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오프라인 맵핑: 작가 노트
댄 파이퍼
드럼서클의 북소리가 끊임없이 주변 마천루에 부딪혀 메아리치는 와중에 나는 계속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딩 애니메이션이 아무리 돌고 또 돌아도 구글 지도에는 빈 화면뿐이었다. 집에 어떻게 가면 될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공원 저편으로 보이는, 뉴욕경찰이 설치한 스카이워치 감시탑을 바라보았다. 경찰이 전화 신호를 가로채고 있는 것이었을까? 혹은 시위자가 너무 많아서 그랬던 것뿐일까? 나는 본능을 믿기로 한 뒤 미로 같은 월스트리트를 뚫고 남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대로 완전히 엉뚱한 지하철 입구에 들어가고 말았다. ¯\_(ツ)_/¯
많은 뉴욕 시민들이 그랬듯이, 2011년 가을 나는 월 가를 점거하라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OWS) 시위에 끌려들어가게 되었다. 몇 달에 걸쳐 진행된 점거 시위에 내가 초반부터 참여하거나 급진적으로 활동한 것은 아니다. 주코티 공원(자유 광장)에서 밤샘 농성을 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여러 차례 시위에 참여하면서 이내 로어맨해튼 지역에 익숙해졌고, 정확히 어디로 가야 풀턴스트리트 역에서 상행 J열차를 탈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시위자들은 멀리 떨어진 다른 주에서부터 각자의 일상생활을 미뤄둔 채 로어맨해튼까지 왔다.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은 공원을 배회하고, 함께 식사하고, 앉아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두들 성심성의껏 논쟁에 임했고, 공원에서 새로운 동지들을 만났다. 우리는 마치 혁명이 도래한 것처럼 지내고 있었다. 요즘처럼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기에는 2011년의 이상주의와 희망을 기억하는 것이 유독 중요하게 느껴진다.
<오큐파이 히어>
나는 OWS가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트위터, 페이스북과 온라인 영상 등이 시위 조직에 있어 필수 도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공식 웹사이트 등을 관리하는 인터넷 워킹 그룹에 들어가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섭외하는 일을 돕기도 하고, 웹사이트 작동 방식을 손에 익히기 시작했다. 공식 사이트의 주된 기능은 각 실무단이 회의를 계획 및 조정하는 데 사용하는 공용 블로그 및 캘린더였다. 이에 더해 공개 게시판도 있었다. 게시판은 웹상의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고, 당연하게도 트롤과 훼방꾼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어느 토요일 아침에 나는 장치 하나를 들고 주코티 공원에 도착했다. 와이파이 라우터를 해킹해서 리눅스를 설치한 뒤 직접 코딩한 웹 기반 게시판을 실행시킬 수 있게 해둔 장치였다. 라우터의 무선 네트워크 범위 덕분에, 농성장에 물리적으로 있는 사람만 게시판에 접근할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 몇 명에게 이 내용을 설명해준 뒤, 중앙 안내데스크 뒤에 있는 발전기에 라우터를 꽂아두었다. 와이파이 네트워크에 접속하면 딱 하나의 웹사이트(http://occupy.here)에만 접속할 수 있고, 인터넷에는 연결되지 않았다. 다른 주소를 입력해도 전부 게시판으로 리다이렉트되도록 했다. 이 장치가 <오큐파이 히어> (2011-) 프로젝트의 첫 프로토타입이었다.
기술 측면에서 보면 어려운 문제들은 이미 거의 해결되어 있었다. <오큐파이 히어>는 OpenWrt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PirateBox와 소프트웨어 구조 상당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라 그랜트, 수리야 마투, 드루브 메로트라 등 와이파이/커뮤니티/감시를 주제로 비슷한 접근을 취하는 작가들에게 영감을 받아 작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개인적으로 오프라인 와이파이에 대해 관심가는 부분은 기술 그 자체보다는 분권화/탈중앙화를 돕는 간단한 도구라는 측면이다.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으로는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는, 혹은 기존의 영역을 벗어나 교류하고 싶어하는 집단을 위한 상황적 (situated) 소셜 네트워크를 상상할 때 마음이 설렌다.
오프라인 맵핑
주코티 공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못 찾아 헤맸던 나는 <오큐파이 히어>에서 구동할 수 있는 오프라인 친화형 지도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싶었다. 초기 실험 단계에서 지도를 캐싱한 뒤 3일간 하이킹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거의 종이 지도에 의존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올 7월 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오프라인 맵핑에 관한 워크숍을 진행할 기회가 생겨서 기뻤다. 클라우드 사용을 전제 조건으로 삼지 않는 디지털 맵핑을 실험해볼 찬스였다. (내가 클라우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만의 맵핑 소프트웨어를 실행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음은 워크숍 소개글 중 일부이다. 참여자들은 노트북 컴퓨터나 와이파이에 접속되는 스마트폰을 가져오도록 안내받았다.
지도는 우리와 주변 환경을 매개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길을 찾고, 나아가 우리 주위의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에 있어 핵심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 지도에는 무엇이 맵핑되는가?
—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지도를 만들고 디자인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오픈 데이터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자기결정 지도 제작 문화 (self-determination cartography) 를 만들기 위한 효과적인 진입점이 될 수 있다. 워크숍 참여자들은 어떻게 오픈 맵핑을 할 수 있는지, 왜 그럴 필요가 있는지 논의하고,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 것이다.
워크숍의 기반이 되는 도구로는 미국 적십자사가 인도적 지원 현장에서 활용하기도 하는 맵핑 프로젝트인 포터블 오픈스트리트맵(POSM, “포섬”이라고 읽는다)을 사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워크숍 자료에 포섬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기로 막바지에 결정했다. 원래는 워크숍에서 오픈맵키트 (OpenMapKit) 모바일 앱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했고, 이 앱을 활용해 오픈스트리트맵의 서울 지도를 오프라인에서 편집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iOS 버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모든 참여자가 안드로이드 폰을 사용할리는 없기 때문에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지도를 조립하기
오픈 맵핑 소프트웨어와 오픈 데이터를 제작하는 회사인 맵젠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우리 회사가 활용하는 다양한 도구들을 조립해서 새로운 오프라인 맵핑 도구를 구성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새로 만든 이 도구는 의도적으로 매우 간단하게 설계되었다. 지도 스타일을 변경할 수 있고 (새로 나온 Refill 테마를 적용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지도에 점을 추가할 수 있다. 아직 진행형인 작업이지만, 매 수정단계마다 지도가 오프라인에서 작동하는지만큼은 확실히 해두고 진행하고 있다. 데모 버전은 maps.phiffer.org에서 사용해볼 수 있고, 직접 본인 서버에 설치할 수도 있다.
구글 지도 같은 웹 기반 타일 지도(일명 “슬리피 맵”)는 수백 개의 데이터 타일을 퀼트처럼 이어 붙이는 방식을 사용한다. 지도 상의 위치를 이동하고 줌을 확대/축소하면 필요에 따라 새 타일을 불러오는 식이다. 맵젠에서 이 타일들을 생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변형해서 실험해보았는데, 최종적으로는 서울 맵핑에 필요한 모든 타일을 줌 레벨마다 다운로드해두는 것이 더 쉽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과정을 도와준 이언과 나타니엘에게 감사를 전한다.)
모든 타일식 서비스가 오프라인 캐싱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특히 대량으로 다운로드하는 일은 많은 경우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편이다. 기술적으로나 (서버에 과부하가 걸리면 안 되니까) 과금 측면에서나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 제약이다. 맵젠에서 제공하는 타일 서비스는 API 키를 이용해 요청 수량을 기록해둔 뒤 월 5만 개가 넘어가면 연동된 계정에 요금을 청구한다.
오프라인 맵핑 도구에는 아직 구현이 덜 된 기능이 많이 남아 있다. 검색창은 여전히 클라우드에 호스팅된 지오코더(좌표 변환기)를 이용하는 상황이고, 라우팅 기능도 없다. 지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이콘도 늘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장소 데이터를 통째로 불러오거나 내보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 기능들은 천천히 시간을 갖고 추가하려 한다. OWS에서 내 옆에 있던 누군가 말했듯이 “걱정할 필요 없어. 여기는 자본주의 시간대(Capitalist Time)가 아니니까.” 기본적인 기능은, 적어도 워크숍 참여자들이 (출력 가능한) 오프라인 지도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잘 작동했다.
워크숍
우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커다란 초현대식 실내공간에 자리를 잡은 뒤, 소규모 모둠으로 나누어 서울 지도를 만든다면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을지 논의했다. 각 참여자마다 아이디어를 정한 뒤,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참여자들에게 특히 생각해보도록 권한 것은, 도시 속에서 우리를 효율적으로 이동시키도록 실용적으로 설계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스마트폰 지도에 반영되지 않는 도시생활의 면모에 대해서였다. 에코아트테크의 <Indeterminate Hikes+>나 케리 트라이브가 낯선 사람들에게 그려달라고 부탁한 로스앤젤레스 약도 연작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디지털 상호작용[은] … 추상적인 행동들을 통해 육체를 가진 동료 인간과 친밀함을 쌓게 해준다.
마치 (컴퓨터실 등에서 친구들과 모여 게임을 하는) 랜파티에 온 것처럼, 우리는 워크숍 공간에서만 볼 수 있는 로컬 지도를 제작했다. 인터넷에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지만 대신 우리 모두 지도 서버와 같은 로컬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었다.
맵핑 대상은 서울 내의 (길이나 구역이 아니라 점으로 표시할 수 있는) 장소 위치정보에 국한시키기로 했다. 참여자들은 서울시내 오래된 나무들의 위치, 야시장의 안전 및 조명 상태, 오토바이를 주차할 수 있는 곳 등을 맵핑했다.
워크숍에 사용한 소프트웨어는 계정을 만들어 로그인할 수 있는 기능이 아직 없기 때문에 일반에 공개해 사용하기는 어렵다. 소규모 워크숍 환경에서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에서보다 사람들이 서로의 작업을 존중하리라고 신뢰할 수 있다. 즉 유저 로그인 기능을 제외한 것은 일의 우선순위와 시간상 제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도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오큐파이 히어> 네트워크에서도 마찬가지로 모든 상호작용이 익명으로, 그리고 신입 유저에게 친절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네트워크에 접속한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가까우면 디지털 공간 내의 신뢰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경험상 그 역도 사실이었다. 디지털 상호작용 또한 물리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보다 추상적인 행동들을 통해 육체를 가진 동료 인간과 친밀함을 쌓게 해준다.
키트 만들기
‘점거하라’ 시위가 해산한 2011년 이래로, 나는 당시 주코티 공원에서 접한 개방성과 가능성을 되찾고 정제하고자 시도해왔다. OWS에는 알기 쉽고 반복할 수 있는 일종의 공식들이 있었고, 그 덕분에 동조 시위들도 미국 전역에 빠르고 손쉽게 생겨날 수 있었다. 이처럼 <오큐파이 히어>도 (상대적으로) 사용하기 쉬운 키트의 형태로 제공된다. 게다가 이제는 이 키트로 오프라인 지도도 만들 수 있다!
시위 당시 워크숍 및 토론회들은 아주 중요한 기능을 했고, 다음에 올 정치적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에 대비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순간 우리가 필요로 하게 될 것이 오프라인 지도건, 게시판이건, 아니면 지하철을 타러 가기 전 잠시 앉아 드럼서클 연주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건 말이다.
댄 파이퍼는 브루클린의 아티스트 겸 프로그래머 겸 연구자이다. 현재 맵젠(Mapzen)에서 오픈소스 지도 툴을 만들고 있으며 뉴욕의 아이빔 아트+테크놀러지 센터에서 레지던트로 활동하고 있다. 파이퍼의 관심사는 컴퓨터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에 가치관이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아우른다. 그의 작업은 뉴욕 현대미술관, MoMA PS1, SF MOMA,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트랜스미디알레 등에서 전시되었고, 뉴욕타임즈, 뉴욕매거진, 라이좀, 하이퍼알러직 등의 매체에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