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뫼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

황세원
LAB2050
Published in
11 min readFeb 22, 2020

[LAB2050 연구 후기] 말뫼 모델에 대한 네 가지 질문과 답

말뫼의 옛 조선소 부지에 들어선 100% 친환경 에너지 주거단지 위로 말뫼 전환의 상징인 ‘터닝 토르소’가 보인다.

“말뫼는 정말 우리가 따라갈 만한 도시 전환 모델입니까?”

2018년 11월, LAB2050은 제조업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지방도시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말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말뫼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희망을 보여주기도 했고, 또는 우리와는 너무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주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질문이 계속 나왔을 것이다.

말뫼의 역사와 현황, 전환의 과정에 대해 자세한 보고서를 발표했지만 그 이후에도 질문은 계속됐다. 더 전문적이고, 상세한 분석 보고서들은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나올 수 있지만 그것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이야기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른 질문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 더 설명할 수 있었으면 했다. 다행히 LAB2050이 기획에 참여한 ‘경남 사회혁신 국제포럼’에서 말뫼를 주요 사례로 다루기로 하면서 기회가 생겼다. 2018년 10월 말뫼에 가서 만났던 일마 리팔루 전 시장과 비야네 스텐키스트 씨(전 언론인, 전 말뫼 시청 컨설턴트, 독립 연구자)를 한국으로 초청할 수 있었다. 그들이 한국에 체류한 거의 전 일정을 같이 하면서 여러 질문들을 더 할 수 있었다.

국제포럼 며칠 후인 1월 14일에는 서울 대학로 공공그라운드에서 스텐키스트 씨와 소수의 복지ㆍ행정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비공개 세미나를 가졌다. 이 시간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말뫼 시에서 사회혁신 컨설턴트로 일했던 언론인 출신 연구자 비아네 스텐키스트 씨가 1월 14일 서울 공공그라운드에서 열린 전문가 세미나에서 말뫼 모델의 이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우기

그 결과를 담아서, LAB2050이 전하는 ‘말뫼’의 마지막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말뫼가 정말 한국 제조업 도시들이 따라갈 만한 모델이 맞는지, 그렇다면 어떤 점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한 정치인의 리더십이 중요했다?

말뫼의 전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일마 리팔루 전 시장을 빼 놓을 수는 없다. “우리는 조선업 다음으로 어떤 산업을 선택할지 토론한 적이 없다. 말뫼를 청년을 위한 시험대(testbed)로 내놓았을 뿐이다.”, “미래를 위한 전환을 시도하려면 우리 도시가 놓인 큰 맥락을 생각해야 한다.” 등, 그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들이 큰 울림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가 1994년부터 19년간 시장직에 있으면서 안정적으로 시정을 이끌었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친 전환 과정이 흔들리지 않고 이어지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경남 사회혁신 국제포럼에서만도 여러 차례 “한국은 지자체장이 그렇게 오래 집권할 수 없기 때문에…”라며 말뫼와 우리 사정이 다르다는 뜻의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리팔루 전 시장의 리더십은 분명히 중요했다. 그러나 그 의미는 한국적 맥락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리팔루 전 시장은 처음 말뫼에서 인터뷰를 했을 때부터 “임기 첫 해에 거의 모든 일이 다 결정됐다.”는 말을 했다. 만일 그 시기를 놓쳤으면 전환의 프로세스를 밀어붙이지 못 했으리라고도 했다.

시장직에 오른 직후에 전문가와 시민 대표들로 ‘비전 그룹’을 만들었고, 이들이 토론을 거쳐서 전환의 방향을 정할 수 있도록 틀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 힘을 실어준 것이 리더십의 역할이었다. 그 뒤로는 거기서 도출된 방향에 맞게, 시의 행정 프로세스에 따라서 일이 진행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스텐키스트 씨는 “전환 과정에서 지방정부, 중앙정부, 기업,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사이에서 공감대를 만들어내고,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협상한 것이 리더십의 주된 역할이었고, 그 것을 잘 해냈다는 것이 말뫼의 성공 스토리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리더를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아이디어를 밀어붙이고 관철하는 것을 리더십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다.

건설 사업으로 위기를 넘겼다?

말뫼 모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말뫼는 외레순드 다리, 주택단지, 터닝 토르소(옛 조선소 부지에 지어진 고층 빌딩), 말뫼 대학 등을 대거 건설하면서 경기를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들어서 위기를 넘긴 사례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미 한국에서도 계속 시도돼 온, 새로울 것 없는 방법이라는 뜻의 질문이었다.

일마 리팔루 말뫼 전 시장이 1월 14일 서울 명동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사무실에서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리팔루 전 시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외레순드 다리 건설은 지방정부 사업이 아니라 스웨덴-덴마크 두 국가 간의 국책사업이었고, 건설 일자리는 그 당시 이미 동유럽 이주자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말뫼의 경제 및 고용 자체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

물론 외레순드 다리는 말뫼를 북유럽의 중심인 코펜하겐과 바로 연결되도록 함으로써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렇지만 리팔루 전 시장은 외레순드 다리의 진짜 의미는 다른 데 있다고 했다. 바로 ‘마음가짐의 전환’(transformation of mindset) 상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조선업의 도시, 제조업의 도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간다는 상징, 이제 우리는 최고의 지속가능발전 도시가 될 것이고 지식기반도시, 창조적이고 새로운 산업들이 일어나는 도시가 될 것이라는 상징으로써 외레순드 다리, 터닝 토르소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창 밖을 보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스텐키스트 씨도 말뫼 전환의 전략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마음가짐의 측면이었다고 했다.

전문가 세미나에 참석한 비야네 스텐키스트 씨. ©이우기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본래 스스로 더 탐구하고, 교육 받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조선업도 새로운 배를 디자인하고 만들어낸다는 면에서 그런 성향에 맞았던 일이었죠. 그렇지만 제조업 기반에서 서비스 기반으로 산업 전환을 해야 할 시점이 왔고, 말뫼는 그 적절한 시기에 ‘마음가짐’의 전환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그는 말뫼의 전환 과정이 그렇게 단계적으로 치밀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1년, 2년, 5년, 10년 단위로 추진 계획을 정하고 세밀하게 진행한 사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전환 초기에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고, 주위 다른 도시 또는 국가의 사람들에게 ‘저 곳에는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주거비와 생활비, 창업 비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왔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복지국가’이니까 가능하다?

말뫼 모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또 한 가지는, ‘복지국가’인 스웨덴과 한국의 상황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이 역시 타당성이 있는 지적이다.

실제로 코쿰스 조선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었던 노동자들을 2018년 말뫼에서 만나 인터뷰 했을 때, 그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 했다. 평생 일할 줄 알았던 직장이 사라졌고, 동료들과 헤어지게 된 일이 큰 충격을 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삶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 이후 자녀들의 삶에 영향이 있었는지를 물었을 때도 ‘왜 그런 것을 묻지?’ 하는 생각이 엿보였다. 실업급여와 연금 제도가 잘 갖춰져 있고, 주거비 부담이 크지 않고, 대학 교육이 무료인 사회에서 살아온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

코쿰스 조선소에서 일했던 베이 안토니슨(왼쪽) 씨와 욘-에릭 울슨 씨가 2018년 10월 LAB2050과의 인터뷰 당시 조선소 역사를 정리한 책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사회이기 때문에 과감하게 ‘제조업과의 결별’을 선언할 수도 있고, 장기간의 전환 프로세스도 가능하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은 ‘말뫼가 한국 지방도시들이 따라갈 만한 모델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스텐키스트 씨는 “대체 복지국가라는 게 뭐냐?”라는 반문을 했다. 현재 스웨덴의 복지국가 시스템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 원해서 몇십 년 전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반은 스웨덴 헌법 첫 문장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스웨덴의 모든 공공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All public power in Sweden proceeds from the people.)

대한민국 헌법의 첫 부분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 1조 2항)과 다르지 않다.

양극화가 더 심해진, 실패한 모델이다?

조선소 노동자들의 도시였던 말뫼가 지식기반산업의 창업 허브로 이미지가 바뀌는 동안 부작용도 생긴 것이 사실이다. 빈부 격차가 심해졌고, 총기 테러가 발생하는 등 불안정성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점 때문에 말뫼를 ‘실패한 모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스텐키스트 씨는 “말뫼가 25년 전보다 더 불평등한 도시가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14일 세미나에서 그가 보여준 자료에 따르면, 말뫼에서 ‘빈곤 상태에서 사는 어린이의 비율’은 부모가 스웨덴에서 태어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이 사는 가정일 때 2%에 불과했다. 그런데 부모가 해외에서 태어났고 한부모 가정일 때는 그 비율이 무려 52%에 달한다. 스웨덴 전체 단위에서는 그 비율이 각각 1%와 42%인 것을 보면 말뫼에서 양극화가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말뫼의 부모 출신지 등에 따른 빈곤 가정 아동 비율 ©비야네 스텐키스트

스텐키스트 씨는 “말뫼가 다리와 대학, 친환경 에너지 기반, 교통망 등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사람들에 대한 인프라 투자를 했어야 했는데 그 점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사회적 투자를 통해서 누구도 배제된다고 느끼지 않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말뫼의 당면한 과제라면서, 이민자의 사회참여를 높이기 위한 정책 등 최근의 시도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앞서 스텐키스트 씨가 ‘빈곤 상태에서 사는 어린이’를 설명할 때의 ‘빈곤’은 기본적인 삶이 어려울 정도의 절대적 빈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웨덴에서는 유럽연합의 기준을 따라서 ‘중위 소득의 60% 이하를 버는 가구’를 ‘빈곤 가구’로 본다. 우리가 중위소득 50% 이하를 빈곤 가구로 보는 것보다 높은 기준이다. 빈곤 가구들에 대해서 의식주 및 교육은 물론 문화·여가·통신 비용까지 지원하는 스웨덴 제도를 보더라도 우리와는 상황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스텐키스트 씨는 “중요한 것은 상대적인 격차에 따른 박탈감”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민자 가정의 자녀들이 “나는 이 사회에 속해 있지 않다.”고 느끼는 데 따른 좌절감이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 격차를 줄이지 못 하면 사회의 불안정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런 설명을 들었을 때, 말뫼가 이상적인 도시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이 도시에서는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궁극적인 ‘포용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의 빈곤 가정의 상황, 선별복지 사각지대로 인해 절대적인 빈곤에 놓인 가정들과 그 아이들, 그리고 이들이 지는 사회적 시선의 부담까지 감안한다면 그래도 스웨덴은, 말뫼는 분명 배울 점이 있는 모델이었다.

말뫼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말뫼 대학 건물

이상으로 말뫼 모델에 대해 가장 많이 나왔던네 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해 봤다. 말뫼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왜 ‘마지막’을 강조하느냐 하면, 애초에 이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알고자 했던 점들을 대체로 다 밝혔고, 충분히 전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좀 더 본격적으로 한국의 전환 모델을 생각해야 할 때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궁금증들이 또 나오겠지만, 각자의 시선에 따라 질문이 달라져야 하기에, LAB2050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로 하는 것이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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