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연출가의 xR 영화제 경험담

JISUN NAM
ixi media
Published in
6 min readJan 18, 2021

저는 오페라, 음악 공연, 연극, 이벤트, 전시회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가나 작곡가처럼 기술적인 직접 창작자가 있다면 공연 연출가란 전체 콘셉트를 창조하는 역할, 속된 말로 ‘빅 픽처’를 그려내는 영화의 감독 같은 일을 합니다. 작품이란 하나의 창조된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출가는 그 세계에 가수나 배우, 음악과 조명, 그 외 다양한 기법이나 장치를 활용하여 관객에게 주제를 전달하는 일을 합니다.

역사에 남을만한 코로나19 상황으로 공연계는 큰 시련을 맞았습니다. 거리두기라는 어색한 표현이 어느 때보다 널리 쓰이고 관객 없는 무대라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현실이 다가왔습니다. 고통의 종식을 기원하지만 끝맺음은 요원해보이고 우리는 이 고난에 적응하고 진화하는 편이 오히려 현명하리라 생각해봅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길에서 귀여운 몬스터를 수집하는 게임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GPS를 활용한 AR 구현으로 알고 있는데 성능 좋아진 스마트폰과 함께 전 세계를 강타했었습니다. 이처럼 AR이나 VR 등 xR 기술은 스마트폰이나 게임기를 통해 누구나 경험해봤음직한 기술입니다. 그러나 애호가 사이에서 유행했던 과거와는 달리 코로나19 이후로 비대면 사회가 찾아오며 이제 원하던 원치 않던 경험하게 될 기술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저는 흥미로운 전시를 보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그간의 단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거추장스럽게 HMD를 쓰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극장에 앉아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것에 비해 얼마나 차별화 된 경험이 될 수 있을지 우려섞인 마음을 품은 채 시작한 발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우려가 민망할 만큼 수준 높은 경험과 미래에 대한 기대와 과제를 품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인천공항 Beyond Reality 전시장 안의 남지선 연출가

인천공항에서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xR 섹션인 ‘BEYOND REALITY’와 프랑스 문화원이 함께 준비한 ‘BEYOND REALITY over Incheon Airport’ 전시가 열리고 있었고 저는 여기서 다양한 세계를 만났습니다. 프랑스 파리와 에베레스트 산은 물론, 불과 방 하나 정도의 공간에서 태양계 행성을 공전시키고 우주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거장 화가의 2D 세계를 재해석된 3D 공간에서 체험할 수도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특히 ‘더 라인’이라는 작품의 완성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기승전결의 드라마적 요소가 적절하여 다음 장면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몰입도가 높아졌습니다. 참여를 유도하여 인터랙션이 이루어지기에 흥미를 더할 수 있었고 단순히 감상만하기에 거추장스러울 수 있는 디바이스의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한 훌륭한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한편 몰입도가 떨어지는 작품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었습니다. 제게는 드라마적 요소가 아닌 기술적인 요소였는데 실사 화면의 해상도나 3D의 정밀도(완성도)가 떨어져서 사실감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때 몰입도가 확연히 떨어졌습니다. 풀HD나 4K 해상도가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낮은 완성도나 해상도로 구현된 화면은 거추장스러운 HMD를 더욱 거추장스럽게 만드는 장해 요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감각 중 시각과 청각으로만 체험을 해야 하기에 나타나는 특성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다른 매력을 부각시킨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xR 기술 구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공연 연출가로서 생각하기에 공연 예술과 xR과의 결합은 여러 차원과 단계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실 무대와 xR디바이스 간의 차원에서는 공연을 디바이스로 평면 감상(낮은 단계)하거나 3D로 감상(높은 단계)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고 현실 무대에 xR을 도입하는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대배우, 명가수를 바로 옆이나 뒤에서 보는 경험은 TV나 무대에서는 쉽지 않은 색다른 경험이 될 것입니다. 참여도 차원에서도 생각해봄직 합니다.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단순 참여(낮은 단계)나 결과에 영향을 주는 인터랙션적인 적극 참여(높은 단계)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고민에 더해 경영 측면을 고려하는 것도 필수일 것입니다. 1인마다 점유해야하는 공간이 있고 15분짜리 작품이라면 전후 준비까지 감안하여 1시간당 불과 3명 정도만 체험이 가능하고 하루 내내 관객이 끊이지 않는다 해도 최대 20~30명 정도만 수용 가능할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 작품 활동을 위한 경영적 고민이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VOD 방식의 서비스 제공이 아무래도 가장 가시적인 대안이라는 생각이 우선 듭니다.

이 시점에서 XR 관련자들은 3D(입체) TV의 실패를 상기해야할 것입니다. 한 때 가정용 입체 TV가 대유행하고 입체 안경을 쓰고 집에서 입체 영화를 보는 것이 유행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유행은 몇 년 가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3D TV로 더 이상 경쟁하지 않으며 심지어 3D TV 제작을 중단한 업체들도 적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번거로움을 극복할만한 콘텐츠의 부재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물론 xR은 평면 디스플레이에 구현된 착시적 3D가 아니기에 상황이 다릅니다. xR 디바이스는 언젠가 대중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번거로움을 극복할만한 완성도 높은 작품의 생산 또한 중요한 과제입니다.

연출가는 가상현실을 창조하여 관객의 현실에서 경험하게 해주는 일에 특화된 사람입니다.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며 수많은 서사와 음악, 갈등과 감정이 담긴 세계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가상입니다. 얼마나 가상을 현실처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그 세계의 완성도, 관객의 몰입도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제작할 xR 콘텐츠의 주제에 관련 있는 연출가의 손길이 더해진다면 완성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Beyond Reality 전시작 ‘Dreaming Maestro’를 경험하고 있는 남지선 연출가

아무쪼록 이번 BEYOND REALITY를 통해 기대보다 발전한 xR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특히 예술적 깊이가 더해진 xR 작품들을 보며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할만한 장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이 대열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욕을 품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토록 빼어난 작품들을 선별해주신 영화제 관계자들에게 감사 말씀 드리며 감상을 마치겠습니다.

남지선 연출가는 성악 및 오페라 연출을 전공하고 다양한 공연 장르의 현장에서 21년 간활동해왔습니다. 최근에는 2020 세계유산축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가치향유 프로그램 만장굴아트프로젝트를 연출했습니다. 공연 부문의 전방위적인 경력을 가지고 xR분야와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귀한 재원입니다. (ixi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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