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도시의 메시지는 여기에 남았을까

[경남 사회혁신 국제포럼 후기] 말뫼 빌바오 포틀랜드 전환 경험의 공통점

황세원
LAB2050
9 min readFeb 19, 2020

--

일마 리팔루 말뫼 전 시장. 출처: 경남도청

“어떻게 시민들이 도시 행정에 더 참여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일 하는 시간부터 줄어야죠. 주위를 보세요. 건물마다 밤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위해서 시간을 내겠습니까?”(일마 리팔루 말뫼 전 시장)

“엄청난 돈을 썼죠. 시청에서 하는 모든 일마다 사람들이 와서 간섭하고 욕 하라고 많은 예산을 쓴 거예요. 그래서 그 결과가 대단했죠. 그랬는데도 얼마 후에 그 시스템은 망가졌고, 지금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샘 아담스 포틀랜드 전 시장)

“한국에서는 청년들이 공무원과 같은 안정된 일자리로만 몰립니다. 빌바오에는 그런 문제가 없나요?”

“공무원은 안정되게 일 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고, 시민들의 안정성을 위해서 일 하는 자리입니다.”(고초네 사가르뒤 빌바오 부시장)

2020년 1월 9일, 경남 창원의 창원컨벤션센터는 수백 명의 사람들로 붐볐다. ‘경남 사회혁신 국제포럼’ 기조세션을 보러 온 청중들이다. 세 도시에서 온 연사들의 발제 내용은 여러 언론에 자세히 소개됐다.

메시지의 핵심은 충분히 알려진 셈인데, 그럼에도 미진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현장에서 듣지 않으면 포착할 수 없는 발언들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먼 거리를 마다않고 ‘현장’으로 가는 모양이다.

다소 시간이 지났지만 이렇게 후기를 따로 정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LAB2050은 국제포럼의 공동주최자이자, 이 행사를 처음 기획해서 경상남도청에 제안한 기관이다.

그 기획 의도는 LAB2050이 이미 발표한 ‘제조업 도시들이 흔들린다:지역별 고용위기 시그널과 위기 대응 모델’ ‘쇠락도시 위기에서 탈출한 도시들: 말뫼 빌바오 포틀랜드 히가시오사카’ 등의 보고서에 들어 있다. ‘우리는 더 나은 길로 간다’는 이번 포럼의 주제 문구도 이 맥락에서 지어진 것이었다.

고초네 사가르뒤 빌바오 부시장. 출처: 경남도청

그 관점 하에서 기조세션의 메시지들을 다시 정리해 봤다. 조선업 등 주력 산업의 쇠퇴 속에서 쇠락도시(rust-belt city)가 될 수 있었지만 지속가능하고 매력적인 도시, 청년들이 살고 싶어하는 도시가 된 세 도시, 말뫼 빌바오 포틀랜드에 대해 소개한 세 연사들이 강조한 측면은 다음과 같다. 이는 ‘쇠락도시…’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첫째, ‘친환경’이라는 키워드다. 세 도시 모두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면에서, 지금도 더욱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인정받는 곳들이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도시의 미래를 위한 정책을 만든다면 가장 먼저 우리 도시가 놓여 있는 환경의 큰 맥락을 봐야 합니다.”

일마 리팔루 전 시장의 이 말이 세 도시가 ‘친환경 도시’를 목표로 삼은 이유를 설명한다. 2020년 현재는 그 맥락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살고자 하는 도시, 그 도시에게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말뫼 빌바오 포틀랜드는 그 점을 조금 일찍 깨달았을 뿐이다.

샘 아담스 포틀랜드 전 시장. 출처: 경남도청

둘째, 작은 기업들이 중심이 되는 구조다. ‘코쿰스 조선소’라는 하나의 대기업에 의존했던 말뫼는 이제 숱한 기업들이 창업되고, 망하고, 또 다시 창업되는 벤처 도시가 됐다. 빌바오 역시 작은 기업들이 주를 이루며, 그 기업들의 ‘일자리의 질’이 높은 도시로 꼽힌다.

포틀랜드는 사업체의 95%가 50인 미만 규모이고, 특히 주요 산업인 아웃도어 의류 제조업과 IT, 미디어 산업은 90% 이상, 친환경 재생 산업은 77%가 20인 미만 기업이다. 그리고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의 넷 중 세 개가 이와 같은 ‘스몰 비즈니스’에서 나온다.

물론 작은 기업들은 글로벌 경제위기 같은 상황에 더 취약할 수 있다. 그러나 단일 산업에 도시 전체가 의존하는 것보다는 덜 위험하다. 또, 기업이나 산업은 흔들려도 시민들의 삶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이를 떠받치는 다른 안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 특히 젊은 세대가 작은 비즈니스, 창업 기업에서 일 하는 것을 매력적으로 느껴야 하고, 그 일자리의 질이 높아야 한다. 임금의 측면보다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문화, 성별 격차가 없는 환경 등이 세 도시의 사례에서 강조됐다.

셋째, 포용적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변화의 과정에서 시민 중 누구도 배제됐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라.”(일마 리팔루), “시민이 곧 플레이어다. 시민들이 스스로 일 하는 것이다.”(고초네 사가르뒤), “기업은 도시 행정의 중요한 이해관계자이지만, 시민사회, 노동자들도 중요하다. 그뿐 아니라 일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사람들까지도 전부 중요한 이해관계자로 여겨야 한다.”(샘 아담스) 등 메시지가 분명했다.

경남 사회혁신 국제포럼 기조 세션의 토크 콘서트 순서에서 고초네 사가르뒤 빌바오 부시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 경남도청

마지막으로, 청년 세대가 도시의 주인공이라는 관점이다. 세 도시 모두 청년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 하고 살 수 있도록 도시 전반을 재정비, 재설계 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사람들이 일 하고, 공부하고, 살아가는 거점들이 모두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포틀랜드 도심지 조성 원칙인 ‘조닝’(zoning)이 잘 알려져 있지만 말뫼와 빌바오의 원칙도 비슷하다. 말뫼 대학과 대규모 문화 시설인 ‘말뫼 라이브’가 모두 중앙역 바로 옆의 도시 중심지에 지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빌바오는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섬인 ‘소로타크아우레’(Zorrotzaurre)를 청년들이 그 안에서 일 하고, 교육 받고, 살고, 여가를 즐기는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재조성 하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이밖에, 세 발제자의 메시지 중에서 놓치기 아쉬운 말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여기에는 포럼 이후 통영과 거제의 조선소를 돌아본 필드 트립 현장, 1월 13일 서울에서 전국사회연대경제지방정부협의회 주최로 열린 ‘2020 해외 도시혁신 전문가 간담회’ 등에서의 발언까지 반영됐다.

과연 이 메시지들이 한국에 남았는지, 단지 ‘큰 행사를 잘 치렀다’는 평가만 남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일마 리팔루 말뫼 전 시장. 출처: 경남도청

“큰 전환의 프로젝트를 시행하려면 무엇보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합니다. 시민들이 지금부터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는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 조선소 자리에 건물을 짓는다면) 이 건물이 도시 전체에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명해야 합니다.

외레순드 다리(말뫼와 코펜하겐을 연결한 다리) 등 건설 사업이 말뫼 경제 위기를 떠받쳤다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동유럽 노동자들이 와서 일 했기 때문에 건설 일자리는 조선소 퇴직자와는 관계도 없었습니다. 그 다리가 중요했던 것은 ‘이제 우리는 중공업 도시, 조선업 도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간다’는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시민들이 다리를 볼 때마다 그 점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일마 리팔루)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큰 계획을 세운다면 그것이 결과적으로 도시의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처음부터 설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일마 리팔루)

샘 아담스 포틀랜드 전 시장. 출처: 경남도청

“도시가 큰 전환을 이루는 것은 아주 어렵죠. 왜 아니겠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기업가들 중에서 자신들이 속한 산업의 방향과 맞지 않는 도시 계획을 듣고 ‘좋다’고 말 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못 봤습니다. 그렇지만 큰 전환의 과정 속에 그들도 들어오게 해야 하고, 중요한 역할을 맡아서 하게 해야 합니다. 기업은 도시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입니다.”(샘 아담스)

“저희는 ‘포틀랜드 플랜’을 시작하기 전에 2년 동안 사전 조사를 했습니다. 뒤돌아 보면 더 많이 했어야 해요. 조사 결과를 보니 놀랄 만한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도시의 수출 품목 1위가 알고 보니 고철이었어요. 제대로 조사하기 전에는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청년들은 어떻게 일 하고 싶은지 계속 조사하고, 듣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연히 계획이 만들어지고, 실행으로 이어졌습니다.”(샘 아담스)

고초네 사가르뒤 빌바오 부시장. 출처: 경상남도

“도시 행정에서 청년들이 중요한 이유는, 20~30년 뒤를 생각하며 계획을 짜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에게는 4년도 긴 시간이지만 도시의 시간으로 보면 4년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치인의 시간에 도시를 맞추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제 젊은 세대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어 합니다. 가족,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고, 깨끗한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고초네 사가르뒤)

“시민들은 사실 참여하고 싶어 합니다. 이 도시의, 나라의 중요한 변화에서 중요한 한 역할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에 따라서 행정이 일 하면 됩니다. 그리고 도시 행정에 대한 평가는 첫 번째 시민이 아니라 가장 마지막의 시민에 의해서 이뤄져야 합니다.”(고초네 사가르뒤)

관련 보고서

제조업 도시들이 흔들린다:지역별 고용위기 시그널과 위기 대응 모델
쇠락도시 위기에서 탈출한 도시들: 말뫼 빌바오 포틀랜드 히가시오사카

히가시오사카, 산업 공동화에 맞서는 지방정부의 대응

관련 포스트

지방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방법
지방에 ‘혁신’ 정책이 더 필요한 이유
말뫼 혁신 전환의 ‘진짜’ 비결

관련 언론 보도

혁신적 포용국가?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 황세원 (오마이뉴스)
도시 살린 ‘새 옷’ 시민과 함께 만들었죠 (경남도민일보)
말뫼ㆍ포틀랜드ㆍ빌바오의 경험을 배우자 (한국일보)
쇠락위기에서 탈출한 말뫼-빌바오-포틀랜드의 교훈은? (오마이뉴스)
선진국 도시서 배우는 ‘더 나은 길’…경남 사회혁신 국제포럼 (연합뉴스)
스웨덴 말뫼·스페인 빌바오의 위기극복 전략 (경남신문)
선진국 도시서 배우는 ‘더 나은 길’…경남 사회혁신 국제포럼 (연합뉴스)
“선진 해외도시 고용· 고령화 탈출 사례 배우자”…경남도, 국제포럼 개최 (동아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