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을 이어주는 고리, 사회적 신뢰

The Link between Technological Innovation & Social Innovation — Building Social 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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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in readMay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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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상상 2018 / 세션 2. 혁신이 모두를 위한 기회가 되려면 / 기조발표

장병규 대통령직속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장병규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기술혁신은 불평등을 심화시킬까?

저는 현재 대통령직속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고, 제가 공동 창업한 ‘블루홀’ 이사회의 의장이기도 합니다. 블루홀은 ‘배틀 그라운드’라는 게임을 만든 회사인데요. 제가 했던 세바시 강연 영상을 찾아봐 주시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오늘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것들을 상기시켜 보려는 것인데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하고 있는 작은 실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했고,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이 세션 키워드 중 하나인 ‘사회혁신’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반면 ‘기술혁신’과는 굉장히 가까운 사람이었죠. 기술자이자 기술혁신의 추종자였다고 봐 주시면 되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은 기술혁신이 부의 양극화, 경제 불균형,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만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일자리 불안과 맞물려서 위협으로 여겨집니다.

20여 년 간 스타트업·벤처에서 일해 온 저의 시각으로 볼 때,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은 대립적 관계는 아닙니다. 둘은 동행하는 관계이고, 함께 가야만 합니다. 기술은 사실 가치중립적인 것입니다. 기술이 사회혁신에 기여하는 사례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 4차산업혁명위원회

다만, 그 둘이 만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회적 신뢰’입니다. 법과 도덕, 윤리라는 말은 익숙한데 ‘신뢰’는 낯설게 느껴지시나요? 우리 사회에서 조금 더 이야기하고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신뢰, 특히 사회적 신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박 2일간 찾아보자, 규제 혁신 방법

한국 사회의 사회적 신뢰 지수는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누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고 할 때 일단 믿지 않는 풍토만 봐도 그렇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죠.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이 서로 다른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술이 가져다주는 미래가 ‘디스토피아’일 것이라는 우려가 큰 것도 이렇게 사회적 신뢰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그렇기 때문에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을 이을 수 있는 좋은 시작점은 바로 사회적 신뢰 구축인 것입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시도하고 있는 일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규제·제도 혁신 해커톤(Hackathon)’이라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해커톤은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한 장소에서 마라톤처럼 긴 시간 동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행사입니다. 정보통신(IT), 스타트업·벤처 분야에서는 흔하게 열립니다.

이런 행사가 가능한 것은, 일반적으로 엔지니어들이 소프트웨어 및 상품을 개발하는 작업의 95%는 ‘예외 처리’(exception handling)라는 후속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주된 기능을 만드는 자체는 전체 작업 시간의 5% 정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1박 2일이면 ‘프로토 타입’(prototype·시제품)을 만들어서 어느 정도 기본 기능이 돌아가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죠. 여기서 영감을 얻어서, 규제 개선과 제도 혁신을 하기 위한 방법을 1박 2일 동안 집중 토론해 보는 행사를 만든 것입니다.

‘해커톤’을 위한 4가지 원칙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주최한 규제·제도 혁신 해커톤의 한 장면 © 4차산업혁명위원회

이 해커톤은 지난해 12월 시작해서 최근 3차까지 진행됐습니다. 이 행사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1박 2일 동안 집중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첫날 오전에 참가자들끼리 아이스브레이킹(icebreaking)을 하고 점심식사 한 후에 본격적으로 토론을 시작하는데, 그날 밤 12시에서 오전 1시쯤 돼야 끝이 납니다. 저녁식사 시간 제외하면 10시간 이상을 대화하는 것이죠.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은 1박2일 행사 전에, 다루게 될 주제와 관련된 이해 관계자들이 먼저 모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2·3차 해커톤 주제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었습니다. 이 주제와 관련된 주체들이 있습니다. 먼저, 개인정보를 활용해서 비즈니스를 하고 싶은 산업계 대표들입니다. 그리고 시민단체 대표들인데, 그 중에는 이 문제로 정부를 고발한 단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부 주무부처 공무원들이 있겠죠. 사실 이들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은 몹시 다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총 25명의 이해 관계자들이 먼저 모여서 해커톤 논의를 위한 상호합의를 했습니다.

세 번째 원칙은 전문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조정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인다고 대화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죠. 생산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전문적 교육을 받은 진행 및 조정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몇 차례 행사에서 퍼실리테이터들의 역할을 지켜보니 여러 방법들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어떤 분은 대화가 한창 진행되는 중 어느 순간에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포스터를 앞에 띄워서 보여줍니다. ‘소수 의견을 존중하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전문적 진행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합의문을 반드시 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합의 결과에 대해서 다음날 관련 주무부처의 국장급 공무원이 와서 실현 가능성과 방법에 대한 답변을 꼭 해주도록 했습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주최한 규제·제도 혁신 해커톤의 한 장면 © 4차산업혁명위원회

묘한 신뢰 관계가 만들어진 이유

이런 원칙에 따라 3차까지 규제·제도 혁신 해커톤을 진행해 본 결과, 저에게 가장 크게 와 닿은 점이 있었습니다.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사람들은 자기 얘기를 다 하기 전에는 남의 얘기를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해커톤은 일단 모두 다 이야기하게 만들어 줍니다.”

왜냐 하면 10시간 동안 계속해서 대화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25명이나 되는 사람어도, 중간에 쉬지도 않고 10시간을 떠들면 각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보면서 저는 ‘이 분들은 가슴 속에 많은 것을 쌓아둔 채로 살아오셨구나.’하고 느꼈습니다. 그걸 여기서 다 푸신 것이죠.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해커톤에 참여했던 사람들 사이에는 묘한 신뢰관계가 생깁니다. 저는 이것을 ‘작은 사회 신뢰 서클(circle)’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형성되고, 점점 커지면 사회 전체의 신뢰도 더 공고해질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죠.

규제·제도 혁신 해커톤은 우리 사회의 규제와 제도 혁신에 대한 열망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도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사회 신뢰를 높이는 합의의 툴, 형식을 보여주게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도 사회적 합의를 위한 제도로 공청회가 대표적이었지만, 아시다시피 일방성 등으로 인한 한계가 분명합니다. 정부 부처들 간의 관계자 회의도 마찬가지고요. 최근 ‘공론화 위원회’와 같이 숙의 민주주의 방법들도 시도되고 있는데,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듭니다. 저는 그보다 해커톤 방식이 보다 효과적으로 사회 신뢰를 쌓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술에 색을 입히는 건 인간의 ‘선택’

이렇게 신뢰가 쌓이면 사회혁신과 기술혁신이 좀 더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난 1~3차 해커톤에서 8개 주제를 다뤘는데, 각각에서 비슷한 효과를 봤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는 이런 형식들을 활용해서 자그마한 사회 신뢰를 쌓아가는 작업들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기술은 사실 무색무취합니다. 기술에 인간다운 색깔을 입힐 것이냐, 탐욕의 빛깔을 입힐 것이냐는 선택도 결국은 사람이 합니다. ‘제 2의 기계시대’라는 책을 보면 “우리 세대에게 많은 기회가 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제 2의 기계’라는 것이 곧 인공지능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는 우리에게는 많은 기회가 있고,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서 어떤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이냐는 우리들에게 달려있습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기술이 보다 사람 중심으로, 사회혁신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이로움이 만들어지도록 최선을 다 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발표 전체 영상 © 새로운상상 2018 (REIMAGINE 2018), LAB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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