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 현실과 중첩되어 있는 이 세계는 영감과 직관의 원천이 되는 세계다. 모든 창의성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온다. 두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종이새(Paper Bird)뿐이다.”
마치 가상현실 콘텐츠 전반에 대한 은유 같은 <종이새(Paper Birds)>의 세계관은 음악과 상징으로 가득찬 시적인 공간이다. 그 누구보다도 ‘보이지 않는 세계’와 가까이 있고, 그 세계에서 넘어오는 예술적 영감을 아름다운 아코디언 연주로 승화시키는 꼬마 주인공은 정작 현실은 제대로 볼 수 없는 고도 근시의 아이다. 상실과 두려움의 정서를 남미 특유의 환상적이고 서정적인 스토리에 녹여낸 이 작품은 2019년 <글루미 아이즈>를 통해 세계 무대에서 큰 환호를 받은 아르헨티나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3DAR가 오큘러스와 바오밥 스튜디오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낸 최근작이다.
<종이새>는 독특한 미니어처 캐릭터의 질감과 수직으로 배치된 도시 공간들, 연극적인 스포트라이트를 활용한 공간 연출, 스케일을 활용한 장면 구성 등 그 동안 가상현실 작품을 만드는 데에 활용되고 실험되었던 여러 표현 양식들과 연출 기법들이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된 작품이다. 동시대의 미학적 기술적 성취를 잘 수렴해냄과 동시에,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두 장면이 더 있다. 그것은 작품이 시작될 때 나오는 안내문구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도록 별도로 헤드폰을 착용할 것’ 그리고 ‘콘트롤러보다는 오큘러스의 핸드 트래킹 기술을 활용하여 두 손을 직접 사용할 것’
<글루미 아이즈> 때에도 손발을 맞춘 프랑스의 작곡가 시릴 마르체소(Cyrille Marchesseau)의 음악은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작품의 느슨한 내러티브를 균일한 정서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재즈바에서의 연주 장면은 마치 고전 영화의 트랙 아웃 샷과 같은 방식으로 연출되었는데, 이 부분은 고전 영화의 연출 기법을 가상현실 콘텐츠에 효과적으로 적용한 장면으로 상당히 인상적이다. 재즈 뮤지션의 클로즈업으로부터 연인이 대화를 나누는 객석까지 공간이 확장되면서, 내면의 두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에 대한 열정 혹은 집착일 수 있다는 내러티브를 효과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 하나의 장면은 꼬마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세계로 사라진 동생을 찾아 나서는 장면인데, 두 손으로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중첩된 세계를 경험하도록 되어 있다. 보이는 세계 너머의 것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열어 젖히며 나아간다는 것이 이 두 세계 즉 현실관계와 내면의 세계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상호 영향을 주고 받고 있는 세계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오큘러스 퀘스트의 핸드트래킹 기술을 콘텐츠에 잘 접목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을 만든 3DAR는 20여 년간 애니메이션과 광고영상을 만들어오던 외주 전문 스튜디오였다. 그러던 중 남미 최대의 프로젝트 마켓인 벤나타수르(Ventana Sur)에서 Atlas V를 만나 <글루미 아이즈>를 만들게 되면서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스튜디오가 되었다. 첫 VR 애니메이션 <글루미 아이즈>는 여러 시행착오와 재작업 과정을 거치느라 완성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그 과정을 통해 축적된 표현 기법과 연출 방법은 3DAR를 단숨에 남미를 대표하는 VR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성장하게 하는 발판이 되었다. 30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지게 된다.
더 읽을거리
XRMust 데이터베이스에서 이 작품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볼 수 있다.
지금 이 작품을 경험할 수 있는 곳
2021년 6월 기준, 오큘러스 퀘스트 스토어에 <종이새(Paper Birds)>의 첫번째 에피소드가 올라와 있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7월에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비욘드 리얼리티’에서 볼 수 있다. (2021.7.1~18, 인천국제공항 제1교통센터 어메이징 스퀘어). 두 편의 에피소드를 합친 풀 버젼은 오큘러스 퀘스트 스토어에 하반기에 올라올 예정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