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오바마는 기본소득에서?: 기본소득 정책실험 동향

고동현 (LAB2050 연구원) · 송재걸 (LAB2050 객원연구원)

기본소득 실험을 검토·실행 중인 나라들 © mapchart.net

기본소득제가 세계 주류 정치권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2017년은 ‘기본소득 실험(Basic Income Pilot)의 해’라고 불릴 정도로 분배 정책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나미비아, 인도 등 저개발 국가에서만 이루어졌던 기본소득 실험이, 캐나다, 핀란드 등 선진국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했다는 잘못된 기사가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2018년 들어서 이 흐름은 더 많은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시민소득 실험 ‘비민컴(B-MINCOME)’이 시작된데 이어, 미국과 영국, 캐나다의 여러 지역들도 새로운 기본소득 실험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캐나다 온타리오 주는 진행 중이던 기본소득 실험 중단을 발표했고,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의 기본소득 공약은 이행이 어려울 것으로 평가되는 등 부정적인 흐름도 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밸리와 워싱턴의 상반된 미래 비전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미국에서 보인다. 미국의 기본소득 논의는 마크 주커버그, 앨런 머스크 등 실리콘 벨리의 기업가들이 주도해왔다. 이들은 디지털 경제, 자동화 기술의 발달이 노동의 수요를 줄일 것이며, 때문에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분배 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에어비엔비 등을 키워낸 대표적인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는 직접 기본소득 실험에 나섰고,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자 크리스 휴즈가 설립한 이코노믹 시큐리티 프로젝트(Economic Security Project)도 미국 내 다양한 기본소득 연구와 실험을 지원하고 있다.

과거 미국 정치권은 고용을 통해 부를 분배하는 ‘일자리 패러다임’에 집중했다. 오바마 정권은 의료/교육 서비스 확충을 강조하면서도 금융위기 이후 높아진 실업률을 낮추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디트로이트를 찾아 자동차 산업의 영광을 재현하자고 역설했고, 2009년 취임 당시 10% 대에 달했던 실업률을 2017년 퇴임시에는 5% 미만으로 낮추는데 성공했다.

이 기간 창출된 일자리가 대부분 서비스/비정규직에 한정됐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에 트럼프 정부는 전통적인 제조업, 정규직 일자리 늘리기를 목표로 내걸었다. 이를 위해 보호무역을 앞세우고 중국과의 무역전쟁도 불사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 Shutterstock

오바마의 변화, 넥스트 오바마들의 정책 실험

그 사이 기본소득에 대한 오바마의 생각도 바뀌고 있는 듯 하다. 임기 말 오바마 대통령은 한 인터뷰에서 향후 10~20년 뒤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하고, 노동과 생산의 관계가 더욱 불분명해지면서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진 연설에서 일과 노동의 의미를 되돌아 보고, 보편적 소득과 같은 새로운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자리가 주는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존엄성과 체계적인 지원, 사회에 대한 소속감과 목적의식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보편적 소득과 같이 새로운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의 노동 시간을 되돌아보고, 젊은이들을 어떻게 재교육 시킬 것인지, 어떻게 모두를 창조적 기업가로 만들 수 있을 지 고민해야 합니다.”
버락 오바마, 2017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기념 연설

그리고 실제 정책으로 새로운 분배 모델을 실험하려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27세의 마이클 텁스는 미국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도시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 주 스톡턴 시의 시장으로 당선됐다.

스톡턴 시는 2019년부터 100가구에게 18개월 간 매달 500달러씩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 실험 ‘시드(SEED·Stockton Economic Empowerment Demonstration)’를 진행할 예정이다. 스톡턴에서 나고 자라 스탠퍼드 대학과 오바마 정권의 백악관 인턴을 거친 마이클 텁스 시장의 공약이다.

지난달 시카고 시의회에서는 기본소득 정책실험을 위한 테스크포스 설립 결의안이 상정됐다. 1,000가구에게 매달 500달러(약 56만원) 이상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실험 대상인 1,000가구에게는 근로소득 장려세제(EITC)도 1년이 아닌 월 단위로 지급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결의안 상정에는 총 50명의 시의원 중 36명이 동의를 했다. 발의자인 아메야 파와 의원은 스톡턴 시의 실험에 큰 자극을 받았으며, 정책실험을 진행하게 되면 민간 기금의 기부를 통한 재원 마련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카고 내 보수층의 반발이 거세지만 이렇게 시의원 다수가 동의하고 있으며, 람 이매뉴얼 시장은 오바마 정부 초기 비서실장을 지낸 바 있는 인물이어서 정책실험의 실현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기본소득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앤드루 양 © Yang2020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한 앤드류 양(Andrew Yang)도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교육 기업을 창업해 성공한 기업가가 됐고, ‘벤처포아메리카(Venture For America)’를 설립해 창업과 일자리 창출 지원에힘썼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은 더 엄청난 일자리 감소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해 왔고, 그 근본적인 대안을 만들기 위해 정치에 나섰다고 한다. 18~64세의 모든 미국 성인에게 월 1,000달러의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을 첫 번째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앤드류 양은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내수경제를 활성화하고,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공해 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불평등한 사회를 평등하게, 경제성장의 논리를 삶의 질에 대한 논의로 바꿔야 하며, 기본소득을 통해서 그럴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 도입이 필수적이라 강조하기도 한다.

새로운 실험 모색하는 영국과 캐나다

2017년 말 영국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에든버러, 파이프, 노스 에어셔 4개 정부가 기본소득 실험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6월 스코틀랜드 정부는 이 네 곳의 지자체에게 타당성 조사와 실험 모델 구축을 위한 25만 파운드의 예산 지원을 마쳤다.

각 지자체는 기본소득 정책 실험의 최종 안을 2020년 3월까지 스코틀랜드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여기에는 윤리적, 법적, 재정적 쟁점에 대한 검토 결과와 실제 실행 방안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이후 스코틀랜드 정부의 결정에 따라 실제 실험의 실행 여부가 결정된다. 현재 스코틀랜드 정부는 진보 성향의 국민당이 집권하고 있다. 하지만 2021년 총선에서 보수 정당의 우세가 예상되고 있어 정책 실험이 실행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싱크탱크 RSA의 기본소득 소개 © RSA

캐나다의 브리티쉬 콜롬비아주 정부 또한 2018년 7월 기본소득 정책 실험의 타당성 검토에 착수하기로 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기본소득 실험 중단

반면 캐나다 온타리오주 정부는 2017년부터 4월부터 진행된 기본소득 실험을 중단했다. 온타리오주는 해밀턴, 썬더배이, 린드새이 3개 지역의 18세~64세 저소득층 4,000명을 대상으로 매년 16,989달러(기혼자인 경우 부부에게 24,207달러)를 3년 간 지급하는 정책 실험을 진행해왔다. 시장소득이 생기면 그 소득의 50%만큼 급여 액수가 감소하는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의 형태였다.

온타리오주는 중도좌파인 온타리오 자유당이 집권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6월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 성향의 진보보수당은 예고없이 실험 중단을 발표했다.

실험 관계자들은 실험 결과를 입증할만 충분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새로 집권한 주정부는 이 실험이 예산을 낭비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2018년 8월 15일자로 실험을 전면 중단하고,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권 교체에 따른 일방적 실험 중단은 실험 참여자에게 심리적 혼란과 경제적 피해를 주고, 실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평가도 이루어지지 못하게 한다. 실험에 소요된 예산도 아무런 가치가 없어진다.

정책 실험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데 있어 정치적/정파적 논리에 좌우되지 않고 정책의 타당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다. 온타리오주의 사례는 사전에 정책 실험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정 장치와 실험 결과에 따라 정책이 결정될 수 있는 프로세스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오성운동 기본소득 도입 난항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은 월 월 780 유로의 기본소득 도입을 공약으로 지난 3월 총선에서 다수당이 됐다. 하지만 극우정당인 LEGA와 연합 정부를 구성하면서 기본소득 도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성운동 관계자는 기본소득 정책 실행을 위해 150억 유로(약 19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예상했는데, 이탈리아는 현재 유럽연합 내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은 부채비율 (GDP 대비 130%)을 유지하고 있어, 기본소득 정책의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탈리아의 리보르노 시에서는 오성운동 소속의 필리포 노가린 시장이 2016년 저소득층 100가구에게 6개월 간 517유로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한 바 있다. 이탈리아 오성운동도 무리한 기본소득 도입 보다는 중앙정부 차원의 실험을 통해 지지기반을 넓히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비주류’ 버니 샌더스는 급진적인 공약으로 많은 지지를 받았다. © Shutterstock

미국 차기 대권 주자들의 정책 경쟁, 그 결과는?

미국 차기 대권주자들 사이에는 벌써부터 정책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는 모습이다. 기본소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유력한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책임감있는 자본주의 법(The Accountable Capitalism Act)’을 제안하고,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문을 실었다. 여기에는 ‘대기업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 40% 참여’ 등 자본주의 기업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제안이 들어 있다.

지난 선거 때 힐러리 클린턴과 끝까지 경쟁을 벌였던 ‘비주류’ 버니 샌더스는 지난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고 칭하고, 전국민 의료보험 등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앤드류 양의 기본소득 주장도 이런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는 정책경쟁의 한 축이라고 볼 수 있다.

스톡턴 시장 마이클 텁스, 시카고 시장인 램 이매뉴얼, 이코노믹 시큐리티 프로젝트 창업자 크리스 휴즈 등은 모두 2008년 오바마 캠프에 참여했던 ‘오바마 키즈’들이다.

이들 역시 힐러리 클린턴을 포함한 기존의 민주당 주류 정치권이 변화한 미국 사회에 필요한 비전을 내놓지 못했고, 트럼프의 일자리 패러다임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담대한 정책 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본소득 정책 실험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직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조차도 WTO 탈퇴와 관세보복을 외치며 기존 경제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다음 대선에 치러지는 2022년을 거치면서, 누가 이기든 어떤 방향으로든 미국 자본주의는 새롭게 방향을 잡아갈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세계자본주의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기본소득 실험은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결국 유력 정치인이라면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 실험을 직접 진행하며 관찰했던 정치인들이 당연히 더 충실한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 그리고 기본소득 실험이 ‘넥스트 오바마’를 탄생시킬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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