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약자 보호 못 하는 고용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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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min readApr 29, 2020

[IDEA2050_029]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

출처 : 프리픽

위기는 한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드러낸다. 코로나 19 바이러스(COVID-19)로 인한 이번 위기도 그렇다. 감염병 대응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우리나라지만 감염병에서 파생된 모든 위험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사회보장은 우리가 약점을 노출한 대표적인 영역이다. 한국의 사회보장 사각지대가 어제 오늘 문제는 아니지만 코로나19라는 외부적 충격은 이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냈다.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과 그에 따른 고용위기는 노동시장의 약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 특수형태 근로자, 일용직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 사회보험으로부터 배제돼 있다. 가장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보호하지 않는 한국 사회보장 제도의 모순이 드러난 것이다.

당장의 위기에 대해서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이나 이를 보충할 수 있는 긴급실업수당, 긴급복지지원, 고용유지지원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사회보험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특히 경제위기뿐 아니라 기술 변화와 그로 인한 노동시장 환경 변화에 직면한 고용보험은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사회보험 사각지대 문제를 고용보험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고용보험 개혁의 대안으로 소득중심-조세중심의 사회보험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고용보험 가입률 취업자의 50%도 안 돼

아래 <표>는 우리나라 취업자들의 고용보험 가입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우리나라 고용보험은 임금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자영업자와 무급 가족종사자 같은 ‘비임금근로자’는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다. 또한 임금근로자라고 해도 고용보험법 규정에 따라 일정 조건에 해당하면 ‘고용보험 적용제외’ 대상이 된다. 여기에 ‘공무원 등’은 고용보험 가입의무가 없다. 이들을 다 제외하면 전체 취업자의 63.2%인 약 1,740만 명만이 의무가입 대상인데, 이 중 387만 명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고용보험 미가입’). 이렇게 제도적 사각지대와 실질적 사각지대를 모두 제외하면 결국 고용보험 가입률은 전체 취업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표> 고용보험 사각지대 현황(2019년 8월 현재) (단위: 천명)

1) 5인 미만 농림어업, 가사서비스업, 65세 이상, 평소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으로 3개월 미만 일하고 일용직이 아닌 근로자, 특수형태근로에 종사하는 근로자.
2)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별정우체국 직원 등 특수직역연금 가입자.
출처 : 통계청(2019). 이병희(2020: 5)에서 재인용

이처럼 아예 제도로부터 배제된 제도적 사각지대도 크지만 법적 적용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고용보험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다. 임금근로자 중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누구일까?

아래 <그림>은 임금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을 근로자 유형별로 나타낸 것이다.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상용근로자가 아닐수록, 비정규직일수록 더 많이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머무르고 있다. 종사상 지위, 고용 형태,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가 확인된다. 요컨대 취약한 근로자들은 법적 적용 대상이더라도 고용보험에서 배제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 임금근로자 유형별 고용보험 가입률

출처: 통계청(2019) 자료 재가공

사각지대 발생의 원인들

한국의 고용보험 사각지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비임금근로자다. 임의가입 방식으로 가입 가능성이 열려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가입하고 있지 않다. 자영업자가 사회보험, 특히 고용보험에서 배제돼있는 것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포드(Forde) 등은 유럽 28개국에서 자영업자에 대한 사회보장 제도의 적용범위를 ‘높음’, ‘중간’, ‘낮음’으로 구분했는데, 실업보장에 대한 적용범위가 ‘높음’인 국가는 7개국에 불과했다. 건강보장은 28개국, 노후보장은 23개국이 ‘높음’인 것과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사각지대 문제가 더 심각한 이유는 한국이 서구 국가들에 비해 취업자에서 비임금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김도균 등의 연구에 의하면 도시 영세 자영업자가 서구에서는 산업화 과정에서 임금근로 부문으로 흡수된데 반해, 한국에서는 상당수 남아 있는 상태로 탈산업화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도시 영세 자영업 부문이 상존하는 상태에서 탈산업사회의 특수형태근로 종사자가 더해지면서 비임금근로가 큰 규모로 자리하게 됐다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보험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 출처 : 프리픽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문제가 중첩되어 있는 것은 임금근로자의 사각지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고용보험 사각지대가 서구 복지국가들과 가장 다른 점은 의무가입 대상 중에도 미가입이 많다는 점인데, 위 <표>에서 ‘고용보험 미가입’으로 분류된 이들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비정규직의 배제가 대표적으로 여기에 해당하지만, 소규모·영세기업이나 임시일용직 배제 역시 심각하다.

전병유의 연구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사회보험에서 배제되는 현상이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라면, 영세기업이나 임시일용직의 문제는 산업화 과정에서 충분히 해소되지 못한 ‘전근대적 고용관계 잔존’의 결과다. 고속 산업화 속에서 미처 해결하지 못한 숙제와 탈산업화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숙제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자동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사각지대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국제적으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플랫폼 노동이 대표적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실제로 상당한 정도로 종속된 노동을 하고 있지만 고용관계가 아닌 계약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임금근로자 중심의 사회보험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고용보험의 보편화가 필요

한국의 고용보험 사각지대 문제에는 산업화, 탈산업화, 정보화·자동화의 영향이 모두 담겨있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제도가 고용관계와 강하게 연결된 것이 문제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비임금근로자가 고용보험 밖에 있는 이유는 이들이 피고용자가 아니거나, 사용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경우는 주로 사용자의 가입 회피가 문제가 된다. 사용자로서는 사회보험 가입이 법적 의무이지만 재정적 부담이 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양상이다. 제도가 고용관계에 긴밀히 묶여있다 보니, 사용자들은 외주와 하청, 모호한 고용관계를 통해 고용을 외부화하거나 노골적으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고용보험을 임금노동자만이 아니라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사회적 보호로 만들어야 한다. 출처 : 프리픽

노동법적 관점에서는 실질적인 사용자를 찾아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사회보장 측면에서는 노동과 사회적 급여의 연결을 끊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그 예다. 그러나 보편적 기본소득이 실제로 고용보험을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대체하기는 힘들다. 사회보험은 단지 빈곤방지가 아니라 개인의 기존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급여의 적절성(adequacy)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보편적 기본소득을 통해 구현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보험과 고용관계의 연계를 단절이 아닌 완화하는 방식으로 고용보험을 보편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고용보험을 임금노동자만이 아니라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사회적 보호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급여의 적절성이라는 사회보험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모든 취업자를 포괄한다면 현재의 고용보험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하고 향후 나타날 노동시장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재원조달, 조세 기반으로 전환해야

한국의 고용보험이 의무가입 대상 중 미가입자나 제도상으로 배제된 이들뿐 아니라 비임금근로자를 포함하는 모든 일하는 사람의 보험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숙제가 있다. 우선 비임금근로의 포괄을 위해서는 사용자와 피용자의 기여를 기본으로 설계된 현행 재원조달 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고용보험이 노사의 기여라는 전형적인 사회보험료 방식으로 운영될 때 비임금근로자를 의무가입시키기는 어렵다. 노사의 기여라는 형태가 임금근로 관계를 전제로 설계된 것일 뿐더러, 여기에 자영업자를 포함시킬 경우는 보험료 부담으로 인해 당연 가입에 대한 반발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평균적인 임금근로자보다 경제적 상황이 열악한 영세 자영업자,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등은 과중한 기여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

고용보험을 조세 기반 제도로 전환하는 것은 변화하는 노동시장 환경을 고려할 때 불가피하다. 출처 : 프리픽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을 적어도 일정 부분 조세 기반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박제성의 연구에 의하면 프랑스는 최근 고용보험 제도 개선을 통해 자영업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는 물론, 예술 종사자, 단기 노동자, 자발적 실업자를 당연 가입시켰다. 동시에 피고용자 몫의 고용보험료를 폐지하고 사회보장 목적세 성격의 일반 사회보장 기여금(CSG)으로 이를 충당키로 했다. 노사의 기여라는 사회보험료 체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세를 투입하면서, 임금근로자와 비임금근로자 사이의 형평성 제고를 위해 피고용자 몫 보험료를 폐지한 것이다.

고용보험을 조세 기반 제도로 전환하는 것은 변화하는 노동시장 환경을 고려할 때 불가피하다. 임금근로자와 달리 비임금근로자의 경우 어디까지가 근로소득이고 어디서부터 사업소득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체 소득을 기준으로 한 기여가 적합하다. 이 때 영세 자영업자나 플랫폼 노동자 등 노동시장 약자의 부담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조세를 재원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고용관계 대신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 등 계약 관계에 기반해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이 사회보험에 기여하지 않음으로써 사회보장 체계에 무임승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이들의 매출이나 이익, 혹은 이들과 노무 제공자 간 수수료와 연계된 기여 수취가 필요하다. 결국 임금을 기반으로 한 노사의 기여라는 종전의 사회보험 부과 체계는 변화될 수밖에 없다.

기여와 급여 모두 소득 중심으로

사회보험은 기여와 급여의 쌍으로 성립되는 제도다. 현행 사회보험료는 임금을 기준으로 책정하기 때문에 사회보험 급여 역시 임금의 일정 비율(소득대체율)로 결정된다. 따라서 사회보험 기여금을 소득(이윤)에 대한 조세 형태로 전환한다면 급여의 기준 역시 소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적합하다.

급여 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일의 방식이 변화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노동시장 변화에 따라 동시에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는 N잡러나, 시간 단위가 아닌 과업(task) 단위로 소득이 결정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과거의 고용보험이 전제하는 고용과 실업의 기준에 따라 이들에게 급여 지급 필요성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의 고용보험은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그 중 ‘주된 일자리’ 1개에 대해서만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여러 직업 대부분을 잃더라도 남은 1개의 직업으로 일정 시간 이상 일한다면 실업이 아닌 것으로 본다. 이와 같은 방식은 변화하는 노동환경과 맞지 않다.

우리의 사회보장 제도가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나고 있는 지금이 사회보험의 근본적인 개혁을 논의할 수 있는 적기다. 출처 : 프리픽

소득 중심 사회보험으로 전환하는 것은 개인의 ‘고용상황(고용 또는 실업)’이 아닌 ‘소득상황(소득의 급격한 감소 혹은 상실)’을 기준으로 급여 수급 자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서구 복지국가들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는 ‘부분실업 급여’(노동시간이 일정 수준 이상 감소할 경우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와 유사성이 있지만, 노동시간이 아닌 소득을 기준으로 함으로써 소득이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결정되지 않는 이들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복지국가는 정적인 체계가 아니며 지속적으로 개혁함으로써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왔다. 특히 노동시장의 환경 변화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복지국가 개혁의 동인이 돼왔으며, 지금 우리가 놓인 상황 역시 그렇다.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코로나19라는 외부적 충격으로 우리의 사회보장 제도가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나고 있는 지금이 사회보험의 근본적인 개혁을 논의할 수 있는 적기다.

보편적 사회보험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조세 기반-소득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물론 기존 제도의 전환은 한 순간에 이뤄질 수 없다. 재원과 급여 체계의 변화를 위해서는 소득 파악 체계 개선과 같은 인프라 보완이 필요하며, 기여율 및 기여 방식, 급여 지급의 기준 및 수준에 대해서도 다양한 검토가 필요하다. 급격한 변화로 인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전환 과정에 중간 단계를 둘 필요도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고용보험을 궁극적으로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제도’로 전환시켜 나간다는 방향이다. 바로 지금이 이를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시기다.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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