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어도 삶이 바뀌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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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Jan 22, 2020

[IDEA2050_022]

김보영 영남대학교 부교수 · LAB2050 연구위원

출처 : 셔터스톡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반기를 맞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을 자임하면서 모든 특권과 반칙, 불공정을 일소하고 차별과 격차를 해소하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해왔다.

촛불혁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과 불평등에 대해 쌓여왔던 분노가 국정 농단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결과였다. 때문에 새로운 기대로 출범한 정부에서 ‘불공정과 불평등 해소’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집권 후반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볼 때 그 약속은 얼마나 실현되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 불평등 개선 못해

안타깝게도 통계로 보면 불평등은 개선되지 못했고 오히려 심화된 측면도 있다. 정부가 과감한 재분배 정책을 펴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소득 주도 성장’은 집권 초기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 이후에 적극적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복지 정책도 서비스나 급여의 부분적인 개선 정도에 그치고 있다. 조세 정책에서도 집권 초기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 세율을 높였을 뿐, 고소득 특권층에 대한 과세 강화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 없다.(서울신문·참여연대 공동기획 “문 정부 2년 국정과제 평가”)

올해 들어서는 정부의 국정방향에서 ‘경제성장’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개인정보 3법 등 규제 개혁을 추진하고 수출과 투자 확대를 통해 경기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묘한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다. 박근혜 정부도 집권 초반에는 복지가 중심 아젠다였다. 집권 2년차부터는 규제 완화와 같은 경제 성장 아젠다가 전면화됐다. 정부 초반에 강조하던 ‘복지’가 갈수록 ‘경제’로 대체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복지 문제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다. 그 전까지는 수십 년 동안 매년 10% 내외의 고속 경제 성장 중이었던 영향으로 복지는 ‘개인들이 알아서 하는 문제’로 인식됐다. 서구에서는 산업화와 자본주의 고도화에 따른 사회 불안에 대한 대응으로 ‘복지국가’가 등장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개발국가식의 복지체제’가 형성됐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평등과 공정에 대한 기대로 출범했지만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출처 : 프리픽

하지만 경제 위기로 대규모 실업과 경제 불안정을 경험하고, 저성장이 새로운 환경(new normal)이 되면서 국가의 적절한 사회보장 체계가 절실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복지 제도가 강화되고 복지 지출이 확대됐다. 하지만 ‘개발국가 복지체제’를 대체할 정도에 이르지는 못 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다시 경제성장을 앞세웠지만 이미 산업화된 나라에서 개발도상국 시절 같은 고속 성장을 재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보수 정부의 재창출을 위한 대선 국면에서 박근혜 후보는 복지 이슈를 전면적으로 끌어안았다. 하지만 집권 후에는 이내 성장 담론으로 복귀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비슷한 경로 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구 복지국가 성립 과정에서 배운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사회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사회 제도의 변화가 적절하게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서구 산업화 국가들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구에서는 18세기부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전면화된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가 19세기부터 등장했고, 이것이 20세기 복지국가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발전의 동력은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복지국가 성립을 주도한 집권 노동당의 핵심 세력이자 그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지식인 그룹이다. 세계 최초의 싱크탱크라고 말할 수 있는 이 그룹은 당시 급진적 사회주의와 구분해 점진적인 전략을 원칙으로 삼았다. 로마 장교 파비우스 막시무스(Fabius Maximus)의 이름을 따서 스스로를 페이비언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처음에는 사상가들의 저술을 읽고 토론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공장이나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와 같은 활동을 바탕으로 1905년 영국 정부가 극심한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왕립위원회를 결성했을 때 소수파로서 ‘국가 기본선’(National Minimum)과 같은 보편적 권리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소수파 보고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베버리지 보고서의 기초가 되었다. 베버리지 스스로도 당시 페이비언 그룹의 연구원이었다.

18세기부터 산업화가 진행된 서구는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가 19세기부터 등장했고, 이것이 20세기 복지국가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싱크탱크로서 페이비언 협회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단순히 주장만 내세웠던 것이 아니라 초기부터 엄밀한 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활동했다. 소수파 보고서도 4년 동안 진행된 왕립위원회의 광범위한 조사 활동에 기초하고 있었으며, 그 기록과 증거만 60여 권에 이르렀다. 영국 사회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런던정경대학(LSE)의 설립도 과학적 사회연구의 중요성을 간파했던 페이비언들이 주도했다.

페이비언들은 수많은 강연, 토론, 출판 등을 통해 “진보 정치의 미래를 구상할 수 있는 정치적 사고와 논쟁을 창출”하는 것을 사명으로 활동했다. 국가 의료 체계, 누진세제, 여성의 평등권, 식민지 해체 등의 새로운 아젠다를 끊임없이 제시했다. 이러한 논의는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새로운 국가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선거에서 베버리지 보고서를 전면에 내세웠던 노동당이 집권에 성공하여 결국 복지국가의 역사가 시작됐을 때 노동당 당수이자 영국 총리였던 클램 애틀리(Clem Attlee) 역시 페이비언 회원이었다.

신자유주의 등장에도 싱크탱크가 큰 역할

물론 복지국가 성립을 이들의 공으로만 돌리는 것은 과도한 평가다. 하지만 사회 불안정으로 그 필요성이 성숙되고, 역사적으로 그러한 조건이 마련됐을 때 이들이 이것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도록 논의를 펼치고, 정치 세력을 만들고, 실행할 수 있는 인사들을 배출하여 그 변화가 실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싱크탱크의 역할은 아이러니하게도 복지국가의 방향을 바꾸었던 신자유주의 등장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1970년대부터 오일쇼크로 시작된 경제위기는 1980년대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와 같은 신자유주의 정치 세력의 집권 이후 복지 축소와 민영화와 같은 정책 전환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배경에 역시 ‘경제문제연구소’(Institute of Economic Affairs, IEA)와 같은 싱크탱크가 있었다.

이들의 시작 역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 등장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영국의 전역 공군 장교 피셔(Fisher)는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로 꼽히는 하이에크(Hayek)의 글을 읽고 감명을 받아 그를 찾아간다. 이때 피셔는 사회와 정치를 바꿀 근거지를 구상하게 되고 이후 사업 성공에 힘입어 10년 후인 1955년 경제문제연구소를 설립했다.

복지국가의 성립이나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등장 이면에는 싱크탱크가 있었다. 사진은 영국 의회. 출처 : 픽사베이

복지국가의 황금기였던 당시 신자유주의자의 주장은 나치와 같은 극우 파시스트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페이비언 협회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은 수많은 연구, 출판, 강연을 통해 주장의 근거를 마련하고 논의 확산에 주력했다. 주요 언론인들을 설득하고, 학생들에게 소책자를 배포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에 관한 영향력 있는 연구물을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그 결과 1970년대에 실제 경제위기가 일어나자 여론은 이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관건은 대안 축적과 주체 형성

이들이 이러한 의식적 활동을 벌이는 데 참고가 된 것은 바로 페이비언이었다. 피셔가 하이에크를 찾아갔던 당시 들었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하이에크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그에게 “사회는 정치에 의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주장이 지식인들에게 확산되면 사회는 이를 따라가게 되어있다.”고 조언했다.

이 조언은 페이비언의 성공뿐 아니라 한계 역시 지적하는 것이었다. 경제문제연구소는 페이비언이 노동당과 결합하면서 오히려 사회적 논의의 전장을 비워버렸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복지국가 황금기에도 정치 공간 이외에서는 아무런 견제 없이 신자유주의 논의를 홀로 확산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현실 정치와 거리를 뒀기 때문에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 신자유주의 원칙에 충실한 주장을 제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영향력을 키워가면서 보수당의 정치인들이 연구소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던 보수당에서 변화를 추구하던 정치인들이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점심 모임 등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마가렛 대처였다. 대처가 추진한 환율 통제 폐지, 노사관계 개혁, 민영화, 공공주택 매각, 소득세율 삭감과 같은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은 연구소가 제기했던 제안들이었다. 이런 배경은 내각의 저항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처가 이 정책들을 끝내 관철시킬 수 있었던 힘이 됐다.

이런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산업화 이후 본격적으로 사회 위기가 전면화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정치 역량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은 있을까? 정치적 변화는 결국 사회적 변화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한다면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사회가 아무리 성숙한다 하더라도 변화를 이끌어낼 대안을 마련하고, 집권으로 그 결과를 실현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정치 주체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도 정책 대안을 생산할 수 있는 공간이 없지는 않다. 정책 연구기관이나 관련 전문가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그 중 규모나 인력이 압도적이어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정부에서 출연한 국책연구기관들이다. 중앙정부 부처별로, 또 광역지자체별로, 심지어 일부는 기초지자체까지, 수십여 개의 연구 기관들이 있고 수천 명의 박사급 인력을 거느리고 수천억 원의 예산을 쓰고 있다.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대안을 마련하고, 집권으로 그 결과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또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출처 : 셔터스톡

국책연구기관이 압도하는 정책 생태계

하지만 국책연구기관은 큰 규모와 고급 인력을 거느리고 있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새로운 논의를 확산시키고 사회적 변화를 이끌 연구를 축적하기 어렵다. 각 부처나 지자체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그런 요구에 따라 진행된 연구는 대부분 단기 대책을 내놓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공공기관의 정치적 역할은 금기사항이다.

그 다음으로 그나마 자원이 있는 쪽은 재벌과 금융 계열 싱크탱크이다. 그러나 역시 기업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머지 노동 또는 시민사회 기반의 싱크탱크들이 있지만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다. 학계의 정책 연구자들도 이런 구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직간접적으로 국책연구기관이나 관계 부처에 연관된 경우가 많다.

결국 대부분의 연구기관들이 단기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지식 생태계는 장기적으로 정책 대안을 축적하고, 변화를 위한 정치 역량을 키워낼 수 있는 공간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사회 불안을 경험하고, 사회 변화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변화의 기회가 마련되고, 변화 의지를 가진 정치 세력이 집권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 깊숙이 박혀있는 고속성장 시대의 개발경제 구조나 사회 제도 체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요원할 수 있다. 그 정도 변화에 따를 수밖에 없는 위험이나 저항을 감당할 만큼 대안도 축적되어 있지 않고, 보수적인 관료들을 이끌고 변화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정치 역량도 형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가 극복되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 사회 위기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안고 투표를 하고, 새로운 인생 스토리나 비전을 얘기하는 정치인을 뽑을 수는 있겠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고 또다시 실망하는 패턴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선의와 개혁 의지를 가진 정치인이 집권을 한다고 한들 결국 기존 제도 안에 포섭되고, 면피용 단기 정책에 안주하게 될 것이다. 이를 넘어설 수 있을 정도의 대안과 역량이 축적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제대로 된 독립적 민간 싱크탱크가 꼭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김보영 영남대학교 부교수 · LAB2050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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