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서론: 왜 세계는 정책실험에 주목하는가

최영준·구교준·고동현

LAB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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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min readFeb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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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B2050 보고서 ‘정책실험의 개념과 필요성: 청년 기본소득 지급 실험 모델 제안’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주석, 참고문헌 등은 별도 포스트(링크)PDF 버전(다운로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가. 기존 분배 체계의 한계

자동화로 인한 고용 감축, 노동 시장의 양극화, 사회적 이동성의 저하 등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산업 발전을 경험한 여러 나라들이 직면한 문제다. 이는 소득 불평등의 확대로 이어진다. <그림 1>에서 나타나듯이 최근 상위 1%,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소득 불평등의 확대는 다시 사회 역동성 저하, 사회적 갈등 유발로 이어져 앞서 열거한 문제들이 더욱 심화되는 구조적 악순환을 낳는다.

[그림 1] 소득 불평등 추이
(출처: 홍민기 (2019)

이 악순환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그림 2>와 같이 고용, 복지 등 분배 정책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기존 정책을 확대하고,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는 등 다방면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이 문제들은 완화되기는 커녕 점점 더 악화되고 있을까?

[그림 2]분배 정책(보건·복지·고용 등) 예산의 증가 추이
출처: e-나라지표 정부재정현황, 기획재정부

과거 우리 사회는 산업화를 통해 경제가 고속도로 성장했고, 제조업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일자리가 계속 창출됐다. 이 때 정부 분배 정책의 큰 틀은 이 대열에서 낙오된 이들을 구제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돕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업에서도 안정적인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으며, 플랫폼을 중심으로 새롭게 창출되는 일자리들은 대부분 불안정하다. 거기에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기술 변화에 따라 더 많은 일자리를 기계가 대체하고, 그 결과로 소수에게 부가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경제 구조가 전환되는 상황에서 오랜 시기 이어진 기존의 분배 정책은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기존 분배 정책이 한계에 다다른 것은 우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기본소득과 같이 새로운 분배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하지만 실제 한 사회의 분배 체계가 새로운 형태로 전환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현재의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분배 정책을 도입하려면 충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없고, 작은 규모로 실시된다해도 기존 정책의 틈을 메우는데 그치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존의 분배 체계를 전환해 재구성해야 한다. 전환의 방식은 증세나 세제 개편과 같은 재원 마련을 통해 분배 정책을 대폭 확대하는 것일 수도 있고, 기존 고용 및 복지 정책의 다수를 축소 또는 폐지하고 새로운 정책으로 대체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배 정책이 국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이를 집행하는 관료 체계는 비대해지고, 정책을 둘러싼 이해관계 역시 복잡해진다. 기존 관료 체계를 혁신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숙의에 기반한 사회적 합의와 강력한 정치적 추진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합의와 추진력은 증세나 세재 개편과 같은 재원 마련에 있어서도 필요한 것이다.

이 사회적 합의와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새로운 분배 체계가 불평등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개선하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으며, 새로운 분배 체계 하에서도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게 운영될 것 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존 정책의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어 분배 체계를 전환할 수 있다.

나. 정책실험의 부상

우리 사회가 새로운 분배 체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신뢰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그 정책의 효과를 검증할 강력한 도구가 필요하다. 그 도구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정책실험’(Policy Experiment)이다. 정책실험은 자연과학에서 활용되는 실험 설계를 사회과학에 해당하는 정책 효과 평가에 응용해 가장 엄밀하게 정책의 효과를 측정하고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정책실험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2019년 노벨경제학상에서 드러났다. 공동 수상자인 에스더 뒤플로(Esther Duflo), 아비지트 배너지(Abhijit Banerjee), 마이클 크레이머(Michael Kremer)는 1997년부터 케냐에서 정책실험을 통해 교육 정책의 효과를 분석하는 등 국제 개발 사업에 정책실험을 도입했다.
2003년 빈곤행동실험(J-PAL)이라는 연구기관을 설립한 뒤로는 800여 건의 정책실험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정책실험의 사례를 확산해왔다.[2] 이로 인해 국제 개발 협력 분야에서는 거대 담론에 기반해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소규모 원조·개발 협력 프로젝트의 효과를 입증한 뒤 이를 확대해 나가는 방식이 지지를 얻고 있다(김부열, 2016).

개발도상국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의료, 복지, 교육, 고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 정책을 혁신하고 새로운 정책을 확산하는 방법으로 정책실험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2017년부터 진행된 핀란드의 기본소득 정책실험, 스페인 바르셀로나시의 시민소득 실험 ‘비민컴’(B-MINCOME)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운 형태의 분배 체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본 연구는 우리 사회가 새로운 분배 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정책실험이 갖는 의미와 필요성을 탐색하려고 한다. 먼저 2장에서는 정책실험의 의미와 구체적 적용 방식, 주요 선진국 정부 차원에서 정책실험을 도입한 사례를 소개한다.
3장에서는 새로운 분배 체계로 주목받고 있는 기본소득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왜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실험이 필요한지를 제시하고 이와 유사한 형태의 주요 정책실험 사례를 소개한다. 이를 바탕으로 4장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기본소득 정책실험의 구체적인 형태로 ‘청년 기본소득 정책실험’을 제안하고 세부 실행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다음 글 읽기: Part 2. 정책실험이란?

전체 포스트

보고서 소개 및 목차

Part 1. 서론: 왜 세계는 정책실험에 주목하는가

Part 2. 정책실험이란?

Part 3. 분배 정책에서 정책실험의 필요성

Part 4. 청년 기본소득 정책실험 제안

Part 5. 결론: 정책실험을 위해 필요한 제도적, 인식적 기반

참고문헌 및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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