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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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min readApr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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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2050_028]

반가운 LAB2050 연구자문위원 ·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출처 : 프리픽

생산성만큼 오해가 많은 개념도 없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중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하는데 왜 그럴까? 생산성은 이윤과 같은 개념일까? 생산성이 향상되면 자본가는 이득을 보고 노동자는 착취를 당하는 걸까?

많은 이들에게 ‘노동생산성’은 ‘노동자의 생산성’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노동자가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생산성이 낮은 것이라는 추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노동생산성은 노동시간 혹은 노동자 수를 분모로 하고, 부가가치를 분자로 하는 측정 개념이다. 이때 부가가치는 노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산요소에 의해 창출된 가치라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에는 결국 노동 외에도 자본 장비의 고도화 수준, 생산에 적용하는 기술의 수준, 노동자 스킬의 수준, 경영관리의 수준, 그 외 생산에 기여하는 다양한 요인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 해당 사회의 사회적 자본과 제도의 수준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많다. 많은 보수 언론에서 마치 한국 노동자는 열심히 일하지 않고 노동윤리가 문제여서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양하다. 출처 : 프리픽

열심히 일한다고 생산성 오르지 않아

쟁기를 들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 봐야 트랙터를 활용하는 농부의 생산성보다 높을 수 없다. 또 농업경제는 자본이 고도화된 공업경제보다 노동의 노력과 무관하게 생산성이 낮다. 이때 자본은 물적 자본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식이나 아이디어 같은 비물적 자본도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비물적 자본이 고도화된 지식경제는 공업경제보다 생산성이 더 높다. 생산성은 노동자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구조 고도화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산업구조 고도화는 수평적 조직문화와 같은 소프트한 요소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결국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많은 경제, 혹은 그런 산업 비중이 큰 경제가 생산성이 높다. 또 각자도생의 외로운 경쟁을 펼치는 사회는 서로 협력하는 사회에 비해 당연히 생산성이 낮다. 자율과 재량을 강조하는 조직에서 협력이 더욱 활성화된다면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위계적 조직보다 당연히 생산성이 높다.

생산성은 노동자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가 아니라 산업구조 고도화와 직결되어 있다. 출처 : 셔터스톡

생산성, 효율성, 기술진보, 규모의 경제의 개념 차이

여기서 잠시 생산성과 다른 유사 개념들의 차이를 보다 분명히 설명하고자 한다. 약간 어려울 수 있는데, 이렇게 자세한 설명까지는 필요없다면 아래의 ‘노동생산성은 노동 이외 요소를 측정한다’ 제목 아래 내용으로 건너뛰어도 괜찮다.

생산성과 효율성, 기술진보, 그리고 규모의 경제는 일상에서 흔히 혼용되고 있지만 엄밀하게 구분되는 개념이다. 아래 <그림 1>은 생산요소로 노동 하나만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투입과 생산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노동생산성(productivity)과 효율성(efficiency), 기술진보(technical change), 규모의 경제(scale economies)는 명확히 다르다.

<그림 1> 생산성, 효율성, 기술진보, 규모의 경제의 상관관계

우선 효율성은 생산성과 제일 많이 혼동하고 있어서 서로 바꿔 쓰는 경우까지 있지만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효율성은 특정 시점에서 특정한 양의 생산 요소를 투입하여, 기술적으로 생산 가능한 최대한을 생산하고 있는지를 의미한다. 만약 최대한을 생산하고 있다면 (기술적으로) 효율적(technically efficient)이라고 말하며, 그렇지 않으면 (기술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위 그림에서 곡선 F는 투입과 최대 산출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생산함수이다. 그림에서 A점은 주어진 투입량으로 최대한 생산하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비효율적인 반면, B점과 C점은 모두 기술적으로 효율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특정한 점에서 생산성은 산출량과 투입량의 비율이기 때문에 원점에서 그 점을 잇는 선의 기울기로 나타난다. 그림에서 기술적으로 비효율적인 A에서 효율적인 B로 이동할 때, 기울기가 더 커지기 때문에 생산성이 개선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효율적인 점이 비효율적인 점에 비해 생산성이 반드시 높은 것은 아니다. 그림에서 D는 기술적으로 효율적인 점이고, A는 비효율적인 점이지만, A의 생산성이 D에 비해 더 높다. 또한 기술적으로 효율적인 점이라고 해서 생산성 개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B점에서 C점으로의 이동이나 D점에서 C점으로의 이동은 모두 기술적으로 효율적인 점들 사이에서의 이동이지만 생산성은 개선된다.

이와 같이 기술적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생산성을 개선하는 것이 이른바 “규모의 경제”다. 원점에서의 사선이 생산함수에서 접하는(tangent) C점은 규모의 경제를 이용한 생산성 개선이 더 이상 불가능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기술적으로 최적규모(technically optimal scale)”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에는 시간이 배제돼있는데 시간을 도입하면 기술진보라는 개념을 추가할 수 있다. 기술진보는 더 적은 투입량으로 동일한 양을 생산하게 되거나, 동일한 투입으로 더 많은 양을 생산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통상 생산함수의 상방 이동으로 표현된다. 그림에서는 생산함수가 F에서 F’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낼 수 있다. 기술진보의 가능성까지 포함한다면, 만약 올해 한 기업의 생산성이 작년에 비해 증가했다고 했을 때, 그 배후에서는 세 가지 요인들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한 결과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효율성, 규모의 경제, 기술진보가 그것이다.

그림에서 C’가 변화된 시기에 기술적으로 최적 상태의 생산점이며, 실제 그 점에서 생산하고 있다고 하자. 만약 작년 생산점이 C였는데 올해 C’로 이동했다면, 생산성 개선은 순수하게 기술진보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작년 생산점이 B였다면, 생산성 향상은 기술진보와 규모의 경제의 상호작용 결과이며, 만약 A에서 C’로 이동한 것이라면 기술진보, 규모의 경제, 효율성 개선이라는 세 가지 요인이 모두 동시에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노동생산성은 노동 이외 요소를 측정한다

생산성의 변화는 기술진보, 규모의 경제, 효율성의 변화, 그리고 가격 설정 등의 여러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실제로는 이 요인들 외에도 기업 외부 환경 변화, 내부 경영관리 상의 변화, 노사관계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생산성은 투입 대비 산출의 관계로 측정되고, 분모에 있는 투입요소 역시 분자의 산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므로 생산성은 사실상 분모의 투입요소를 제외하고 나머지 생산요소가 얼마나 생산적으로 활용되었나를 측정하게 된다.

엄밀하지는 않지만 직관적으로 설명하면 노동생산성은 노동이라는 요인보다 나머지 생산요소가 얼마나 생산적으로 활용되었나를 측정하는 ‘자’(ruler)가 되는 것이다. 자본생산성 역시 마찬가지로 자본이라는 생산요인보다 노동을 포함한 나머지 생산요소가 얼마나 생산적으로 활용되었나를 측정하게 된다.

따라서 여러 생산요소를 모두 고려하는 총요소생산성은 기존의 많은 연구에서처럼 단순히 기술진보의 대리지표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에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여러 생산요소에서 고려되지 못한 어떤 무언가의 생산적 활용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에 대한 측정일 수 있는 것이다.

생산성 개념은 18세기 프랑스 경제학자 케네가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유럽의 18세기는 인구와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대였고 동시에 과학적 관찰과 탐험을 통해 지구의 자원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드디어 인식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했다. 그 결과 과거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최대 생산의 가치에 더하여 생산성의 가치를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이후에는 자본주의 발전 과정 속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자행된 생산현장의 비인간적 요소들에 대한 비판이 많은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

생산성 개념은 투입과 산출의 관계를 측정하는 ‘자’와 같은 것이다. ‘자’는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가치중립적인 ‘자’일 뿐이다. 요컨대 생산성이라는 ‘자’는 노동착취의 수단으로도, 혹은 환경친화적 생산의 수단으로도, 인간존중의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생산성 개념은 투입과 산출의 관계를 측정하는 ‘자’와 같이 가치중립적이다. 출처 : 셔터스톡

생산성 개념이 오염되고 오해된 가장 큰 이유는 이윤과 생산성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산성은 단순히 이윤으로만 측정할 수 없다. 생산성은 기본적으로 투입과 산출의 관계이고 산출은 부가가치로 측정하게 되는데 이 경우 이윤과는 분명히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된다.

이윤의 관점에서는 노동자에 대한 인건비가 비용이 되고 이것은 이익을 줄이는 요인이 되지만 부가가치의 관점에서는 인건비는 창출된 부가가치 중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몫일 뿐이다. 즉, 부가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투입된 외부가치와 새로이 창출된 가치의 차이이지 인건비가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비용 절감, 특히 인건비 절감은 이익 증가일수는 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생산성 향상일 수는 없다.

생산성 향상의 결과는 누구 몫인가?

생산성 향상을 통해 늘어난 부가가치 중 경영자와 주주에게 귀속될 몫으로 얼마나 배당하느냐의 문제는 이데올로기와 권력의 문제다. 경영이 정당한 기여 이상으로 더 많은 몫을 가져간다면 노동착취지만, 노동이 더 많은 몫을 가져간다면 이는 노동 존중 생산성 향상이 되는 것이다.

투입이 늘더라도 산출이 더 느는 것 역시 생산성 향상일 수 있다. 이는 고숙련-고부가가치 전략과 조응하며, 고용 친화적 생산성 향상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요컨대 투입과 산출의 관계 이면에 있는 다양한 철학과 가치에 따라, 경영전략의 시야를 단기적으로 가져가느냐 장기적으로 가져가느냐에 따라 생산성은 얼마든지 진보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이클 슈만은 진보적인 생산성 향상 모델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테일러주의와 완전히 단절하는 것을 의미하며, 단순히 생산성 향상뿐만 아니라 노동의 인간화 및 노동하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강조와 배려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전략이 단순한 수사의 차원을 넘어서 실체를 가진 것일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스미스와 톰슨 같은 학자는 노동과정론의 관점에서 이러한 담론들의 허구성을 폭로하기도 했다. 특히 생산성 향상에 적용되는 발달한 기술들은 자율과 유연성의 담지자가 아니라 보다 치밀하게 변형된 통제를 위한 판옵티콘임을 주장했다.

한국은 생산성도 낮고 행복도 낮다. 생산성과 행복, 무엇이 선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생산성에 대한 오해는 풀어야 할 것이다. 출처 : 셔터스톡

생산성의 진보적 의미를 복원하자

정리하면 생산성 향상을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개념으로만 인식해서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해서 그 자체로 맹목적으로 추구해야 할 정당성을 가지는 개념으로 인식해서도 곤란하다. 생산성은 어떠한 생산 시스템과 조건을 적용하여 달성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그 이데올로기적 본질이 달라질 수 있는 개념이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과 달리 노동자 개개인의 숙련과 인간적이고 자율적인 작업장을 강조한다면 생산성 향상은 충분히 진보적인 개념일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에서 생산성은 경쟁력 제고와 임금 인상 억제를 위한 정치적 수사로 사용된 역사적 경험들 때문에 그 진보적 의미가 상당히 퇴색되어 인식돼 왔다. 현 정부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국정의 기치로 내걸고 있다. 포용과 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갖는 진보적 의미를 한국 경제에 다시 복원해내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생산성과 행복의 긍정적 관계에 대한 간단한 그림을 보여주며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한국은 생산성도 낮고 행복도 낮다. 생산성과 행복, 무엇이 선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생산성에 대한 오해는 풀어야 할 것이다.

<그림 2> 생산성과 행복의 관계

노동생산성은 OECD에서 제공하는 전 산업 기준 로그 노동시간당 실질 부가가치, 행복은 갤럽 세계 설문조사(Gallop World Poll)의 10점 만점 점수. 두 값 모두 2014~2016년 평균값.

<그림 3> 생산성 국가 순위

(단위: 로그 USD)

OECD에서 제공하는 전 산업 기준 로그 노동시간당 실질 부가가치 2014~2016년 평균값

<그림 4> 행복 국가 순위

(단위: 10점 척도)

갤럽 세계 설문조사(Gallop World Poll)의 10점 만점 점수로 2014~2016년 평균값
반가운 LAB2050 연구자문위원 ·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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