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망아지 창업기] 초기 스타트업이 집중해야할 것 — 프로덕트

류승준
BLUEHORSE
Published in
7 min readJan 26, 2022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모든 과정이 성과에 동일한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은 성과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하지만 어떤 일은 그 영향력이 미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리소스를 영향력이 큰일에 투자하고 중요도가 떨어지는 일은 빠르게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의 업무는 이러한 규칙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 why

  1. 업무량이 너무 많다.
  2. 우선순위를 파악하기 힘들다. (데이터가 없어 성과에 대한 영향력을 예측하기 힘들다.)

푸른망아지를 창업한 19년 말을 돌이켜보면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일은 많은데 어떤 게 더 중요한지 구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실상은 더 녹록지 않았습니다. 현실에 치인다고 할까요? 사실 초기 팀에게는 한 달 동안 있을 사무실 구하는 일, 법인을 직접 설립하는 일 마저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회사의 성장에 핵심은 아니지만 누군가 꼭 해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아서 하다 보면 금방 하루가 다 갑니다. 이러한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초기 스타트업이 집중해야 할 대상은 프로덕트사람입니다.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고 좋은 사람들을 모으면 다른 모든 일들이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자금 조달은 모든 초기 스타트업의 공통적인 숙제일 텐데요. 투자를 받거나 정부 지원 사업을 받거나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팀이 투자를 잘 받고 정부 지원을 잘 받을 수 있을까요? SEED 투자를 주로 하는 VC는 대체로 팀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합니다. 좋은 사람들이 모인 팀은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잘 이겨낼 거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초기 단계의 정부 지원 사업은 프로덕트의 성과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됩니다. 비슷한 사업계획서 사이에서 성과를 내는 프로덕트가 있다는 점은 큰 차별화 포인트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프로덕트와 사람을 갖춘 팀은 쉽게 자금 조달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케팅, 팀원 동기 부여, 사업 고도화 등 다양한 부분에서 큰 이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푸른망아지 초기에 프로덕트, 사람에 집중한 방식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프로덕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핵심적인 가설 빠르게 검증하기

푸른망아지의 메인 프로덕트 ‘너만의 우주, 푸망’은 심리검사를 통해 나를 알아갈 수 있는 자아탐구 플랫폼입니다. 2020년 12월 런칭하여 첫 달부터 매달 100만 명 이상의 사용자가 방문합니다.

푸망 메인페이지(좌), 심리테스트 상세페이지(우)

이 정도 규모의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방문한다는 것은 초기 스타트업에게 쉽지 않은 성과인데요. 저희가 이 프로덕트를 만드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까요? 놀랍게도 2주가 조금 안 걸렸습니다. 디자인에 1주일, 개발에 1주일이 소요되었습니다.

푸른망아지가 빠르게 초기 프로덕트를 개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핵심 가설만을 검증할 수 있는 간결한 프로덕트를 기획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플랫폼을 개발할 당시에는 심리테스트 열풍이 뜨거웠습니다. 2020년에만 100개가 넘는 심리테스트가 런칭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심지어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시된 모든 심리테스트를 아카이빙하고 있는 사이트가 없습니다. 심리테스트를 좋아하는 매니아 유저들은 새로운 심리테스트를 찾기 위해 여러 블로그나 카페를 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가설을 세웠습니다.

❓ 심리테스트가 모여있는 플랫폼에 대한 니즈가 있을까?

그리고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간결한 프로덕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프로덕트에는 많은 기능들이 생략되었습니다. 가령, 회원가입 기능은 있었지만 회원 탈퇴 기능은 없었습니다. 회원가입자가 없다면 회원 탈퇴 기능은 불필요한 기능이고, 운이 좋게 많은 사용자들이 회원가입을 해준다면 빠르게 탈퇴 기능을 추가하면 됐기 때문입니다. 당장 불필요한 기능은 제외하고 오로지 ‘심리테스트 헤비유저들이 메인화면에 진입하면 테스트를 플레이할까?’라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프로덕트를 제작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메인화면에 유입된 사용자의 80%가량이 심리테스트 섬네일을 터치하고 테스트를 플레이했습니다.

[퍼널 분석] 메인페이지 ⇒ 심리테스트 디테일 페이지 ⇒ 심리테스트 플레이

푸망은 이후에도 추가 기능 개발을 스프린트 형식으로 진행하며 각 스프린트의 핵심 가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스프린트가 1달 내로 끊기며 간결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숫자로 평가하기

푸른망아지의 프로덕트에 대한 두 번째 철학은 ‘성과는 숫자로 평가한다’입니다. 성과를 숫자로 평가하는 것에는 다양한 이점이 있습니다. 숫자는 객관적입니다. 앞서 푸망 메 페이지 방문자의 심리테스트 플레이율은 80%에 달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IT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사용자 여정을 분석해 본 사람이라면 이게 정말 높은 수치임을 알 것입니다. 메인 화면 ~ 디테일 화면까지의 여정에서 많은 이탈 포인트가 있음에도 이러한 수치를 보인다는 것은 종합 심리테스트 플랫폼에 대한 사용자의 니즈가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홈페이지 이쁘게 잘 나왔는데’, ‘망디가 귀여워서 사용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와 같은 정성적인 평가 방식에 비해 훨씬 정확하게 프로덕트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숫자는 측정 가능합니다. 측정 가능하기 때문에 무엇이 더 좋은 옵션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AB 테스트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푸망 초기에는 심리테스트 결과 페이지의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레이아웃을 시도했습니다. 심리테스트 결과 페이지는 사용자들에게 심리 결과를 잘 전달하면서 콘텐츠 공유, 광고 클릭을 유도해야 합니다.

[AB TEST] 심리테스트 결과페이지 하단 고정 네비게이션 유효성 검증

그렇다면 심리테스트 공유하기 버튼은 페이지 하단부에 들어가거나(위 이미지 Layout A) 스크롤 위치와 상관없이 하단의 고정된 영역(위 이미지 Layout B)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희는 더 좋은 레이아웃을 찾기 위해 AB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위의 표와 같이 하단의 고정된 영역(Layout B)이 더 많은 공유를 유도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Layout B는 광고 클릭 수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약 3.5% 높은 공유 클릭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저희는 숫자를 기반으로 AB 테스트를 수행하며 심리테스트 레이아웃을 고도화하였습니다.

  1. 프로덕트 개발은 최대한 짧은 주기로 실행한다.
  2. 프로덕트에 대한 평가는 숫자로 한다.

이 두 가지가 푸른망아지 초창기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프로덕트 개발 대원칙입니다. 저는 이러한 프로세스가 진화론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유전정보는 대를 거듭하며 변이가 발생하고 생존에 유리한 변이가 살아남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프로덕트 개발은 생존에 유리할 것 같 같은 변이를 의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개발 전략은 성과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들이 한번 시도할 때 두 번 시도하고 실패하더라도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넘어간다면 그다음 시도는 더 의미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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