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먹방에 빠져들까? (3)

Chullin
11 min readJul 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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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개발자 Chullin입니다.

책 요약을 이어가보려고 합니다.

책은 크리스티안 케이셔스님께서 집필하시고 고은미-김잔디 선생님 번역하신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 — 거울 뉴런과 뇌 공감력의 메커니즘”입니다. 앞의 글(2부)에 이어 오늘은 3부입니다.

제가 개그맨 김준현씨를 참 좋아해요. 특히 “맛있는 녀석들”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한입만 하면서 음식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웃음이 가시질 않습니다. 너무 맛있게 드셔서 저도 침도 질질 흘릴 지경이에요. 왜 종종 부모님들께서는 ‘너희들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해’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저는 김준현씨 보고 있으면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해요.

출처: http://www.pandora.tv/view/ihq619852/53898313/ 저 얼굴을 보세요.. 김준현씨에게 입덕해버렸습니다..

왜 저는 김준현씨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할까요? 왜 저는 김준현씨가 음식 앞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는 것만 봐도 행복해질까요? 오늘은 그 이유를 슬슬 살펴보려고 합니다. 물론 거울뉴런의 프레임워크에서 이해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일단, 앞선 1~2부에서 다뤘던 내용을 요약한 후에 본론으로 훌쩍 넘어가보도록 할게요!

1부에서는 거울뉴런이 학계에 첫 발을 딛은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푸른 곰팡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과정만큼이나 우연적인 발견이었습니다.

2부에서는 거울뉴런의 역할이 시뮬레이션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타인의 행동을 보거나 들을 때, 거울뉴런은 에이전트로 하여금 같은 행동을 수행하고 있는 듯이 두뇌영역을 활성화 시킨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발신자)의 뜀박질을 보고 있노라면, 거울뉴런은 저희(수신자)의 몸에 뜀박질 관련 뉴런들을 자극하는 식입니다. 저희가 실제 뜀박질을 하지 않아도, 뇌의 뉴런들은 자극되지요. 말 그대로 시뮬레이션입니다.

출처: https://sites.psu.edu/psych256su16-2/2016/06/28/mirror-neurons/ 시뮬레이션!

이제 본격적으로 3부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저번에 던졌던 질문은, 과연 거울뉴런의 시뮬레이션은 운동 뉴런에만 관련될 것인지 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감정의 영역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안될 것인지 질문을 던져본 것이지요. 질문을 다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거울뉴런은 혹시 정서도 시뮬레이트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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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뉴.런.은.정.서.를.시.뮬.레.이.트.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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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단호했나요?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릅니다. 제게는 김준현씨의 먹방 얼굴에서 행복감을 읽은 후, 제 스스로가 충만해지는 이 느낌, 그 합일의 느낌을 설명해야 하니까요!

전운동피질의 거울뉴런은 분명히 아닙니다. 거울뉴런은 운동과 관련해서만 담당을 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즉, 정서 시뮬레이트는 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신, 섬엽이 합니다. 섬엽이 정서를 시뮬레이트 합니다. 오늘은 거울뉴런이 아니라 섬엽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거울뉴런은 전운동뉴런 “피질”이므로, 뇌의 피부 즉 뇌의 자글자글한 겉 표면에 입지해 있는 반면, 섬엽은 안 쪽 깊은 곳에 입지해 있습니다.

전운동피질의 거울뉴련이 타인의 행동을 유사하게 시뮬레이트하듯이,섬엽은 타인의 정서를 유사하게 시뮬레이트합니다.

오늘은 섬엽 그 자체에 대해서도 언급하겠지만 섬엽을 찾아간 과정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섬엽을 찾아낸 과정, 즉 실험 설계의 논리, 이것이 오늘 살펴보고 싶은 내용입니다. 어떻게 섬엽이 감정 시뮬레이션의 사령부인지 알 수 있었을까요?

저 깊숙한 곳에 섬엽이 있고, 섬엽이 정서(특히 역겨움) 시뮬레이터를 담당합니다. 전운동피질은 저 바깥쪽 표면 중 중간 가운데 즈음에 위치해 있습니다.(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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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 시뮬레이터는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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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서는 실험 결과가 나왔으니, 우리는 답이 “섬엽”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이 답을 외워서 다음 실험에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섬엽”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험 설계 과정을 쉐도잉하는 것은 명확하게 사고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니까요.

정서 시뮬레이터에 대한 연구 과정은 거울 뉴런의 어깨 위에서 시작했습니다. 정서 시뮬레이터를 찾는 과정은 거울뉴런 발견 경험이 좋은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거울뉴런을 찾은 후에는 ‘시뮬레이터’에 대한 기본적인 프레임워크가 만들어졌는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행동을 담당하는 뉴런들이, 타인의 행동을 본 후에도, 활성화되는가?”

이 프레임은 이제 정서 시뮬레이터에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정서 시뮬레이터에 대한 태초의 가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험참가자를 스캐너에 넣은 상태에서, 정서 경험과 관련된 두뇌영역을 측정하기 위해 정서 경험을 상기시켜서 정서 경험 관련 회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실험참가자가 타인의 정서를 볼 때에도 동일 위치의 뉴런 회로가 활성화되는가?”

이것이 정서 시뮬레이터에 대한 태초의 가설이었습니다. 만약 실험 후에 답이 yes로 나오면, 정서 시뮬레이터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답이 No로 나오면, 정서 시뮬레이터가 없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이 가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동료 뇌과학자들과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태초 가설의 허점을 발견했습니다. 유의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가설은 좀 더 세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정서 경험과 관련된 회로”라고 뭉뚱그려서 말하면 안되고, 슬픔 회로, 기쁨 회로, 역겨움 회로가 분명히 정해져야 했습니다. 내가 슬픔을 느낄 때 활성화된 뉴런, 그리고 내가 타인의 슬픔을 바라볼 때 활성화될 뉴런이 같은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내가 기쁨을 느낄 때 활성화된 뉴런, 그리고 내가 타인의 기쁨을 바라볼 때 활성화될 뉴런이 같은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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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구체화가 추가되어야 했을까요? 잠시 청개구리가 되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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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청개구리가 되었으니 작가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처럼 정서 특칭 뉴런 회로를 찾아야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태초의 가설대로, 뭉뚱그린 정서 경험 관련 회로를 찾는 실험을 진행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실험을 하고 나서, 슬픔이 오든 기쁨이 오든 활성화되는 뉴런을 찾았다고 합시다. 우리는 그 뉴런이 감정 시뮬레이터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뉴런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구분짓지 못하고 그냥 활성화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찾고 있는 것은 정서 시뮬레이터입니다. 내가 슬픔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뉴런이 타인의 슬픔을 보고서도 활성화되는 것인지 파악하고 싶은 것이지, 감정 일반을 담당하는 뉴런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태초의 가설은 변경됩니다.

“실험참가자를 뇌 스캐너에 넣은 상태에서, 정서 경험과 관련된 두뇌영역을 측정하기 위해 전혀 다른 (최소) 두 가지의 정서 경험을 상기시켜서 서로 다른 정서 경험 관련 회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실험참가자가 타인의 두 가지 정서를 볼 때에도 각각 동일 위치의 뉴런 회로가 활성화되는가?”

감정을 선택적으로 시뮬레이트하는 뉴런이 있는지 찾아보자는 식입니다. 슬픔 회로는 내가 슬픔을 경험할 때에나 타인의 슬픔을 바라볼 때에나 마찬가지로 활성화되는 것인지. 슬픔회로와 다른 기쁨 회로는 내가 기쁨을 경험할 때에나 타인의 기쁨을 바라볼 때에나 마찬가지로 활성화되는 것인지. 말입니다.

거울뉴런 과학자 크리스티안 케이서스(작가)님 께서는 가설설정을 마무리짓고 실험에 착수합니다.

케이서스가 선택한 서로 다른 두 감정은 역겨움과 행복감이었습니다. 명쾌하게 구분되는 감정이라 역겨움과 행복감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역겨움 회로가 실험참가자 스스로 역겨움을 느낄 때와 타인의 역겨움을 바라볼 때 활성화됨을 확인하였습니다. 행복감 회로가 실험참가자 스스로 행복감을 느낄 때와 타인의 행복감을 바라볼 때 활성화됨을 확인하였습니다. 성공적으로 감정의 시뮬레이터를 확인하게 된 것이지요! 그 부위가 바로 섬엽입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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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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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케이서스는 좀 더 엄밀하게 검증하길 원했습니다.

어후.. 저는 엄밀함에 질려버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뇌과학 업계 표준이겠지요..?

문제는 인과관계입니다. 참가자가 타인의 역겨워하는 표정을 봤을 때 섬엽이 활성화되었고, 그런 다음 참가자는 영상 속의 사람이 역겨워한다고 인식했습니다. 하지만, 역겨워하는 타인의 얼굴 표정을 본 뒤 일어나는 섬엽의 활성화가 그 사람이 역겨워한다는 것을 당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결론내릴 수 있을까요?

인과관계 문제를 이해하는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동차 브레이크 사례가 있습니다. 당신은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브레이크 등에 불이 들어오고 그런 다음 자동차의 속도가 줄어듭니다.

자동차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외계인은 감속과정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외계인은 자동차를 모르기 때문에 자동차의 브레이크 등이 차를 감속시키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 사람의 발이 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섬엽이 아닌 다른 영역이 타인의 감정을 시뮬레이트하는 원인인데, 외계인이 부수적인 브레이크 등을 보고 감속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도 섬엽을 보고 감정 시뮬레이트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외계인은 자동차 브레이크 등이 브레이크의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출처)

다행히, 외계인이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밝혀볼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있습니다. 브레이크 빨간등을 부숴버리는 것이지요.

만약 브레이크 등을 부쉈음에도 차가 감속한다면, 브레이크 등이 감속의 원인이 아닐 것입니다. 다른 것이 원인이겠지요. 혹은, 만약 브레이크 등을 부쉈더니 차가 감속하지 않는다면, 브레이크 등이 감속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방법을 갖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섬엽을 파괴해버리고 나서, 그 사람이 타인의 역겨움에 공감할 수 있는지 아닌지 알아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연구윤리상 그러면 안됩니다.

대신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자연적으로 섬엽을 잃은 사람을 연구해보는 것입니다. 즉, 외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섬엽의 손상을 경험한 환자들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만약 섬엽이 손상된 사람들도 타인의 역겨움에 공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섬엽을 공감의 원인으로 상정하기 어려워 집니다. 하지만, 만약 섬엽이 손상된 사람들이 타인의 역겨움에 공감할 수 없다면, 우리는 섬엽을 공감의 원인에 해당하는 뇌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케이서스는 실제로 섬엽을 다친 사람들에 대한 연구에 착수합니다. 왼쪽 섬엽이 망가진 환자를 실험대상자로 뽑았습니다. 실험대상자들에게 정서적 얼굴표정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실험대상자들은 행복한 얼굴 사진을 봤을 때, 재빠르게 행복이라는 단어로 얼굴을 표현했습니다. 한편, 놀란 얼굴을 봤을 때는 ‘놀람’이라는 단어로 얼굴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역겨워하는 얼굴 사진을 봤을 때에는 혼란스러워하고 머뭇거렸습니다. 타인의 역겨워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선택적인 장애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연구까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나서, 섬엽은 타인이 역겨워하는지를 인식하는 데에 필요조건인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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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섬엽은 더 활성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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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공감하는 수준은 다 다른 듯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요. 우리 중 일부는 공포영화에서 귀신이 나오든 살인마가 나오든 놀라기만 할 뿐 흥미롭게 영화를 보는 사람인 반면, 또 다른 일부 사람들은 도끼에 목이 잘리는 사람만 봐도 메스꺼움을 느낍니다. 메스꺼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섬엽의 활성화가 더욱 활발한 사람들입니다.

공감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섬엽을 매우 강하게 활성화 합니다. 그래서 영화가 그들에게 촉발한 정서에 압도되곤 해서, 잔인한 장면을 보면, 역겨움이 솟아나게 됩니다. 반면 섬엽이 약하게 활성화되는 일부 사람들은, 도끼에 머리가 댕겅 날라가든 말든 웃으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공감을 잘하는 사람의 뇌, 공감을 못하는 사람의 뇌가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 이상 슬픈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만 나무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글이 길어졌으니, 이 당위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포스팅은 이만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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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 개발자 Chullin이었습니다.

오늘은 기존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배워본 날이었습니다. 제가 쓴 내용 중에 궁금하신 점과 어려운 내용은 댓글로 답장 드리겠습니다. 도움이 되신 분들로부터의 Clap은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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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작 링크

나는 왜 먹방에 빠져들까?(1)

나는 왜 먹방에 빠져들까?(2)

나는 왜 먹방에 빠져들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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