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지역 차원 고용위기 대응 모델 제안

황세원 ·고동현 ·서재교

LAB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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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in readApr 1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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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B2050 ‘제조업 도시들이 흔들린다: 지역별 고용위기 시그널과 위기 대응 모델’ 보고서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주석, 참고문헌 등은 PDF 버전(다운로드)마지막 포스트(링크)에 표기하였습니다.

8. 지역 차원 고용위기 대응 모델 제안

가. 전제조건

이상과 같은 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지역(시·군·자치구)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고용위기 대응 전략’을 세운다 할 때, 먼저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① 지역 관점의 대응 원칙을 세워야 한다.

  • 우리 지역 시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하는 최저생활기준을 정해 놓아야 한다.(생활안정 지원에 있어서의 기준선 마련. ex. 주거, 식생활, 교육, 여가, 의료비, 교통수단 등)
  • 우리 지역 시민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의 기준을 정해 놓아야 한다.(지역 내 기업 점검 및 인센티브 부여, 창업 지원 등에 있어서의 기준선 마련. ex. 차별 없는 고용, 적정 급여, 노동시간, 직장 내 민주주의, 지역사회 기여 등)
  • 위의 원칙들은 시민참여 방식으로 정해야 한다.

② 고용위기 상황에서의 대응 목표 및 대상, 우선순위를 세워 놓아야 한다.

  • 고용위기 상황에서의 대응 목표를 세운다. (ex. 시민들의 삶의 질이 추락하지 않도록 한다, 시민 누구나 최저생활선 이상을 누리도록 한다, 시민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도록 한다, 고용위기가 지역경제에 주는 도미노 효과를 최소화한다 등)
  • 지역 관점에서는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하청업체 직원, 제조업·인접산업 종사자 등이 다르지 않은 ‘시민’일 뿐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지역 고용위기의 직·간접 타격으로 생활안정성이 흔들린다면 누구나 지원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 자원이 한정됐을 때의 지원 우선순위를 정한다.(ex. 개인 및 가족 단위의 생활안정 지원 → 이직 및 재훈련, 창업 지원 → 기업 단위 지원 → 산업 지원)

③ 사전 조사와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해 놓는다.

  • 고용위기가 현실화되기 이전에 지역 기업들의 상황을 조사한다.(ex. 기업 종사자들의 거주지 및 생활 현황, 숙련도 및 이직 가능성 등)
  • 위기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역 내 가용 자원을 조사하고, 필요한 자원을 조성한다.(ex. 지역 내 기업, 노동조합, 상인회, 시민단체, 사회적경제 부문 등과 함께 기금과 커뮤니티 공간 조성 등)
  • 업종 간 경제적 연관성을 분석한다.(ex. 지역 공장 A에서 인력 500명을 축소할 경우 인근 음식숙박업, 서비스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 등)
  • 대규모 고용위기 상황(그 기준도 설정)에서 가동할 태스크포스 매뉴얼을 짠다. 중앙 및 광역 정부와의 협력 가능성, 역할 분담을 명확하게 한다.
  • 지역에서 늘어나고 있는 고용 수요(노인 돌봄 등)를 파악하고, 이 분야로의 이직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을 모색한다.(지역 내에 상시 개설하기보다는 광역 단위와 협력한다.)

이상과 같은 전제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 지방 정부만이 아니라 중앙, 광역 단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부 예산을 위와 같은 목표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적절한 권한을 줘야 한다.

나. 중앙-광역-지방 정부 역할 및 시스템

아직 고용위기가 다수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중앙-광역-지방 정부의 역할 분담 및 협력 시스템을 짜 놓는 것이다. 스웨덴 말뫼의 사례에서 참고할 수 있는 역할 분담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중앙 정부:

- 산업 및 기업 차원의 위기 대응 및 정책 개입

- 기초 단위 예산 사용 권한 확대(고용위기 상황에서 탄력적, 창의적 사용 가능 하도록)

- 실업급여 보장 수준 제고 등 전반적인 사회안전망 정비

  • 광역 및 도 정부:

- 노동자 이직 훈련에 대한 연구 및 훈련 과정 연구

- 도내 노동자들을 위한 이직 훈련 및 컨설팅 프로그램 구축 및 상시 운영

- 위기 상황 시 지역에 출장소 마련하고 전문가 파견

  • 시·군·자치구 정부:

- 개인 차원 대응(노동자 및 시민들에 대한 생활안정 지원)에 집중

- 고용위기 상황에서의 직·간접적 파급효과에 대한 사전조사

- 위기 상황에서의 지역 내 가용자원 조사

- 지역 내 고용 수요 파악, 광역 단위와 협력해서 노동자 이직 훈련 지원

- 사회적경제 등 공동체에 기여하는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 방안 모색

이상과 같은 전제조건과 역할 분담 예시를 반영해서 고용위기에 대한 지역 단위의 대응 모델을 하나의 그림으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10] 지역 중심의 고용위기 대응 모델 예시

다. 도시 전환을 위한 장기 프로세스 및 거버넌스 구축

지역에서는 고용위기 상황 자체에 대한 긴급 대응도 필요하지만 도시가 실업자 증대, 인구 유출, 지방재정 감소, 도시 환경 악화 등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전환의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

말뫼와 빌바오, 릴의 사례를 통해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 정부(한국의 경우 시·군·자치구 단위 기초자치단체)의 역할이다. 왜냐하면, 시민들이 살고 싶은 도시, 원하는 ‘좋은 삶’과 ‘좋은 일자리’의 기준을 직접 정할 수 있어야만 그 방향으로의 전환이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과 이를 위한 과정을 중앙정부 혹은 광역 단위 정부가 주도한다면 시민들의 참여는 실질적일 수 없다. 물론, 기초자치단체라 하더라도 인구가 120만 명이 넘는 곳부터 1만 명 수준인 곳까지 편차가 크므로 이것이 절대적인 원칙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마 리팔루 전 말뫼 시장이 말한 것처럼 “변화의 흐름 속에서 시민들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시민들이 ‘우리가 이 변화의 주체’라고 느끼도록” 전환의 프로세스를 운영할 수 있는가이다.

도시의 혁신적 전환을 위해 필요한 첫 단계는 도시의 미래 비전을 설정하는 것이다. 말뫼 시의 ‘친환경 도시’, 빌바오의 ‘문화 도시’와 같은 것으로, 단지 수사(修辭)로서가 아니라 향후 몇 십 년간 도시가 지향해야 할 가치관이자, 가용한 자원과 동력을 집중하기 위한 우선순위로서의 비전을 말한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은 이 도시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좋은 삶’과 ‘좋은 일자리’의 기준선을 정하는 것이다. 이는 시민의 생활과 노동 수준이 그 밑으로 떨어진다면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최저선이기도 하다. 이것을 시민들이 직접 결정해야 하는 이유는, 공공의 자원을 직접 투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존에 존재하던 다른 공공사업 및 지원을 줄이거나 없애야 할 수 있다. 만일 시민들의 충분한 동의 없이 이와 같은 기준선을 정한다면, 공공자원의 조정 자체가 어렵고 각 사안마다 반대에 부닥칠 수 있다. 따라서 혁신 전환을 원하는 도시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전문가·시민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도시의 미래 비전, 시민이 누려야 할 ‘좋은 삶’과 ‘좋은 일자리’의 기준선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단계를 거쳐야만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혁신 전환’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림 11] 혁신적 도시 전환을 위한 지역 프로세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민’이라는 주체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을 단위 거버넌스, 직종 별 협의회 등이 오랜 세월 작동해 온 서구 사회와 달리 누가 대표성을 가진 주체인지 알기 어려운 것이 한국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이 쉽게 동원할 수 있는 대상, 평일 낮 시간에 개최되는 행사에 참석이 가능한 특정 직종 및 연령대의 주체들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한다면 거기서 비전 및 기준선을 도출해 봐야 시민들의 동의를 얻기는커녕 홍보조차 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어렵더라도 청년, 여성, 고령층, 직장인, 자영업자, 프리랜서 및 무직자 등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함으로써 그 도시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 누구도 ‘배제됐다’고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그 비전과 기준선에 맞도록 도시의 환경과 제도를 바꾸려면 장기간의 실행이 필요하므로 이를 위한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다. 물론 각 지역의 상황과 비전에 따라서 그 기간이 다를 수 있고, 지방정부가 직접 실행하는 것보다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정책 기조가 흔들리기 쉬운 한국의 상황에서 단체장 임기보다 오래 지속되는 장기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중앙·광역·기초 단위 예산 및 실행 부서 간의 칸막이가 있어서 전례 없는 사업, 융합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은 한국의 상황을 감안할 때도 행정 집행 프로세스를 단일화 해 진행할 기구는 필요하다. 물론 이 기구가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권한을 이양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한 법적 근거, 예산 집행 시스템 등은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구축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는 직접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직접적인 방안은 들어있지 않다. 도시의 상권을 활성화하는 등 기존의 ‘도시재생’ 방안, ‘사회적경제’ 기업을 몇 개나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등의 목표도 들어있지 않다. 혁신적 도시 전환의 프로세스에서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이다. ‘시민이 살고 싶은 도시’, 시민 누구나 기준선에 못 미치는 생활과 노동 상황에 처하지 않는 도시를 만들면 일자리는 시민 스스로 만들어 내며, 그에 따라 도시의 상권도 살아나게 된다(공급 이론)는 기조 하에서 도시 전환 프로세스를 진행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지역 정치인 또는 공무원이 치적으로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더라도 이런 과정을 흔들림 없이 진행했을 때, 10~20년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오히려 다른 도시들은 할 수 없었던 혁신적인 전환을 이뤄낼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말뫼’ 모델이자 ‘빌바오’ 모델, ‘릴’ 모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연구가 제안하고자 하는 지역 차원의 혁신 전환 모델이다.

다음 글 읽기: Part 6. 사람들이 안정되게 살 수 있는, 계속해서 살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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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소개 및 목차

Part 1. 한국 사회의 화두 ‘일자리’

Part 2. 우리 지역 고용위기 시그널

Part 3. 고용위기, 정책 대응과 실업 노동자의 경험

Part 4. 혁신 전환에 성공한 도시들

Part 5. 지역 차원 고용위기 대응 모델 제안

Part 6. 사람들이 안정되게 살 수 있는, 계속해서 살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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