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 자산 (Open Asset)으로서의 블록체인/암호화폐

Kain Seo
Clay
Published in
8 min readFeb 17, 2019

들어가며

‘블록체인 업계’는 이제 증명의 단계로 들어섰다. 이제는 더 이상 니즈없는 이념들이나, 기술적 스펙에 대한 논의들은 큰 의미가 없고, 쓸모있는 것은 무엇이고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는 왜 필요한 것인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개방형 자산(Open Asset)’으로서의 암호화폐들의 속성에 대해 논해보려 한다. 이는 새로운 무언가를 칭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비트코인, 이더리움, EOS, 그리고 수많은 Token들과 같은 기존의 ‘암호화폐’ 혹은 ‘디지털 자산’에 대한 새로운 명명이다.

기존의 이름들 — 가상화폐, 암호화폐, 디지털자산 — 이 담고있는 함의가 너무 좁거나,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를 다시 생각해보며 명명한 것이다. 모두가 이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우리가 여기서 좋은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본다.

왜 Open Asset인가?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 안에서 일하며 나는 오랫동안 질문해왔다.

“굳이 중앙화된 포인트/마일리지(도토리, CJ ONE 포인트, …)를 쓰지 않고 Tokenize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름 많은 대답들을 들었지만, 그 대부분은 내게 큰 울림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탈중앙화 이념때문에? 사용자들과 니즈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토큰 이코노미? 사용자 보상은 어떻게 해도 Key Feature가 될 수 없다. 또한 그 토큰이 거래소에 상장하는 순간 그 이코노미는 종속되고 망가진다. 그리고 단순하게 사용자 보상을 주고싶다면 굳이 블록체인 상의 Token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블록체인이라서, 암호화폐라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Open Asset 으로의 측면. 즉, 어떤 곳에서 쓰이는 자산 혹은 그 인프라를 아무 허락없이/혹은 매우 쉽게 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Open Asset에서 발생하는 무한한 가능성

무엇이 Open인가? 1) 다른 서비스에서 쓰이는 자산을 내가 가져다가 응용할 수 있다. 2) 블록체인 상의 계정 정보와 Transaction 또한 쉽게 알 수 있다.

복잡하게 설명할 것 없이, 그냥 간단한 Case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보자. 가장 파워풀하고 적절한 케이스라고 생각한, 카카오와 클레이튼의 상황을 내맘대로 만들어보기로 한다. (이 글의 포인트는 허락이 없다는 것이니 허락없이 대입해보았다. 혹시나 난처해하실 관계자분들 계시다면 죄송합니다...)

  1. 카카오프렌즈/아이유 Collectible 발행
굿즈(Goods)는 엔터테인먼트(연예, 스포츠, 게임, …) 산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카카오프렌즈와 아이유(카카오M 소속)의 굿즈를 ERC-721 형태로 만들고, 이를 가챠를 통해 뽑을 수 있도록 한다. 쉽게 말해 NBA/MLB 카드 비즈니스를 보유 IP와 연동하여 만드는 것이라 보면 된다. 굿즈를 뽑는 가챠 상자는(클레이튼의 클레이 토큰으로만 살 수 있도록 하면 금상첨화) IP보유사의 직접 매출로 줄 것이다.

블록체인 상의 토큰은 복제가 불가능하고, 소유 증명을 매우 쉽게 할 수 있기에, 기존 굿즈의 문제들을 쉽게 해결하는 큰 장점을 가진다. 또한 카카오톡 내의 암호화폐 지갑을 통해, 내가 어떤 굿즈를 가지고 있는지 멋지게 보여줄 수 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설정할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

예를 들어 내가 콘서트 맨 앞자리 예매에 성공했을 때만 받을 수 있는, 혹은 음반 구매 시 1% 확률로 나오는 7성 아이유 레어카드를 모두에게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레어카드 소지자에게만 보이는 동영상/음성 메시지는 덤이다. 카카오에서 만드는 다른 서비스나 게임의 보상으로도 카카오프렌즈/아이유 굿즈를 선물해줄 수 있을 것이다.

2. 자동적으로 생기는 Third-Party 생태계

ERC-721 형태로 만들어진 굿즈는, 카카오가 허용하건 말건 다른 곳으로 옮겨질 수 있고 응용될 수 있다. 즉 누구든 굿즈에 대한 거래소를 만들거나, 굿즈를 가지고 하는 카드 게임이나, 그걸 걸고 하는 경마게임 등등을 만들 수 있다.

내가 총괄책임자라면, 굿즈 거래소, 굿즈 지갑과 같은 공식적이고 핵심적인 비즈니스는 직접 하여 수수료 매출을 챙기고, 그 외의 것들은 놔둘 것이다. 어차피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카오프렌즈나 아이유가 가지는 IP의 굉장한 매력 때문에, 수많은 서드파티 에코시스템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증폭되며,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굉장히 많은 트랜잭션이 발생될 것이고, 이것의 Volume을 측정해본다면 어떨까. (기존의 아이돌 굿즈는 한번 팔리고 나면 ‘똥값’이 되어 별로 추가 시장기회가 발생하지 않는다)

나라면 SNS도 하나 기획해볼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블록체인 계정 하나씩을 가지고 카카오ID 와 연동되어있고, 그 Transaction들이 공개되어있다면, 그것을 소재로 한 특화된 SNS를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Venmo가 사람들의 송금 내역을 Feed로 만들었던 것 처럼, 내가 가진 Open Asset들과 그 트랜잭션을 소재로 한 담벼락을 만들고, 이를 소재로한 이야기들이 유통되는 재미있는 환경을 만들어볼 수 있을지도.

이 환경에서는 새로운 맥락의 페이스북, 카카오톡, 그리고 인스타그램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직접 할 수 있고, 서드파티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생태계를 만들어볼 수 있다. 애초에 블록체인 암호화폐 어쩌구에서 벗어나, 카카오 본사 입장에서 해볼만한 새로운, 파워풀한 신사업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카카오 주가도 확 오를 수 있을 것인가?)

venmo는 Transaction 을 담벼락 형태로 친구들과 손쉽게 공유할 수 있다

닭과 달걀은 무엇인가?

사실 이와 비슷한 생태계는 작년 8월 Cryptokitties 팀의 Kittyverse 에서 제안된 바 있다. ERC-721 토큰인 크립토키티의 고양이들을 가지고 누구든 경마게임, 카드게임들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키운 고양이로 할 수 있는 서드파티 경마게임인 Kittyrace

물론 애초에 블록체인 서비스들이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들 — 요컨대 UX나, 트랜잭션 처리 속도, 수수료 등의 — 장벽들도 있지만, 사실 더 부족한 것들은 사람들이 굳이 그 토큰들을 소유할 이유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Cryptokitties나 EOSKnight과 같은 게임이 선전한다고 해도, 이 자산들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와 얻었을 때의 뿌듯함은 턱없이 부족하다. 애초에 현재 DApp은 App처럼 편하고, 재밌기 힘들다. 즉 달걀이 닭이 되기는 굉장히 힘든 상황이라 본다. (여러가지 UX, 기술적 문제가 해결되려면 2~3년 이상 걸릴 듯 하다)

개인적으로 지금이야말로 카카오, 라인(혹은 매력적인 IP를 지닌 그 어떤 대기업)과 같은 닭 입장에서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싶다. 달걀이 닭이 되기는 아직 너무나 춥고 척박하다. 닭이 낳은 황금알이 황금닭이 되고, 이를 통해 모두가 가능성을 볼 수 있길 기대해봐야 하지 않을까. (클레이튼, 링크 담당자 분들 응원합니다)

더 많은 연구와 시도가 필요하다

이 글의 사례에서는 ERC-721과 같은 Collectible에 한정한 감이 있는데, 물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EOS나 ERC-20들과 같은 다른 자산들에 대해서도 해당될 수 있다. 다만 Collectible에 비해서는 그 니즈와 장점이 조금 약해보이긴 하다.

CJ와 해피포인트가 힘을 합쳐 CSP라는 포인트 토큰을 만들면 어떠할까.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지정된 곳에서만 쓸 수 있게 되면서도, 추후에 OK캐시백을 지원한다면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매우 간단하게 연동이 가능할 것이다. 포인트 형태로 이루어진 DB를 서로 Migration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공사일지 상상해본다면… 무언가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모든 게임에서 쓰이는 재화를 하나의 포인트로 묶고자 했던 넥슨캐시의 비전은 어떠한가. 넥슨캐시를 쓰고자 하는 다른 서드파티 개발사들도 쉽게 끌어들일 수 있고… 뭔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Open Asset 이라는 특징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더욱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는 기존 IP/비즈니스의 파워, 이를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효과가 있어야만 유의미한 성과를 당장 낼 수 있어보인다는 것이 아쉽다.

굉장히 힘들지만 달걀을 병아리로 부화시키고 닭으로 어떻게든 만들어야 하는것일까, 아니면 닭이 달걀을 많이 낳도록 노력해야 할까. 우리 모두는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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