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직장이 아닌 진짜 ‘공공’기관 되려면

LAB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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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in readJul 17, 2019

[IDEA2050_010]

고동현 (LAB2050연구원)

사진출처: shutterstock

“저는 기후를 위해서 학교 수업을 거부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스웨덴 의회 앞 땅바닥에 자리를 잡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스웨덴의 16세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추구하는 것이 학교 수업보다 중요하다며 1인 시위에 나섰다. 정책결정자들에게 2050년, 2100년에 살아갈 미래 세대까지 고려한 행동을 촉구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로 불리는 이 운동은 지난 3월 128개 국가, 2,300여 개 도시에서 청소년 140만명이 참여하는 시위로 확대됐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는 청소년들 (출처: shutterstock)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밀레니얼 세대(2000년 대 이후 성년이 된 세대)가 대체 육류(Meat Substitute)처럼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제품에 돈을 쓰는 경향이 있다”고 보도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주된 관심사가 장수와 건강인 것과 비교하기도 했다.(조선일보, 2019년 6월 29일 기사)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에 참여하거나, 대체 육류를 구매하는 이들은 ‘경제 성장’이나 ‘최저 비용’과 같은 경제적 가치 못지않게 동물권, 환경 보호와 같은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중요시고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런 경향은 미래 세대로 갈수록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 미래 세대가 원하는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 세대로 갈수록 ‘성장’보다는 ‘분배’ 중요시

LAB2050과 한국리서치는 최근 한국 국민들이 지향하는 가치의 확장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성장’과 ‘분배’라는 가치에 대한 인식 조사를 했다. 여기서 성장이란 ‘경제 성장’, 분배란 사회적 배제의 축소, 차별이나 불평등의 감소를 포괄하는 의미다.

지난 6월 14~17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PC·스마트폰 전송방식) 결과, “성장과 분배 둘 다 중요하다”는 응답이 전체의 53%로 1위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27%만이 “성장이 분배보다 더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20%는 “분배가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응답을 세대별로 보면 인식의 차이가 나타난다. 60세 이상에서는 ‘성장’이 더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36.6%로, ‘분배’가 더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10.4%)과 차이가 컸다. 반면 그 외 세대에서는 두 응답 간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특히 20대에서는 ‘분배’를 더 중요한 가치라고 답한 비율이 30.3%로 ‘성장’이 더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20.8%)보다 높았다. 미래 세대로 갈수록 경제적 가치 이외의 다양한 가치를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는 그렇게 작동되고 있을까? 그리고 확장되어 가는 가치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까?

성장과 분배에 대한 중요성 인식 (출처: LAB2050)

대한민국은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개발국가 체제 이후 ‘경제 성장’이라는 가치에 집중했다. 국가가 나서서 산업화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소수의 재벌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여기서 창출된 부가 사회 전체에 흘러들어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국민들도 산업화의 목표를 위해 같이 땀을 흘렸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흐름과 1997년 외환위기 등의 영향으로 ‘효율성’은 또다른 중요 가치로 떠올랐다. 정부를 포함한 사회 조직 전반에서 이를 주요 운영원리로 삼았다.

하지만 그러는 동시에 경제성장과 효율성 이외의 가치들도 서서히 부상되고 있었다. 민주화를 거치는 동안 사회 구성원들은 ‘인권’, ‘노동권’과 같은 가치를 지키고 보호할 것을 정부에 요구해 왔다. 이는 조금씩 국가의 운영 원리에도 반영돼 왔다.

자연 자원 보호, 환경 보전, 깨끗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 권리 등 환경적 가치에 대한 인식도 계속 높아졌으며 최근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 문제가 부각되면서 이런 흐름은 더욱 강해졌다. 이제는 환경 문제 대응에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경제 성장률이 3% 안팎인 저성장 시대가 고착화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져 왔다. ‘경제민주화’, ‘소득주도성장’은 그런 맥락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환경과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서 국제 사회에서는 ‘지속가능발전’이라는 가치 지향 하에서 대응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은 미래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발전을 말한다.(출처: 지속가능발전포털)

정부의 운영 원리로 명시된 ‘사회적 가치’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국제적 흐름을 반영해 문재인 정부는 올해 들어 정부 운영 및 정책 기준을 효율과 성장 위주에서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사회적 가치’는 2018년부터 정부혁산 종합 추진계획에서 ‘사회·경제·환경·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라는 의미로 사용돼 온 용어다. 여기에는 인권, 노동권, 안전, 환경, 민주적 의사결정 등의 가치가 포함돼 있다. 이 가치들은 이전 정부들에서도 강조돼 오긴 했지만 정부의 운영원리로 명시되어 선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회적 가치의 변화방향 (출처: LAB2050,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 포용국가 시대의 조직 운영 원리)

한국 사회의 여러 부문들이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게 작동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투자·출자 또는 정부의 재정지원 등으로 설립·운영되는 기관으로 중앙정부 및 지방자지단체 산하의 공기업, 준정부기관 등으로 구성된다.

주로 전력, 석유, 가스, 수자원, 도로, 철도, 토지, 주택과 같이 공동체가 보유한 자원 독점적으로 배분해 국가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거나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 대부분은 경제 성장을 목표로 국가가 운영되던 시기에, 그 목표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설립되던 1988년 당시의 한국수자원공사법 제 1조(목적)을 보면 수자원공사의 설립목적을 알 수 있다.

이 법은 한국수자원공사(이하 “公社”라 한다)를 설립하여 수자원을 종합적으로 개발·관리하여 공업용수등의 공급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국민생활의 향상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내용은 2009년 다음과 같이 개정됐다.

이 법은 한국수자원공사를 설립하여 수자원을 종합적으로 개발ㆍ관리하여 생활용수 등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고 수질을 개선함으로써 국민생활의 향상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두 내용을 비교해 보면, 이전 정부에서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 관리하고 잘 공급하는 것을 공공기관(수자원공사)의 목적으로 여겼던 반면, 2000년대 이후에는 사회 전체의 삶의 질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변화한 시대에 맞게 ‘철도공사법 제1조’ 개정해야

그러나 이렇게 가치의 확장이 모든 공공기관에서 이뤄져 온 것은 아니다. 한국철도공사의 설립 목적(한국철도공사법 제 1조)을 보면, 여전히 “철도 운영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철도산업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내용뿐이다. 철도 서비스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필요로 하는 보편적 이동권, 미래 세대를 고려한 지속가능성의 관점은 반영돼 있지 않다.

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에 맞게 운영되도록 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설립 목적을 그에 맞게 고치는 것이다. 물론 일일이 근거 법을 개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이를 검토하고 수정해 나가는 것이 공공기관의 운영 방향을 전환하는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설립 목적을 잘 정비하더라도 실제 운영에 사회적 가치가 반영되도록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자산 기준 상위 10대 공공기관의 규모는 10대 기업과 비슷한 수준이다. (연합뉴스, 2017년 5월 1일 기사) 이 정도로 큰 규모에,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운영돼 온 조직에서는 관행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기존의 조직 운영 원칙과 의사결정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서는 큰 변화가 나타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보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는 방법, 이에 부합하는 의사결정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현재 공공기관의 운영 구조 하에서는 앞서 정부가 제시한 사회적 가치 구성 요소인 ‘민주적 의사결정’과 ‘참여’의 가치가 반영되기 어렵다. 형식적으로만 지역 주민 또는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단계를 거칠 뿐, 실제로는 기존의 임원 및 엘리트 집단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이 문제인 것은, 일정한 시점에 아무리 좋은 취지로 설립목적을 수정하고 새 운영 원리를 강조한다고 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가치가 더 확장되고, 미래 세대의 요구가 달라질 때 이를 자연스럽게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공공기관은 계속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공기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상시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지분을 소유한 정부 관계자, 주식 시장 투자자 뿐만 아니라 운영 과정 전반에 영향을 주고받는 조직 구성원, 협력 업체, 본사나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 사회, 공공 서비스를 제공 받는 현재의 대상자들과 미래 세대까지 이해관계자들로 고려해야 한다.

변화해가는 가치 반영 가능한 시스템 구축해야

‘사회적 가치’는 여러 자리에서 논의되고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들이 많다. 그것은 사회적 가치 자체가 계속해서 변화하고 확장되는 것이기 때문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은, 변화와 확장이 잘 반영되는 구조를 만든다는 의미다.

스웨덴의 16세 청소년이 1인 시위를 하면서 요구한 것도 그와 같다. 현재의 정책 결정을 할 때 미래 세대들의 의사까지 반영하라는 것은 곧 젊은 세대들의 의견이 빠르게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라는 의미인 것이다.

청년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직장,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입사하고 있는 조직인 공공기관들이 그와 같이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고, 유연하고 개방된 의사결정 구조까지 갖춘다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도록 작동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

관련 보고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 포용국가 시대의 조직 운영 원리

관련 영상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란 무엇인가? (양동수 사회혁신기업 더함 대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어떻게 할 것인가 (김진경 LAB2050 기획위원)

고동현 LAB2050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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