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칸막이, 얼마나 심각한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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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Dec 25, 2019

[IDEA2050_020]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출처 : 프리픽

굶고 있는 어린 아이를 보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이 또 있을까? TV의 영상 등으로 못 먹어서 깡마른 아이를 보게 될 때 우리가 더욱 가슴이 아픈 이유는 지구상의 어디선가는 음식물이 남아돌다 못해 썩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순을 깨달을 때마다 이 세상이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 재정이 딱 그런 모순 속에 있다. 국가 예산은 항상 모자라기만 할 것 같다. “우리가 돈이 없지, 쓸 곳이 없을까?” 보통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의외로 국가 재정도 한 쪽에서는 부족하지만, 다른 쪽에는 남아돈다. 바로 ‘재정 칸막이’ 때문이다. 재정 칸막이는 어디서 왜 생길까?

재정 칸막이는 기금이나 특별회계에서 생긴다. 가계 살림에 통장이 여러 개 있듯이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재정을 운영할 때 쓰는 통장도 여러 개다. 정부의 일반적인 세금을 넣고 세출의 우선순위에 따라 지출하는 ‘일반회계’라는 통장이 가장 중요하다.

일반회계라는 통장 외에 각종 기금이나 특별회계라는 통장도 따로 있다. 국민연금 기금에 700조 원이 넘는 돈이 있더라도 정부가 쓸 돈이 부족하다고 국민연금을 헐어 쓰지는 않는다. 특정 기금에 있는 돈은 그 기금의 목적 사업에만 지출할 수 있다. 그래서 각각의 목적에 따라 조성된 돈들이 각각 재정 칸막이로 작용하게 된다.

가계 살림에 통장이 여러 개 있듯이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재정을 운영할 때 쓰는 통장도 여러 개다. 출처 : 프리픽

정부가 처음 기금과 특별회계를 설치했을 때는 다 필요와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변하면 그에 맞게 구성을 변화시켜 왔어야 한다. 그러지 못 해 온 이유는 어디 있을까? 한 번 기금과 특별회계가 설치되면 거기에 따른 이해관계자도 생성된다. 그 기금을 운영하는 관료집단 자체가 이해관계자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최대한 변화를 막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국가의 자원이 국가 전체 차원의 우선순위에 따라 지출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목적 사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쓰이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정 칸막이가 생겨난다. 이 때문에 재정 효율성이 떨어진다면 칸막이를 없애거나, 아니면 칸막이에 환기구나 창문이라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 한다면 칸막이 안은 썩게 될 수도 있다.

스포츠토토가 잘 팔리니 체육 예산을 늘린다?

환기구, 창문이라도 시급하게 내야 할 재정 칸막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표적인 것이 국민체육진흥기금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체육 진흥을 위해 조성하고 쓰는 기금이다. 그런데 여기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몰리고 있다. 스포츠토토 수입이 기금의 주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스포츠토토의 매출은 이미 로또의 매출을 넘어선 지 오래됐다.

토토 수입이 늘면 기금 지출액도 따라서 늘게 된다. 국민체육진흥기금의 관리 주체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다. 그런데 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체육 사업이, 그리고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독점해야 할까? 체육 관련 사업 지출이 국가 지출의 우선순위에서 항상 영순위가 돼야 할 법칙이나 국민적 합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스포츠토토는 스포츠 경기에 따라 발생하는 수익이니 스포츠계가 그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 합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토토와 같은 사행산업은 국가의 허가에 따라 존속하는 산업이다. 국가가 허용하는 사행산업에는 총량이 있다. 만약에 스포츠토토를 중지시키고 대신 바둑토토를 만들어 수조 원의 수익을 바둑 증진에만 쓴다면 사람들은 동의할 수 있을까?

스포츠 관련 예산의 지출 규모는 사회적 논의와 정치적 타협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정상이다. 토토 수입이 급속하게 증가했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스포츠 지출을 급속하게 늘리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좀비 법률’ 때문에 다 못 쓰는 예산

또다른 대표적인 ‘재정 칸막이’는 ‘교통에너지환경세’에 있다. 이는 연간 15조 원 규모의 목적세다. 목적세라는 말은 법률로 이미 사용처가 정해져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3대 세목인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를 제외하고는 제일 규모가 크다. 목적세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주유소에서 휘발유나 경유를 살 때 부담하는 ‘유류세’의 대부분이 이 세금이다.

그런데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이미 폐지된 법률, 말하자면 ‘좀비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좀비는 죽었지만 여전히 활동하는 시체를 말한다. 오늘 아침 주유할 때도 부과된 교통 에너지 환경세를 왜 좀비라고 칭할까?

교통에너지환경세 폐지 법률안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것은 벌써 10년 전인 2009년 일이다. 폐지 이유는 명확하다. 이 정도로 큰 규모의 세입을 재정 칸막이 때문에 특정 용도에만 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다만, 세목이 폐지된다고 납부하는 유류세 액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목적세가 아닌 개별소비세라는 보통세로 전환이 될 뿐이다.

재정 칸막이 때문에 막대한 예산이 사회적 합의와는 무관하게 사용되고 있다. 출처 : 프리픽

그런데 폐지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공포까지 된 이후에 폐지 시점을 3년 연장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그리고 3년 뒤에 또다시 연장되고, 3년 뒤에 또다시 연장되더니 2018년 네 번째로 폐지 시점이 연장되는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이미 폐지된 법률이 죽지 않고 좀비처럼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통 에너지 환경세의 80%는 교통시설 특별회계에 먼저 배분된다. 교통시설 특별회계에 배분된 금액은 교통시설 특별회계법 시행규칙에 따라 사용처가 이미 정해져 있다. 도로 계정에 43~49%를 써야 하고 철도 계정에 30~36%를 써야 한다. 그리고 항만에도 7~13%를 써야 한다.

교통에너지환경세라는 막대한 재원을 왜 국토교통부가 정한 비율에 따라 써야 할까? 심지어 금액이 너무 커서 다 쓰지도 못하고 있다. 2018년 결산에 따르면 교통시설 특별회계 수입 17조 원 중에서 무려 7조 원이나 쓰지 못하고 예치금 또는 예탁금으로 남아 있다.

전기요금 적립 기금으로 원자력 연구개발 중?

전력산업기반기금도 비슷한 상황에 있다. 이 기금은 전기요금의 3.7%가 자동으로 적립되기 때문에 자금이 늘 풍부하다.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저절로 수입금액도 증가하고 있다. 이 이 기금의 사용처는 전력 소외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등의 사업으로 정해져 있는데 이 수요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수입은 늘어나는데 지출할 곳이 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둘 중 하나다. 억지로 돈을 쓰든지, 아니면 남기든지. 실제로 이 기금은 최근 홍보 사업에만 45억 원을 지출했다. 그리고 원자력 연구개발(R&D)에도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지출하고 있다.

탈핵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해 경제성 등의 이유로 찬성하는 논리들이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경제성이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수입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수입으로 연구개발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탈핵이든 찬핵이든 원자력 R&D에 국가의 자원을 쓸 필요는 없다. 그런데 전국민이 내는 전기요금에서 나온 기금 중 1000억 원 이상을 이 연구개발에 썼다는 것이 과연 납득할 수 있는 일일까?

이 기금에서 못 쓰고 남은 돈도 많다. 공공자금 관리 기금(공자기금)에 예탁한 규모만 1조4000억 원이다. 전체 여유자금 규모는 5조 원을 초과한다.

연탄 값 낮추는 데 정부 돈을 써야 하나

에너지 및 자원 사업 특별회계는 석유나 LNG 수입·판매업체에게 부과하는 세금이 주된 수입원인 특별회계다. 이 예산은 에너지 절약 시설을 설치(융자)하거나 에너지 기술을 연구·개발(R&D)하는 사업에 쓰인다. 문제는 이 부문의 수입 규모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따라서 못 쓰고 있는 돈이 너무 많다. 공자기금에 예탁한 규모만 2조 원에 달한다.

원자력 발전이 경제성이 있다면 그 자체로 수입이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탈핵이든 찬핵이든 원자력 R&D에 국가의 자원을 쓸 필요는 없다. 출처 : 프리픽

그러다보니 돈을 쓰기 위한 눈물겨운(?) 몸부림도 보인다. 이 예산 지출이 연탄이나 석탄 가격을 불필요하게 낮추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연탄 가격을 왜 낮추려고 할까? 저소득층 에너지 공급을 위해서다. 그렇다면 저소득층은 왜 연탄을 때야 할까? 연탄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소득층은 불편하고 위험한 연탄을 아직 사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탄광 노동자의 소득을 유지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자. 정부가 굳이 연탄 가격을 낮추는 데 돈을 쓰기보다는 저소득층의 연탄 보일러를 더 안전하고 환경에도 무해한 보일러로 바꿔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탄광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다른 식으로 고용 및 복지 지원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넘치는 돈을 쓰느라 에너지 취약층도 탄광 노동자도 모두 실제로는 손해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무엇보다, 이렇게 해도 그 기금을 다 쓰지도 못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가장 심각한 재정 칸막이, 지방정부 기금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방정부 기금이다. 이 칸막이는 앞의 사례들보다 더욱 심각하다. 그나마 중앙정부의 기금은 어느 것이나 일반회계와 구분되는 별도의 자체 수입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방정부의 기금은 대부분 지방정부 일반회계 전입금 수입이 100%다. 이런 기금 수입 증가율이 지방정부의 일반회계 수입 증가율보다 더 크다. 2014~ 2018년 지방정부의 각 회계별 세입 연평균 증감률을 보면 일반회계는 8.5% 증가한 반면 기금은 무려 18% 넘게 증가했다.

지방정부들은 기금에 돈을 쌓아놓는 것은 잘하면서 지출에는 인색하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구에는 ‘장애인 복지를 위한 자활 기금’과 ‘노인복지를 위한 노인복지 기금’, 그리고 ‘체육진흥을 위한 체육진흥 기금’이 있다. 2018년 결산 기준으로, 체육진흥 기금에는 45억 원이 있으나 2018년 지출액은 0원이다. 자활기금에는 2억5000만 원이 있는데 역시 사용액은 전혀 없다. 노인복지 기금에 17억 원이 있지만 사용액은 2300만 원에 불과하다. 2300만 원씩 매년 지출한다면 약 74년 동안 지출할 수 있는 돈이 기금에 쌓여 있는 것이다.

만일 강남구가 노인복지를 위해서 2300만 원을 지출할 필요가 있다면 그냥 일반회계에서도 충분히 지출할 수 있다. 구태여 74년 동안 지출할 돈을 미리 기금에 쌓아놓을 필요는 전혀 없다.

재정 칸막이를 없애거나 낮추기 위해서는 기금과 특별회계 자금을 통폐합해야 한다. 출처 : 프리픽

2018년 전국 지방정부 기금 적립금의 총합은 33조 원에 달한다. 그런데 2018년 기금 사용액은 8조1000억 원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지방정부의 기금은 적절한 운용 배수(사업 비용 대비 적립 비율) 산정조차 하고 있지 않다. 기금 사업에 1억 원을 지출하고자 한다면 2억 원을 적립해야 하는지 1조5000억 원을 적립해야 하는지 기금 성격에 따라 각각 적절한 운용 배수를 구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책임의 외주화’ 중단하고 쓸 돈 제대로 쓰자

이밖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쌓여 있고 엉뚱하게 지출되고 있는 기금 및 특별회계 자금은 셀 수 없이 많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재정 칸막이를 없애거나 낮춰야 한다. 스포츠토토의 막대한 수입을 국민체육진흥기금이 독식하도록 둬서는 안 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일정 비율 이상은 일반회계에 편입시키면 된다. 교통 에너지 환경세는 이미 국회에서 의결한 대로 폐지될 수 있도록 더이상 폐지 시점 연장만 하지 않으면 된다.

예산 수요가 있는 인접한 부문과 통장을 합치는 방법도 있다. 전력산업 기반 기금, 에너지 및 자원 사업 특별회계는 늘 돈이 남고 환경부의 환경 개선 특별회계는 항상 돈이 모자란다. 중장기적으로 이 셋을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지방정부에 난립하는 수많은 기금은 그냥 폐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기금을 통해서 하던 사업은 일반회계 지출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기금법, 조례 등이 있으므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각 지역의 긴급한 사회문제 해결 등을 위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룬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지 않고 이 기금을 그대로 쌓아놓는 것은 ‘책임의 외주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한국 사회에는, 그리고 각 지역에는 정부의 개입이 꼭 필요한데도 방치되는 일이 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죽어가고, 삶이 망가지기도 한다. 환경이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고 있기도 하다. 각자 자기가 하던 일을 그대로 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꼭 필요한 데에 정부의 돈이 잘 쓰이도록 변화를 일으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 아닌지 잠시 다들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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