dark Matter Stories
13 min readOct 8, 2020

“새롭게 성장하는 도시에서는 사회 자본, 기업가 정신, 지식 공유, 지식 기반 네트워크와 혁신의 새로운 교차점이 사회 최전선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혁신은 더 이상 기술 기반이나 금융 투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시간, 상상, 지식, 진취성과 신뢰에 더 가깝다.” — 카리요, 프란시스코 & 이깃카나라, 탄 & 가르시아, 블랑카 & 랑크비스트, 앤티 , 『지식과 도시』

“In these emerging urban milieus, new intersections of social capital, entrepreneurship, knowledge sharing, knowledge-based networks and innovation are at the forefront of society. However, innovation is no longer about a technology base or a financial investment. It is more about time, imagination, knowledge, initiative and trust.” ― Carrillo, Francisco & Yigitcanlar, Tan & Garcia, Blanca & Lönnqvist, Antti. Knowledge and the City

@grimstad/Unsplash

도시 문제의 복합성과 시스템적 도전

앞의 글에서 현재의 혁신 모델의 문제점을 시민 실험의 필요성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면, 근본적으로 오늘날 도시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사회경제적 요소는 무엇이고, 이 안에서 발생하는 시스템상의 도전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생태계 위기

경쟁적인 성장만을 추구하며 발전해온 문명은 자연 및 생태계의 균형 파괴를 야기했고, 예측불가한 바이러스가 출현하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질병과 질환의 빈도 또한 증가하고 있다. 비단, 코로나19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아 내리면서 수세기동안 갇혀있던 다양한 미생물들이 방출되어 인류가 파악하지 못한 유전적 변이로 생겨났다는 주장 외에도 생태계 파괴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자동화

고도화로 자동화된 시대의 기술은 ‘인간의 사회적 기여’와 ‘제도기관의 역할’에 새로운 도전과제를 던진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이 분업화된 노동을 바탕으로 최적의 생산성을 목표로 하며 인간의 물리적 기능을 강조하고, 이에 맞춰 병원, 학교, 복지 시스템과 같은 오늘날 제도기관의 주요한 밑그림이 탄생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새로운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더 똑똑한 기계’로서의 인간이 아닌 사람, 기술, 데이터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과 기계,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인간 개발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전환이 요구된다.

인구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나라는 2025년에 이르러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노인 인구 비중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여러 만성질환을 앓는 노인인구 비중이 높아져 노인 진료비는 58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건 의료 정책 패러다임이 사후치료 중심에서 예방관리 및 건강증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인구의 구조적인 변화는 ‘대전환’을 이야기할 때 필수적으로 언급되는 요소로서 이들은 복합적으로 서로 얽혀 우리가 세상과 관계해왔던 방법들, 즉 무엇을 소비하고 생산할 것인지, 어떻게 일하고 살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안에서 도시는 외부적 변화에 점차 반응하며 더 복잡한 양상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도전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도시 문제의 원인과 결과가 상호연결되어 있으며, 단 하나의 근원적인 문제 정의가 거의 불가능한(Wicked problem) 맥락적인 시스템 문제(Contextual system challenge)를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정보 생태계의 전쟁, 센스메이킹의 부재

현재 우리는 ‘정보 생태계 전쟁’ 안에서 살고 있다. 선전(Propaganda), 감정 조작, 노골적인 거짓말과 가짜 뉴스 또는 무의식적인 거짓말의 전쟁이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정보를 둘러싼 양상은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구글(Google)이라는 한 기업의 검색 시장 점유율이 90% 이상에 달하며, 기사 클릭수를 바탕으로 한 언론 수익 인센티브 구조는 복잡한 정보와 주장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개인 및 집단이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식과 이해를 만들어나가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관심을 자본화하는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 시대에서 우리의 의사 결정 메커니즘은 단기적이며 휘발적인 희소 가치를 띈다. 엄청난 양으로 쏟아지는 과잉 정보는 명확하고 편견없는 진실을 찾으려고 하는 우리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정보 출처나 의도에 근거하기보다 예상 클릭수에 따라 마케팅 전략에 따른 결정이 이뤄진다. 우리는 이렇게 만들어진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며, 그 결과 세상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무엇이 ‘진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 우리가 세상을 잘 이해할 수 없다면 어떻게 좋은 결정을 내리거나 또는 우리가 직면하는 많은 도전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여기서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진실’이 개인적이면서, 공동의 노력에 의한 산물이라는 점이다. 진실은 일부가 만들어낸 ‘리뷰’ 또는 추상화된 ‘요약’으로 찾기 어렵다. 즉, 인지(Cognitive) 능력뿐만 아니라 공감하는 관계적(Emotional & relational) 능력, 그리고 세상에 구현된 우리의 총체적인 경험(Collective experience)을 통해 진실을 추구할 수 있다. 센스메이킹은 엇갈린 다양한 메시지 앞에서 우리의 모두가 단편적인 진실의 조각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함께 공동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클라인과 에크하우스(Klein and Eckhaus)의 ‘변경 관리 개념 만들기(Making Sense of Change Management, 2017)’에 언급한 센스메이킹의 정의처럼 ‘애매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능력이나 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hyojeong

기술 기반 혁신 모델의 문제, 스마트 솔루션

그렇다면 지금의 기술 기반의 혁신 모델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일까? 앞선 글 ‘유니콘에서 시민 실험으로’에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기술 기반 해결책은 충분한 센스메이킹이 부재한 채 단편적인 정보와 진실을 기반으로 쉽게 측정 가능한 성과나 결과에 집중되어 있다. ‘포용 도시(Inclusive city)’ 또는 ‘스마트 시티(Smart city)’를 이야기할 때에도 문제 파악과 해결의 공간을 지나치게 ‘기술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경향이 생긴다. 이럴 경우, 도시 문제를 선형적으로 바라보고, 결과적으로 문제에 대한 하나의 기술적 해결책으로 귀결되기 쉽다. 그러나 도시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면서 이와 같은 단순한 프레임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해석에 의해 문제 정의가 계층적으로 다양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이 있을 때 문제와 해결책이 1대 1의 연결방식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해결책에도 다양한 층위와 스펙트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여러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스마트 시티 솔루션에 대한 가장 큰 비판 지점은 기술과 연계된 도시 혁신이 점차 적은 수의 조직이나 기업이나 이해 관계자 손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도시는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만들고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그리고 오늘날 탈중심화된 사회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받는 분산 네트워크도 도시를 형성하는데 분명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혁신과 데이터의 소유권을 누가 가지며, 공동으로 생산된 지식이 어떻게 개인과 기관에게 공유되는지, 또는 누가 접근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문제의 해결책은 무궁무진하다. 부족한 해결책이 문제가 아니라, 때로는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사회, 경제, 정치적인 의지의 문제일 경우가 더 빈번하다. 예를 들면, 대기 오염의 문제는 공기 오염을 방지하려는 다양한 기술 및 사회적 해결책 부족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스템적 관점에서 정치적인 의지 그리고 사회적인 계약의 문제로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공장과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대기 오염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에 이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 및 규제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섹터의 의지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여러가지 가능한 해결책(Near future solutions) 중에서 선택의 아키텍처와 대안적인 선택의 경로를 찾아가는 과정은 아주 중요하지만, 이것이 간과되거나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이해관계에 따른 기술 솔루션이 아니라, 문제의 진실을 찾아내고자 하는 우리의 모두의 센스메이킹 과정을 통한 정당한 솔루션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왜 시민 실험이 필요한가’ 블로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기술과 시민혁신의 교차점’이 고려되지 않고서는 정당한 해결책을 찾아가기 어렵다. 더 나아가 정당한 도시 해결책이 없이는 포용도시로 나아갈 수 없다.

센스 메이킹을 잘 하기 위한 조건

그렇다면 어떻게 센스메이킹을 잘 할 수 있을까? 정당한 해결책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센스메이킹의 조건이 있어야 할까? 우리가 항상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동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는 어떠한 인프라가 필요할까?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살펴보자.

숙의 민주주의 공간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독립된 에이전시(Agency)가 필요하다. 여기에서의 에이전시란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기꺼이 다른 방향을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변화를 향한 심리적 바탕이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다양한 의견의 충돌이나 관점의 교류가 어렵다. 또한 시스템의 다양한 층위에 있는 개인들이 민주적인 혁신을 시도할 수 있는 역량, ‘발명의 질(Quality)’를 중요해진다. 일반 시민이든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든 모두가 모여 본인의 창의 및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숙의 민주주의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예로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 다양한 계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Putting yourself in others shoes) 리빙랩(Living lab)이나 ‘도시의 오픈 소스 (Open source innovation)’를 통한 시민 주도의 디지털 사회 시험기관 등이 있다.

특히, 국내에서도 크게 주목받은 리빙랩(Living lab)은 공동의 도시 미션을 문제로부터 발견해 나가는 장으로써 사람들이 시험하고, 배우고, 실행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데이터와 정보의 정확성

참여자들이 데이터, 정보, 미디어, 인센티브 그리고 언어와 같은 요소를 활용할 수 있는 열린 인프라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 때, 비뚤어진 혹은 역 인센티브를 제거하여 다양한 계층이 풍부한 정보와 지혜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긍정적 행동의 근거나 동기를 만드는 것이 고려되어야 한다. 즉, 문제를 프레이밍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센스메이킹의 정확성과 투명성을 저해하는 인센티브는 줄여나가야 한다.

나아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의도를 공유하기 위한 참여의 프레임워크 또한 필요하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 ‘데이터 트러스트(Data trust)’와 같이 개인 및 공공의 데이터가 사회 안에서 어떻게 보관되고 공유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동의 데이터 거버넌스 또는 오픈 스탠다드를 생각해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수치화된 데이터와 질적인 데이터를 함께 수집 연결하여 기존의 빅데이터가 가진 추상성을 보완하는 ‘따뜻한 데이터(Warm data lab)’를 새롭게 고려해볼 수 있다.

결정의 민주화

상향식과 하향식의 균형을 고려한 새로운 의사결정 모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파트너십을 통한 지식의 활용 및 거래와 학습 인프라를 조정하여 스스로를 조직화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때보다 현재의 의사결정 경로를 투명하게 만들고 새로운 대안적 의사결정 경로의 가능성을 탐구해야 한다. 만약 의사결정 경로를 투명하게 지도화하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구조를 가시화한다면 어떠할까?

브이타이완(vTaiwan)’의 활동에서 그 가능성과 효과를 찾아볼 수 있다. 구체적 활동으로 이들은 온·오프라인을 결합해 국민이 제기하는 합리적 정책 심의과정을 통해 디지털 경제 이슈를 다루고 기존의 규제·입법을 새롭게 만들거나 수정하는 데 활용될 조기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일반 시민이 시민 해커들과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하고 의사 결정 경로를 이해하도록 돕고, 더 나아가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을 모아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더 높은 수준의 정당성을 가지고 미래를 위한 결정과 행동을 하도록 역할했다.

도시 문제에서 도시 미션으로

문제는 도전보다 구체적이지만, 특정 기술이나 분야보다는 훨씬 광범위하다. 실제로 달 탐사에는 항공 우주에서 직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와 행위자들이 함께 모여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했다. 그러나 오늘의 도전은 달에 가는 것 보다 더 복잡하다. 사악한 문제(Wicked challenges)를 다룰 때 그 문제가 어떻게 정치나 기술의 문제와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 규제 필요성이나 밸류 체인(Value chain)의 피드백 프로세스는 무엇인지와 같이 다양한 가치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또한 더 많은 시민적 참여를 요구하며, 모두의 미래를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정당한 사회적 결정과 선택 과정도 고려해야 한다.

오늘날 도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려고 하는 정치나 도시 정책은 그들의 계획안에서 기업가 정신을 장려한다. 실제로 기업가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의 달인이다. 하지만 바로 사용가능한 해결책을 생각해 내는 것은 실천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해결책이 나오기 전에 이해관계자들이 문제를 경험하고, 다각도에서 충분히 분석하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반복하여 마침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여기까지 도착하려면 항상 여정이 필요하다. 결국 이와 같은 공동의 이해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을 ‘센스메이킹’이라고 할 수 있다. 센스메이킹은 정당한 사회적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효과가 없는 기술 솔루션 또는 좋은 기업가들이 제공하는 허공에 뜬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로부터 미션에 집중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과정은 하나의 문제 정의와 하나의 솔루션의 일대일 매칭 또는 하향식/상향식과 같이 역할 경계 나누기를 넘어서서, 다양한 가치와 관점을 교류하며 다양한 문제 정의와 다양한 해결의 옵션을 찾아가는 것이다. 공동의 합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글 : 강은지(eunji@darkmatterlabs.org) | 다크매터랩스 전략 디자이너
도움 :
박아영(ahyoung@darkmatterlabs.org), 함주희(juhee@darkmatterlabs.org), 이효정(hyojeong@darkmatterlabs.org)
대구테크노파크 김희대 디지털융합센터장, 김수진 팀장, 윤정영 연구원

다크매터랩스 코리아는 2020년 3월부터 6월에 걸쳐 대구테크노파크와 함께 대구시의 주요 도시 아젠다를 중심으로 시민참여를 넘어 ‘시민 실험(Civic experimentation)’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시 문제 프레이밍(Framing) 및 시민행동 변화의 디자인 요소 및 도시 전략을 도출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연구 결과물을 편집해 세 편의 글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1.유니콘에서 시민 실험으로
▶2.도시 문제에서 도시 미션으로
3.도시 문제의 다층적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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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저변의 ‘암흑물질’에 주목해 지속 가능한 도시 전략을 디자인합니다. kr.darkmatterlabs.org @DarkMatter_La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