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까지 한 걸음(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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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min readFeb 1, 2021

Ep03. 오아시스가 되기 위해 필요한 사용자 경험요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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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1. 오아시스, 그리고 메타버스

Ep02. 오아시스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콘텐츠는?

1. 업데이트(since 2020.10)

지난 두 번의 포스팅을 통해 1)‘오아시스’는 먼 미래에나 가능한 허구적 개념이 아니라 바로 우리 코 앞까지 다가온 실체라는 것, 그리고 2)‘오아시스’를 대세로 이끌 소위 ‘킬러 콘텐츠’는 소수의 프리미엄 콘텐츠라기 보다는 지금의 ‘유튜브’처럼 다수의 사용자들이 직접 가상현실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시킬 수 있게끔 해주는 ‘오픈소스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나눴다. 뒤이어 이번 세번째 포스팅에서는 ‘오아시스’를 기존의 다른 온라인 경험과 차별화 시키는 사용자 경험 요소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처음 포스팅을 한 후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메타버스’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크게 커졌다. 연말 ‘메타버스’를 주요 토픽으로 다루는 컨퍼런스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더니 새해를 맞아 온라인으로 개최된 CES와 바로 얼마 전 끝난 벤처비트의 ‘Into the Metaverse’ 컨퍼런스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예 ‘메타버스’를 전면에 내세운 책도 출간됐고 메이져 언론들, 실리콘밸리 소식을 전해주던 뉴스 사이트, IT 미래 트렌드를 주로 다루던 국내 유명 미래학자까지 다들 ‘메타버스’를 화두로 삼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무척 흥미롭고 반갑기도 하지만 동시에 ‘메타버스’에 대한 오해도 커지는 듯한 느낌도 들어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1/27~28일 양 일간 온라인에서 무료로 열린 ‘Into the Metaverse’ 컨퍼런스 모습. 이틀에 걸쳐 현존하는 메타버스 관련 전문가 및 업계 최전선 종사자들이 총출동하여 그들의 고민과 통찰을 전달해주었다. 총 16시간에 달하는 전체 영상은 현재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다. (Day 1 영상, Day 2 영상)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제목을 ‘오아시스까지 한 걸음’이라고 했던 이유는 말 그대로 이제 앞으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오아시스’에 도달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였다. 특히 이제는 메타버스의 대명사 격이 되어버린 ‘포트나이트’,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제페토’를 통해 앞으로 완성될 메타버스의 모습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는 돌려 말하면 지금의 메타버스 서비스들이 현재 상태로 완성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오아시스까지 ‘한 걸음’ 남았다는 건 아직 더 나아가야 할 ‘한 걸음’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포트나이트의 ‘트래비스 스캇’ 공연을 PC로 보게 됐을 때 들었던 생각은 ‘그래 이제 미래가 왔다!’가 아니라 ‘그래, 저런 걸 VR로 보고 즐기는 세상이 이제 곧 오겠구나!’ 였다. 실제로 미래를 본 것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사에서 열린 ‘로스트 호라이즌 페스티벌’과 볼류메트릭 비디오 콘서트인 ‘All Kinds of Limbo’였다. 메타버스, 혹은 오아시스 경험은 실시간 게임엔진으로 구동되는 화려한 그래픽을 평면 스크린으로 감상하는 정도로 대충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경험은 내가 직접 그곳에 간 듯한 기분, 요즘 우리가 너무 많이 쓰고 있어 오히려 의미가 불분명해지고 있는 ‘실감’, 즉 ‘현존감(Presence)’이 발생해야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7월에 개최된 로스트 호라이즌 페스티벌 중 DJ 페기 구 세션 영상

“오아시스를 성공으로 이끈 열쇠는 GSS가 개발한 두 가지 새로운 인터페이스 장치였다. 두 장치 모두 시뮬레이션에 접속하기 위해 꼭 필요했다. 바로 오아시스 바이저와 햅틱 장갑이었다.

(중략)

무선 바이저는 일반 선글라스보다 약간 더 컸고 누구에게나 맞도록 크기가 자동으로 조절되었다. 바이저는 인체에 무해한 저전력 레이저를 사용해서 오아시스의 실감 나는 환경을 유저의 망막에 투사함으로써 눈의 가시 범위 전체를 자극해 가상세계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었다.

(중략)

초경량 햅틱 장갑 역시 마찬가지였다 . 햅틱 장갑으로 유저는 아바타의 손을 직접 조종할수 있었고 실제로 가상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처럼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 할 수 있었다 .물건을 집거나 문을 열거나 우주선을 조종할 때면 햅틱 장갑은 존재하지도 않는 물건과 표면을 진짜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처럼 만지게 해주었다.”

2. 오아시스 경험은 6축 경험이다

다시 ‘디바이스’ 중심적 사고로 돌아가는 것은 여전히 경계하지만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오아시스’를 성공으로 이끈 열쇠로 ‘인터페이스 장치’를 언급했던 이유는 기존 온라인 경험과 차별화되는 경험이 바로 그 장치들을 통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차별화되는 경험’이란 바로 ‘6축 경험’이다.

6축 경험이란 평면적인 스크린을 상하좌우로 둘러보는 것에 더해 스크린 속으로, 깊이 방향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경험을 일컫는다. 깊이 방향의 경험이 가능해지면 기존 미디어 경험은 2차원적인(평면적인) 경험에서 3차원적인(입체적인) 공간 경험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때 미디어 경험이 공간적 경험이 된다는 의미는 실제 경험과 미디어 경험, 혹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경험의 경계가 허물어지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6축 경험은 우리가 물리적 현실세계를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형태로 미디어 경험, 혹은 온라인 경험을 할 수 있게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6축 경험에 대한 개념도 (출처 : 퀄컴, 2017년)

‘혁명’이라는 단어도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하긴 했지만 6축 경험은 말 그대로 인류 역사를 통털어 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경험 요소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백년, 혹은 수천년 동안 인류는 현실세계의 ‘깊이 방향’을 재현할 기술이 없어서 그러한 ‘깊이감’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여러 장치를 개발해 활용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원근법’이다. 원근법적 회화, 사진, 그리고 영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2차원 평면을 통해 3차원을 경험하는 여러 기술을 발전시켰고 그렇게 보는 법을 학습해왔다. (그렇다. 2차원을 통해 3차원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류가 현실 세계의 ‘깊이 정보’를 기록할 수 있고 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2차원 평면에 3차원을 옮기는 일은 필요없게 된다. 곧바로 3차원을 제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즉각적으로 3차원 공간을 인지하고 그 공간에 적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어떤 디바이스를 통해서건 일단 ‘3차원 공간’이 눈 앞에 펼쳐지면 인류는 그 경험에 즉각적으로(본능적으로) 반응한다. 눈에 보이는 공간이 물리적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더라도, 현실 세계와 시각적으로 달라 보인다고 할 지라도 인간의 몸은 그 공간을 ‘실제 공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반응한다. 대부분의 인간이 보편적으로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은 지난 수십년 간 수많은 가상현실 연구자들의 실증을 통해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으신 분들은 책 ‘두렵지만 매력적인’을 참조하시길)

두렵지만 매력적인(원제 Experience On Demand) (출처 : 동아시아 페이스북)

지난 2019년 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한 ‘넥스트 콘텐츠 컨퍼런스’에 초청된 The Venture Reality Fund 창업자 티퍼탯 첸나바신(Tipatat Chennavasin)은 “6축 경험이 아니면 VR이 아니다”라는 사이다 발언으로 좌중을 놀래킨 적이 있다. 사실 국내건 해외건 XR 업계 내부에서도 ‘6축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때때로 이로 인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360도 영상이 VR이냐’ 하는 논쟁이다. (앞서 소개한 티퍼탯의 발언은 사실 이 논란에 대한 코멘트이기도 했다) 360도 영상은 6축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다. 물론 평면 스크린이 체험자를 뒤덮을 때 느끼게 되는 ‘몰입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오래된 기술인 ‘프로젝션 매핑’이 최근 대중적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360도 영상은 6축 경험을 제공할 수 없기에 새로운 미디어 경험에 속하기 보다는 기존 평면 스크린 기반 미디어 경험의 일부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6축 경험은 그냥 그게 멋진 경험이어서만이 아니라 오아시스 내의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어디에 자원을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오아시스, 혹은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공간을 제작할 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감’을 이루는 두 축인 ‘몰입(Immersive)’과 ‘상호작용(Interactive)’ 중 어느 쪽에 힘을 쏟을 지에 대해 고민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가상공간의 ‘실감’은 그곳의 룩이 얼마나 사실적인가(포토리얼리스틱한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6축 경험은 그 룩이 얼마나 사실적인가와는 관련이 없다.

6축 경험은 체험자의 움직임에 따라 주변 환경이 달라지는 경험이다. 산책을 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체험자가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하면 멀리있던 나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고 옆에 서 있던 사람은 점점 곁에서 멀어지는 게 느껴진다. 이건 이미 촬영된 영상을 확대하거나 축소해서 보는 경험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6축 경험은 나의 움직임에 따라 환경이 변화하고 그 변화된 모습을 실시간으로 제공해야만 구현가능하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상호작용 경험이다. 그러므로 상호작용의 구현이 몰입의 구현 보다 대부분 우선한다. 물론 이 두 요소를 모두 높이는 게 오아시스 경험을 만드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겠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둘 중 하나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면 우선 상호작용 구현에 집중해야 사람들에게 좀 더 효율적으로 가상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오아시스에 대한 힌트를 마인크래프트와 로블록스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두 게임은 지금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게임들의 평균적인 그래픽 수준에 비해서도 낮으면 낮았지 절대 높지 않다. 하지만 왜 훨씬 더 많은 사용자들이 더 그래픽이 뛰어난 게임 대신 이 게임을 선택하는가? 이 게임에서 제공하는 상호작용 경험의 수준이 다른 게임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물론 마인크래프트와 로블록스도 그래픽 퀄리티도 고려하고 있다. 알다시피 마인크래프트는 레이 트레이싱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로블록스 역시 차세대 그래픽 엔진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그게 미리 준비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2020년 12월 로블록스에서 열린 릴 나스(Lil Nas) 버추얼 콘서트 영상

‘6축 경험’이라는 개념이 물리적 현실세계를 지운 완전한 가상공간에서만 적용되는 개념이라고 이해하기 쉽지만 사실 AR에서도 이 개념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는 이미 드라마 ‘알함브라의 궁전’을 통해 AR의 이상향을 보았다. 이 드라마에서 제시된 경험이 지금 우리가 아는 스마트폰 AR 경험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6축 경험이라는 것이다. 즉 현실로 소환한 가상 캐릭터나 공간으로 내가 다가갈 수 있어야 하고 심지어 가상 캐릭터와 실제 현실의 공간이 반응해야만 6축 경험인 것이다. 최근 ‘볼류매트릭 비디오 제작기술’에 관심을 갖고 라이다 센서를 스마트폰에 붙이는 시도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6축 경험을 좀 더 원활히 제공하기 위함이다.

#. 콘트롤러

“나는 오락용 콘솔의 바이저와 햅틱 장갑을 착용한 채로 매트리스에 대자로 누웠다. 바이저를 통해 식서들의 데이터베이스가 3D 이미지로 보였고 수십 개의 데이터 창이 겹쳐져셔 열렸다. 나는 햅틱 장갑을 이용해 화면들을 조작하면서 데이터베이스 파일을 헤집기 시작했다.”

가상공간 내에서의 콘트롤러 사용, 이동의 문제 등도 6축 경험 상황에서 가장 편한 방식으로 디자인 되는 것이 중요하다. 가상공간에서의 UI를 이야기할 때 가장 쉽게 떠올리는 것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아이언맨>에서 보던 멀티 윈도우와 핸드 트래킹이다. 손으로 여러 개의 창을 띄우고 그걸 검색해보는 모습말이다. 하지만 이는 6축 환경을 이용하기보다는 6축 환경 내에서 평면 UI를 활용하는 경험에 가깝다.

영화 ‘아이언맨’ 속 홀로그램 멀티스크린 인터페이스 장면 (출처 : 핀터레스트)

일단 현실세계에서도 화면에 뭔가를 띄워놓고 그걸 가리키려는 목적이라면 레이져 포인터나 지시봉을 쓰는 게 그냥 손가락을 쓰는 것보다 더 편하고 정확하다. 오큘러스 퀘스트나 홀로렌즈 같은 장비는 현재 핸드 트래킹을 지원한다. 핸드트래킹의 인식률이 낮은 문제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콘트롤러로 더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핸드트래킹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 제시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로 손을 쓰는 방식은 뭔가에 잡거나 손 끝으로 뭔가를 느낄 때이다. 직접적인 접촉의 감각이 더 중요하다. 마치 마임을 하듯 뭔가에 닿지 않은 채 허공을 만지는 경험은 익숙치 않다. 따라서 가상공간 내에서 6축 경험과 연동하여 접촉 경험을 제공하고자 할 때 손은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라면 콘트롤러를 능가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해법은 <스타워즈:베이더 임모털>이나 <하프라이프:알릭스> 등에서 제시한 콘트롤 방식이다. 여기서는 맨손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콘트롤러를 사용하는 것도 아닌 염력을 사용한다. 즉 손을 뻗어 주변의 물건들을 내 쪽으로 끌어오거나 멀리 있는 물체를 직접 만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종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현실세계에서 직접 경험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배우고 적응할 수 있는 방식이고 일단 적응이 되면 정말 편하다는 점에서 6축 경험을 고려한 콘트롤러 디자인의 좋은 예가 아닐까 한다.

<하프라이프:알릭스>의 중력장갑 동영상

가상공간에서는 6축 경험이되 현실에서 불가능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몇 년 전 AWE(Augmented World Expo)라는 행사에서 ‘Superpowers to the People’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적이 있는데 실제 현실보다 더 편리한 초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느냐가 오아시스 경험의 차별성을 부여하는 주요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때 해당 ‘초능력’에 맥락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타워즈:베이더 임모털>에서 사용자는 처음부터 염력을 쓸 수 없다. 그것은 스타워즈 세계관의 핵심 요소인 ‘포스’를 내가 학습한 이후부터 가능하다. <하프라이프:알릭스> 역시 초능력은 이를 가능케 하는 ‘중력장갑’을 얻고 이를 착용한 뒤에나 가능하다. 우리가 현실에서는 초능력으로나 가능한 6축 경험 방식을 가상공간에서 제시하고자 할 때 왜 그 경험이 그곳에서 가능한 지 맥락을 부여하는 일은 항상 중요하다. 오아시스를 이야기 할 때 이것은 ‘플랫폼이자 콘텐츠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AWE가 사용하던 ‘Superpowers to the People’ 포스터 이미지 (출처 : Infinityleap.com)

#. 이동

“공중에 매달린 햅틱의자 바로 밑바닥에는 오카가미 런어라운드 전방위 트레드밀이 놓여있었다. 트레드밀은 가로세로 각 2미터인 정사각형으로 두께는 6센티미터였다. 장치를 켜면 어느 방향으로든 최대 속력으로 달릴 수 있었는데 절대 트레드밀 가장자리에는 닿을 수 없었다. 내가 방향을 바꾸면 트레드밀이 이를 감지하고 구르는 표면을 조정해 언제나 한 가운데에 서 있게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샙틱 테크놀로지 HC5000이라는 완전조절형 햅틱 의자에 앉아서 지냈다. 이 의자는 관절을 움직일 수 있는 로봇팔 두 개에 매달려 있었고 로봇팔은 각각 아파트 벽과 천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로봇팔은 의자를 네 방향의 어느 축으로든 회전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햅틱 의자에 앉아 벨트를 매면 몸이 뒤집히고 빙글빙글 돌고 흔들림으로써 추락하거나 비행하는 느낌은 물론 알타이르 VI의 네번째 위성에 있는 협곡 사이를 마하2의 속력으로 돌진하는 원자력 로켓썰매를 조종하는 느낌까지 온몸으로 전달되었다”

“(이머전) 베이는 작은 공 모양의 방이었다. 번쩍거리는 햅틱 의자는 천장에 부착된 다관절 유압 로봇팔에 매달려 있었다. 전방위 트레드밀은 없었다. 방 자체가 그런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로그인하고 있는 동안 어느 방향으로든 걷거나 달릴 수 있었으며 공 모양의 방 전체가 회전하면서 벽에 부딪히지 않게 막아주었다. 마치 거대한 햄스터 공 안에 있는 것과 같았다.”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상공간의 ‘이동’ 문제에 있어 멀미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거나 멀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물리적인 움직임을 다 커버할 수 있는 ‘전방향 트레드밀’ 같은 장비가 필요하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이런 장비를 만들려는 노력이 현재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그런 장비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일단 비싸고 무겁고 무엇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할 것이다.

6축 경험을 최소한의 공간에서 어떻게 자유롭게 즐기게 할 것인가는 문제는 상용화된 HMD가 등장한 직후부터 나온 이슈였다. 그렇게 해서 고안된 것이 ‘순간이동’이라는 초능력(Superpower)이었다. 콘트롤러 등을 통해 특정 포인트를 가리킨 다음 트리거를 누르거나 트리거를 떼면 그곳으로 순간이동하는 방식은 6축 경험을 가능케 하면서도 사용자의 이동반경을 최소화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멀미도 줄여준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가상공간의 표준 이동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이동방식이 가상공간 내 6축 경험에 대한 진입장벽을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방식은 걷기나 만지기처럼 아무런 학습없이 우리가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상공간 내 6축 경험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심지어 꽤나 경험이 많은 사람들도 ‘순간이동’ 방법을 익히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하프라이프:알릭스>도 마찬가지다. 이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사람들은 일단 사실적인 그래픽이 제시하는 주변 환경 묘사에 놀라고 눈 앞에 테이블 위에 있는 라디오를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과 주변의 물건들을 들어보거나 던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런데 정작 움직이지 못한다. 물론 자유이동 기능을 제공하기에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몇 발짝만 움직이면 보통 룸스케일 제한 경계선이 뜬다. 더 움직이면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벽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기존 PC나 콘솔 게임을 조작해본 사람들은 그때 손에 쥔 콘트롤러의 방향키를 움직여본다. 메뉴설정에서 방향키에 따른 이동이 설정되어 있다면 움직일 수 있지만 만약 순간이동으로 설정되어 있다면 작동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당황하고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면 좌절하고 심지어 바로 이 지점에서 가상경험에 대한 나쁜 인상을 가진 채 포기하게 된다.

<하프 라이프 : 알릭스>의 순간이동 방법 소개 (출처 : Servreality)

스마트폰의 터치 인터페이스나 PC의 마우스/키보드 인터페이스 또한 처음엔 익숙치 않은 경험이었고 그래서 그건 적응하면 될 문제라고 생각하는 쪽에서는 이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상세계에 ‘맥락’을 부여함으로써 사용자들이 조금이라도 덜 혼란을 겪게끔 하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텐더 클로우의 <언더 프레젠트>이다. 여기서는 우선 두 손에 쥔 콘트롤러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그 콘트롤러를 활용하여 주변 공간을 잡아당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여기서는 순간이동이 아니라 공간을 잡아당기는 개념이 적용된다. 마치 축지법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축지법을 활용해 가면이 있는 곳까지 가야만 하고 비로소 그 가면을 착용한 뒤에야 본격적인 경험이 시작된다. 이 정도의 학습만으로도 그 다음의 경험은 어렵지 않아진다. 그리고 <언더 프레젠트>의 세계는 이렇게 공간을 잡아당기고 변형시키는 경험을 계속 변주하며 다양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이곳의 축지법이 그냥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이곳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콘텐츠의 일부가 된다.

The Under Presents 초반부 플레이 영상 (출처 : Cammonkey)

만약 이동의 방식을 세계관으로 녹여내기 어렵다면 적어도 다양한 이동의 방식을 제공해주는 게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우리 역시 현실 세계에서 한 가지 방식으로만 이동하지 않는다. 걷거나 뛸 수도 있고 자전거나 자동차를 탈 수도 있다. 비행기를 탈 수도 있고 배를 탈 수도 있다. 가상공간에서도 6축 경험이 가능한 이러한 이동방식과 가상공간에서만 가능한 순간이동 같은 이동방식이 동시에 제공된다면 사용자의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3. 오아시스 경험은 ‘매개되지 않는’ 경험이다

“VR이 메타버스에서 중요한 이유는 평면 스크린이 제공할 수 없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기분”을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 — Jesse Schell (Schell Games)

가상공간에서의 6축 경험은 그저 홀로 다니는 경험은 아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사용자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과 다양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으며 가상공간이 ‘확장된 현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대부분 여기서 비롯된다. 오아시스 경험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아바타 경험은 이러한 소셜 경험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사실 싱글 플레이라면 아바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하프라이프:알릭스>가 그러하듯이 그냥 ‘손’만 보여도 충분하다. 가상공간에서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내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려고 할 때 비로소 아바타라는 게 중요해진다. 사람들이 이 아바타에 대해서도 얼마나 사실적일 수 있을지에 관심을 보인다. 얼마나 다양한 표정들을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동작들을 트래킹 할 수 있는지, 머리카락은 얼마나 찰랑거릴 수 있을지, 혓바닥을 내밀거나 이빨을 보일 수 있는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실감이 시각적 사실성 보다 상호작용성에 의해 우선적으로 형성된다는 원칙은 아바타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내가 마주하게 된 아바타가 머리만 동동 떠다니는 구형의 존재일지라도 실시간으로 목소리를 통해 대화할 수 있다거나 그 사람을 터치할 수 있다거나 그 사람과 사물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같은 공간에 그 사람과 내가 ‘같이 있다’는 느낌이 즉각적으로 생성된다. 그런 심리적 느낌은 상대방의 외형이 어느 정도나 사실적인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이미 형성된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표정도 변화하지 않는 ‘펭수’라던가 제페토 속 애니메이션 캐릭터화 된 ‘블랙핑크’, 웨이브 공연 속 존 레전드나 위켄드를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올해 선댄스 영화제 뉴프론티어가 열리는 버추얼 스페이스에서의 아바타 모습. 단순하다 못해 조악하게 보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의사소통에는 별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출처 : Digitalbodies)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기분’을 형성하는 데 있어 음성이 더 큰 영향을 주는 지 몸 동작이 더 영향을 주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둘이 결합될 때가 최선이지만 둘 중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할 지 고민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가상공간에서 ‘이머시브 공연’ 퍼포먼스를 할 때 이 이슈가 자주 부각된다. 가상공간에서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능을 의도적으로 차단한 채 몸으로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공연이 연출자의 의도를 더 충실히 반영하고 현실의 ‘언어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역시 서로 목소리를 주고 받을 때 가장 즉각적으로 실감을 체험했다. 그런데 음성이 중심이라면 과연 기존의 전화통화, 또는 줌과 같은 화상통화와는 무엇이 다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한 이유를 찾은 것은 아니지만 아바타와 결합된 상태에서 음성으로 대화를 주고 받을 때 전화 통화나 화상 통화에서 느낄 수 없는 ‘나와 저 사람이 한 공간에 같이 있다’는 느낌이 즉각적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건 아마도 단순히 음성 때문이 아니라 아바타와 나와의 관계형성이 달라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아바타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 신체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조종가능한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게임에서 흔히 접하는 게임 캐릭터와의 관계처럼 말이다. 하지만 6축 경험이 가능한 가상공간에 진입했을 때 아바타는 내가 조종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냥 나와 동일한 자신이다.

이러한 경험을 가장 근접하게 묘사한 예는 영화 <아바타>일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 제이크 설리가 나비족에 접속할 때 그는 나비족 캐릭터를 조종하는게 아니다. 그냥 나비족 중 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제이크 설리와 나비족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즉, 나는 아바타를 통해서 혹은 아바타를 조종해서 가상세계 경험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바타로 변신한 뒤 가상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즉 아바타는 나와 가상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자’가 아니며 비록 우리가 가상세계에 존재하기 위해 디바이스를 착용하고 아바타를 활용하지만 일단 그 경험을 시작하게 되면 더 이상 이를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자발적으로 이머전 장치에 오아시스 피트니스 락아웃 소프트웨어 를 활성화시켰다 … 그때부터 컴퓨터는 내 바이탈 사인을 확인하고 하루에 소모하는 열량을 기록했다 . 하루 운동 요구량을 다 채우지 못하면 시스템이 막혀 오아시스에 로그인할 수 없었다 … 한 번 락아웃 상태가 되면 두 달 동안 해제할 수 없었다 . 게다가 소프트웨어는 오아시스 계정에 연동되어 있었으므로 새 컴퓨터를 산다거나 밖으로 나가 오아시스 카페를 이용한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락아웃 소프트웨어는 내 식단도 점검했다 . 매일 저칼로리 건강식 중에서만 음식을 고를 수 있었다 . 소프트웨어가 온라인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문 앞으로 배달되었다 … 음식을 더 주문하면 초과 섭취한 칼로리를 상쇄하기 위해 하루 운동량이 늘어났다.”

바로 이러한 특징 때문에 메타버스 경험의 ‘연결성’이 중요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메타버스로 접속하기 위한 장비 착용의 불편함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HMD를 착용할 때의 불편함은 우리가 스키를 타거나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착용하는 장비들의 불편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필요하다면 지금의 HMD를 착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한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다.

오히려 정말 불편한 것은 가상공간에서 이런 저런 앱을 열고 닫을 때, 특정한 가상공간 서비스에서 다른 가상공간 서비스로 이동할 때이다. 현재 대부분의 가상공간 서비스는 전통적인 2D 인터페이스를 활용하고 있다. 즉 평면적인 스크린에 여러 가상경험의 아이콘을 띄워놓은 뒤 그걸 클릭하면 해당 가상경험으로 이동하는 방식 말이다. 하지만 2D 경험과 달리 우리는 여러 창을 동시에 경험할 수 없다. 반드시 한 경험에서 다른 경험으로 이동하는 것만 가능하다. 비록 아바타의 형태를 하고 있더라도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몸은 한번에 오직 하나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2D 온라인 경험에서 구글에 있으면서 동시에 네이버에도 있고 페이스북에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화면 속 세계와 ‘나’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6축 경험이 제공되는 가상공간에서 나는 한 번의 하나의 몸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그런 식의 멀티태스킹은 불가능하다.

오큘러스 퀘스트 홈 인터페이스.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 콘텐츠를 고르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면 인터페이스이다. (출처 : Dailyadvent)

그렇다면 이러한 공간에서는 여러가지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 때 가장 편리할까? 우리의 물리적 현실을 생각하면 빠르다. 우리의 물리적 현실은 지구라고 하는 단일한 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 집도 있고, 학교나 사무실도 있고 식당도 있고 쇼핑센터도 있고 극장도 있고 테마파크도 있다. 즉 내가 무슨 일을 하건 어디를 가건 맵 자체를 바꿀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즉 내가 아바타가 되어 가상공간에 들어왔을 때 그 상태 그대로 가능한 모든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아시스, 혹은 메타버스는 포털이나 앱이 아니다. 그건 하나의 맵으로 연결된 세계여야 한다. 말하자면 ‘포트나이트’와 ‘로블록스’와 ‘제페토’와 ‘마인크래프트’를 하나의 아바타(물론 그 아바타의 모습이 바뀔 지라도)로 여러 곳을 여행하듯이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편리한 지 보여준 의미있는 사례는 작년 칸-트라이베카 영화제가 열렸던 ‘MOR’(Museum of Other Realities)였다. 그 이전의 버추얼 영화제, 혹은 심지어 그 이후의 버추얼 영화제에서 가상 공간은 그저 라운지 형태로만 존재하고 콘텐츠를 보려면 다시 그곳에서 나와 해당 콘텐츠를 클릭해서 접속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MOR에서 <The Book Of Distance> 등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은 달랐다. 마치 오프라인 전시관처럼 각 작품별로 가상의 전시공간을 만든 뒤 해당 작품소개와 작품에서 활용된 소품들을 직접 살펴볼 수 있게 해준 뒤, 전시공간 한 가운데 직접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동 포털을 마련해 두었다. 그 포털 속으로 들어가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곧바로 해당 콘텐츠의 가상경험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경험이 끝나면 다시 처음의 전시공간으로 돌아온다. 즉, 이 서비스에서는 MOR 바깥으로 나갔다 들어오는 경험이 존재하지 않고 마치 MOR 내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경험이 구성된다.

지난 11월에 열린 경기콘텐츠진흥원 NRP 데모데이 중 MOR에서의 페스티벌 개최 경험에 대해 칼레이도스코프 Rene Pinell의 강연을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해당 영상 5:57:32부터)

“GSS는 경쟁업체가 개발한 기존의 가상세계도 들여왔다 . 그래서 ‘에버퀘스트’ 나 ‘월드오브 워크래프트’ 등의 게임 콘텐츠가 오아시스로 연계되면서 각각의 배경무대인 노라스와 아제로스가 안 그래도 점점 늘어나고 있던 오아시스 행성 템플릿 목록에 추가되었다.”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아시스 역시 바로 그러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하나의 가상세계 안에서 다른 가상세계들과 콘텐츠들이 연결된 세계. 이미 우리는 최근 들어 구글/네이버/카카오/페이스북 ID를 활용해 통합 로그인을 하는 경험이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 깨닫고 있다. 그 편리성은 아바타와 내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육체로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극대화 된다. 한번 가상세계에 접속한다면 나는 다시 나갔다 들어왔다 할 필요없이 계속 로그인 된 상태로 다른 경험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의 독점적인 가상세계 서비스가 존재하거나 서로 완전히 호환 가능한 가상세계 연결 방식이 존재하거나.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완전히 독점적인 가상세계 서비스가 개발자의 선의에 의해 무상으로 제공되는 상황, 그리고 그 무상으로 제공되던 서비스를 글로벌 기업이 인수하려는 독점하려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다. 그리고 이 소설로부터 영감을 얻은 지금 우리 현실 속 시장의 선도자들은 자신들이 바로 그 독점적 사업자가 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사업자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지금, 특정 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 안으로 모든 걸 밀어넣는 대신 각각 존재하는 서비스들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메타버스를 만들어나가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Into the Metaverse’ 컨퍼런스의 핵심 화두도 바로 그것이었다. 이곳에서 ‘포트나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에픽게임스의 수장 팀 스위니 조차 ‘오픈 메타버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작년 ‘모질라 허브’가 자신들의 사업을 포기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월드 와이드 웹 연결방식처럼 URL을 통해 가상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웹 XR’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각자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움직였던 플레이어들이 사용자들을 끌어들일만한 사용자 경험 제공을 위해서는 서로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지금, 이곳의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할 지 궁금하다.

Comming Up

Ep04. 누가 어떻게 오아시스에서 돈을 버는가

Ep05. 운영, 유지관리, 그리고 윤리적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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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ioii
ixi media

기어이는 이제 막 설립된 신생 xR/이머시브 콘텐츠 프로듀서 그룹입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일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giioii_immersive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