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종이 새’ 연출자 헤르만 엘러 인터뷰

Jay Kim
ixi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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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min readJul 5, 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비욘드리얼리티 & ixi 콜라보 특집

3DAR는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 Hoax: Moon Landing)> 그리고 <종이 새(Paper Birds)>를 만든 아르헨티나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입니다. 글루미 아이즈는 2019년과 2020년에, 나머지 두 작품은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비욘드 리얼리티(Beyond Reality) 섹션에 초청 되었습니다. 3DAR의 대표이자 감독인 헤르만 엘러(German Heller)(이하 G)를 온라인 상에서 만나 XR 애니메이션 제작과 연출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사진제공 : Veronica Manfredi

3DAR는 언제 설립이 되었습니까?

G: 우선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3DAR는 2004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네요. 우리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표현을 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스튜디오를 설립했습니다. 표현 기술 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구요. 이 사람들과 함께 모험을 하고 그 과정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3DAR라는 이름은 꽤 독특해보이는데, 무슨 뜻을 담고 있나요?

G: 사실 3DAR라는 이름은 회사가 성장하고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애니메이션과 건축 이미지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했기 때문에, 3D Animation and Rendering, 3D Architecture and Rendering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었습니다. 우리가 아르헨티나 회사니까 3D Argentina란 뜻도 있었구요. 그 이후에 우리가 AR 쪽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3D AR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어요. 우리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회사가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회사명은 오픈되어 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정의하려고 했지만 늘 다른 의미가 얹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계기로 XR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그리고 VR을 시작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준 작품이 있었나요?

G: 우리는 원래부터 XR을 만들려고 했던 스튜디오는 아니었습니다.그러나 3DAR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것들을 믹스해 보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XR은 알면 알수록 무한대의 기회가 있구나, 무한대의 능력이 스토리텔러에게 주어지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가상) 세계 전체를 다 총괄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흥미롭고 매력적이었어요. 우리가 만든 초기 작품은 아포칼립스와 약간의 디스토피아 그리고 비극적인 요소를 섞은 작품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것들을 공부하고 리서치하고 재미있게 만들다보니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초기에는 Penrose의 작품을 보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3DAR에서 VR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지 7년이 좀 넘었는데, 그 동안 관객이나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들 그리고 마켓을 포함한 XR 업계의 환경이 어떻게 변했다고 생각하십니까?

G: 우선은 기술적인 변화가 있겠죠? 기술이 향상되면 자연스럽게 변화를 체감을 하고 따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의 규칙도 변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험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운 점들을 적용하여 작품을 만들게되면 다른 창작자들도 그 성과를 인지하고 발전하게 되겠지요?

XR 콘텐츠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것을 보고 즐기는 관객들이 많지 않았던 것이 그 동안의 문제였는데, 그것이 오큘러스 퀘스트2가 발매되면서 많이 해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서양에서는) 오큘러스 퀘스트2가 커다란 인기를 얻으면서 관객층이 꽤 많이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3DAR에게는 좋은 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고, 새로운 툴이 나오고 있고, 새로운 솔루션이 나오고 있고 그것들이 지속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성능이 향상되고 있으므로 3DAR도 그것에 발맞추어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변화와 개선의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XR이 꽤 빨리 성장하고 있구나 하고 느끼고 있습니다.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는 세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에피소드를 제작할 때마다 기술 수준이 올라가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이 새(Paper Birds)>를 만들 때는 더 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설계할 수 있을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특정 기술 하나가 발전한다기보다는 전반적인 콘텐츠 제작환경이 함께 발전하면서 가능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제공 : Veronica Manfredi

Penrose의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으니,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와 <종이 새(Paper Birds)>가 모두 미니어쳐 스타일로 만들어지게 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미니어쳐 스타일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요? <종이 새(Paper Birds)>를 제작할 때에는 어떤 점을 고려하고 적용했습니까?

G: 미니어쳐 스타일은 우리에게 하나의 리소스(표현 방법)였습니다. 관객들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스토리텔링을 하기 위한 리소스로밖에 생각하지 않았구요, 관객들이 ‘적극적인 증인(Active Witness)’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3DAR는 어떤 한 가지 양식에 정착되어 있다기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인데,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와 <종이 새(Paper Birds)>를 비교하거나, (우리가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를 만들 때에는 각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으니까)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의 각 에피소드를 비교해보시면 알 수 있을 거예요. 특히 <종이 새(Paper Birds)>의 후반부를 보시면 우리가 얼마나 새로운 리소스 (표현 방법)을 적용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미니어쳐 스타일이 너무 귀엽고 관객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몰입을 위해서는 다른 여러 요소가 결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사를 새로 넣어보거나, 시각적으로 색다른 시도를 하거나, 촬영 기법을 달리 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재즈 바 씬에서는 클로즈업을 사용한 상태에서 대사를 넣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예전에 영화를 찍을 때는 아날로그적인 요소들이 많았죠. 카메라가 정적으로 움직이면서 배우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경우도 일반적이었구요. 저는 XR도 그런 방식을 사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재즈바 씬에서 클로즈업을 배치한 것은 결과적으로 크게 성공적이었구요 굉장히 확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컷이 아니고 카메라 무빙을 사용한 것이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데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 때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저희는 많은 부분을 계속 실험하고 있습니다. 내레이션 외에 대사를 쓰는 것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꽤나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니어쳐 스타일은 하나의 표현 양식일 뿐이지요.

저는 재즈바 씬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트랙 아웃 씬은 영화에서는 자주 쓰이는 연출 기법이지만, XR 작품을 만들 때는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잘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씬에서는 그런 선입견이 무색해질 정도로 정말 자연스럽게 적용되어 있었어요. 인류가 그 동안 영상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면서 축적해왔던 여러 기법들이 XR에도 적용될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이런 표현 기법의 발전은 <종이 새(Paper Birds)> 마지막 장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마치 <비트 세이버(Beat Saber)> 같은 리듬 게임 시퀀스가 들어가 있잖아요? 물론 비트 세이버와는 매우 다른 정서이긴 하지만, 왜 이런 게임 요소를 작품에 반영하였나요? 3DAR가 게임 제작도 계획이나 관심이 있을까요?

G: 네, 저희는 게임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고 실제로도 지금 제작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스토리텔링의 아름다움과 게임 플레이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아주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유저의 개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스토리텔링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하는 방식이고, 꽤나 유머스러운 작품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뒤에 더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비트세이버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고 XR 게임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 중에 하나죠. 그러나 비트세이버의 요소를 작품에 넣어보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관객이 음악을 진두지휘하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낼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비트세이버의 상호작용과 유사하게 보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그 방식보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관객과 음악이 연결되어서 관객이 스스로 음악을 창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종이 새(Paper Birds)>는 XR 콘텐츠이지만 음악이 ‘뼛속까지’ 깊이 녹아있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뮤지컬이라고 하고 싶어요. 캐릭터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뮤지컬이 아니라 (이 작품의 음악을 만든 프랑스 작곡가이고 제가 작업한 분들 중에 가장 훌륭한 분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시릴 마르체소(Cyrille Marchesseau)의 음악이 함께 콘텐츠에 어우러져 있는 뮤지컬입니다.

저희는 <종이 새(Paper Birds)>를 만들 때 XR의 표현기법들을 최대한 많이 사용하려고 했구요, 인터랙션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했지만 그 이유는 모두 관객들이 음악과 더 친근해지고 직접 지휘하는 느낌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네, 맞습니다. <종이 새(Paper Birds)>의 음악이 상당히 아름답죠.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 때에도 그랬지만요. 그렇지만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와 비교해보았을 때 <종이 새(Paper Birds)>는 상호작용 디자인(Interaction Design)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른 곳 인터뷰에서 관객을 ‘적극적인 증인(the active witness)’이라고 표현하신 적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좀더 많은 상호작용 요소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중첩시킨 다음 관객의 손으로 열어 젖히거나 닫는 형태의 ‘핸드 트래킹’ 장면이 매우 흥미로웠고, 그 상호작용이 내러티브와도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많은 VR 창작자들이 스토리텔링과 상호작용의 균형을 잡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죠. 상호작용 요소를 많이 넣으면 스토리텔링 진행에 방해를 받기도 하니까요. 상호작용을 설계할때에 어떤 부분을 고려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 지도 궁금합니다.

G: 음악이 아름답다고 하셨으니 좀더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도 같은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음악이 중요하지 않은 작품은 없겠지만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나 종이새(Paper Birds)는 모두 서정적이고 시적인 작품들이라 음악이 특히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미지만 보는 것보다 음악과 함께 감상하는 것이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리기 더 쉽지 않습니까.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를 제작할 때에 시릴(Cyrille)과 함께 작업하면서 음악적인 요소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하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랙션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애초에 우리는 콘트롤러를 사용하는 것에 크게 반대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 순간, 관객은 뭔가 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듣거나 감상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손에 쥔 콘트롤러를 가지고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거 같아요. 그래서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 제작 초기에 많은 투자자들이 인터랙션을 꼭 넣어야한다고 요구를 해와서 여러 가지로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관객이 작품에 공감하는 정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콘트롤러를 사용하는 인터랙션을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8년도인가에 ‘핸드 트래킹(Hand Tracking)’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핸드 트래킹은 저희에게 정말 게임 체인저였어요. 이제 굳이 손에 뭔가를 쥐지 않아도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관객들은 손에 뭔가를 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상호작용을 하다가도 바로 모드가 변경이 되어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실제로도 이 부분에 대해 굉장히 많은 테스트를 했습니다. <종이 새(Paper Birds)>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말씀해주신 것처럼 상호작용(Interaction)이 이야기 전개에 방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핸드 트래킹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핸드 트래킹 덕분에 관객들의 모드 전환이 자연스러워 졌고, 이 부분의 확신을 얻기까지 저희는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최종본보다 훨씬 많은 상호작용이 있었는데, 유저 테스트를 해보고 효과적이지 않은 것은 가차없이 제거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관객들이 미묘하게 상호작용하도록 유도하면서도 스토리텔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앞으로 차차 나아지겠지만 이러한 과정은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었어요. 그렇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도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 Hoax)> 포스터 (사진제공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3DAR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캐릭터들의 질감(Texture)가 매우 훌륭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마치 클레이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경험과 R&D가 쌓여있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 낸 것인지 궁금합니다. 특히 두 작품 모두 오큘러스 퀘스트를 통해서 볼 수 있는데, 퀘스트는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이는데에 특화된 기기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쥬얼 퀄리티가 떨어져 보이지 않고 특유의 질감이 손상되어 보이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최적화를 이뤄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G: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를 기획하던 초창기에 우리는 플레이도우(Play-Doh)의 광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의 감독이었던 호르헤(Jorge Tereso)페르난도(Fernando Maldanado)가 이걸 우리 콘텐츠에 응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다른 광고 작업을 할 때에는 과감한 색을 써보는 실험을 했는데, 그 방식도 적용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캐릭터가 좀더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구요. 친근하고 친숙하지만 장난감 같지 않고 살아 있는 인형으로 느껴지도록 해보자. 그래야 이야기가 가짜 같지 않고 진짜처럼 느껴질 거 같다. 이렇게 수많은 아이디어와 실험을 통해 특유의 질감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3DAR는 미적 완성도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습니다. 병적인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호르헤나 저도 그렇지만 <종이 새(Paper Birds)>를 공동 연출한 페데리코(Federico Carlini)야말로 미적 완성도 만큼은 끝을 보는 전문가입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최대한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그는 한술 더 뜨는 연출이었어요. 옆에서 보면 조명 하나하나 디테일 하나하나 공들이지 않고 지나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의 이런 강박 덕분에 이런 비주얼 퀄리티를 맞출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캐릭터를 만들 때에도 클레이 애니메이션 스타일인지 아닌지 보다도, 캐릭터의 본질은 무엇인지, 성격은 무엇인지, 캐릭터의 질감은 무엇인지 등 속성을 먼저 고민한 다음 캐릭터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룩과 질감을 결정합니다. 실제처럼 보이게 할 것인지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보이게 할 것인지 아니면 만화처럼 보이게 할 것인를 결정하는 것이죠.

3DAR의 아름답고 시적인 작품들을 비롯해서, 남미에서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ARVORE의 <더 라인(The Line)>이나 최근 오큘러스 퀼 애니메이션으로 공개된 Federico Moreno Breser의 <레벨스(Rebels)> 같은 작품들이 다 남미에서 나온 작품들입니다. 남미의 지원정책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요인들이 있는 것일까요?

G: 정부에서는 전혀 지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작품의 파이낸싱이 매우 어렵습니다. 저희의 작품들도 제작비 조달은 모두 해외에서 이루어졌구요. 남미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이유는 아마도 안정적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시스템도 정치환경도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남미 사람들이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몸에 밴 것이 아닐까 싶어요.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닌 여러 가지 방법을 동시에 추구해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익숙하고 전통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일상적이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남미에서는 법과 규칙을 지키다보면 성공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정말 혁신적이거나 반항적인 기질이 몸에 배어 있지요. 왜 남미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콘텐츠를 만들려면 장비도 많이 필요한데, 컴퓨터나 헤드셋 같은 것은 비행기 타고 미국에 가서 쉽게 실어올 수 있을 정도로 부피가 크지 않은 것들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도 생각해요.

제가 아는 3Dar의 세 작품,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 Hoax: Moon Landing)>, <종이 새(Paper Birds)>는 모두 해외에 공동 제작사가 참여한 작품들입니다. 아틀라스 파이브(Atlas V), 세렌디피티(Serendipity), 바오밥 스튜디오(Baobab Studios)와의 협업 경험은 어떠셨는지요?

G: 세 번의 공동제작 경험은 모두 참 좋았고 또 다 다른 형태였습니다. 미안하지만 이 세 공동제작 스튜디오보다 먼저 페이스북을 언급하고 싶어요. <종이 새(Paper Birds)>는 제작비 전체를 페이스북에서 제공해 주었습니다. 전체 펀딩을 다 했음에도 특별한 요구 없이 저희 3DAR에게 모든 것을 맡겨 주었습니다. 제작비 전체를 대고 나면 페이스북에서도 원하는 것이 많이 있었을텐데도 저희만의 호흡과 방식대로 창작할 수 있도록 융통성 있게 이해해주고 믿어주고 지지해주었습니다. 특히 에이버리 팀(Averie Timm)께서는 우리가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았어요. 이 기회를 빌어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글루미 아이즈(Gloomy Eyes)>를 같이 제작한 아틀라스 파이브(Atlas V)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틀라스 파이브는 곧 앙트완 케이롤(Antoine Cayrol)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참 훌륭하고 카리스마 넘치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프로듀서인데 만난 지가 한참되어서 많이 그립기도 합니다. 그는 영감을 끊임없이 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1차 펀딩을 해주고 나서도 외부에서 좋은 딜을 많이 끌어다 주었지요. 어떻게 보면 XR 콘텐츠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준 사람이기도 해서 늘 존경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앙트완 최고!

그리고 <지상최대의 쇼(The Great Hoax: Moon Landing)>의 경우에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작품이고 저희가 보조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제가 크게 개입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제작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요.

바오밥 스튜디오의 경우는 저희가 이미 <종이 새> 제작비 전체를 페이스북으로부터 다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투자 쪽으로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내레이션을 맡은 에드워드 노튼(Edward Norton)을 비롯해서 우리가 다가가기 힘든 유명한 아티스트들을 캐스팅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어요. 그 외에도 홍보를 도와주고 혁신적인 피드백을 주기도 했구요. 3DAR는 가족적이고 폐쇄적인 형태의 스튜디오라고 하면 바오밥은 반대로 네트워크가 강한 스튜디오입니다. 시행착오 없이 가장 적합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요. 그런 면에서 같이 작업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좋은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3Dar의 다음 프로젝트는 게임인가요? 어떤 제목의 작품인지 어떤 내용인지 살짝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G: 다음 작품의 제목은 에그스케이프(Eggscape)입니다. 살아있는 달걀들이 여러 위험으로부터 도망치는 게임입니다. 중세와 미래를 오고 가는 유머가 가득한 게임이고, 현재 첫번째 프로토타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가 헤드셋을 쓰고 첫 프로토타입을 경험할 때 쉬지 않고 웃을 수 있다면 성공이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만드는 것은 저희에게도 첫번째 도전이기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2019년에 글루미 아이즈를 가지고 부천을 찾아오셨을 때에 저에게 Paper Birds의 컨셉 아트를 보여주신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되어 다시 한국 관객을 만나게 되어서 참 기쁩니다. 마지막으로 부천영화제와 매거진 ixi의 팬들에게 인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G: 이렇게 우리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2년 전에 부천에 왔을 때에 영화제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이 열정적이어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신기술, 크리에이터, 혁신, 콘텐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세계 곳곳에 널리 알리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축제였어요. 다시 2019년처럼 한국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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