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험

Junyong Suh
8 min readNov 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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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보험. 내가 항상 말하고 싶었던 부분을 많이 커버해주는 단어. “꿈을 향해 달려가되, 꿈보험을 준비하라. 심리적인 안정감은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무엇보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상당히 완화시켜주어 더 행복한 자신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내가 유학을 준비해서 석사를 온 것에 (크게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볼 수도 있는) 삼성소프트웨어멤버쉽에 너무나 감사하고 신세진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학부를 졸업하면 뭘 해야할지 모르겠던 3학년 2학기에 고민이 많았다. 당연히 석사, 박사를 해야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마음 같지(!) 않은 성적, 나 스스로의 성향, 그리고 취업하는 친구들을 보니 취업을 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아니지, 공대생이라면 연구 정도는 해봐야한다고 들었으니 그래도 석사 정도는 해야하나… 등등.

정확히 정한 ‘목표’ 나 ‘꿈’ 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에, 가능한 옵션을 다 잡아보자라고 생각했었고, 막연하게 ‘영어하는 공돌이 / 개발자’ 가 되고 싶었다. 부모님 덕택에 영어는 남들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고 믿었고, 언젠가는 쓰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영어’ 에서 손을 놓지 않고 있었고.

영어는 부모님 덕분에 미국에 두번이나 체류 할 수 있었던 이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복학 후에는 거의 매달 TOEIC / TEPS 를 신청했었다. (물론 두번 중에 한번은 아침에 못 일어나서 시험을 못 보고 신청비만 날렸…) 영어 뿐만이 아니라 외국어 자체가 좋았기에 수많은 ‘뻘공부’ (… 스페인어, 일본어, 프랑스어, 터키어 …) 까지 찝적대면서 ‘재밌게’ 서로 ‘응원하면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오랜 기간을 함께 했었다. 좋은 공부 파트너들, 인연들, 언어교환 파트너들도 만나고. (글렌, 쿠미코, 카나.)

재밌어서 공부를 한다는 점과 함께 이건 분명히 내가 취업을 하든, 대학원을 가든, 유학을 준비하든 꼭 쓰인다는 점이 영어를 꾸준하게 공부하게 된 원동력인 것 같다. 굳이 좋게 말하자면, 꿈보험을 위한 첫번째 요소. (재미와 필요. 이 두가지 조합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무리해서 뛰어다녔을까. 인터넷 탈탈 털어서 동호회란 동호회는 다 털어보고.)

그리고 나는 시험은 싫지만 프로젝트는 좋았고, 굳이 전공 프로젝트가 아니어도 좋았다. 그리고 외부 활동도 재밌었다. 자소서는 계속 쓰다보니 나 스스로를 돌아볼 계기가 되었고, (장점을 단점처럼 쓰는 능력은 덤!) 떨어진 공모전들은 각자 바쁜 또한 서로 다른 팀원들을 모으고 조합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좋았고, 끝나면 결과야 어찌됐든 끝났다며 우르르 몰려가서 맥주 한잔하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문과 친구들이 가진 soft skill 의 힘도 느낄 수 있었고. 주로 면접에서 떨어진 인턴쉽들도 면접이라는 경험을 여러번하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었고. 되든 안되든 이렇게 해보고 부딪히면서 다음에 비슷한 일이 있을 때의 삽질을 줄여놓은 것이 나한테는 꿈보험을 위한 두번째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예전에 리스팅해보니 1년 내에 인턴쉽/공모전 떨어진 것이 15개쯤 되더라.당시에 정리해놓은 포스팅 http://blog.naver.com/zechery/20097927805)

영어, 그리고 항상 바쁘게 뛰어다니기. 그 상태로 본교 대학원 진학, 타교 대학원 진학, 국대 대기업 취업, 외국계 기업 취업, 유학이라는 다섯가지의 선택지 모두를 놓고 3학년 2학기때부터 고민을 했다. 저 다섯개 중에 제발 하나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저 중 하나에 올인해서 준비해도 될까 말까인데 과연 내가 그렇게 넓게 대충 준비해도되나… 이런 생각도 했었고.

일단 확률이고 나발이고, 다 해보고 싶었다. 되는지 안 되는지는 해봐야 아는거니까. 영어는 준비되어 있는 상태였으니 어떻게 지원하고, 다른 준비는 뭐가 필요한지, 이미 그것을 해본 사람은 없는지 찾으면서 모든 가능성에 지원을 시작했다. 그 중에서 운이 좋게 제일 먼저 풀린 것이 국대 대기업으로의 취업이었는데, 사실 나는 이 선택지를 확보 못 했으면 ‘감히’ 유학 준비를 할 생각을 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에 대한 심리적인 안정감.”

3학년이 끝나고 4학년으로 올라가던 겨울방학. 삼성전자 인턴, 야후 코리아 인턴, IBM 코리아 인턴, 엘지전자 인턴, 퀄컴 코리아 인턴… 까지 싹 다 떨어지고, ‘개발자’ 를 뽑는 인턴이라면 뭐든지 알아보고 지원하던 와중에 삼성소프트웨어멤버쉽이라는 프로그램에 선발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신입생 시절 때 들어서 알고 있는 프로그램이기는 했으나 정확히 어떤 활동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 했다. 멤버쉽 소속인 후배한테 이것 저것 물어보고, 지원과 면접을 마치고 얼떨결에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계속 떨어지는 것들에 면역이 된 상태라 합격 발표를 보고도 멍했던 기억이…) 알고보니 1년 이상 학교와 병행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고, 수료시 SSAT 시험을 면제 받고 임직원 면접으로 직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젝트’ 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좋았고, 마침 매일 ‘출석’을 해야하는 사무실의 위치는 학교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생각보다 ‘빡센’ 생활에 허덕이기는 했지만, 멤버쉽을 하면서 훌륭한 대학생 개발자 동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그 무리에서 나는 하위 20%에 들어가는 개발자라고 단언 할 수 있음…;;;), 대기업 취업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어 나에게는 아주 커다란 보루가 되어주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 삼성소프트웨어멤버쉽이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 이후에 마음 고생은 고생대로 엄청 했을테고,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더라도 스스로는 후회 없음의 달인이므로 행복하게 지냈겠지만 ㅎㅎㅎ)

국대 대기업이라는 현실적인 난관을 8할 이상 넘었다고 생각하니, (취업이 된건 아님. 졸업 시까지 짤리지 않고 수료를 해야하고, 임원 면접 역시 통과해야함.) 다른 선택지들을 향해서 지원을 할 때 마음이 한결 편했다. 다른 네가지의 선택지 중에 두가지는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는데, 타교 대학원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S대 모랩실과, 대전 K대 모랩실에 ‘타교 학부생 학점 컷’이 있었고, 내 학점보다 꽤 많이 높았던 그 기준에 ‘이 학점 미만은 지원하지 말 것’ 이라고 빨간 글씨로 쓰여있어서 지원조차 못 했다. 타교 대학원 진학 실패. 그리고 외국계 대기업은 ‘영어하는 공돌이’ 를 위해 대졸신입을 개발직으로 채용하는 곳들만 찾았더니 몇군데 없었다. 야후 코리아 (지금은 한국에서 철수), 모토롤라 코리아 (지금은 한국에서 철수), IBM 코리아 연구소 정도만이 대졸 신입을 개발자 직군으로 뽑고 있었는데 (구글은 인턴만을 뽑고, MS, 오라클 등은 기술영업만을 대졸 신입으로 뽑음) 세 군데 모두 깔끔하게 탈락. 야후 코리아는 서류에서 탈락, 모토롤라 코리아 역시 서류에서 탈락. 그리고 당시에는 부모님께 등짝 스매싱을 맞을까봐 떨어졌다고 했는데 사실 IBM 코리아 연구소는 1차 서류 통과하고 2차 영어 시험에 올라갔는데, 일요일 아침 9시인가? 10시인가? 하는 영어 시험을 자다가 쨌음…;;;;; 당시 이미 GRE 학원을 다니고 있었을 때라 GRE Quant 시험 같다는 그 시험에 대한 별도 준비도 필요 없었는데… 허허허. 여튼 외국계 대기업 취업 실패.

비슷한 시기에 유학 준비를 시작했었다. 4학년 1학기가 끝난 여름 방학에, 계절학기까지 꾹꾹 눌러담아 듣고 난 7월에. 그리고 유학 준비 시작 이전에 입사 의사를 멤버쉽에 미리 알려줘야 했었는데, 삼성전자에 입사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데에 부모님이 그것을 응원해주신 것도 매우 컸다. 이미 자신감도 있었고, 본교 대학원은 유학이 잘 되지 않을 경우에도 지원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배수진은 아니었다. (그리고 막연한 자신감도 한몫했다. 혹시 다 실패해도 어딘가에는 뽑힐 수 있다는.) 그래서 마음 편히, 부모님이 허락해주신 단 한번의 기회를 감사하게, 정말 마음 편하게 유학 준비를 했었다.

그 이후로 미국으로 석사를 진학하게 되었고, 그 뒤에도 개인적으로는 꼬이는(!) 상황에 놓였었는데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항상 이런 식으로 ‘보험’을 만들어 두는 것이었던 것 같다. ‘최선’이 불명확한 상황이기에 (‘꿈’ 이라던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던지), ‘최악’을 피할 수 있는 현실적인 옵션이 간절했고, 그것을 확보한 다음에야 조금 더 모험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에는 이럴 줄 알고 선택한 것이 아니었던) 공대라는 전공 덕택을 많이 봤지만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최선’ 을 향한 모험을 할 것인가, ‘최악’을 피한 뒤에 생각해 볼 것인가는 언제나 중요한 것 같다. 전현무씨의 경우 ‘아나운서’ 라는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선택이 있었다면, 그 이후를 대비해 ‘기자’, ‘교사’ 라는 (두 직업 역시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준비해야하고, 되기 어려운 것은 비슷하다) 꿈에 대한 보험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 크게 공감했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대한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을 때, 편안하게 자신을 실력을 발휘 할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게는 그것이 국내 대기업으로의 취업과 본교 대학원으로의 진학이었던 것이었고.

꿈? 좋다. 하지만 스스로가 심리적인 안정감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나는 그렇다.) Plan B, C 같은 fall-back 을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하나에 올인하는 것과 여러 개를 동시에 준비하는 확률에 대한 문제가 있지만,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 Plan A, B, C 모두 본인이 좋다면 그렇게 가는 것이 좋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함.

다 쓰고 나니까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너 때문에 한명은 멤버쉽에서 합격하지 못 했을 것 아니냐고. 조금 미안하기도 하지만 나는 멤버쉽을 포기하지 않았다. 입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뒤, 바로 그만두는 방법과 끝까지 수료를 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해당 프로그램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끝까지 수료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수료했다. 정말 좋았기 때문이고, 내 삶에서 지금까지 멤버쉽에 속했었고, 수료를 마친 사실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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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무씨의 강연 영상 및 요약 캡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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