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혁신’ 정책이 더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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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min readNov 27, 2019

[IDEA2050_018]

김유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출처 : 셔터스톡

요즘 정부의 정책이나 사업에 ‘혁신’이라는 말이 빠진 경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혁신’의 사전적 의미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개념과 관습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 정도의 새로운 정책, 사업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다.

그런 가운데 새롭다고 할 만한 정책은 서울시 또는 경기도에서 시작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토도 있다. 지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서울 정책을 5~6년 뒤에만 쫓아가도 아주 잘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그렇지만 ‘혁신’이 더 절실한 것은 수도권이 아니라 지방이다. 김경수 도지사는 경남의 도정 비전을 수립하면서 ‘함께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경남’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완전히 새로워진다’는 말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있을 법도 했지만 대체로 도정 비전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많지 않다. 그만큼 경남 지역에는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지역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위기 의식이 강하다.

지방의 입장에서 수도권은 거대한 블랙홀이다.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었던 1998년 당시 수도권 주민등록 인구 비율은 45.6%였으나, 그로부터 20년 이상 흐른 지금 수도권 인구 집중은 더 심화돼 50%를 넘겼다. 1998년 2,556만 명이었던 지방 인구는 2019년 9월 2,594만 명으로 거의 정체됐다. 반면 그동안 수도권 인구는 2,143만 명에서 2,590만 명으로 447만 명이나 증가했다.

인구도 경제도 빨아들이는 수도권 블랙홀

경제 규모 역시 수도권이 지방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했다. 지역내총생산(GRDP)으로 측정한 수도권의 전국 대비 경제규모는 1998년 46.7%에서 2017년 51.3%로 증가해 절반을 넘어섰다. 특히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성장률 격차는 과거보다 최근에 더 커졌다. 1998년부터 2010년까지 수도권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5.5%인 반면 지방은 4.9%였다.(1998~2010년 평균 경제성장률은 기준년 개편 전인 2010년 자료를 바탕으로 산출했다.)

최근 통계청의 기준년 개편 결과를 반영한 2011~2017년 기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서울과 지방이 각각 3.6%와 2.2%로, 그 차이가 무려 1.4%p에 달했다(통계청, 2019).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성장률이 모두 하락했으나, 지방의 성장률 하락이 훨씬 컸던 것이다. 이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인구와 경제의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자료 :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현황(2019년은 2019. 9. 자료)
자료 : 통계청, 지역계정(2015년 기준). 기준년(2010→2015) 개편 결과를 반영한 수치

수도권 집중화 현상의 가장 근본적 원인이자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모여들고 있다는 것이다. 1998~2018년 사이 수도권으로 순유입된 20대 청년은 모두 147만3,000명에 달한다. 매년 평균 7만 명 이상의 20대 청년인구가 지방에서는 줄고, 수도권에서는 늘어난 셈이다. 청년을 떠나보낸 지방도시는 활력을 잃고, 청년은 활력을 잃은 지방도시를 다시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자료 : 통계청, 국내인구이동통계
자료 : 통계청, 국내 인구 이동통계 원시자료를 분석하여 산출함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주된 이유는 일자리에 있다. 실제로 2018년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전입신고를 한 20대 청년 17만1,000명 중 54.7%인 9만3,000명은 일자리 때문에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전입신고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소위 ‘좋은 일자리’로 통하는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우리나라의 상용근로자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격차는 4.3배로 OECD 국가 중 4번째로 높다. 또한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수준은 각각 541만 원과 151만 원으로 그 격차가 3.6배에 달한다. 이처럼 임금격차가 심각한 상황에서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체의 61.2%, 대규모 사업체에서 일하는 상용근로자의 62.8%가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구와 경제의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출처 : 프리픽

대기업 정규직을 서울보다 더 만들 수 있나?

좋은 일자리의 개념이 경제적 보상 기준으로 획일화되어 있고, 소수만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상황에서 경쟁은 과열될 수밖에 없다. 경쟁의 과열은 불공정의 문제를 낳고 부의 불평등을 확산시킨다. 인구와 경제의 수도권 쏠림현상이 심각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경쟁의 과열이 지방의 청년들을 수도권으로 빨아들이고, 지역 격차를 확산시키기까지 한다. 경제적 보상 기준으로 획일화된 ‘좋은 일자리’가 서울 못지않게 지방에 생겨나지 않는 이상에야 청년들의 지방 탈출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지방정부가 아무리 취업 지원 정책을 써 봐야 실효성이 나타나기 어렵다. 또 이런 지방의 정책들 가운데, 서울시나 경기도가 하고 있는 것보다 더 혁신적이거나 파격적인 것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실질적으로 청년의 지방 탈출을 멈추게 하려면 지방정부는 더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을 시도해야 한다. 그 시작은 정책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다. 청년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가 쉽사리 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지방정부가 여전히 청년취업 정책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청년을 노동시장에서 일을 통해 삶을 영위해야 할 존재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다(이승윤 외, 2016). 이제는 ‘청년들을 어떻게 노동시장에 진출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부분을 바라봐야 한다. 취업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많은 수단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나아가 ‘좋은 일자리’에 대한 개념을 확장하고,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청년들이 사회적 통념에 눌려서 원하지도 않는 일을 선택하고, 그 일자리에 진입하기 위해 긴 시간을 투입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 줘야 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대기업 정규직’만이 좋은 일자리라는 획일화된 사고로는 어떻게 해도 지방이 수도권 집중화의 벽을 넘어설 수 없다.

말뫼, 빌바오, 포틀랜드 등, 한 때 중공업,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졌지만 산업 전환의 위기를 잘 넘기고 혁신도시로 성장한 곳들을 보면 청년들의 창업을 장려하고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 구조를 전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김유현 외, 2019).

또한 “시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임금이라는 보상을 얻는다”는 단순한 경제적 교환 관계를 넘어서서 일자리를 바라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를 창출하고 그 대가로 다양한 사회적 보상을 획득하는 호혜적 관계 활동 역시 훌륭한 일자리로 여겨지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장 가격으로 측정할 수 없는 사회적 요구는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의 충족을 통해 사회는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김유현 외, 2019). 이를 충족하는 활동이 곧 사회혁신이다. 충족되지 않은 사회적 요구를 충족하고 이를 위한 참여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사회혁신이기 때문이다(Moulaert 외, 2005).

사회혁신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축적을 통한 지역사회 발전 전략이자 기존에 충족되지 못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과정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사회혁신 활동에 주민, 특히 청년의 참여를 어떻게 촉진할 것인지가 지방정부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지역 사회혁신 활동에 ‘참여소득’ 준다면

지방정부는 청년들의 지방 안착과 창업, 그리고 사회혁신 활동을 연결할 수 있도록 ‘경제적 안정’이라는 보상체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 중 한 방법이 참여소득(Participation Income)이다. 창업과 사회혁신 활동에 대해 조건부 기본소득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노호창, 2014). 또 공모 사업을 통해 민간의 사회혁신 아이디어에 대해 적극적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보상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예산 낭비 또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혁신에 대한 지원은 외부성이라는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일종의 정부 개입이다. 사회적으로 편익을 증진하는 활동인데도 불구하고 시장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과소 공급되는 상황이라면 정부가 개입하여 이를 보완하는 것이 경제학적으로도 타당하다.

지방정부는 청년들의 창업과 사회혁신 활동에 대해 참여소득(조건부 기본소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출처 : 프리픽

비록 혁신이라는 말이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자본주의의 필수적 요소”라고 했던 슘페터(Joseph A. Schumpeter)로부터 시작됐고, 기술혁신을 통한 성장이라는 경제이론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지만, 슘페터 역시도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을 염두에 둔 개념으로 혁신을 이야기 했다(Schumpeter, 1976; Moulaert et al, 2005).

더욱이 이제는 혁신이 더 이상 경제와 경영 또는 조직이론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제는 혁신의 주체가 민간인 것만도 아니며, 공공부문에서의 혁신을 정부조직 개편이나 서비스 전달 방식의 효율화 수준으로 좁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앞으로의 정부는 소극적으로 민간의 혁신을 지원하는 역할에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 정부가 혁신적 정책 시도를 통해 스스로 혁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물론 정부가 혁신 지향적으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정치 과정인 만큼 고도의 정치·경제적 권력 투쟁과 타협, 설득의 과정이 요구된다.(이종수 외, 2014) 따라서 정부의 규모가 클수록 혁신 정책 시도가 반대의 문턱을 못 넘을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 점에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지방정부가 혁신에는 더 유리하다. 새로운 정책을 먼저 시도하는 데 따른 리스크가 중앙정부에 비해 현저히 더 작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정부는 혁신정책 시도에 있어 일종의 시험대(testbed)가 될 수 있다.

지방정부는 이해관계자와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혁신을 추진하는 데 더 유리할 수 있다. 출처 : 프리픽

또한 지방정부는 지역 사회의 혁신 요구를 파악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이는 오우츠(Oates)의 분권화 정리와 일맥상통한다. 오우츠는 공공재 공급에서 지역 간 외부효과가 없고 규모의 경제가 크지 않다면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가 더 효율적이라고 했다(Oates, 1972). 혁신정책 시도를 일종의 공공재로 본다면 지역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혁신정책을 각 지방정부가 발굴하고 시행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높다.

지방정부가 혁신을 더 잘 할 수 있는 이유

끝으로 지방정부는 파트너십 형성을 통해 혁신을 잘 수행할 수 있다. 스페인 지방정부들의 혁신 정책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생산(Product), 과정(Process), 협력적 혁신(Collaborative Innovation)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을 때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이 협력적 혁신이었다(Gonzalez 외, 2013). 그만큼 지방정부가 협력을 통한 혁신에 적극적이라는 뜻이다.

특히 정책 혁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파트너십이다. 지방정부는 지역 상황에 집중하고 지역의 요구에 따라 의제를 선정할 수 있어서 이해관계자와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혁신을 추진하는 데 더 유리할 수 있다.(Turok, 2001)

수도권 블랙홀에 맞서서 지역을 지켜내야 하는 지방정부에게 혁신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우리는 여기서 자본주의가 진화하는 것은 단순히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으로써가 아니라, 기업가가 창조하는 새로운 고객과 상품, 시장, 생산과 운송의 방법, 산업 조직 형태로부터 추동된다고 한 슘페터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Schumpeter, 1976).

지방정부가 수도권 집중이라는 외부 환경 요인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주민의 충족되지 않은 새로운 요구를 발굴하고, 이를 충족키기 위해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개념과 관습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는’ 방법, 즉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수도권의 장점을 몇 년 차이를 두고 뒤따르는 식으로만 정책을 편다면 결국 얼마 안 가 지역은 소멸의 과정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당장 수도권을 향해 떠나는 청년들을 돌려세우기 위해서는 일자리에 대해 당연하게 여겨지던 고정관념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세대 안에 있다. 청년들이 스스로 지역 안에서 새로운 일을 찾아내고, 그 일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지방정부는 해야 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처럼, 위기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 해법을 절실하게 찾고자 하는 지역에서 가장 혁신적인 시도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김유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참고문헌

김유현·이언상·황세원·이은혜·추수현 (2019), “경상남도 청년도시모델 연구”, 경남연구원 정책 연구 2019–06

노호창 (2014), “기본소득에 관한 개관과 입법 사례의 검토”, 노동법연구 36: 403–456.

이승윤·이정아·백승호 (2016), “한국의 불안정 청년노동시장과 청년 기본소득 정책안”, 비판사 회정책, 52: pp. 365–405.

이종수·윤영진·곽채기·이재원 외 (2014), 「새 행정학2.0」, 서울시: 대영문화사.

Moulaert, Frank, Rlavia Martinelli, Erik Swyngedouw & Sara Gonzalez. (2005). Towards alternative model (s) of local innovation. Urban studies, 42(11): 1969–1990.

Oates, Wallace E. Fiscal federalism. Books (1972).

Gonzalez, Reyes, Juan Llopis, & Jose Gasco (2013). Innovation in public services: The case of Spanish local government.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66(10), 2024–2033.

Schumpeter, Joseph. A. (1976).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1942). J. Econ. Literature, 20, 1463.

Turok, Ivan. (2001). Innovation in local governance: the Irish partnership model. Local partnerships for better governance.

Uyarra, Elvira. (2010). Opportunities for innovation through local government procurement. London: NESTA.

통계청 보도자료, 2019.9.5., 지역소득통계 2015년 기준 개편결과.

관련 보고서

‘경상남도 청년 도시 모델 연구’(경남연구원·LAB205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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