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과 사랑의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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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결혼할까요?” (Why do people marry?)

비즈니스 스쿨에 다니던 시절 들은 질문이다. 나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의 한 강의실에 여러 나라에서 온 수십 명의 동료 학생들과 앉아 있었다. 덴마크 억양을 쓰는 무뚝뚝한 교수는 강의를 이 질문으로 시작했다. 기업 인수합병 시간이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비즈니스 스쿨 학생들은 경쟁적으로 손을 들었다.

사랑에 대한 MBA식 해석

첫 학생이 대답했다. 
“규모의 경제 때문입니다.”, “왜 규모의 경제죠?”, “집을 같이 쓰면 고정비용이 줄어듭니다.”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학생이 대답했다.
“절세가 가능합니다.”, “왜 그렇지요?”, “가족을 이루면 세제 혜택이 주어집니다.”
유럽에서 온 몇몇 학생들의 표정에 물음표가 새겨졌다. 하지만 교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진 나도 손을 들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사랑하기 때문 아닐까요?”

교수의 얼굴이 굳었다. 순간 강의실은 조용해졌다. 결혼 이야기로 시작해 기업간 인수합병을 이어 설명하려던 교수의 계획을, 내가 발음도 부정확한 말로 무너뜨린 것 아니었을까?

MBA 수업에 들어올 때마다 가슴 한켠에 숨겨뒀던 심장이, 그 순간 뛰쳐나와 가쁘게 뛰었다.

십수년이 지난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린 것은, 책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아누 파르타넨)를 읽으면서였다.

핀란드,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한 나라

핀란드 저널리스트인 아누 파르타넨은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사한다. 북유럽에서 보던 미국은 자유, 개인적 독립, 그리고 기회의 나라였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해 사는 과정에서 깜짝 놀란다. 미국인의 삶에서 자유, 개인적 독립, 그리고 기회가 송두리째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서다.

책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표지 이미지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배우자, 부모, 직장 상사에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많은 미국인 친구들은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유아 때부터 부모가 데리고 다니며 교육시켰다. 부모가 아이의 학교 숙제를 상당 부분 대신해주기도 했다. 부모들은 아이의 대학 입시에 세세하게 관여했다. 대학생이 된 뒤에도 아이들은 부모에게 수업료와 생활비를 의존했고, 심지어 문자와 통화로 부모에게 매일 보고하며 묶여 있기도 했다.

그런데 부모가 노인이 되면 상황이 뒤집혔다. 미국 노인들은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었다. 중년의 성인들은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여 나이든 부모의 삶을 돌보는 일에 압도당했다.

그뿐 아니다. 부부 사이의 의존성도 컸다. 미국에서는 은연중에 ‘남자는 돈을 잘 벌어야 한다’는 전제가 작동했다. 다이아몬드 약혼반지가 그 상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르타넨은 이 모든 것이 제도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부 사이의 의존은 국세청이 제도화했다. 미국 국세청은 부부가 소득을 합산해 하나의 단위로 소득신고서를 제출하면 혜택을 준다. 결혼은 일종의 금융 합병 행위였다. 결혼이 사랑의 약속이 아니라 경제적인 협약이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적 현실은 그랬다.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재정 상태 점검이다. 학자금 대출은 얼마나 지고 있는지, 의료보험을 유지할 수 있는지, 출산 비용을 낼 수 있는지를 꼼꼼히 따지고 결혼하고 출산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출산 비용을 보장하지 않는 의료보험도 많기 때문이다.

다른 제도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학생은 막대한 학비를 지불해야 하지만, 핀란드 대학생은 무상교육에다 학생수당에 임대료 보조금까지 받을 수 있다. 쉽게 독립해 살 수 있다. 미국 노인은 자식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핀란드 노인은 두둑한 연금에 노후 걱정이 없다. 자유와 독립을 즐긴다. 부부가 되어도 당연히 세금도 각자 내고 복지혜택도 거의 각자 받는다.

그래서, 핀란드에서는 돈 때문에 사랑하고 돈 때문에 모여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이런 나라에서 사람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고 함께 산다. 결혼해야 세제혜택도 받고 집값도 아끼고 외식비도 아낄 수 있어서가 아니다. 교육은 배움 그 자체를 위해, 기업 경영은 성과 그 자체를 위해 진행된다. 취업을 위해 억지로 하는 교육도 없고, 월급에 목매 주종관계가 형성된 일터도 없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목적 그대로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돈 때문에, 권력 때문에 하는 선택이 아니라, 선택 그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더 나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MBA 강의실에서 내가 이야기했던 그런 ‘사랑’이 핀란드에서는 가능하다고 파르타넨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강의실에서 교수와 대부분 다른 학생이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는, 미국에서는 그게 불가능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기본소득 정책실험, 실패 아니다

그런 핀란드가 기본소득 정책실험에 나섰다. 기본소득 정책실험의 연구책임자인 올리 캉가스는 2018년 5월 LAB2050의 컨퍼런스에서 핀란드가 ‘거의 완벽한 복지국가’라고 말했다.

새로운 상상 2018에 참석했던 올리 캉가스 핀란드 사회복지국(KELA) 담당관 발표 영상

미국 거주자가 된 파르타넨이 책에서 그린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그런 국가가 왜 새로운 제도 실험에 나섰을까?

여기서 ‘완벽한’이라는 단어는 이런 뜻이다. 현금수당이나 사회서비스나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된다. 그리고 복지혜택은 개인에게 주어지며, 가구를 기준으로 지급되지 않는다. 또한 핀란드 시민권을 갖지 않아도, 핀란드에 거주하면 국민과 같은 혜택이 주어진다.

핀란드에서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주거나 생계 같은 기초보장은 거의 완벽하게 이뤄진다. 전업주부라도 아프면 상병수당이 나온다. 학생조차 주거급여 대상이다. 부모가 잘 사는지를 따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분배의 기본 단위를 가구가 아니라 개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거의’에서 멈출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완벽’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한다. 그 방향은 조건없는 기본소득이다.

그들은 구직 조건을 달고 지급하는 실업급여 같은 제도가 여전히 자유를 제약하는 면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실업 상태에서 구직노력을 하면 급여를 받지만 취업하면 받지 않는 제도는, 오히려 취업할 자유를 저해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구직노력 없어도 취업해도 지급하는 기본소득 정책실험을 2천명의 실업급여 수혜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 정책실험의 완전한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1차 결과를 발표한 상태다. 정책실험이 실패라는 지적도 있고, 성공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전 연구 결과 발표에서, 핀란드 연구팀은 ‘고용 증대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 언론에서는 그 내용을 주로 기사로 썼다.

하지만 다른 결과들이 있다. 2년 동안의 실험 뒤 설문조사를 한 결과,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의 웰빙 수준이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들보다 높았다. ‘고용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기본소득 그룹이 높았다. 아직 완전한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라 잠정적 결과이기는 하지만, 무작정 실패라고 하기에는 곤란하다.

핀란드는, 파르타넨 식으로 말하자면, 사랑을 완성시킨 나라다. 그 나라가 이제 ‘일’도 완성시키려 실험에 나섰다고 보면 된다. 각종 사회수당에서 구직 조건을 떼어내는 ‘무조건성’에 도전하는 정책 실험이다. 목적이 ‘근로의 확대’가 아니라 ‘행복의 증진’이었다면 이 실험은 성공일 수 있다.

그들이 꿈꾸는 다음 사회

이 실험은 어떤 꿈을 담고 있을까?

꼭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타임으로 근로계약을 맺고 지시를 받으며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안정적이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의 꿈이다. 적게 일할 사람은 적게 일하고, 많이 일할 사람은 많이 일하고, 아침에 일할 사람은 아침에, 밤에 일할 사람은 밤에 일하면서도 모두 생계 걱정은 하지 않는 꿈이다. 어쩌면 모두가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꿈이다.

사실 생계만을 위해 정해진 시간을 채우며 하는 일은 행복하기도 혁신적이기도 어렵다. 자신이 정말로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혁신이 일어난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해야 사회 전체 행복도가 높아진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사람이 연금 때문에 공무원이 된다거나, 목수로 빛날 수 있는 사람이 밥벌이 때문에 부동산 중개사가 되겠다고 마음먹는 일은 사실 사회적 낭비다.

꼭 돈이 벌리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아이디어가 있다면 생계 걱정 없이 위험한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사회. 평범한 보통 사람도 적절한 시간 일하고 적절한 시간 동네에서 어울리며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나는 핀란드 기본소득 정책실험으로부터 그들이 꿈꾸는 다음 사회의 모습을 읽었다.

기본소득제는 소득분배를 위한 새로운 제도다. 하지만 단순한 분배제도가 아니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꿈을 담고 있다.

즉 다음 사회에 대한 비전을 함께 이야기해야 기본소득제는 그 의미가 완성된다. 뒤집어 말하면, 기본소득제는 그런 비전을 토론할 수 있게 해주는 입구다.

한국: 가부장적 발전국가와 신자유주의 발전국가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제는 어떤 이야기로 들어서는 입구일까? 나는 과거 가부장적 발전국가를 벗어나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나 유연안정성 체제도 넘어서서, ‘자유안정성’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향해 움직이는 지름길의 입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인 1950년대 세계 최빈국이었다. 그런 나라가 반세기 만에 무시할 수 없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화려하게 보이는 경제성장 과정에는 아픔도 컸다. 다른 나라들보다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수십 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했다.

한국은 그런 고속성장에 최적화한 체제를 구축했다. 국가는 기업을 봐주고, 기업은 남성 노동자들을 돌봐주고, 남성 노동자들은 가족들을 돌봐주는 가부장적 발전국가 체제였다.

거꾸로 가족들은 남성 가장에게 순종하고, 남성 노동자는 기업에 복종하며, 기업은 국가에 충성하는 구조였다. 후발주자로서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저임금 모델을 택했고, 노동자에게 부담을 덜 주기 위해 낮은 세금과 낮은 복지 체제를 구축했다.

가부장적 발전국가는 폭력적 위계구조를 갖고 있었지만 노동자와 가족에게 안정을 제공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덮친 세계화 물결과 함께 그 안정이 사라져 버렸다. 노동자는 불안정에 시달리고, 실패자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됐다. 가부장적 질서가 자유를 앗아갔다면, 신자유주의는 안정까지 앗아갔다.

그런 가운데 경제성장은 이어져서, 1인당 국민소득은 2018년 3만1천 달러에 이르렀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체감도는 매우 낮다.

이런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데는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문제는 그 방향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자유안정성 모델

우선 국가는 뒤로 물러나고 시장이 생산과 분배를 맡도록 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체제가 있다. IMF가 아시아 금융위기 때 한국에 제안한 모델이기도 하다. 이 체제에서는 개인이 책임지고 일자리를 구하며, 그 일자리를 통해 삶의 다양한 필요를 대부분 해결하는 방식이다. 일자리를 구할 능력이 없는 사람의 생계만 국가가 제한적으로 보장한다. 당연히 삶은 ‘일자리’를 중심으로 조직된다.

미국식 모델은 기술혁명으로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그 유효성을 의심받는다. 심지어 종주국인 그 나라에서조차 ‘민주적 사회주의’(버니 샌더스)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엘리자베스 워런)라는 정반대 대안이 인기를 끌 정도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복지국가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은 풀타임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짠 복지국가 체제를 제시한다. 일하는 기간과 임금 수준에 연동된 사회보장을 근간으로 한다. 의료와 교육 같은 기본적 서비스는 국가가 무상으로 또는 매우 저렴하게 제공한다. 노동시장 참여를 조건으로 경제적 안정성을 강하게 보장하는 체제다.

그러나 유럽 시스템은 최근 그 역동성을 의심받고 개혁을 요구받았다. 일부는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여 복지 축소와 민영화에 나섰다. 일부는 보편적 복지국가와 노동시장 유연성을 결합한 ‘유연안정성’ 모델로 변신했다. 북유럽 국가들이 주로 이 모델을 채택했고,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가구가 아닌 개인 기반, 시민이 아닌 거주자 기반, 강하지 않고 약한 근로조건부 복지를 제공하는 핀란드 시스템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앞선 축에 든다. 올리 캉가스 박사가 ‘거의 완벽한(almost nearly perfect)’ 복지국가라고 자신한 데는 근거가 있었다.

가부장적 발전국가에서 신자유주의 발전국가로 변모한 한국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하나의 길은 국가가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나서 완벽한 신자유주의 체제로 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비판받고 있는 이 체제를 한국의 미래 모델로 설정할 필요는 없다.

또 다른 길은 국가의 역할을 키워 유럽식 노동 중심 복지국가 체제로 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혁신과 제조업 고용 쇠퇴로 일자리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풀타임 노동자 중심의 체제를 짜면 소외된 사람이 너무 많아진다.

북유럽식 유연안정성 모델이 현존하는 체제 중에서는 마지막 남은 길이다. 실은 유연안정성 모델 역시 비판받는 대목이 많다. 심지어 그 중에서도 가장 앞선 핀란드가 기본소득 정책실험을 통해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핀란드가 시도 중인 변화의 길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LAB2050은 풀타임 노동을 전제로 하지 않으며 무급노동과 자유로운 활동까지도 포괄하며 생계를 보장하는 새로운 사회 모델을 ‘자유안정성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했다.

이 모델에서는 가능한 한 국가가 개인에게 자원을 직접 분배하며 안정을 제공한다. 그 안정을 토대로 개인은 행복과 자유를 얻는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개인이 위험을 감수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창업과 사회혁신에 나서도록 한다. 새로운 시도는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그런 혁신으로부터 경제적 부가가치와 사회적 자본이 늘어나고, 이를 다시 국가가 회수해 개인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 투자하는 체제다. 제도적으로는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 같은 보편수당을 높이는 것부터, 장기적으로 기본소득제까지를 염두에 둔 제안이다.

경제적 안정성이 높아질수록 기술혁신 및 사회혁신에 대한 수용성도 높아질 것이다. 속박하지 않는 조건없는 분배는 그런 수용성을 더 높일 것이다.

LAB2050’s Report <Freecurity Revolution>

LAB2050에서 2018년 낸 ‘자유안정성 혁명’(구교준, 최영준, 이관후, 이원재) 보고서에서 상세하게 분석한 이야기다.

목적지는 결국, ‘사랑은 사랑답게, 일은 일답게’ 하자는 핀란드의 지향점과 일맥상통한다.

위기와 기회

이런 새로운 체제를 한국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다양한 측면을 볼 수 있겠지만, 우선 기본소득제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자. 결론적으로 한국인은 기본소득제에 대해 꽤 우호적이다.

LAB2050이 2018년 10월 26~29일 사이에 전국 성인남녀 10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본소득에 대한 찬성이 56.2%, 반대가 43.6%로 찬성이 높았다. 학력별로는 대졸자(58.0%) 계층이, 연령별로는 20대(60.3%)와 30대(66.7%)가 가장 높았다.

2016~7년 실시한 유럽사회조사(ESS) 18개국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흥미롭다. 이 조사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해 러시아, 이스라엘, 벨기에, 핀란드 등에서 찬성이 높게 나왔고,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등에서 반대가 높았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는 찬반이 비슷했다. 미국 조사에서도 대체로 찬반이 비슷하게 나온다.

하지만 한국인들도 여전히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한국리서치가 2019년 1월 18~21일에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기본소득제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까지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이 3%, ‘대략적인 내용만 알고 있다’는 의견이 29%였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한국인이 전체의 32%에 불과하다.

나는 기본소득 정책실험이 그 토론을 촉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LAB2050이 청년기본소득 정책실험설계 연구를 하고 제안한 이유다.

한편으로 정책실험은 정책 효과를 미리 볼 수 있게 해주는 과학적 장치다. 동시에 많은 사람이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하고 토론하도록 만드는 공론화 기능도 갖고 있다. 실제로 핀란드 기본소득은 전세계에 기본소득 공론장이 생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맞닥뜨린 분명한 위기가 있다. 기술혁신으로 일자리 불안정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제조업 고용위기는 코앞에 닥쳐 있고, 일부 지역에는 이미 시그널이 왔다. 하나의 질서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위기는 동시에 기회다.

하나의 질서가 무너질 때, 기존 질서를 어설프게 지키려 하면 고통만 커진다. 대신 새로운 질서를 염두에 두고 대응하면 더 큰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자유안정성 모델처럼, 한 단계 더 진보한 사회를 꿈꿀 수 있는 때다.

15년 전 그 기업인수합병 수업은, 다행히 순조롭게 마쳤다.

인수합병은 수익성만 따지면 성공할 수 없다. 기업이 가진 지식과 노하우 같은 유무형의 자원이 중요하다. 기업결합은 이익과 이익의 결합이 아니라 자원과 자원의 결합이다. 당장의 재무적 이익만 계산하면 일을 망친다. ‘자원기반관점’을 가르치던 교수가 내린 결론이었다.

어쩌면, 사랑도 그렇다. 그리고, 일도 배움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 적절한 사회 제도를 갖춘다면.

이원재 LAB2050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