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본소득인가?: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유안정성 사회로

LAB2050 보고서 인사이트2050–02

LAB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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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min readSep 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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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영준(LAB2050 연구위원장,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청년 기본소득 실험 연구를 종합한 보고서를 발간하기에 앞서,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어떤 형태의 기본소득이 필요한지, 앞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내용을 별도로 정리한 보고서입니다.
기본소득은 한국 사회의 개인이 겪고 있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줄이고, 실질적 자유를 구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요?
발전주의 모델이나 사회민주주의 모델 보다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같이 읽고 생각을 나눠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석, 참고문헌 등은 별도 포스트(링크)PDF 버전(다운로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1. 사회적 자유주의와 자유안정성[1]

LAB2050은 첫 번째 솔루션2050 보고서 ‘자유안정성 혁명: 행복하고 혁신적인 대한민국을 위한 제안’(구교준 외, 2018)[2]에서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을 개인의 삶에서부터 직접적으로 시작해보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일자리 불안정, 저출산 고령화, 극심해진 지위 경쟁으로 인한 여러 문제들은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고, 개인들의 문제가 다시 사회 전체의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구조를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안정성을 개인에게 주는 것이 개인의 불안정성을 줄이고 삶의 선택지를 넓히면서 현존하는 사회적 문제를 개선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또한, 안정성은 개인의 자유를 증진시키고 행복과 창의력을 높여줄 수 있으며, 경제뿐 아니라 사회 재생산의 문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혁신과 같은 경제적 재생산의 이슈, 출생과 같은 사회적 재생산의 이슈에 접근할 때 기존의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 방식, 즉, 구조 개선을 통해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유도하는 분수 효과(Fountain effect) 방식을 취할 수 있다.
개인에게 안정을 주어 위험회피 성향을 감소시켜 창업이나 사회혁신과 같은 새로운 도전에 나서도록 하는 식이다(Filippetti, Guy, 2015; Hombert et al, 2014). 또한, 안정성은 관계의 복원이나 신뢰 등 사회적 재생산에 필요한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Rothstein, 2001).

따라서 본 보고서는 생애에 걸친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삶을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개인에게 직접적인 자유와 안정을 제공하는 정책에 대한 실험을 제안하고자 한다.

사회적 자유주의와 가부장적 자유주의의 차이

자유와 안정은 ‘가부장적 자유주의’가 편만한 한국사회에서 가장 결핍된 요소다(최영준, 2018). 국가 주도의 개발주의 시대와 시장주도의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개발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서로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해 왔으며, 그 결과 가부장적 자유주의를 형성했다.
개발주의와 신자유주의에서는 모두 경제·성장 우선주의가 핵심 위치를 차지한다. 낮은 탈상품화 수준과 ‘고용이 곧 복지’라는 인식 또한 두 체제의 공통점이다. 재정적으로 보수적인 입장, 국가가 개인에게 가부장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역시 동일하다. 가부장주의는 ‘아버지처럼 행동하고’ 혹은 ‘(타인을) 아이들처럼 다루는 듯한 상태를 지칭하며(Warnecke and DeRuyter, 2009), 위계적 사회 속에서 개인의 자율성이 구속된 상태를 의미한다.

가부장적 자유주의에 반하는 개념으로 최영준(2018)이 제시한 ‘사회적 자유주의’ 내에서 국가의 역할은 매우 다르다. 국가와 사회가 개인의 자유와 안정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가족에 의한 보호에 개인을 전적으로 맡기지 않고 국가가 직접적인 보호를 제공하되 그 대가로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거나 조건을 붙이는 식은 되도록 지양한다.
그런 차원에서, 사회적 자유주의에서의 국가는 자유를 구속하는 가부장적 국가와 다르다. 국가의 궁극적 목표이자 지향점은 개인의 자유이고, 국가가 안정을 제공하는 이유도 개인들이 자유를 획득하고 누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자율성과 해방을 핵심으로 하는 자유주의의 본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개인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 사회적 자유주의에 의한 국가 역할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자유주의가 구현된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자유롭고 건강한 개인의 출발은 안정성에 기반하며, 복지국가는 안정성을 위한 중요한 도구다. 개인이 복지를 권리로서 받고, 혹은 복지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면서 복지에 대한 지지를 높이는 등, 복지국가에 개인의 정체성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을 포함해 복지국가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작은 단위들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한 자유는 위계적이고 관료화된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로 더 구체화될 수 있다. 국가만이 이러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나 기업, 자신의 고용주나 가족이 그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국가 문헌에서는 탈상품화와 탈가족화, 그리고 (탈)계층화를 중요한 개념으로 다룬다. 즉, 고용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위계적 계층으로부터의 상대적 자유가 사회적 자유주의에서는 핵심이다.

이러한 안정성은 자유주의 초기에 설정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적 자유주의에서는 불안정성이 경제적 동기를 불러오는 필수적 요소로, 결과적으로 축적의 도구가 된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Dewey(1991)가 논하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안정을 초래한 조건들은 더 이상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안정이 일과 희생의 동기가 아닌 절망의 동기가 되고 개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렇기에 거시적으로는 부의 분배와 권력의 분배가 공평하게 이루어지면서 개인에게 안정성을 부여하고, 개인들이 활발하게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만들 필요가 있다.

사회적 자유주의가 실현된 복지국가에서 고용과의 연계를 느슨하게 가져가는 급여 체계가 중요하다. 고용과의 연계가 강한 사회보험 급여는 탈상품화를 높이기 위해서 상품화, 즉 고용에 의존해야 하는 역설에 빠지게 한다. 탈상품화를 높이면서 계층화를 강화시키지 않으려면 하나의 보편적이고 연대적 프로그램이 개인들에게 적정한(decent) 수준의 급여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탈상품화가 실현되면 개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거절하게 되고, 억압된 비공식적 환경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다. 즉, 이는 개인의 존엄성을 높여주는 기제가 될 것이다. 현금 급여뿐 아니라 보편적 서비스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앙화된 권력이 많은 재량과 권한을 가지고 기획하며 지방자치단체와 공급자들은 이를 단순히 집행하고, 감시받는 현재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개인은 자신의 삶에서 선택 권한을 더 폭넓게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자유안정성, 실질적 자유와 안정성의 관계

‘자유안정성 혁명: 행복하고 혁신적인 대한민국을 위한 제안’(구교준 외, 2018)은 사회적 자유주의를 구현할 실질적인 사회경제 모델로 ‘자유안정성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요약하면, 북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정성(security)을 결합한 유연안정성 모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자유안정성 모델을 한국사회가 새롭게 발전시켜보자는 것이다.
자유안정성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대신 개인의 실질적 자유(freedom)와 기존의 안정성(security)을 혼합한 개념(freecurity)이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지속적으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유와 안정은 개념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관계다(인디고연구소, 2014). 유연안정성 모델에서 유연과 안정이라는 두 개념은 상쇄 관계에 있지만, 자유와 안정은 서로를 완성해주는 상보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자유가 없는 안정은 노예와 같은 상태이며, 안정이 없는 자유는 완전한 혼돈 상태라고 하면서, 두 개념이 필요충분조건임을 밝히고 있다.

유연안정성 모델은 유급노동에 초점을 맞추면서 유연성의 이유로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반해서 자유안정성 모델은 개인의 실질적 자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는 기존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넘어서고 정치적 자유도 뛰어넘는 개념이다.
유급노동에서 벗어나 돌봄과 같은 무급노동을 하는 것은 물론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일을 선택하고 더 나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조직을 선택하는 자유까지를 포괄한다. 즉, 자신의 관심(interest)과 열정(passion)을 쫓아서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추구하는 과정을 자유라고 지칭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서 일은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일이나 정치 그리고 사회활동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나카마사 마사키, 2017). 이항우(2015)가 논의한 바와 같이 디지털 경제에서 일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고, ‘생산적인 일’이라는 의미 역시 변하고 있다.
전통적 유급노동과 다양한 활동과 일의 구분이 흐려지게 되면, 현재의 사회경제 체제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20세기 산업화 시대에 남성 부양자를 위한 모델로 시작되었던 복지 정책들은 더 많은 개인들이 자신의 일과 활동을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이타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새로운 체계로 변화돼야 한다.
실질적 자유의 실현을 위해서 국가는 개인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줄이는 안정성 메커니즘을 새롭게 제공해야 한다. 자유안정성은 이러한 두 개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2. 자유안정성을 위한 수단: 기본소득

발전주의 체제와 사회민주주의 체제

사회적 자유주의와 자유안정성을 구현할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는 무엇일까? 먼저 현실에서 안정성을 구현했던 이상형들을 살펴보자. 아마도 제일 가까운 사례는 1980년대 가장 두터운 중산층 사회, 즉 ‘초중산사회’(middle mass society)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일본과 스웨덴 등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일 것이다.

일본의 발전주의 모델은 고용 체제의 안정을 통해서 초중산사회 건설에 성공을 한 바 있다. 국가가 생산적인 수출 주도형 기업뿐 아니라 지역의 건설업이나 농업과 같은 보호적 산업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하면서 이들이 피고용인을 안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했다(Steinmo, 2010).
그 결과 기업들이 전일제 평생고용을 하나의 고용문화로 채택할 수 있게 했으며, 안정된 피고용인들은 기업복지와 함께 사회보험의 혜택까지 함께 누릴 수 있었다. 1980년까지 일본의 낮은 불평등과 빈곤율은 높은 복지 지출에도 불구하고 불평등과 빈곤율이 증가했던 서구와 차별화된 모습이었다.
Murakami(1996)는 1980년대 일본이 북유럽보다 더 성공적인 사회로 발전했다고 선언한 바 있다. 즉, 서구 국가들은 일단 개인이 불안정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상황에 개입하여 이를 수정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일본은 산업 정책으로 노동시장에 직접 개입을 하면서 개인의 삶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고 안정적인 삶을 구현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Murakami(1996)의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 일본의 고용 체제는 1차 분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면서 모두가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통해 안정성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 사회보다 노동시장 이중화로 야기되는 경쟁이 덜하며 조기 퇴직 등으로 인한 문제나 노인 빈곤 이슈가 적은 것도 이러한 체제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반면에 유럽 복지국가는 재분배, 즉 2차적 개입이며, 노동시장 자체부터 안정성을 보장하려는 시도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일본의 초중산사회 모델은 21세기 한국의 모델이 되기에는 여러 가지 점에서 한계가 있다.

첫째, 고용을 보장받았던 ‘모두’는 남성 가부장이었다. 젠더 불평등에 기초한 모델로, 여성은 광범위하게 배제됐다. 탈산업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이 모델의 유용성은 더욱 도전을 받고 있다.
둘째, 고용을 통해 안정성을 부여했지만, 위계적 가부장제에 기반하고 있어 해당 모델 내 개인의 자유는 낮다. 국가는 기업을 보호하고, 정치인들이 지역 기업들에 후견인이 되며, 기업은 남성 가부장을 보호하고, 남성 가부장은 가족을 보호하는 체제에서 안정은 고용과 가족을 통해 달성되며, 기업은 후견주의(clientelism)의 관계 속에서 공생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게 된다.
개인이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공동체나 사회와 연대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없다. 셋째, 일본이 한국 사회에 비교해 일부 장점들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 문제나 국가에 대한 낮은 신뢰, 높은 정부 부채와 지속가능성의 이슈 등 한국이 당면했거나 당면할 수 있는 여러 이슈들을 일본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모델은 한국의 새로운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일본의 모델보다 더욱 유력한 대안은 사회민주주의 복지체제(Esping-Andersen, 1990) 혹은 사회민주주의 자본주의(Lane, 2019)다.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은 유연안정성을 모델로 구현했을 뿐 아니라 행복도, 사회적 신뢰, 빈곤과 불평등, 고용에 대한 헌신성, 젠더 평등, 혁신성 등 여러 지표에서 자유안정성이 추구하는 목표에 가장 가까운 사회를 만들어냈다(최영준, 2018).

실제로 Steinmo(2010)는 스웨덴 국가를 설명하면서 개인은 매우 사회적으로 안정성을 부여받으면서도 동시에 국가와 기업은 상호 자율적인 모습을 지닌 사회적 자유(social liberal) 형태를 가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삶의 모습에 있어서도 Partanen(2016)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들 국가에서는 어릴 때부터 독립된 개인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당연시 하면서도 동시에 Rothstein(2001)이 관찰한 것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서로를 돕고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간다. 이를 Rothstein(2001)은 조직화된 개인주의 혹은 연대화된(solidaristic) 개인주의라고 칭한 바 있다.
이념적으로 강요된 연대나 유대가 아닌, 개인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체 의식은 다른 사회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은 가장 개인주의화 되었다고 평가받지만 동시에 사회, 국가, 그리고 타인에 대한 신뢰 수준이 가장 높기도 하다.

어떻게 사회민주주의 국가는 자유안정성을 거의 달성하는데 성공했을까? 그것은 앞서서 언급한 자유안정성의 핵심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적 개입을 통해 탈상품화와 탈가족화 수준을 최대한 높이고, 한편에서는 보편적이고 평등화된 조세 및 복지제도를 통해서 위계적 계층화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보편적이고 다양한 교육기회와 훈련의 제공 등이 숙련과 혁신을 뒷받침했다(Miettinen, 2013). 그런 점에서 사회민주주의 국가는 한국 복지국가를 비롯한 복지국가들의 역할 모델이 되기도 했으며, 경제적 차원에서도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에 의해 ‘차세대 슈퍼모델’(The Next Supermodel)로 소개[3]되기도 했다.
이후에 설명할 기본소득이 새로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사회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여러 정책수단들의 유효성은 여전히 입증되고 있다(Lane, 2019).

사회민주주의는 대안이 될 수 있나?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가능성에 대한 희망과 우려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려가 되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성공은 포용적 노동시장과 안정적인 복지 정책에 의해서 추동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강한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의 역할에 의해 강력한 재분배 정치가 이뤄졌다. 그 결과 안정된 노동시장을 바탕으로 사회보험 제도와 보건사회 서비스가 관대하고도 보편적인 형태로 시행될 수 있었다.
보편적 사회보험 제도는 능력에 따른 기여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기여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사회민주주의 이상 실현에 기여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시장 현실은 스웨덴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노동시장의 불평등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사회보험은 노동과 연계되어 있어 제도의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큰 규모의 사각지대가 존재할 경우 기여하는 이들과 기여하지 않고 받는 이들을 한 제도 내에서 운영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둘째, 북유럽 국가들도 노동시장의 변화와 이중화의 문제로 사회보험보다는 실업부조와 같이 공공부조에 기대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사회투자를 활발하게 하고 있는 북구유럽국가들이 여전히 OECD 국가들에 비해서는 장기 실업률이 낮은 수준이지만,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장기 실업자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들 역시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최근 근로빈곤층을 대상으로 2020년부터 실업부조를 도입할 것이라 공언했고 향후 확대될 전망이다(고용노동부, 2018). 한편으로는 환영할 만한 변화지만, 매우 제한적이고 선별적인 방식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이후에 보다 확대된다고 해도 노동시장의 이중화 수준이 높고 근로임금 수준이 높지 않을 경우 실업부조는 오히려 장기 실업을 야기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시민들의 복지에 대한 지지는 확대되기 어려워질 것이다.

셋째, 이미 다양한 연구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고용의 형태와 일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으며, 이 변화는 향후 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인 특수고용 노동자에 더하여 우버와 같은 호출형 플랫폼 노동자들, 그리고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Amazon Mechanical Turk)와 같은 크라우드 워크형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증가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최영준 외 2018).
이미 이들의 노동자성과 고용주가 누구인지에 대한 법적·학술적 논의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이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사회보장제도를 위협하는 논의가 될 가능성 역시 높다.
그러한 점에서 사회민주주의가 한국의 자유안정성을 위한 효과적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이후 논의할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과 같이, 사회 제도 전반을 재구성하는 정도의 큰 변화가 필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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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체제의 장점과 다양한 가능성

기본소득은 일본의 발전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체제보다 설명하기가 훨씬 간단하고 명료하다. ‘모두에게 개인의 조건과 무관하게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만족하는 기본소득은 자유안정성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다. 일단 모두에게 안정성을 충분히 제공하기 때문이다. 안정성을 개인에게 주게 된다면 기본소득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개인들은 실질적 자유를 누리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van Parijs, 1995).
유급노동뿐 아니라 다양한 일(work)를 선택할 권리를 부여받는 것이며, 탈상품화와 탈가족화의 관점에서도 개인의 자유는 높아진다. 유연안정성과 달리 고용주뿐 아니라 모두에게 유연함을 제공하며, 젠더 친화적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은 하나의 제도로 이해하기보다는 발전국가나 복지국가와 같이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국가모델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미 많은 연구들이 설명한 바와 같이, 기본소득은 단순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정책을 넘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제공된다는 측면에서 고용·노동 정책이기도 하다.
또한 재정적 측면에서는 조세 정책의 혁신적 변화를 요구하는 제도이기도 하다(Standing, 2017). 나아가 정치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생산 체제, 복지 체제, 그리고 정치 체제에 근본적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을 새로운 패러다임 관점에서 볼 필요성이 있다.
또한, 기본소득이 사회경제 모델이라고 한다면, 다양한 형태의 기본소득 체제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즉, 싱가포르, 타이완, 한국의 발전국가 모델이 다르고, 그리고 자유주의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들이 서로 다르듯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들도 상당한 변이를 가질 수 있다.

완전한 기본소득이 실현되기 이전의 기본소득 형태 역시 다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나 가능한 기본소득 제도들을 ‘기본소득들’이라 칭한 윤홍식(2018)의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그 시초부터 지금까지 우파에 의해서 주장되기도 했고, 좌파적 혹은 진보의 입장에서 주장되기도 했다. 우파 기본소득 논의는 최초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에서 비롯된다. 부의 소득세는 빈곤선을 설정하고 빈곤선 이상의 시민들에게 조세를 거둬 빈곤선 이하의 시민들에게 이전하는 것이다(Friedman, 2009; Tondani, 2009).
또한 Murray(2008)와 같이 현재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합하여 기본소득으로 제공하자는 주장이나 이것이 결과적으로 임금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파적 입장이 있다(Fitzpatrick, 1999). 이에 비해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서 출발해서 기본소득이 주는 개인의 자유와 해방적 역할에 주목하는 입장도 존재한다(Standing, 2011).

한국에서도 서상목과 같이 모든 사회보장제도를 통합하여 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제공하자는 입장[4]부터, 강남훈(2011)이나 김교성 외(2018)처럼 보다 확장적인 관점에서 기존 복지국가와 함께하는 모델을 제안하는 입장도 있다. Haagh(2011) 역시 기본소득과 사회민주주의를 대립적 관계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두 체제가 상보성을 가질 수 있음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자유안정성 원리에 부합하는 기본소득 형태는?

본 연구에서 논의하는 자유안정성 원리에 부합하는 이상적 기본소득 체제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본소득이 개인 단위로 모든 시민에게 빈곤선 이상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은 최소한 1인 가구 생계급여액인 50만원 수준(2019년 50만 1,632원)을 달성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장애와 같은 특수한 욕구에 대한 급여를 제외한 소득 관련 공공부조와 유사 자산 조사 급여는 사라질 것이다. 최소 빈곤선이 중요한 이유는 자산조사 등의 조건부 급여와 관료적 제도에서 개인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기존의 사회보험제도는 그 비례성이 완화되고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담보된 형태로 계속 존재할 수 있다.
셋째, 보건이나 핵심적 사회서비스는 여전히 공공의 책임성 하에 운영된다. 다만, 공공의 책임성이 전면적 무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부분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넷째, 일의 선택과 고용은 가능한 자유로운 선택과 다양한 형태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한다. 기본소득이 실시된다면 적어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와 같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및 이와 관련한 극심한 혼란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기본소득이 도입된 체제는 앞선 두 체제와는 어떻게 차이가 날까? 개인이 가족에 의해서만 안정성을 부여받는 사회는 가족주의 사회다. 발전주의 체제는 가족과 함께 고용을 핵심적인 안정성 메커니즘으로 사용한다. 여기에서 국가는 부족한 부분을 복지로 채우는 역할을 한다.
사회민주주의에서는 가족보다는 고용과 함께 관대한 복지를 안정성 메커니즘으로 활용한다. 발전주의가 1차 노동시장 개입을, 사회민주주의가 고용을 촉진하는 사회 정책과 함께 2차 재분배 개입을 핵심으로 한다면, 기본소득이 이상적으로 주어지는 자유안정성 체제에서는 기본소득을 통해 고용에 관계 없이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안정이 부여된다.
1층보다 아래에 기본층(0층)이 있는 건물과 같은 사회의 구조인 것이다. 이후 고용을 통해 추가적인 소득이 주어질 것이며, 복지를 통해서 개별화된 욕구나 사회적 위험을 대처하게 된다.

앞서 한국의 사례를 통해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일부 국가들과 일부 중산층 이상의 경우를 제외하면 가족 간의 유대와 고용은 여전히 안정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이에 비해서 자유안정성 패러다임 사회에서는 개인이 안정성을 부여받게 되므로 고용이나 일을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여기게 될 것이고, 가족 간의 연대 및 유대는 어떤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고용과 가족이 안정성을 확보하는 수단을 넘어서 자아실현이나 연대나 삶의 의미를 찾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결과적인 모습은 유사하지만, 고용 이후의 개입이 아닌 고용 이전의 개입이라는 차원에서 사회민주주의 패러다임과 기본소득의 패러다임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그림 1> 참고).

[그림 1] 현재의 패러다임과 자유안정성 및 기본소득 패러다임의 비교

3. 정치·사회적 숙의와 실험이 필요한 이유

이러한 ‘이상형’에 가까운 기본소득 체제가 일순간의 정치적 선택으로 갑자기 도래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도래한다고 해도 이상형 그대로 바로 실현될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그런 점에서 기본소득 체제의 이상형을 기준으로 현재 복지국가를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인공지능과 기술혁명으로 인한 사회 변화가 다 진행된 후에 고려해보자는 사후적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최영준 외, 2018).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어떠한 이상형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의보다는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러한 체제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기본소득 프로젝트는 두 가지 차원에서 장기적 프로젝트이며 동시에 정치적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다. 우선, 기본소득은 현재 존재하는 사회적 위험에 대해 당장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양재진(2018)이 지적한 바와 같이 현재의 빈곤 이슈나 실업으로 당면한 사회적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모든 자원을 미래 기본소득형 투자에 사용하자고 하기는 어렵다. 추가적 재원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당면한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면서 동시에 미래적 시각에서 정책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소득 체제는 단기간 내에 실현하기 어렵다.
또한, 인플레이션이나 스테그플레이션의 우려를 줄이기 위해서 학자들은 기존 공적 지출의 재구조화나 증세 등을 통해서 재정중립적 기본소득을 만들 필요성을 논의한 바 있다(Standing, 2017; 유종성, 2018). 결국 기존 제도의 재구조화나 증세는 모두 정치적 과정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와 사회적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가 어떠한 기본소득 체제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낮은 기본소득이 많은 사회보장을 대체하는 체제가 될 수도 있으며, 보다 이상적인 체제가 될 수도 있다.
De Wispelaere(2016)이 지적한 바와 같이 낮은 정치적 지지나 구체적 기본소득 모델에 대한 합의의 부재는 기본소득 체제와 실제 구현되는 제도 간의 차이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어떠한 경로가 선택될 것인지는 누군가의 합리적 판단에 기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그 사회의 권력(power) 구조와 주류적 논의에 따라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영준 외(2018)이 지적한 바와 같이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는 급여 수준 달성은 정치에 달려있으며, 그러한 정치가 작동하지 않을 때 기본소득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에게 빈곤선 이상의 안정을 제공하기 위한 기준을 고려하지 않고 매우 낮은 급여 수준으로라도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며 추후에 급여 수준을 올리자는 주장은 자칫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것으로는 현재 존재하는 어떠한 이슈도 풀어내지 못 할 가능성이 높고, 동시에 당장 필요한 곳에 사용될 자원을 가져오는 방식이 될 가능성도 크다. 그렇게 되면 급여 상승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김교성 외(2018)는 기본소득 사회로의 이상적 이행 경로로서 현 사회보장 체계에 대한 합리적 조정 이후 실업부조와 같은 사회부조의 도입, 그 이후 아동·노인·장애인 등에 대한 사회수당 구축, 청년을 위한 사회수당 도입, 참여소득의 일환으로 농민수당 도입, 마지막으로 각종 수당을 기반으로 기본소득 운영 및 급여 수준 상향 등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현 사회보장 체계의 합리적 조정과 실업부조 등을 다 마친 후에 사회수당을 도입하기 시작할 만큼 시간이 여유로울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윤홍식(2018)은 부분 기본소득으로서 보편적 사회수당 제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빈곤에 대처하기 위한 사회보장 제도를 강화함과 동시에 사회수당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현 복지제도와 기본소득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전환기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현실에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유안정성을 구현할 유효한 대안인지에 대한 경험적 질문이 남는다.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그리고 앞서 언급한 증세 및 기존 제도의 재구조화 등에 대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숙의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숙의적 논의와 함께, 우리는 기본소득에 대한 다양한 우려를 해소하고, 이것이 자유안정성을 구현할 대안임을 검증하기 위한 방법으로 실험(experiment)을 제안한다.
민주적 거버넌스와 증거기반 정책은 새로운 정책을 고안하고 개혁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 중요한 축을 형성한다(최영준 외, 2017). 민주적 거버넌스의 핵심적 도구는 숙의적 절차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며 어떠한 대안이 바람직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학습과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와 함께 실증적 증거가 없다면 가정에 기반한 숙의 이상으로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정책 실험(Policy Experiment)[5]이 필요하다. 과학적으로 잘 준비된 정책 실험은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고 진척시키기 위해 어떤 준비와 연구가 필요한지를 알려줄 것이다.

4. 이행으로의 여정

기본소득 사회로의 이행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시도조차 못 할 이유는 없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이 명확하고, 지금까지의 도전에 한계가 있었다면 어차피 새로운 시도를 해야만 한다. 문제와 한계가 명백함에도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만 해서는 더 나은 삶과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우리는 기술혁명이라는 새로운 불확실한 변수 앞에 놓여 있다. 이 기술혁명이 우리를 또 다른 발전된 세계로 이끌 것인지, 아니면 빈 수레의 요란함으로 그칠 것인지 많은 논쟁이 진행중이다.
하지만, 양쪽이 동의하는 것은 새로운 기술혁명이 더 많은 이들을 불안정에 놓이게 할 것이라는 것이며, 그러한 예측을 포함하여 미래는 여전히 우리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삶의 유동성에 따른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줄이면서 개인에게 자유롭고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것은 현재의 한국사회 난맥상을 풀어가는 시작으로서 또한 미래를 준비하는 첫 단추로서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와 한계를 공감한다고 해도 대안이 하나로 모아지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렇기에 이행을 향한 여정의 출발을 담대하게 하지만 철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더 많은 논의와 숙의 그리고 탄탄한 증거들이 필요하다. 정책 실험은 중요한 하나의 수단이다.
정책 실험이 촉발할 우리 사회의 논쟁과 숙의를 생각할 때 그 자체가 ‘거인의 첫걸음’(Giant Stride)이다. 누가 이 크고 중요한 방울을 고양이 목에 걸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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