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한 회사에 취직했다.

Myung Sahn Juhn
UFOfactory 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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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in readFeb 29, 2016

2월 1일부터 새로운 회사로 출근했다. 사명은 유에프오팩토리다. (원래 사명은 유에프오소프트인데, 브랜드로 유에프오팩토리를 사용한다.) 페이스북의 COO 쉐릴 샌드버그는 ‘자리 있을 때 로켓에 올라타라’고 했는데, 한국산 로켓의 나이 제한을 뚫을 정도로 내공이 강하지 않은 나는 얼떨결에 로켓도 아니고 유에프오를 타버린 것이다. 구글은 달나라 가는 게 목표인데, 여기는 아예 유에프오를 만들려는 회사인가? 외주 개발건 때문에 만나는 고객들도 꼭 한번은 물어본다. 이 ‘유에프오’가 그 ‘UFO’가 맞나요? 아무튼 오늘은 유에프오팩토리에서 딱 한달 되는 날이다.

나는 대표보다 나이가 많다. 나중에 민증을 까보니 회사에서 내가 제일 늙었다. 원래 나이 이런거 잘 안따지긴 하지만, 사실 한국사회에서 그게 쉬운 일인가? 그래도 상사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야 편한 법이고 부하직원은 나이가 적어야 맘이 편한 법이다. 그런데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 솔직하게 부담이 없을 수 없다. 나이값 못한다고 평가받으면 어떻하나, 나이 때문에 대표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하면 어쩌나, 나이 많다고 좀 있다가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 안들래야 안들 수가 없다. 그래서 내심 대표가 입사 초기에 좀 챙겨주기를 바랬다. 차도 한잔 같이 하고, 뭐 40줄에 선 중년의 고달픔도 같이 이야기하고, 어느 정도 적응할 때까지는 조언도 해주면서… 뭐 그런 것을 강하게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한달 동안 회사에서 대표를 본 것은 불과 몇번 되지 않는다. 세번이나 네번? 둘이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적은 한번도 없다. 적응하는 몇달 동안 대표의 보살핌 혹은 관리를 기대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버렸다. 대표만이 아니다. 팀이라고 나를 포함해 달랑 두명 있는데, 다른 팀원(남자)은 1주일에 한번 볼까 말까다. 그것도 날짜 시간 잡고 나와달라고 해야 나온다. 이제 두달 된 애기가 있는데, 애 보기에 너무 바쁘다는 거다. 애초 육아휴직을 쓰려고 했는데, 맡은 일이 너무 많아 육아휴직도 못하고 집에서 리모트로 근무한다며 오히려 생색을 낸다. 뭐… 사정은 이해가 가지만, 달랑 혼자 나와 있는 한달도 안된 나는 어쩌라고… ㅠㅠ

유에프오팩토리는 적극적으로 재택을 권장한다. 정식 직원이 20명 남짓인데 사무실엔 많으면 열명, 적으면 3–4명만 출근한다. 지난주 전원 회식을 하지 않았다면 난 유령회사가 아닐까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일은 잘 돌아간다. 슬랙지라, 구글독, 행아웃 등 여러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사용하면서 출근하지 않아도 일이 돌아가는 체제를 만들었다. 재택 근무가 어느 정도 자리잡은 것인지, 지난주에는 공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좀 있으면 ‘사무실 유지비용 나가는데 굳이 나와야겠니?’ 하고 눈치줄 지도 모르겠다.

유에프오팩토리에 결합한 것은 입사 한달 전만 해도 예상치 못했다. 권오현대표를 3–4년 전, CCKorea의 오프 모임에서 스쳐가듯 한번 본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낸 것은 두달 전이다. 시사인에 쓰는 IT 칼럼에 ‘더 나은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드는 개발자 모임’을 소개하기 위해 검색해보니 그 멤버 중 하나가 권오현 대표였다. 한겨레 신문에 실린 권오현 대표의 인터뷰를 보고나서 갑자기 그때 만난 그 사람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나 이 회사 들어가면 좋겠다. 그런데 이 나이에 받아줄까?’ 인터넷 사업에서 나이 마흔다섯이면 사장 아니면 최소 이사 정도는 달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동종업계에 이직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다. 나이 마흔 다섯에 차장 기획자, 부장 기획자는 아주 매우 애매하다. 게다가 당시 나의 공식 직함은 실업자였다.

사실 나는 2015년 6월달에 회사에서 잘렸다. 안되는 걸 된다고 얘기하지 못하고 아부는 더더욱 못하고, 기어이 표정이든 말투든 혹은 직설이든 어떤 식으로든 직언을 해야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성격이다보니, 덜컥 덫에 걸린 것이다. 그리고 나서 반년 정도를 지인들의 일을 도와주며 뭐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나 진로를 고민하던 상황이었다.

지인과 함께 진행하던 기획안의 진행 여부가 애매해지고 있던 어느날 권오현 대표를 볼 기회가 있어 권오현 대표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거기 기획자가 들어갈 자리가 있나요?’ 대표도 개발자 출신이고 회사가 개발자 중심 회사라는 것은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기획이란 직군은 개발자나 디자이너가 조금만 더 영역을 넓히면 포괄할 수 있는 일이기에,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 다행히 ‘고민중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웹에이전시(인터넷 서비스 외주개발 회사)이기에 외부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 이 영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달 쯤 후, 정식으로 이력서를 제출했고 그 다음주 월요일 첫 출근을 헸다.

월급은 지난 회사에서 받던 것에서 조금 줄어드는 정도로 협의되었다. 나는 내심 더 많이 깎일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사실 다른 회사 갈 곳도 마땅치 않고, 또 회사의 전반적인 방향이 마음에 들었기에 어느 정도 깎여도 감수하자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받았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여기도 비밀이 하나 숨어 있었다. 그것은 자기가 책정한 연봉 X 2가 모여 팀의 매출 목표가 된다는 것이다. 즉 연봉과 매출이 연동된다. 연봉을 많이 받고 싶으면 그만큼 일을 많이 하면 된다는 것이다. 대표의 논리는 아주 심플했다. 최소 연봉 X 2 배 정도 매출을 해야 회사가 돌아가니 그만큼은 미니멈으로 하라는 것이 회사의 최소 가이드다. 이게 최소가이드라는 말은, 대표가 회사를 통해 많은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아직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대표는 지속가능하고 괜찮은 회사를 만드는 것 자체가 자아실현인 듯 하다. 만약 매출 목표를 초과달성하면? 그때는 초과액의 절반이 인센티브로 지급된다. 회사를 다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매출 초과분의 절반을 인센티브로 준다는 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정책이다. 예를 들어 연봉 4천만원짜리 사원들이 5명 모여 4억의 매출을 하면 자기 밥값을 하는 것이고, 만약 4억을 초과해 매출 8억을 했다면 인센티브로 4천만원을 더 받게 된다. 만약 미친 듯이 일하면 연봉 1억을 넘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12월 실제로, 4/4분기 매출 초과액에 대해 약속한 대로 인센티브가 지급되었다고 한다.

그럼 연봉을 좀 덜 받고 일을 좀 덜 하고 싶다면? 그러면 연봉을 적게 잡으면 된다. 올해 6개월 정도 쉬고 싶다면 연봉을 절반으로 잡고, 6개월은 쉬라는 것이다. 책을 쓰고 싶다면 한 3개월 쉬어도 된다. 그만큼 돈을 안받으면 되는 것이다. 육아휴직을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한명 뿐인 팀원이 생색을 낸 건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상반기에 연단위 목표를 달성하면 나머지 시간은 쉬어도 된단다. 룰은 아주 심플하지만, 한국에선 아주 이상한 회사임에 틀림없다. 법정휴가를 다 쓰면 큰일나는 한국이니 말이다.

매출 X 2의 매출목표는 회사 운영에서 최소 비용으로 잡힌 목표다. 나는 창업했을 때 공간을 나라에서 지원받고 다른 비용을 거의 안썼기에 사대보험을 제외하고 월급 이외 비용이 거의 안나갔기 때문에 별로 감이 없는데, 실제 회사 운영에서는 직원들의 월급 대비 몇배의 매출을 해야 회사가 돌아간다고 한다. 그것을 2배로 줄인 것은, 그만큼 관리비용을 줄였기 때문이다. 보통 회사에서 팀장 수준만 되어도 업무의 절반 정도는 본업무와 다소 무관한 관리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상관을 위한 보고 문서를 써야 하고, 부하 직원 감시도 해야되고 불안한 팀원을 다독이기 위해 차도 마셔야 하고 필요하면 술도 마셔야 한다. 팀원 전체가 A4 한장의 일일보고서를 써야하는 회사도 있다. (일일 보고서를 써본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시간 뺏기는 미친 짓인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유에프오 팩토리는 이런 일들을 거의 최소한으로 줄여버렸다. 다만 재택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하루에 한번 한줄 정도 하루 일과를 쓰는 게 전부다.

매출목표가 있지만, 그렇다고 양심을 팔아 영업을 하는 것을 권장하지도 않는다. 입사 첫날, 시민단체에서 일하시는 분이 웹사이트 개발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상담을 요청해 왔다. 나는 그분의 말을 듣고, 그건 하지 마시라고 단호하게 말씀드렸다. 왜냐하면 돈만 날릴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분은 아이디어만 있었지, 웹사이트를 개발하고 운영할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어디서 프로젝트 비용을 받은 것도 아니고 개인 사비를 쓰겠다고 한다. 나는 단호하게 하시면 안된다고 말씀 드렸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 이런 일이 있었는데, 회사 입장에서 이러면 안되는 것 같은데… 했더니 안되는 사안은 안된다고 말하란다. 또 일주일 쯤 후 알음알음으로 웹사이트 개발을 요청해온 고객이 있었는데, 우려되는 지점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이런 거 면밀하게 검토하고 진행하시라고. 다행히 그 분은 그 전에 한번 개발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이해하셨다. 다시 회사에 돌아와 한 건이라도 매출 만들어야 하는데, 이래도 될지 모르겠다 했더니 역시 고객에게 솔직하게 말하란다. 물론 이런 사안이 있을 때마다 어느 선까지 이야기를 해야할지 고민하겠지만, 최소한 양심을 팔아서 영업을 하지는 않아도 되는 분위기다.

업무는 팀단위로 돌아가기 때문에 팀을 어떻게 운영할지는 상당부분 팀에 맡겨져 있다. 출근시간을 체크하는 사람도, 왜 일찍 가냐고 눈치주는 사람도 없다. 하루 책상에 얼마나 붙어있었는지를 체크하는 사람도 없다. 사실 회사에서 이런 일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부 다 관리비용이다. 사장이 그걸 보고 있으면 사장이 다른 일을 못하는 거고, 그걸 관리하라고 관리팀장을 두면 그 월급이 또 나가는 거다. 직원들의 출퇴근 체크를 자동화하려면 그것만으도 또 몇 천만원이 나간다. 게다가 그런 걸로 사람을 ‘관리’하기 시작하면 사장은 쪼잔이가 되고 직원들 사기는 떨어지고 위화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유에프오팩토리는 이런 비용을 안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게 이제는 돌아가는 듯 하다.

이런 정책은 어느 정도는 유에프오팩토리가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고 각자의 업무 영역이 비교적 명확하게 분리되는 웹에이전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게 가능한 상황이다. 지난 회식 자리에서 대표에게, 이런 룰이라면 ‘40대 경험 많은 늙은 개발자들 치킨집 차리지 말고 여기 와서 팀단위로 먹고 살아도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게 바로 자기가 바라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20명인데, 한 200명 정도가 이렇게 먹고 사는 회사가 될 수 있지 않겠냐’고 한다. 나는 공감했다. 실리콘밸리에는 60세 넘은 개발자들이 있다. 그들은 아직도 현역으로 일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개발자들은 40살이 넘으면 받아주는 곳이 없다. 아니 개발자만이 아니다. 기획자도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그 무수한 프로젝트들에서 몸으로 얻은 문제 해결 경험들은 모두 사장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건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다. 이들의 경력을 이어주고 경험을 살리는 것은 사회적으로 그만큼 유익한 일이다.

유에프오팩토리는 설립된 지 이제 3년이다. 그리고 3년 사이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 하다. 고객들이 추천을 해주어 연결연결로 미팅 요청이 오는 경우도 많다. 그 동안 같이 일한 고객들에게 어느 정도 평판을 유지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좋은 일만 있었겠는가? 느슨한 회사의 내규를 이용해 인센티브를 확 땡기고 먹튀한 기획자도 있었다니, 초보 에이전시가 겪어야 하는 일들은 한번씩은 다 겪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박박 기어야 하는 힘든 시기는 어느 정도 지나고 대략 기반은 잡은 듯 하다. (고 말하는 것은 막 결합해서 숟가락 얹고 싶은 사람의 희망사항일까?) 물론 풀어야 하는 숙제는 많다. 당장 팀이 목표한 매출을 못했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아직 룰이 없다. 그 동안은 매출이 부족하면 대표가 다른 프로젝트를 해서 직원들 월급을 주었다고 한다. 올해 초 회사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전체 팀에게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 달라고 올 1사분기의 숙제를 냈다. 아직 유에프오팩토리는 회사의 사규가 많지 않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논의하고 규칙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말로 유에프오팩토리는 40대 늙스그레한 인터넷 종사자들이 주눅들지 않고 자기 삶을 꾸려 갈 수 있는 회사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첫 케이스가 나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산업에서 20년쯤 밥먹은, 이제 다른 회사 들어가려해도 들어가기 힘든 그러나 어쨌든 경험과 연륜은 남아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기 몫의 돈을 벌면 그걸로 족하다. 이런 구조라면 윗자리로 올라가려고 서로를 갈구면서 발버둥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다. 팀장, CTO 이런거 하기 싫고 천년만년 개발만 하고 싶은 사람은 개발만 하면서 먹고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회사는 각 팀에 시간을 쪼개 자기들이 만들어보고 싶은 걸 찾아보라고 독려한다. 서비스를 만들어 대박을 내고 싶는 사람들이라면, 여기와서 낮에는 자기 월급 만들고 밤에는 자기 서비스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이 회사는 정말로 유에프오를 만들려는 것일까? 난 정말 이상한 회사에 취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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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ung Sahn Ju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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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ember of BOScoin project, author of Blockchain Government, senior researcher of ARIST, supporter of protocol cooperativism, sharing economy, direct democra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