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아이랑 같이 출근한다면?

Sunghee Woo
Unusual Suspects Festival Seoul
15 min readDec 4, 2018

평범한 당사자들이 만들어서 비범했던 언서페 세션 후기(3) #WORKIDSHOP

이 글은 언유주얼서스펙트페스티벌(이하 ‘언서페’ Unusual suspects festival)에서 열렸던 스물 일곱개의 세션 중에서 ‘평범한 당사자들이 모였기 때문에 비범했던’ 세 개의 세션에 대한 후기 중 하나다. 언서페는 서로 다른 영역과 분야의 사람들끼리 만나서 주제와 형식의 제약 없이 3일동안 서울 곳곳에서 열린 대화의 장이다.

세 개의 세션인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회혁신을 위한 통번역의 역할>과 <내 전공은 지리구요>, 그리고 <WORKIDSHOP> 은 자기 삶의 문제에 대한 대화가 요청되었을 때 “저요!”하고 반갑게 모인 ‘평범한’ 사람들의 모임이란 공통점이 있다.

당사자들이 모여서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고(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회혁신을 위한 통번역의 역할), 이후에 같이 해 볼 수 있는 작당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기도 했으며(내 전공은 지리구요),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실험도 함께 해 보았다(WORKIDSHOP). 모두 평범한 당사자들이 모였기에 비범했던, 언유주얼서스펙트페스티벌이 아니면 만나기 힘든 언유주얼한 세션들이었다. 이 세션들의 후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워라밸 대신 워키드

오늘을 위해 회사에 연차를 내고 달려왔다. 28개월 된 아이와 함께 일 할 수 있다고 해서. 아이는 한 번도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근무환경이 유연하다는 IT기업 사회공헌팀에서 일하지만, 아이와 함께 출근해서 일하는 건 아직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워키드숍(WORKIDSHOP)에 참여한 경은씨 이야기다.

워키드숍을 준비한 지혜씨의 일터인 진저티프로젝트 직원들은 가끔씩 아이를 데려와서 일하기도 한다. 그도 처음엔 가능할까 의아해했지만, 일터에서 아이에게 돌발상황이 생겼을 때 혼자가 아니라 조직에서 함께 대응한다는 안정감을 느꼈고, 아이도 엄마가 일하는 환경을 보며 엄마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워키드숍 참여자들 중에는 진저티프로젝트 직원들처럼 아이들과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한 번도 아이와 함께 일해 본 적이 없는 부모, 부모가 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또한 아이가 없지만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이나 일환경이 궁금한 참여자도 있었다.

어른들은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왜 그런 환경을 상상해보려고 할까?

사회에서 일하는 부모가 되려면 워라밸을 해야한다고 말을 하던데, 도대체 그 워라밸이 뭘까요? 일을 빨리 마치고 아이들을 보는게 정답일까요? 그렇다면 워라밸이 아닌 다른 단어를 찾고 개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세션을 만들게 됐어요. (안지혜)

임신 4개월이 된 나에게도 멀지 않은 이야기다. 나는 코워킹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아주 가끔 어린 딸을 옆에 앉혀놓고 문서 작업을 하는 사무실 동료를 본 적이 있다. 아동보다는 어린이에 가까운 딸은 엄마 책상 근처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서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할 수 있겠다.’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워키드숍의 하루 ⓒ듣는연구소

워키드숍에서는 이날 하루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려 6시간동안 같은 사무실에서 엄마, 아빠, 아이들, 그리고 이모, 삼촌들이 각자 자기 할 일을 해 보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어른들의 일터에서 아이들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상상하고 이야기도 나눴다. 혼자서 상상만해보던 상황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안고 사무실에 갔는데, 막상 엄마 손을 잡고 하나 둘 입장하는 아이들을 보니,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구체적인 질문들이 마구 떠올랐다.

‘엄마 품을 떠나지 않으려는 저 아이를 옆에 두고 엄마들은 정말 평온하게 일을 할 수 있을까?’

‘부모 곁에 조용히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면 부모가 일하기엔 수월할 것 같은데, 아이들은 지루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는 이 시간이 어떤 의미일까?’

‘어른들만 있는 적막한 사무실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사무실은 어떻게 다를까?’

‘자기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은 동료들도 불만 없이 일할 수 있을까?’

과연, 오늘 실험이 끝나면 이 궁금증이 해소될지 궁금하다.

먼저 모두 모여 자기소개를 했다. 오늘 처음 아이와 함께 일하는 엄마들에게서는 기대감과 긴장감이 보였고, 이미 아이들과 함께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진저티프로젝트 구성원들은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오늘 휴가를 내고 왔습니다. 저희 회사가 어느정도 워라밸이나 근무환경이 다른 데 비해서 좋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워킹맘인 제 생활이 오래 버티지 못할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와 함께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한번도 생각을 못 했는데, 이번에 그런 환경을 경험하고 싶어서 왔어요. 이제까지 아이는 제가 일하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고. 제가 집에선 일한 적이 없어서 거기에 아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해요. (이경은)

저는 오늘이 아이들에게 완벽한 날이 되기보다는 느슨하더라도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그게 자기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허술한 부분이 아주 많을 거고요. 그럴 때 이런 게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때 그때 해결해가는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 (서현선)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을테다 ⓒ듣는연구소

참여자 중에는 자녀와 이미 ‘코워킹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는 아빠도 있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종진 씨는 그의 업무공간이 곧 아들의 공부방이자 놀이방이기도 하다. 아이의 장난감이 가득한 방에서 그가 업무를 보기 위해 그는 아들과 공간 배치에 대한 협상을 거치며 평화로운 공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저는 프리랜서겸 대학원생이에요. 아내가 주로 가장역할을 하고, 저는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한 살 반 된 아들의 픽업을 맡고 있습니다. 큰아들 공부방과 제 작업실이 같은 공간에 있어요. 일하러 들어가면 아들 장난감이 사방팔방 흩어져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아들 공부방과 제 작업실이 공존할 수 있을까 궁금하고요. 또, 아내가 전형적 워킹맘으로서 나인 투 식스 생활을 하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을까도 궁금해서 왔어요. (임종진)

마침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산하 살림센터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일하는 코워킹스페이스를 계획중인데, 직원들이 공간을 기획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직접 아이를 데리고 오기도 했다. 부모님의 일터와 자녀의 삶터가 구분된 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말에 모두 공감했다.

아침에 오면서 어릴 때 기억이 문득 떠올랐어요. 엄마가 집에서 부업을 하셨거든요. 워키드숍 원형이 그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아침에 밥 챙겨주시고 학교갔다오면 엄마가 일하시다가 또 챙겨주시고. 그냥 그런 과정들이 자연스러웠는데 일터와 삶터가 분리되면서 주로 여성들에게만 고민스러운 부분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실험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요. (권한라)

워키드숍의 일상

워키드숍의 하루가 시작됐다. 사무실 가운데 놓인 책장을 경계로 어른들은 좌측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고, 아이들은 오른쪽 장난감이 있는 소파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오전에는 엄마 옆에 딱 달라붙어서 앉아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른들은 2인 1조로 한 시간씩 교대하며 아이들이 노는 걸 말 그대로 ‘지켜보았다’. 이 돌봄조는 아이들이 놀 동안 그저 지켜보고 있다가 싸우거나, 밖으로 나가려는 등 ‘위기’ 상황이 생기면 다가가서 살짝 해결해주고 뒤로 빠졌다.

워키드숍은 이런모습 ⓒ씨닷

부모 곁에 꼭 붙어있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가 일할 수 있도록 분리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되었다. 돌봄조가 이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나가서 같이 산책할래?” 라고 물어보았지만 나가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나이, 성향, 경험에 따라서 부모와 한 사무실에 있을 수 있는 방식은 다를 것 같다.

점심을 먹고난 후 아이들은 인근에 있는 교육장에서 장난감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직접 만든 장난감을 손에 들고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오전보다 한껏 활기차보였다. 아이들은 그 사이에 서로 친해진 듯하다. 오전까지는 서로 데면데면하게 혼자서 놀던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아이들이 놀이 공간에서 또래들과 놀게 되니 어른들은 좀 더 일하기 편해진 것 같다.

아이들이 친해짐에 비례해서 공간에서 발생하는 소리의 데시벨도 커졌다. 엄마 아빠들은 개의치 않고 일하는 분위기다. 아이들이 활기차게 지내니서 오히려 마음이 놓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오후 두시, 활기찬 아이들과 일하는 어른들이 공존하는 사무실의 소리를 녹음했다.

워키드숍의 사무환경 BGM을 들어보자. 당신이 이 정도 데시벨에서 일한다면 어떨까? 고요한 업무환경에서만 일하던 사람이라면 집중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백색소음에서 일하기 편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시끄러운 시내 한 복판의 카페에서도 노트북을 켜놓고 일한다. 부장님이 소리지르는 사무실에서도 귀닫고 눈감고 할 일을 하기도 한다. 나도 오전에는 아이들이 있는 사무실의 BGM에 잘 적응이 되지 않았는데, 오후에 아이들이 노는 소리에 익숙해지자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고요한 사무실에서만 일해온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일하세요 나는 놀랍니다 ⓒ씨닷

오후 세시, 업무를 마무리하고 각자 오늘의 일경험을 나누었다. 역시 진저티프로젝트의 서현선 씨와 홍주은 씨는 계획했던 일을 무리없이 했다고 한다. 오늘이 아이와 함께 일한 첫 경험이었던 사람들은 일에 집중이 어려웠다고 했다. 또, 아이들이 낮에 지내는 모습이 자기들에게도 낯설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는 집중이 잘 안 되었어요. 근데 애가 재미없으면 집에 가자고 할 텐데 그러지 않은 걸 보니 여기서 노는 게 재밌나봐요. (김연주)

내가 애를 잘 모르나 싶었어요. 낮 시간에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어떻게 노는질 몰랐으니까요. 이런저런 고민이 더 생겼어요. (이경은)

연령대도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같이 어울려 노는 연령대도 있고, 한 공간에 같이 놀 수 없는 아이들이 섞여있을 때에는 어떻게 하나 생각이 들어요. (장민경)

어른과 아이가 공존하는 오피스의 조건

소감을 나눈 후,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일하기 좋은 공간을 상상해보기로 했다. 레고를 활용해 아이들과 함께 원하는 공간을 짓고, 어떤 의미로 무엇을 배치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다.

홍주은 씨와 김윤 어린이가 만든 워키드 공간 ⓒ듣는연구소

아이 노는 공간은 아이가 만들었고, 저는 어른들이 만드는 공간과 공동공간을 만들었어요. 유아 공간은 수유도 하고 낮잠 잘 수도 있고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는데, 관건은 통유리로 만들어서 밖에서 엄마가 볼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언제든지 무언가 먹을 수 있는 주방도 있고, 엄마들이 일하는 공간도 있어요. 회의실도 있고, 책 읽을 공간도 꾸몄어요. 야외공간을 연결해서 엄마랑 아이가 일하다가 나가 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아이가 가지고 온 물건을 놓을 공간도 있어요. (홍주은)

여기는 엄마들이 컴퓨터 하고 아이들이 게임할 수 있는 공간이고요. 여기에는 강아지있는 곳, 고양이 있는 곳이 있어요. 물이 있고, 잠 잘 수도 있고 씻는 공간도 있어요. 말 탈 수 있는 공간도 있고요. 또 땅 팔 때 사용하는 모래놀이터도 있어요. (김윤)

아이가 꿈꾸는 공간에는 동물이 있었다! 어른들은 장난감과 놀이프로그램을 주로 떠올렸지만, 아이들은 교감하고 돌보고 싶은 동물과 맘껏 뛰어놀 공간을 상상했다.

어른들이 구상한 공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와 부모가 서로를 잘 볼 수 있도록 공간 구조를 만든다는 것. 큰 통유리를 만들거나, 아이와 부모 공간에 층의 고저를 두어 서로가 언제든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야지 안심하고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또한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 함께 편하게 얘기하고 놀 수 있는 공간, 잠을 자거나 수유를 할 수 있는 공간 등 성격을 달리하는 다양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해 먹을 부엌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공간뿐 아니라 아이들을 돌보거나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도 입을 모았다. 오늘 장난감 만들기 프로그램에 한 시간 동안 다녀온 아이들이 서로 얼마나 친해졌는가를 보아도,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과 사람들의 존재는 중요한 것 같다.

종진 씨는 공간을 상상하면서 ‘아이를 혼내지 않아도 되는’ 공간 구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아이가 레고를 좋아해요. 레고 장도 필요하고, 장난감 통도 필요하고, 책장도 있어야 하니까 작은방에 다 놓기 어렵더라고요. 애는 아빠한테 항상 방 안 치운다고 혼나는데 그게 아이한테 힘든 일일 거거든요. 저도 그게 잘못된 거라고 고민은 하는데, 방법을 찾기 어려웠어요. 그러다가 지난 주부터 아이하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너한테 필요한 게 뭐니?’ 그랬더니 이 방에서는 책보기와 레고하기래요. 그래서 장난감 통은 방 밖으로 빼고, 이 방에는 제 책상과 아이 책상, 그리고 아이 책장과 레고를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두었죠. (임종진)

참여자들은 아이들이 쓰레기는 어디다 버리는지, 목이 마를 때에는 어디서 음료를 조달할 수 있는지 등 공간에 대한 안내와 필요 정보를 잘 제공받는다면 어른들의 도움을 덜 받고도 스스로 편안하게 공간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공간 정보 매뉴얼이나 그래픽도 필요해 보였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일터를 레고로 만들어보았다 ⓒ씨닷

실험해 보았을 때 알게 되는 것들

워키드숍을 마무리하면서 오늘의 감상을 나누었다. 하루 실험을 해보니 평소 상상해 보지 못했던 많은 것을 알게되었다고한다.

저는 직장에서도 육아하니까 굉장히 몸이 피곤하네요. 직장에서도 육아가 아예 분리되어야지, 아이를 데리고 오면 집중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오늘 재미있었는지 이제부터 엄마 회사로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모두 웃음) 앞으로 어린이집 보낼 때가 걱정이 되겠어요. (김우정)

저는 1–2년 전 아이를 친어머니가 돌봐주시다가 일이 생기셔서 못 봐 주셔서 굉장히 고민했어요. 그 때 진저티프로젝트 동료들이 사무실에 책상을 치워주고, 텐트 치고 담요 깔고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해서 우리가 돌봐주겠다 했을 때 너무 큰 힘이 되었죠. 그런 완충재가 있으면 엄마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일하지 않을까 싶어요. (홍주은)

저는 오늘 할 일을 다 했어요. 미팅도 하고, 메일도 보내고, 티타임도 갖고. 내가 왜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나 생각했더니 제 아들이 엄마의 일터에 대한 이해가 높아요. 이렇게 아이가 일터에 한 번 같이 갔다오면 저는 되게 좋아요. 엄마 요새 미팅한다고 하면 알고, 엄마 요새 책 만든다고 하면 이게 뭔지 좀 더 이해해 주는 것 같거든요. 늘 아이를 일터로 데려와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아이가 어느정도 이해는 중간중간 해 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서현선)

자녀가 없는 노키즈 어른들에게도 오늘의 경험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레고 워크숍을 하면서 참여자들은 일터에 둥근 탁자와 편안한 의자, 침대, 푸른 녹지 등을 배치했다. 무소음의 네모난 사무공간이어야 최대한의 업무 효율을 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일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이와 함께 하는 일 문화도 어렵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좀 더 여유롭게 일해도 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년활동가 산호 씨는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라도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고민이 많고 창조적인 직종이라면 아이들과 일하는 것이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과 돌봄의 양립은 청년문제에서도 중요한 이슈인데, 이야기되지 않고 있어요. 결혼해서 가정과 일을 양립 못하는 분들을 보면 저게 우리의 미래인가 싶고, 꼭 아이가 없다 하더라도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직종이라면 아이들이랑 같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많은 직종이 이렇게 하긴 어렵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시너지가 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산호)

아이와 함께하는 사무환경은 비단 자녀가 있는 부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직장에서 ‘워키드’ 환경을 만들려면 부모가 아닌 직장 동료들의 동의와 이해가 필요하기도 하다. 워키드 환경은 아이를 직장에 데리고 오는 직장 내 어린이집 개념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사무환경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 곁이 아니라도 잘 놀고 잘 자요 ⓒ듣는연구소

그리고 모든 참여자들은 일과 돌봄의 조화를 여성에게만 짐지우지 않아야 한다는 데 깊이 공감했다.

저는 결국 이런 시도들이 여성에게만 부담될 때, 여성들이 일터에서까지 독박 육아를 하게 될까봐 걱정이 돼요. 일과 돌봄의 통합은 남녀를 불문하고 중요한데, 모두에게 어떻게 평등하게 할까 복잡한 생각이 드네요. (권한라)

워키드숍을 시작하기 전에 떠올랐던 나의 궁금함은 얼마나 풀렸을까? 끝날 때 즈음, 나는 새삼 시간과 관계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엄마들이 워키드숍에 대한 소회를 풀어놓을 때, 아이들은 제각각 또는 오늘 만난 친구들과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여섯시간 전까지만 해도 엄마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아이가 지금은 엄마 아닌 어른들을 따라 화장실을 가기도 하고, 잠이 들기도 했다. 엄마들이 자기 아이만 데려와서 돌봐야 한다면 전전긍긍하겠지만, 아이들이 사무실에 오랫동안 오다보면 엄마 아빠의 아이만이 아닌 이웃과 직장 동료들 공동체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되지 않을까? 이 역시 직접 해 보지 않았더라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당사자들이 모여서 직접 실험까지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언유주얼한 세션, 워키드숍은 조만간 어디선가 실제로 구현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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