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조건 없이 월 30만원씩 평생 받을 수 있다면?

국민기본소득제 연구결과보고회 정리

김수연
LAB2050
11 min readOct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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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이우기 © LAB2050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 이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청년 기본소득, 농민 기본소득, 장애인 기본소득 등 각종 수당 성격의 기본소득이 논의되고 있다. 청년 기본소득은 그동안 소외됐던 청년이 복지 대상자로 자리매김했다는 데 의미가 크지만, 현실에서 경기도 청년 기본소득은 만24세에 한정되고, 서울시 청년수당은 자산 조사를 거쳐 미취업자 대상으로만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을 만족하지 못한다.

이 가운데 LAB2050은 전 국민 모두에게 아무 조건 없이 지급 가능한 ‘국민기본소득제’를 발표했다. 이원재 LAB2050 대표, 윤형중 LAB2050 연구원,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승주 성공회대학교 협동조합경영학과 연구교수가 공동 수행한 이 연구는 국민 기본소득제의 필요성과 재원 마련 방안, 재정적 실현 가능성, 실행 효과에 대한 모의 실험 결과 등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기본소득제는 신생아부터 노인까지 대한민국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최소 월 30만 원에서 최대 65만 원을 지급하는 총 6개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재정적 실현 가능성을 최우선에 두고 별도의 신설 세금 없이 불합리한 세제 개편을 바탕으로 설계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국민기본소득제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혁신 촉진과 더불어 한국의 개혁 과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기대도 담겨 있다.

이 제안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한 ‘국민기본소득제 연구결과보고회: 2021년부터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이 지난 10월 28일 오후 서울 대학로 001스테이지에서 열렸다. 공동 연구자인 이원재 LAB2050 대표와 윤형중 LAB2050 연구원, 협력기관인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이 각각 발제를 통해 국민기본소득제를 소개했다.

한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국민기본소득

이원재 LAB2050 대표는 한국 사회에서 국민기본소득제가 필요한 이유와 이 제도의 단기적・장기적 효과 등을 설명했다.

이원재 (LAB2050 대표) photo by 이우기 © LAB2050

먼저 이 대표는 한국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는 이유로 네 가지 현상을 제시했다. 먼저 소득 불평등에서 비롯되는 지위 불안이다. 이 대표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혐오, 갈등, 공동체 파괴 등이 결국은 ‘자리 차지하기’ 경쟁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둘째, 가계소득 부진이 가계소비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소득 불안을 해소해 가계 소비를 높이고 내수 역동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가족 내 분배 구조 붕괴와 저출생 현상이다.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인 형태였던, 호봉제 일자리를 통해 얻는 남성 가장 1인의 소득으로 4인 가구가 생활하는 시스템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

넷째, 다양한 노동 형태들이 제약받고 있다. 산업 구조 변화, 기술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해 기존 고용 구조에서 벗어나 일하는 ‘자유노동’이 확대되고 있는데 이 자유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안정성이 주어진다면 좀 더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시도들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이 대표는 한국 사회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기본소득과 같은 선분배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기존 기본소득 논의가 세금을 걷어서 나눠주는 복지 수당처럼 인식되면서 논의가 재정 상의 어려움으로만 귀결되는데, LAB2050은 전체 GDP에서 국민 전체에게 선분배하는 몫이 어느 정도여야 바람직한가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이 대표는 국민기본소득제의 직접적·단기적 효과 및 간접적·장기적 효과를 제시했다. 먼저 국민기본소득제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창업가, 불안정 노동자, 자유노동자에게 소득 불안을 줄이는 소득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 비영리 영역 종사자에게는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한 보상 역할을 한다. 가계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소비가 촉진되고 내수가 살아날 수도 있다.

나아가 이 대표는 “기본소득제가 한국 사회가 과거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유안정성 사회라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게 한다는 데 궁극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제도를 현실화 하기 위해 이 대표는 구체적으로 ‘국가기본소득위원회’ 설립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서 재정 모델을 정교화 하고, 공론화를 진행하며, 제도의 효과를 측정하는 정교한 정책실험도 진행하자는 것이다.

‘1인 가구 연소득 4700만원’이 이익 기준선

이어서 윤형중 연구원은 ‘기본소득 재원 마련 방안과 적용 효과’를 설명했다. 2021년, 2023년, 2028년이라는 세 가지 시작 시점을 제시한 데 대해서는 “총선, 대선 등 큰 선거를 앞둔 정치적 시점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서 “국민기본소득제는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형중 (LAB2050 연구원) photo by 이우기 © LAB2050

이어서 국민기본소득제 재원 마련의 6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1. 기존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손해를 입지 않는다.
  2. 기존의 소득에서 재원을 찾는다.
  3. 세금 제도의 누진성을 강화한다.
  4. 국민 모두가 세금을 내도록 한다.
  5. 4대 사회보험 관련 재정, 기금 등은 활용하지 않는다.
  6. 연소득 4,700만 원 이하의 계층이 이익을 얻는다.

국민기본소득제는 별도의 세목을 신설하지 않고, 소득세제 상의 비과세, 감면 제도를 대부분 폐지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또한 명목세율은 2~3%p 낮추는 것으로 설계했다.

이에 따라 2021년부터 월 30만 원 지급 시 순소득의 손익이 갈리는 지점은 연 4,700만 원이 된다. 다만, 부양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그보다 훨씬 소득이 높은 사람들도 이득을 본다. 2인 가족이면 연 9,400만 원, 3인 가족이면 연 1억4,100만 원, 4인 가족이라면 연 1억8,800만 원이 기준선이 된다.

윤 연구원은 “국민기본소득제는 아동, 노인을 포함해 개인 단위로 지급되므로 사회적 관계 속에 있는 개인의 부양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기본소득제 도입에 따른 불평등 완화, 빈곤 감소, 소비 진작 등의 효과를 추정하기 위한 모의실험 결과도 긍정적이었다.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월 65만 원 안에서 현재보다 34%나 낮아졌다.

빈곤 정도를 보여주는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의 50%인 빈곤선보다 아래 있는 사람들의 비율)과 빈곤갭 지수(빈곤선 대비 빈곤선 이하 계층의 소득 수준 비율)도 낮아졌다. 또한 소비성향도 제도 도입 첫 해에는 잠시 낮아지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빈곤 낮추고 소비 늘리는 기본소득은 ‘비용’ 아닌 ‘투자’

마지막 발제자인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기본소득의 재정적 실현 가능성’을 설명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photo by 이우기 © LAB2050

앞서 윤 연구원이 발표한 ‘단순하고 누진적인 소득세제’를 통한 재원 마련 방안 외에도 국민기본소득제는 탈루 및 비과세 소득에 대한 적극적 과세, 기본소득과 취지가 같은 일부 복지 정책과 세금 제도 폐지, 재정 구조조정(기금 및 특별회계 정비, 지방재정 지출 조정 등), 유휴 및 신규 재원 활용(일부 재정 증가분 활용, 지방정부 세계잉여금 활용)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

국민기본소득제의 재원 마련 방안: 2021년 월 30만 원 안

정 소장은 “많은 사람이 사회 복지 부문 재정 증가율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지난 3년간 12% 증가했을 뿐”이라면서 박정희 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재정 구조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복지는 ‘비용’으로 간주하는데 빈곤율을 낮추고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예산을 쓰는 것은 ‘투자’라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photo by 이우기 © LAB2050

이어진 토론에서는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고, 사회복지 전문가인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회정책 전문가인 유종성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교수, 정치학자이자 서울시 청년수당 효과를 연구했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2시간여 동안 이어진 이 순서는 연구자와 토론자들, 그리고 청중 간의 자유로운 문답 형식으로 진행됐다.

첫 번째 토론자인 유종성 교수는 소득세를 재원으로 하는 국민기본소득제의 현실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한국은 소득세가 누진세제 구조지만 각종 비과세 감면 등 탓에 역진적인 상태가 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OECD 평균의 절반밖에 안 되는 한국의 GDP 대비 소득세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토론자 백승호 교수는 국민기본소득제의 전반적인 설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 명칭과 재원 마련 원칙에서 기본소득의 ‘바람직성’과 ‘해방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는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기본소득 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해방이다. 기본소득이 해방적이기 위해서 바람직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백 교수는 “산업 자본주의에서 금융 자본주의, 플랫폼 자본주의로 전환되는 현 시점에서 자연적 공유부뿐만 아니라 인공적 공유부인 빅테이터 공유부를 분배할 방법이 재원 마련 방안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유종성 교수가 “공유부에서 나오는 불로소득도 가계와 기업의 소득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소득세를 정상화 하면 해결된다”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photo by 이우기 © LAB2050

마지막 토론자인 서복경 연구원은 기본소득이라는 정치적 기획을 추진할 ‘정치적 주체 형성’과 ‘사회적 합의 과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과 같이 복지정책의 역사가 짧고 그 때문에 복지 수혜를 경험함으로써 그 지지자가 되는 ‘복지 동맹’의 뿌리가 얕은 사회에서는 기본소득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형성하기가 지극히 어렵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 연구원은 “기본소득제라는 기획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이를 실현할 정치적 주체를 고민하고, 주체들의 연대 가능성을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청중 가운데서도 다양한 질문과 의견들이 나왔다. 가톨릭대학교 소속 고태은 씨는 “기본소득을 노동을 촉진하는 선투자 개념으로 바라본다면 장애인 등 노동생산성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지급은 어떤 원리로 설득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힌 한 시민은 “소득세제를 개편해서 생긴 재원이 다른 용처에 사용될 수 있음에도 왜 기본소득으로 쓰여야 하는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공유부 배당 개념은 모두에게 모두의 것을 논리적 정합성이 있는 반면 소득세제 개편을 통한 재원마련 방안은 그 재원을 기본소득보다는 다른 더 급한 곳에 우선 사용해야 한다는 반발에 직면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국민기본소득제의 지향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청중의 지적에 대해서 이원재 대표는 “기본소득은 ‘밥’과 같다”고 답했다. 밥 먹고 혁신도 할 수 있고 아이를 돌볼 수도 있는, 기본소득의 여러 지향점과 가능성을 열어 두자면서 “우선 GDP의 10%까지 모두와 나누는 시도를 해 보자”고 제안했다.

기본소득과 사회혁신, 기본소득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질문 및 의견이 여러 차례 나오기도 했다. 한국엔젤투자협회에서 일한다고 밝힌 고영하 씨는 “청년들이 좀 더 자유롭고 과감하게 모험을 할 수 있도록 기본소득과 같은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는 “기본소득으로 놀고 먹는 사람 이 양산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데, 전통적인 노동 영역이 무너지는 오늘날 다양한 유형의 활동도 노동으로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AB2050은 앞으로 국민기본소득제를 더 상세히 설명하는 연구 결과와 저작물 등을 발표할 계획이며 관련한 공론화 작업에도 나설 예정이다.

photo by 이우기 © LAB2050

보고회 발표 영상은 LAB2050 유투브 채널을 통해 볼 수 있으며,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국민기본소득제 연구결과보고회 발표 영상

LAB2050 보고서 솔루션2050–04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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