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현존의 언어 : 거인이 된 관객

VR영화의 스토리텔링 Ep.2

Che Minhyuk
ixi media
9 min readJan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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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 스토리 현존의 언어 : Intro

인형의 집

VR 스토리텔링의 언어를 관객 경험의 혁명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 이 시리즈의 첫번째 에피소드는 관객을 거인처럼 만드는 ‘인형의 집’ 스타일에 대한 것이다. 미니어쳐 크기의 작은 집 안을 들여다 보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캐릭터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고, 그들이 사는 세계에 나 또한 몸을 담그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경험은 펜로즈(Penrose) 스튜디오의 <The Rose and I>(2016), <알루멧(Allumette)>(2016), <Arden’s Wake>와 같은 작품들을 시초로 해서 아틀라스V(AtlasV)의 <Gloomy Eyes>(2019) 연작을 통해 공고한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뚜렷하게 스크린 기반의 관람 방식에서는 할 수 없는 체험의 방식을 만들어 내며 최근 만들어진 <Minimum Mass>(2020), <Paper Birds>(2020), <Gravity VR>(2020) 같은 작품에까지 계승되고 지속적으로 발전되고 있는 문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가지 감각

‘인형의 집’ 스타일 VR 스토리의 매력요소는

첫째, 거인이 된 관객의 능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3인칭 시점의 경험을 확장하고 재발명 한다는 것이다. ‘인형의 집’ 스타일 작품은 캐릭터가 살고 있는 세계를 미니어쳐로 만들어 버렸기에 관객은 원하는대로 공간 전체를 멀리서 조망하거나 캐릭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카메라의 눈을 통해 세계의 일부를 프레이밍하고 편집의 언어를 통해 공간을 직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걸리버’와 같은 커다란 존재의 시선이 되어 스토리 세계 속을 활보하는 셈이다. <Arden’s Wake>에서 관객은 건물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 집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캐릭터의 개인적인 공간 속으로 고개를 넣었다가 한 걸음 물러나 세계의 광경을 지켜보기도 하는 관객의 움직임은 자신의 몸을 스토리 경험의 인터페이스로 만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rden’s Wake (출처 : The Verge)

둘째, ‘거인’이 된 관객은 ‘소인’이 된 캐릭터에게 기존 스토리 경험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친밀감을 느끼는 것 같다. 미니어쳐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볼 때 관객의 마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인지과학적으로 연구한 사례를 아직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관객과 동일한 크기의 캐릭터를 스크린으로 바라보던 때와는 사뭇 다른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Gloomy Eyes>의 좀비 소년 ‘글루미’와 인간 소녀 ‘니나’의 귀엽고 재치 넘치는 데이트 장면을 볼 때 관객이 느끼게 되는 ‘매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들 커플이 손가락 만한 크기였기에 그들 움직임 하나하나가 너무 귀엽고, 다시 그 귀여움으로부터 그들의 여정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싶다고 혹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되는 것은 아닐까.

글루미 아이즈 속 두 커플 (출처 : VRFocus)

셋째, 서사에 대한 관객의 참여 문제에 있어서 능동적인 개입과 수동적인 관전 사이의 딜레마를 해소한다. 말하자면 ‘인형의 집’ 스타일 콘텐츠를 감상하는 관객은 이머시브 연극의 관객처럼 일종의 ‘인터랙티브한 구경꾼’이 되는 것이다. 현실세계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감각으로 말이다. 종종 VR 스토리텔러들은 ‘관객이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주고자 게임적인 요소를 가져 오다가 정작 이야기에 대한 몰입을 유지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인형의 집을 내려다 보는 관객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경험하면서도 이야기에 대한 몰입을 방해받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인터랙션의 룰에 대해 의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직관적이다. <미니멈 매스(Minimum Mass)>처럼 무대 자체를 회전시킬 수 있다는 것은 보너스 기능이다. 아마도 관객 자신이 거인이라는 입장을 무의식적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혹은 재매개된 인형의 집이나 디오라마의 형식이 문화적으로 꽤나 익숙하기 때문에 그러한 관람 태도를 쉽게 끌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미니멈 매스 (출처 : 3dvf.com)

최근의 변화 양상

초기 작품과 최근 작품들을 비교해보며 문법의 발전 양상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다. 최근작으로 올수록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무대를 강조하고 나머지 공간은 생략하고 지워 나가는 연출의 경향이 두드러진다. 연속적인 하나의 세계 안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관객들이 선택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드는 대신 연출자의 뚜렷한 의도대로 씬 전환을 이끌어 가기 위해 무대들을 3차원 공간에 배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Gloomy Eyes>는 관객들이 어디부터 봐야할 지 고민할 필요없이 두 눈이 빛나는 글루미만 잘 따라가면 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오직 현재 사건이 발생하는 곳만 연극무대처럼 불을 밝히고 다른 곳은 암흑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관객들의 시선은 밝은 무대로 향할 수밖에 없고 그 빛을 따라가다 보면 허공에 떠 있는 하나의 무대에서 다른 무대로 이어지는 것은 물 흐르듯 매끄럽게 느껴진다. 시간을 점프하거나 공간이 바뀌어도 허용된다. 말하자면 나를 중심으로 한 3차원 공간에 펼쳐지는 살아있는 디오라마 애니메이션같다.

중세 고딕 예술에서는 한 폭의 그림이 묘사하고자 하는 ‘가상현실’을 오롯이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객이 그림의 여러 곳을 살피며 지나가야만 했다고 한다. 반면 르네상스 예술에서는 투시화법을 통해 화면의 모든 공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전자의 원리가 확산과 병렬이었다면 후자는 집중과 종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인형의 집’ 스타일은 관객경험 측면에서는 스펙타클에 대한 집중과 종속을 향해 나아가는 한편, 공간의 성질은 점점 더 불균질한 공간, 즉 변형의 공간을 지향해 나간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관객이 스토리를 따라가는 즐거움을 높이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발전되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거인이 된 관객이 스토리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을 발굴하는 시도도 지속되길 기대해 본다. 우리는 이미 초창기 작품인 <Allumette>에서 하나의 좋은 모델을 경험한 바가 있는데, 윗쪽 동네에 사는 딸과 엄마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과 아래 마을 광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처음에는 평행하게 진행된다. 관객은 두 곳에 위치한 카메라와 교차편집이 해왔을 법한 일을 관객 자신의 시선과 몸의 움직임을 통해 체험하다가 두 사건이 만나서 형성하는 위기의 소용돌이에 빨려든다. 그리고 관객 마다 다른 결을 가진 ‘딸을 떠나야 하는 엄마의 딜레마’에 대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스토리에 몸을 담근 신

한편 시선의 선택이 만드는 다양한 경험의 가능성 외에도 캐릭터가 겪는 ‘위기’에 대한 감정 몰입의 매커니즘이 기존의 매체와는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생각해 본다. 예컨데 <Gloomy Eyes>에서 ‘니나’의 삼촌이 불러일으키는 위기가 스펙타클해 보이기는 하지만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안타고니스트라고 해봐야 나의 손바닥 안에 있는 존재니까. 아마도 관객은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 현존감 때문에 캐릭터에 동일시하는 같은 처지의 ‘인간’이라기 보다는 극 바깥에 있는 ‘신’의 입장을 무의식적으로 더욱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러한 신의 입장에서 내려다 보는 캐릭터의 ‘위기'는 관객을 다른 차원의 경험으로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2020년 베니스영화제 베스트 VR경험상을 수상한 <The Line>처럼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어 테이블 게임을 하듯이 페드로가 위기를 넘어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체험도 하나의 재밌는 형식일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인터페이스를 끌어들이는 것 보다 필자의 관심이 머무는 곳은 관객의 자리인 ‘어둠’ 속에 잠재되어 있는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들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캐릭터들의 무대 바깥, 그러니까 가상공간의 내부이기는 하지만 극이 진행되고 있는 무대 바깥으로 밀려난 ‘부정의 영역’에서 느끼는 관객의 현존감은 <페이퍼버드(Paper Birds)>에서 새로운 경험의 캔버스가 된다. 주인공 토토가 연주하는 음악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가 드러날 때마다 신의 입장이었던 관객은 소년의 음악에 맞춰 환상을 그려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관객이 서 있는 공간은, 캐릭터의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 사이에 있는 환상과 긴장의 공간으로 역동한다.

페이퍼버드 (출처 : https://www.labiennale.org/en/cinema/2020/venice-vr-expanded/paper-birds)

모든 것이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세계 속에 함께 몸을 담그고 캐릭터들을 들여다 보는 <그래비티(Gravity) VR>의 경험 또한 새로운 감각을 체험하도록 만든다. 서로 생각이 너무도 다르지만 줄로 연결된 채 간신히 일상을 살아가던 두 형제는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데 그들이 분리되는 위기의 순간 관객은 과연 누구를 따라 날아갈 것인지(혹은 함께 추락할것인지) 선택하기를 요청 받는다.

개인적으로 관객의 현존을 위한 상상력을 닫아두는 것보다 열어두는 방향의 작품들에 지지를 보낸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 자신의 세상이 거짓이었다고 깨닫고 세상의 끝으로 노를 저어오는 트루먼 같은 캐릭터가 ‘인형의 집’ 스타일의 주인공이라면 어떨지 생각해본다. 관객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따지는 캐릭터에게 위기를 부여할지 아닐지 선택해야하는 입장이라면 어떨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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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 Minhyuk
ixi media

VR Film Director, Immersive Storyteller, Volumetric Capture Produc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